공학박사→IT보안통→KT부사장… 첨단을 달려온 1세대 IT 대부

공학박사→IT보안통→KT부사장… 첨단을 달려온 한국 1세대 IT 대부

리멤버 Pro:logue

리멤버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커리어를 완성해가는 프로페셔널(Pro)들의 이야기(logue)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성공 서막을 여는 영감과 인사이트를 선사하겠습니다.


신수정 | 現 KT 부사장, 前 SK인포섹 CEO

국내 1세대 정보 보안 전문가이자, IT 전문 경영인입니다. HP·삼성SDS에서 IT 서비스 경험을 쌓은 뒤, 정보 보안 전문 업체 SK인포섹에서 대표이사를 지냈습니다. 이후 KT의 최고정보보호책임자로 발탁, 현재 부사장으로서 B2B 신사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일의 격’ ‘커넥팅’ 등 커리어 부문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작가로도 활약 중입니다.


‘정보 보안’이란 용어마저 생소하던 1990년대 초부터 이 분야에 뛰어든 1세대 IT 보안 전문가가 있습니다. 통신 업계 최초의 CISO(최고정보보호책임자)로서 KT의 보안 전선을 진두지휘, “오늘날 KT의 정보 보안 체계를 디자인하고 완성한 주역”으로 평가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업계 후발주자 SK인포섹(현 SK쉴더스)을 단숨에 IT 보안 1위 기업으로 키워내고, 단순 통신 사업자였던 KT를 클라우드·AI 등 첨단 디지털 전환 사업의 선두주자로 발돋움시킨 굴지의 IT 전문 경영인이기도 합니다. 바로 오늘 프롤로그의 주인공, 신수정님의 이야기입니다.

 

“새로움은 늘 두렵죠. 하지만 자기만의 경험과 역량을 믿고 부딪쳐 보는 용기, 이게 첨단을 달리는 현장에서 30년 넘게 IT맨으로 살아남을 수 있던 힘이라 믿습니다.”

 

언뜻 보면 촘촘히 잘 설계된 탄탄대로로만 보이지만, 신수정님은 그의 커리어 시작을 “좌충우돌의 우연 투성이”로 회고합니다. 과연 기계 공학 박사를 필생의 IT 전문가로, 우연을 필연으로 거듭나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리멤버가 직접 만나 신수정님의 커리어 여정을 자세히 들여다 봤습니다.

서울 KT송파빌딩 집무실에서 본인의 신간 저서를 들고 있는 신수정님/리멤버

Chapter. 1
얼떨결에 IT맨이 된 기계 공학 박사?!

국내 IT 보안 대부의 첫출발은 ‘기계 공학’이었습니다. 1987년 서울대 기계설계학과를 나와 2년 뒤 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까지 받은 건데요. 그러나 이듬해 첫 직장으로 택한 건 외국계 IT 서비스 업체 HP였습니다.

 

“현대차·삼성전자 다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들어간 게 IT 회사였어요. 그런데 그게 제 운명을 가를 중요한 선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기계 공학을 전공하셨어요.

착실한 학생이었지만 유독 암기 공부는 싫어했어요. 부모님은 법대나 의대에 가길 바라셨는데 도저히 못 따르겠더라고요. 대신 물리학과에 가려 했는데 “밥 벌어먹기 힘들다”며 만류가 심했죠. 그래서 타협한 게 기계설계학이었어요. 아는 형이 그 전공생이었는데 “전망이 좋다”는 거예요. 그 말만 믿고 갔습니다.

그런데 취업은 IT 서비스 회사로 하셨어요.

그게 제 운명을 가르는 중요한 선택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땐 그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싶었죠. 석사하면서 결혼을 좀 일찍 했거든요. 지방 근무 때문에 다른 공대생들처럼 현대차·삼성전자 등 제조사 취업은 어렵겠더라고요. 당시 서울 근무가 가능한 데는 죄다 외국계밖에 없었는데, 그중 HP에 아는 선배도 있고 해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HP에선 어떤 업무를 맡으셨어요?

Unix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습니다. Unix는 그 무렵 한국에 새로 들어온 워크스테이션(전문 작업에 쓰이는 특수 컴퓨터) 운영 체제였어요. 이 운영 체제에 맞게 고객사에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짜고, 각 프로그램이 원활히 돌아가도록 지원하는 일을 했죠. 처음엔 공부보다 일이 쉽더라고요. 오만했습니다. ‘난 똑똑한데 일도 무지 잘한다’는 생각에 빠졌죠. 그러다 대형 사고를 쳤습니다.

무슨 사고였나요?

컴퓨터로 설계 도면을 그려 납품하는 고객사가 있었어요. 어느날 하드 디스크를 추가로 설치해달라는 의뢰를 받아 작업 중이었는데 실수로 기존 하드 디스크를 포맷해버렸습니다. 두세달간 작업한 도면들이 그 순간 전부 날아갔어요. 곧 일본에 납품될 도면들이었죠.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결국 복구에 실패했습니다. 망연자실했어요. ‘난 끝이다. 내 커리어도 완전히 망가졌다.’

그런데 그때 구세주처럼 저희 과장님이 등판하셨습니다. 자신이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면서 사죄부터 보상까지 다 나서주신 거예요. 제겐 “신입이 실수할 수도 있지” 딱 한 마디 하시면서요. 어느새 그분보다 훨씬 더 높은 위치의 리더가 됐지만 아직도 그날의 과장님을 종종 떠올려요. ‘같은 순간에 나는 그분보다 더 멋진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을까’ 반성하면서요. 여하간 과장님과 저 모두 안 잘리고 사태도 잘 수습됐습니다. 그날부로 매사에 좀 더 겸손해졌어요.

1993년 신수정님은 HP를 관두고 학업에 복귀해 1998년 서울대에서 기계설계학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그러나 ‘기계 공학 박사’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다시 IT 분야 컨설턴트로 일하게 됩니다.

기계 공학 박사까지 하셨음에도 또다시 IT 서비스 회사인 삼성SDS로 가셨어요.

사실 기계 공학에 무슨 뜻이 있어서 박사를 한 게 아니었습니다. 원래는 신학 공부를 할 생각이었어요. 다만 부모님 반대가 걱정돼 박사 과정을 걸어놓고 몰래 미국에 가서 신학을 배웠죠. 하지만 1년쯤 지나니 신학은 제 길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귀국해 그냥 박사 과정을 마친 거예요.

삼성SDS로 간 것도 별뜻이 있던 게 아니에요. 단지 서울 근무가 좋아서 그리로 갔던 겁니다. 거기서 평온히 1년 정도 근무하던 차에 회사 선배에게 뜻밖의 제안을 받게 됩니다. 제 운명에 또 한 번 변곡점이 찾아온 거죠.

서울 KT송파빌딩 집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신수정님/리멤버

Chapter. 2
대기업 떠나 IT 창업 출사표! 그러나 연이어 맞닥뜨린 시련?

1999년 신수정님은 IT 컨설팅사 창업에 나서며 본격적인 IT 보안 전문가로서 첫발을 뗍니다. 하지만 시작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2~3달간 단 한 건의 수주도 없었고, 월급 줄 돈마저 떨어졌다”고 회고할 만큼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선배가 창업을 제안했던 건가요?

맞아요. 어느날 선배가 찾아와 “IT 컨설팅 사업을 해보자”고 하더라고요. 기업들이 어떻게 IT를 도입하고 적응해 나갈지 컨설팅을 해주자는 건데 당시로선 새롭게 뜨는 분야였어요. 평소에 저를 좋게 봐줬던 분이고 저도 많이 따랐던 터라 흔쾌히 합류했습니다.

처음엔 어려움이 많았다면서요.

영업본부장이랑 둘이서 온갖 회사를 찾아 영업하고 죽어라 제안서를 썼어요. 두세달간 PT를 100여차례 가까이 했을 거예요. 그래도 아무 성과가 없더라고요. 컨설팅은 B2B 수주 산업이잖아요. 아무리 저희가 실력이 있다고 한들 레퍼런스나 이력이 없으니 거들떠 보지도 않더라고요. 일반 소비자보다 지갑을 여는 데 훨씬 더 신중한 거죠. 오히려 상황만 나빠졌습니다. 자본금은 말라가고 직원들의 실망도 커져 갔죠.

어떻게 해결했나요?

‘정말 안 되나. 포기해야 하나’ 하던 시점에 수주가 하나둘씩 들어와요. 드디어 레퍼런스가 생긴 겁니다. 여기에 많은 실패와 시행착오로 쌓인 노하우들이 시너지를 내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게 돼요. ‘IT 보안 분야에서 우리가 뭔가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확신도 점차 생겼고요.

창업 3년째인 2001년, 어느덧 회사는 직원 60명 규모의 기업으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코스닥 상장사와의 인수 합병에도 성공합니다.

엑시트 결정 계기는 무엇인가요?

2000년대 초반 인터넷 붐이 일었죠. 그러면서 저희도 사업 분야를 좀 확장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다행히 자본력이 있는 코스닥 상장사로 매각이 되면서 위기를 넘기게 됐습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어요. 새 대표님과 저희의 경영 철학이 서로 잘 안 맞았던 거예요. 갈등 끝에 창업 동료였던 선배가 떠나버렸습니다. 결국 회사엔 저만 남게 됐어요.

서울 KT송파빌딩 집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신수정님/리멤버

Chapter. 3
IT 보안 컨설팅 1인자, IT 보안 1등 기업을 만들다

2002년 신수정님은 SK의 IT 보안 계열사 SK인포섹의 보안 컨설팅 본부장 자리로 이직합니다. 여기서 업계 최초로 보안 컨설팅 분야 연매출 40억원을 달성하고, 입사 3년 만에 해당 분야 6위 기업을 1위로 도약시킵니다.

 

“매출 목표를 부임 첫해 600억, 다음해 800억, 그 이듬해 1000억으로 잡았어요. 터프한 목표였지만 방향성을 한 데 잘 모으니 무서운 집단 집념이 발휘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창업한 회사를 떠나셨어요. 어떤 계기였나요?

IT 업계에 발을 들인 지 어느덧 12년이 흘렀더라고요. 차츰 업계 전문가로 소문이 나면서 여기저기 입사 제의가 들어왔어요. 선배가 나가면서 마침 저도 많이 흔들리던 참이었죠. 그런데 번번이 얘기가 잘 안 돼요. 제가 버거운 단서를 달았거든요. “직속 팀원 20명을 다 함께 데려가라.”

오직 한 군데만 흔쾌히 이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그게 바로 SK인포섹이었어요. 이제 막 보안 컨설팅 사업을 시작한 회사였는데 처음이라 지지부진했거든요. 제가 사업을 제대로 세팅시켜줄 적임자라 판단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담당자가 대표 허락도 없이 제 제안을 덜컥 수용하고 사후 설득을 한 거더라고요. 저도, 담당자도, 대표도 모두 나름의 베팅을 했던 거죠.

베팅이 성공적이었네요.

하지만 초반엔 좌절의 연속이었어요. 1년간 실패만 거듭했습니다. SK 자회사니까 그룹 내 수주는 많았지만, 레퍼런스가 마땅치 않다 보니 외부 일감은 하나도 못 따냈던 거예요. 어떤 면에선 창업 때보다 훨씬 힘들었어요. 그땐 멋도 모르는 초보 사업가였지만 이젠 나름 알아주는 보안 컨설팅 사업 전문가였잖아요. 스트레스가 상당했습니다.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이 악물고 버티기, 이게 정답이었죠. 다른 편법은 없더라고요. 결국 1~2군데 수주가 들어오고 점차 일이 풀려갔어요. 신기하게도 아주 빠르게 탄력이 붙었습니다. 길었던 실패만큼 층층이 쌓였던 노하우, 저와 함께 왔던 팀원들과의 오랜 경험이 시너지를 낸 결과였다고 봅니다.

SK인포섹 대표 시절인 2012년 매출 1000억원 목표를 언론에 공표한 신수정님/이데일리
신수정님은 2007년 전무를 거쳐, 2010년 대표이사 자리에 오릅니다. IT 보안 업계 최초의 ‘보안 전문가 출신 대기업 CEO’가 탄생한 겁니다. 신수정님의 지휘 아래 SK인포섹은 비약적 매출 성장(2009년 매출 400억 → 2013년 매출 1105억)을 기록하고, 컨설팅 부문을 넘어 전체 IT 보안 업계 1등 기업으로 발돋움합니다.

단기간에 폭발적 성장을 이뤄낸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오래도록 업계에서 들어왔던 얘기가 “IT 보안은 모든 게 따로라서 불편하다”는 거였어요. 고객사 입장에선 컨설팅, 그에 따른 각각의 솔루션 이행을 저마다 다른 회사들과 컨택해 처리해야 했거든요. 비전문가로서 이것저것 알아보려니 얼마나 힘들고 불편했겠어요. 저희는 이 불편에 집중했습니다. 컨설팅부터 각 시스템 구축, 운영에 이르기까지 원큐로 해결하는 토탈 케어 시스템을 구축했어요. 이게 주효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했던 건 담대한 목표를 잡고 구성원 모두가 힘을 모았다는 점이에요. 매출 목표를 부임 첫해 600억, 2011년 800억, 2012년 1000억으로 잡았어요. 일견 터프한 목표들이었지만 방향성을 한 데 잘 모으니 무서운 집단 집념이 발휘되기 시작했습니다.

‘소리동’이란 사내 커뮤니티도 도입하셨죠. 직원-직원, 직원-CEO 간 자유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채널인데 당시로선 “이례적으로 열린 소통”이란 평을 받았습니다.

일을 이뤄나가는 건 경영진이 아니라 직원들이에요. 아무리 뛰어난 경영 구상을 펼쳐본들 직원들과 따로 논다면 의미가 없어요. 회사와 직원 간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고 방향성을 잘 합치시키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처음엔 논란도 적지 않았지만 자정 작용도 강해지고 의견의 수준도 높아져 성장의 토대가 됐다고 자부합니다.

정보보호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13년 철탑산업훈장(정부가 수여하는 산업훈장 중 네번째 등급)을 수여받는 신수정님/과학기술정보통신부

Chapter. 4
KT 보안 해결사, 통신 사업자→디지털 플랫폼 전환 선봉장으로!

2014년 신수정님은 KT의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로 전격 합류합니다. 당시 KT는 개인 정보 유출 사고가 연달아 터지며 보안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었는데요. KT는 기존 보안 조직을 대대적으로 확대 개편하고, 그 조직을 맡아 전체 보안 수준을 끌어올릴 적임자로 신수정님을 발탁한 겁니다.

 

“PC부터 AI에 이르기까지 평생 기업들의 디지털 적응을 돕는 일을 해왔어요. 고비마다 버텨 온 건 도전에 전향적인 태도 덕분이었네요.”

 

KT는 어떤 계기로 합류하셨나요?

매너리즘에 빠져있었습니다. 보안 컨설팅 분야에 오래 몸담기도 했고 업계 1등도 해낸 만큼 더이상 새로운 목표를 찾기 힘들었어요. 그때 마침 KT에서 스카웃 제안이 왔습니다. 평생 남의 보안을 컨설팅해주는 일만 했는데, 이제 직접 그 보안을 책임지는 플레이어로 뛰어달란 제의였어요.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KT의 보안 수준을 한단계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으셨어요.

순혈 KT맨이 아닌 만큼 외부자의 시선을 잘 견지했던 게 주효했습니다. 기존의 KT는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인바운드 관제에만 집중하고 있더라고요. 안에서 밖으로 유출되는 아웃바운드는 상대적으로 소홀했죠. 그런데 사실 인바운드를 막을 100%짜리 방법은 없어요. 대신 악성 코드가 정보를 빼내지 못하게 아웃바운드를 잘 간수한다면 승산이 있었죠. 이에 집중하면서 좋은 성과가 나온 듯합니다.

2017년 신수정님은 IT 부문 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합니다. 이제 보안을 넘어 첨단 디지털로의 전환 사업을 이끄는 새 임무가 주어진 건데요. 먼저 사내망에 클라우드·AI 기반 업무 툴과 자동화 프로세스를 도입해 효율을 끌어올리고 연간 70억원 이상의 비용 절감에 성공합니다. 사내 성공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 말부턴 새로 론칭된 B2B 디지털 전환 사업을 총괄, 1년여 만에 B2B 전체 사업 수주를 90% 가까이 끌어올리며 사업 안착에 성공합니다. 업계에선 “단순 통신 사업자였던 KT를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파트너사로 변모시킨 주역”으로 평가됩니다.

KT는 업력 130년 이상의 통신 전문 사업자였죠. “탈통신”까지 외치며 디지털 전환 사업자로의 변신에 나선 게 이례적이란 평이 많았습니다.

좁게 보면 KT는 통신 전문 사업자이지만, 넓게 보면 줄곧 기업들의 업무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구축하고 지원하는 사업을 해왔던 거예요. 이 관점에선 통신도 그 일환인 셈이고, 차후 다양한 방면의 디지털 혁신을 지원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기존에도 KT는 클라우드, 데이터 분석 등에서 충분한 내부 역량을 쌓고 있었거든요. 이 역량들을 잘 결집해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다행히 연간 10% 이상 매출 성장을 일으키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파트너사로의 안착에 성공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다음 미션은 AI 트랜스포메이션 파트너사로 거듭나는 겁니다. 기업들이 최첨단 AI를 어떻게 업무에 적용할지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는 역할인 거죠.

정보 보안→내부 IT 혁신→B2B 디지털 전환 사업 경영자로 역할이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돌이켜보면 워크스테이션부터 현재의 클라우드, AI에 이르기까지 평생 기업들의 새로운 디지털 적응을 돕는 일을 해왔어요. 일련의 과정에서 나름 막중한 기회들을 부여받을 수 있던 건 대단한 전문가라서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에 늘 전향적이었던 태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몸담은 산업의 속성부터가 ‘첨단’이니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웃음) 이전부터 쌓아온 나만의 문제 풀이 경험과 역량을 믿고 새로운 문제에 겁없이 도전해보는 거죠.

2023년 11월 KT의 디지털-X 서밋 콘퍼런스에서 발표 중인 신수정님. 디지털-X 서밋은 KT가 B2B 브랜드인 KT 엔터프라이즈를 선보인 2020년부터 디지털 전환(DX)을 주제로 진행해 왔다./KT

Chapter. 5
첨단 현장서 보낸 30년, IT 대부가 축적한 통찰은?

‘한국 1세대 대표 IT 보안 전문가’ ‘KT의 B2B 사업을 이끄는 IT 전문 경영인’ 이외에도 신수정님을 수식하는 또 다른 타이틀이 있습니다. 바로 ‘직장인들의 멘토’입니다. 2013년부터 SNS에 공유한 커리어 인사이트들이 직장인 사이에서 점차 공감을 얻고 화제가 된 덕분인데요. 현재 팔로워만 십수만에 이르고 “페이스북의 현인”이란 별칭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프로란 자신에게 찾아오는 우연들을 스스로 이어 붙여 성공으로 만들어가는 사람”

 

정보 보안 전문가, IT 전문 경영인 이후 ‘신수정 3.0’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십대 후반쯤 깨달음을 하나 얻게 됐어요.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목적으로’ 하느냐가 더 중요하단 깨달음이었죠. 전자만 좇다 보면 무언가를 달성했느냐 그 자체에만 매달리게 돼요. 창업을 해서 돈을 벌었는지, 사장이 됐는지 등이요. 하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왜’에 집중하면 시야가 훨씬 넓어져요. 집착한 그 무엇도 결국 하나의 수단이 되고, 목적에 다가가는 모든 방법이 가치로워지죠.

그간의 제 커리어를 쭉 돌아봤어요. 외피는 기업들의 디지털 보안·적응을 도와주는 일이었지만, 결국 본질은 사람들의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고 그 적응을 돕는 일을 즐기며 살아온 거더라고요. 이후론 여기 부합하는 뭐든 재밌게 해보자는 마인드로 살게 됐죠. 현재 KT에서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것뿐 아니라, 저만의 커리어 인사이트를 잘 나누며 살아가는 것도 모두 ‘신수정 3.0’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SNS 활동을 시작하신 계기도 같은 이유였을까요?

첫 시작은 그저 우연이었어요. SK인포섹 CEO 시절 어느날 한 후배가 “트위터를 해봤냐”고 묻더라고요. “이름만 들어보고 직접 해보진 않았다”고 하니 “IT 업체 대표라면 한 번쯤 해보는 게 좋을 거다”고 권유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시작해 본 게 지금까지 오게 됐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지금까지 SNS를 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기록’이에요. 맨처음 말씀드린 대로 전 암기를 잘 못해요. 독서나 영화 감상을 정말 좋아하는데 머리에 통 남질 않으니 이게 아까워 온라인에 하나둘 적게 됐죠. 프라이버시도 아닌데 굳이 가릴 것도 없고 제 기록으로 남들도 도움을 받으면 좋잖아요. 여기에 점점 개인 생각과 경험을 녹이면서 제 피드만의 개성이 생긴 것 같아요.

신수정님이 개인 SNS에 올린 피드/페이스북
직장인들의 멘토로서 신수정님의 활동은 SNS 공간에만 그치고 있지 않습니다. 다양한 강연은 물론 베스트셀러 ‘일의 격'(2021)을 비롯, ‘통찰의 시간'(2022)·’거인의 리더십'(2023)·’커넥팅'(2024) 등 매해 신간을 내놓는 작가로도 활약 중입니다.

베스트셀러 ‘일의 격’에서 나온 ‘축적 후 발산’이란 개념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직접 그 의미를 더 풀어주신다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창업 때와 SK인포섹 초반이었어요. 수없이 PT를 하고 제안서를 쓰는데도 아무 성과가 없었잖아요. 오히려 더 나빠지기만 했죠. 절망적인 아이러니였어요. 하지만 모든 성공의 처음은 그렇더라고요. 죽도록 노력하는데 오히려 나빠집니다. 왜일까요? 들인 인풋만큼 미약하게라도 성과를 기대하는데, 현실은 그게 안 되니 실망이란 부작용만 생기거든요. 결국 이게 좌절로, 포기로 이어지게 되죠.

그렇다고 “무작정 버티면 된다”는 빤한 말씀을 드린 게 아니에요. 실망·좌절의 이면에 쌓이고 있는 경험과 역량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거죠. 이 두 에너지가 충분히 쌓이면 결국 변곡점이 만들어지고, 이후 강한 성장의 탄력이 됩니다. 성공의 곡선은 우상향 직선이 아니라 반곡선과도 같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 KT송파빌딩 집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신수정님/리멤버

신수정님이 생각하시는 ‘프로’란 무엇인가요?

스탠포드대 심리학 교수를 지낸 존 크럼볼츠란 분이 계세요. 지금은 작고한 직업 심리학 분야의 대가시죠. 제 저서에서도 인용한 그분의 ‘계획된 우연’이란 연구에 따르면, 성공한 사람 중 단 20%만 커리어가 계획대로 흘러갔다고 합니다. 대다수는 우연한 사건과 만남으로 커리어를 이어간 거죠. 결국 프로란 자신에게 찾아오는 우연들을 스스로 이어 붙여 성공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게 유연성이에요. 보통 프로라고 하면 전문성을 굉장히 강조하지만 외려 거기에만 갇히면 새 기회가 찾아와도 선뜻 도전하거나 적응하지 못해요. 그럼 결국 자기가 속한 회사나 산업만 쳐다보고 있게 되죠. 그건 프로가 아닐 겁니다.

주제 넘은 이야기처럼 들으실 수 있지만 사실은 살 떨리는 첨단의 산업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여전히 더 살아가야 하는 제 자신에게 던지는 말이기도 합니다. 두렵고 어렵죠. 하지만 그간 버텨 온 자신만의 경험과 역량을 믿고 새로움에 부딪쳐 보는 거죠. 이게 얼떨결에 시작한 IT맨으로서 3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저를 다양한 도전과 마주하며 살아가게 하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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