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고민 해결사, 국내 OTT 최초 여성 CEO가 되다

기업 고민 해결사, 국내 OTT 최초 여성 CEO가 되다

리멤버 Pro:logue

리멤버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커리어를 완성해가는 프로페셔널(Pro)들의 이야기(logue)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성공 서막을 여는 영감과 인사이트를 선사하겠습니다.


최주희 | 現 TVING CEO

국내 OTT 업계 최초의 여성 CEO입니다. 세계 3대 컨설팅 펌인 BCG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한 뒤, 월트디즈니코리아에서 아시아 사업 전략 업무를 담당했습니다. 이후 여성 패션 플랫폼 W컨셉과 명품 커머스 플랫폼 트렌비에서 각각 CSO(최고전략책임자), CBO(최고사업책임자)로서 흑자 전환을 이끌었습니다. 2023년 6월 TVING(티빙) 대표이사로 발탁됐습니다.


코로나 불경기에도 연이은 기업 성장을 만들어낸 하버드 출신 ‘기업 고민 해결사’가 있습니다. 혹독하기로 소문난 글로벌 컨설팅 펌에서 7년간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해결하며 베테랑 경영 컨설턴트로 거듭난 뒤, 스타트업 전략가로 직접 뛰어들어 업황이 나빠진 회사들을 연달아 흑자로 만들어냅니다.

작년에는 넷플릭스에 치이고 막대한 적자에 허덕이던 국내 OTT 업계에서 여성 최초로 CEO 자리에 올라 성장 해결사로 각종 사업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습니다. 바로 오늘 프롤로그의 주인공이자 국내 1위 OTT 서비스 티빙의 CEO, 최주희님의 이야기입니다.

 

“문제란 당연히 어렵죠. 하지만 반드시 풀어야 하고, 어떻게든 풀리고야 마는 게 문제입니다.”

 

화려한 이력 때문에 어떤 기업 고민도 척척 해결했을 것만 같죠. 하지만 베테랑 해결사의 첫 시작은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습니다. 첫 입사 면접 때부터 “모르겠다. 같이 풀자”며 질문을 마구 던져 면접관들을 당황케 하더니, 각종 고난도 컨설팅 프로젝트에서도 현장을 누비며 실무자들을 붙잡고 머리를 맞대 답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기업 내부자로선 더 어려웠죠. 당연한 성장 단서들이 보여도 조직의 오랜 관성이 번번이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기업 가치를 대대적으로 끌어올리며 2번의 스타트업 흑자 전환이란 입지전적 성과를 이끌어냅니다. 기존 사업의 핵심을 바꿔내는 대변화들과 함께 말입니다. 이렇듯 여러 기업 난제를 풀고 ‘최초의 OTT 업계 여성 CEO’란 성취를 만들어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리멤버가 최주희님을 직접 만나 그의 커리어 여정과 자세한 성공 내막을 살펴봤습니다!

서울 역삼동 리멤버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최주희님/리멤버

Chapter. 1
수학에 미친 하버드 석사도 어려워한 난제?

· 어려서부터 문제에 도전, 풀어내며 희열 느껴
· ‘의사→경영학자→컨설턴트’ 진로 계속 변화
· BCG 입사 비결 “면접관이랑 문제 풀어라”?!

하버드대 석사 출신입니다. 공부를 잘하신 비결이 뭔가요?

결핍이 갈증을 만든다고 하잖아요. 중학교 올라갈 무렵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이전까진 부족한 것 하나 없이 살아 평범하게 공부했는데, 이후론 믿을 건 저 하나뿐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했습니다. 그때쯤 의사의 꿈도 생겼고요. 아버지가 암 3기로 손쓸 새 없이 돌아가셨거든요. 돌아가신 아빠를 구한다는 마음으로 환자들을 살리자 다짐하며 꽤 오래 의사를 꿈꿨습니다.

그런데 정작 의대를 안 가셨어요. 포항공대 산업경영공학과에 진학하셨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늘 현실적인 사람이 돼요. 고3 막판에 뭘 잘하고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매일 되돌아보며 고민했어요. 그런데 제일 좋아하는 걸 꼽아보니 그게 수학이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삶의 일부라 느낄 만큼 좋아해서, 어느날은 ‘수학에 이 한 몸 바치리라’는 다짐까지 할 정도였죠. 대학 때 얘기지만 A4 용지를 가방에 늘 한뭉치씩 들고 다니는 걸로 유명했어요. 자투리 시간에 수학 문제를 풀려던 이유였는데, 그만큼 수학이 미친 듯 좋았죠. 

하루는 왜 그리 수학을 좋아할까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이때 퍼뜩 깨달았습니다. ‘나는 참 문제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문제란 게 아무리 어려워도 반드시 풀어야 하고, 또 풀리고야 마는 그런 어떤 것이잖아요? 정말 어려운 문제를 풀 땐 쾌감은 물론이고 왠지 모를 사명감마저 느껴지더라고요. 해당 학과를 택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수학을 도구 삼아 기업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으로 보였거든요. 기업의 고민을 잘 풀어내는 공학도가 되고 싶었어요.

왜 하필 기업의 문제였나요?

거창한 이유는 없었어요. 수학을 좋아했지만 수학만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기엔 부족하단 걸 직감하기도 했고, 어려서부터 기업이란 집단을 참 좋아했던 이유도 있어요. 80~90년대 제 학창 시절은 삼성·현대 등 국내 기업이 한창 글로벌화되던 시기였어요. 기업 발전과 맞물려 정치·사회도 함께 나아가더라고요. 이걸 피부로 느낀 세대였죠.

갑자기 진로를 바꾼다니까 어머니는 무척 반대하셨어요. 하지만 진로 문제는 자기 안에서 답을 찾는 게 맞는 거잖아요? 제 인생에서 맞닥뜨린 첫 중대한 ‘문제’였는데 지금 보니 첫 단추는 잘 채웠던 것 같습니다.

이후 경영학자를 꿈꾸며 하버드대에서 석사 학위(응용통계학·경제학)를 받습니다. 그런데 돌연 경영 컨설턴트로 진로를 바꿔요. 무슨 이유였나요?

저보다 훨씬 머리 좋고 학문에 미친 수재들을 보며 의욕이 꺾였어요. 석사 과정은 올A로 무난히 졸업했지만, 실은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방황했죠. 그 어렵다는 수학 문제는 곧잘 풀었는데! (웃음) 진로 문제는 상당히 난제였네요.

다시 제로 베이스에서 고민했습니다. ‘왜 기업을 연구하고 싶었을까’ ‘대체 기업이 뭐길래’ ‘기업을 알긴 알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오는데 제대로 답할 게 없더라고요. 결국, 기업을 직접 체험해본 뒤 제 진로 문제의 답을 찾아보자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경영 컨설팅 회사인 BCG에 지원하게 됩니다.

2007년 첫 직장인 BCG에 입사합니다. 세계 3대 경영 컨설팅 회사로 입사 경쟁이 무척 치열한데요.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부족한 것 투성이였어요. 3대 컨설팅 펌에 입사하려면 컨설팅 분야 지식도 많이 쌓고 경영 동아리도 하면서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대 출신에 공부만 내내 해왔으니 별 수 있나요. 알음알음 BCG 출신 선배들한테 조언도 구하며 한두달간 최선을 다해 면접을 준비했습니다.

그럼에도 역부족이었죠. 면접에선 “회사 앞 북엇국집의 연매출을 추정해봐라”는 문제가 나왔는데 너무 어려워 헤맸던 기억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웬걸, 덜컥 합격한 거예요. 의아해서 나중에 이유를 물어봤더니 “포스와 프레젠스(존재감)가 남다르게 느껴졌다”고들 하더라고요.

‘포스와 프레젠스가 남다르다’, 그게 무슨 말이었을까요?

면접이고 뭐고 진짜 그 문제를 다 같이 풀자는 마인드로 면접관들한테 질문을 마구 던졌어요. 어차피 다들 정답을 모를 만한 문제였잖아요. 그데 그게 먹힌 것 같아요. 컨설턴트는 기업의 고민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풀이에 도움만 된다면 상사든, 하다 못해 면접관이든 그 앞에서 눈치 보고 주눅들 필요 없어요. 오히려 설레야죠.

순수하게 문제에만 집중해 어떻게든 풀려고 애쓰는 제 태도를 저 두 단어로 표현해주신 것 같아요. 사실 이 태도가 컨설턴트는 물론 지금 경영자로서의 저도 지탱해주는 근간이라고 생각해요.

 

“면접관들한테 같이 문제를 풀자며 질문을 막 던졌어요. 문제에만 집중해 어떻게든 풀어내려는 태도를 좋게 봐준 것 같아요.”

 

Chapter. 2
혹독한 BCG 7년, 기업 문제 풀이법을 찾다! 

· 블랙박스 속 난제, 현장서 소통하며 답 찾아
· 마초적 분위기 속 여성 컨설턴트 새 유형 제시 
· 전략만 7년… 사업 A-Z 전부 경험하고자 퇴사

BCG는 업무 강도가 굉장히 센 직장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적응이 어렵진 않았나요?

BCG는 3대 컨설팅 펌 중에서도 가장 혹독한 편이에요. 주니어한테도 단순 업무만 시키지 않고, 임원급의 고민이 담긴 프로젝트를 턱턱 맡기죠.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초년부터 그만큼 성장 기회를 많이 준단 얘기도 되죠. 당장 1년차 때 맡은 프로젝트만 해도 그랬어요.

TV 부속품 원자재 제조 업체의 의뢰였어요. 몇년간 생산성이 너무 낮아졌는데 도무지 원인을 모르겠다는 거예요. 먼저 이 회사가 모니터링하는 데이터를 전부 뽑아 살폈어요. 그런데 모든 자료를 다 뒤져도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제조업은 보통 공정 단위로 생산성을 뽑아 봐요. 살짝씩 다 안 좋아지긴 했는데 원인이 안 잡히더라고요. 며칠 내내 블랙박스에 갇힌 기분이었습니다. 컨설턴트를 하기엔 통찰력이 너무 부족한가 싶어 좌절했죠. 결국 포기했습니다.

 

“문제는 반드시 그 문제 속에 답이 있어요. 특히 기업의 문제는 현장과 실무에 있죠.”

 

포기하셨다고요?

예, 탁상에서 답 찾기를요. 대신 현장으로 나갔어요. 각 공정 담당자들을 죄다 인터뷰했어요. 그래도 실마리가 안 잡혀 최소 제조 단위 담당자들까지 다 만났어요. 그제야 실마리가 잡히더군요. 어느날 한 실무자가 “생산 공정이 따로 없는데도 받는 주문이 있었다”고 지나가듯 말하는 거예요. 붙잡고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1~2년간 특정 인치의 화면이 트렌드가 되면서 인기를 끌었는데, 그 크기의 TV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왔었다”는 거예요. 

‘주문은 받아놨는데 그걸 담당 중인 공정이 없다?’ 이상하다 싶어 인치별로 생산 데이터를 만들어 살펴봤어요. 그제야 답이 보이더라고요. 해당 인치를 담당할 별도 공정이 없으니 아무 공정에나 불쑥불쑥 끼워놨던 거예요. 해당 인치 생산성이 올라가면서 다른 인치 생산성은 확연히 낮아진 거였죠. 결국 ‘인치별 공정을 따로 세우면 생산성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확실한 솔루션을 드리고 나올 수 있었습니다.

초년 때 경험이지만 향후 두고두고 되짚게 된 통찰을 이때 깨쳤어요. ‘문제는 반드시 그 문제 속에 답이 있다. 특히 기업의 문제는 현장과 실무 안에 있다.’ 중요 단서는 언제나 현장에 있는데, 조직에 잘 공유가 안 돼 서로 헤매고들 있던 것뿐이죠. 제가 할 일은 이 클루들을 엮어내 논리적인 형태로 전달하는 것뿐이었습니다.

한창 인정받던 시기에 컨설턴트를 관두셨어요.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두산중공업 엔지니어들의 평가 체계를 개선하는 프로젝트를 맡은 적이 있어요. 온갖 HR 논문을 뒤지고 글로벌 기업 사례를 탐구했지만 답이 안 나와, 숙련공들과 몇달간 머리를 맞대 아예 새로운 평가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이 체계가 향후 두산이 엔지니어를 평가·보상하는 기본 틀이 됐어요. 10년 전이라 지금도 유지될지 장담할 순 없지만, 당시 큰 호평을 받아 뿌듯했어요. 이 체계가 기업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을지, 어떤 성과를 냈을지도 너무 궁금했고요. 

하지만 컨설턴트는 프로젝트가 끝나면 그 기업과 굿바이잖아요. 전략을 제시하는 역할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전략을 직접 실행하며 내 손으로 기업 가치를 키워보고 싶단 갈급함이 점점 커졌습니다. 물론 퇴사 직전까지도 망설였어요. BCG 평균 근속 연수가 대략 2년인데 7년을 있었어요. 아이를 낳고도 2년을 더 다녔고요. 컨설턴트는 마초화되지 않으면 버티기 어려운데, 여성 후배들에게 다른 유형의 롤모델이 돼 주는 것도 멋진 사명 같았거든요. 그럼에도, 정말 제대로 사업에 몸 담아보고 싶단 마음에 과감히 사표를 던졌습니다.

서울 역삼동 리멤버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최주희님/리멤버

Chapter. 3
‘꿈의 직장’ 디즈니가 못 채워준 꿈?

· 본사 대전략 맞춰 아시아 전략 담당
· 그러나 신사업보단 효율화에 주력했어야
· ‘획기적 매출 드라이브’ 이끈다는 갈증 못채워

2013년 월트디즈니코리아로 이직합니다. 어떤 계기로 합류하셨나요?

인생 취미가 딱 2가지인데 하나가 ‘드라마·영화 보기’예요. 디즈니 콘텐츠도 어려서부터 정말 좋아했고 완전 팬이었죠. 때문에 디즈니는 제가 일해볼 수 없는 마치 꿈의 직장처럼 느껴졌어요. 헤드헌터한테 입사 제안을 받고서도 잠깐 동안은 제가 꿈꾸고 있는 줄 알았죠. 좋아하는 분야의 콘텐츠를 통해 사업 경험도 쌓을 수 있으니 아주 부푼 마음으로 이직을 결정했습니다.

여기선 아시아·한국 사업 전략을 담당했어요. 미디어 강국인 만큼 한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전략을 짰거든요. 아울러 미국 본사 전략에도 참여해 종종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했고요. 당시 디즈니 전략팀은 본사와 해외를 합쳐도 40명밖에 안 됐거든요. 

이런 말씀만 드리면 왠지 세계 미디어 판을 흔드는 가슴 뛰는 일들만 했을 것처럼 들리지만… 어른이 돼서 만난 디즈니는 어릴 적 환상과는 다르더군요.

일이 기대에 못 미쳤나요?

2015년 무렵 디즈니도 D2C(Direct to Consumer) 전략 방향을 수립해요. 고객에게 자사 상품을 직접 팔아 접촉면을 늘리려 한 겁니다. 고객의 디테일한 취향까지 파악해 정보로 쌓아두는 게 점점 기업 경쟁력이 되고 있었으니까요. 이 본사 대전략에 발맞춰 여기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세우고 검토했어요. 한국의 디즈니 랜드, 디즈니 스토어도 주장해보고, 나중엔 중국에서 잘나가던 디즈니 영어 학원도 해보자고 했으나 전부 불발됐습니다. 로컬 콘텐츠 제안도 몇번 했는데 씨알도 안 먹혔어요. 그저 본사가 배급해주는 콘텐츠들만 쳐다봐야 할 뿐이었죠.

 

“컨설턴트로 7년, 디즈니에서 5년… 더이상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었죠.”

 

각종 신사업이 불발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저로선 충분히 승산있는 도전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본사 입장에선 한국이 그만큼 크고 매력적인 시장이 아니었던 거죠. 성공을 위해 필수였던 현지 맞춤형 전략을 세우겠단 의지도 당연히 부족했고요. 때문에 신사업 대신 자잘한 기존 사업 효율화에만 주력해야 했습니다. 국내 디즈니 채널 편성을 어떻게 바꿔야 시청률이 잘나오는지, 마케팅을 오프라인에서 디지털로 전환하면서 비용을 아낀다든지 하는 것들이었죠.

결정적으로 OTT 서비스인 디즈니+ 론칭을 검토하면서 더 큰 아쉬움이 생겨요. 무척 기대하던 사업인데 알고 보니 한국은 론칭 계획이 너무 늦더라고요. 아예 맨끝이었죠. 컨설턴트로 7년을 보내고 디즈니에서 5년이 지난 시점이었어요. 더이상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었죠. 이제 정말 시장을 개척하고 매출을 확 끌어올리는 도전에 나서보고 싶단 갈증이 폭발할 지경이었습니다.

최주희님이 디즈니를 떠나고 3년 후인 2021년 11월 국내에 론칭된 디즈니+/디즈니+

Chapter. 4
베테랑 컨설턴트의 경영 데뷔, 첫 관문은 관성 타파!

· 패션 플랫폼 W컨셉 성장 이끌 CSO로 합류
· 모회사에 종속된 물류 고리 끊어내고 독자화
· 관성 깨고 사입, 카테고리 확장 등 변화 물꼬

2018년, 글로벌 대기업을 떠나 당시 갓 10살된 신생 패션 플랫폼 W컨셉에 CSO로 가게 됩니다.

인생 취미 2가지 중 나머지 하나가 ‘쇼핑’이거든요. (웃음) BCG 출신 지인을 통해 자리를 소개받았는데 굉장히 끌렸어요. 패션 플랫폼이니까 세일즈를 리드하며 생생히 일할 수 있고, 젊은 조직이니 복지부동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죠. 

막상 면접 분위기는 상당히 적대적이었어요. 대표님이 제가 내놓는 전략 방향마다 족족 어깃장을 놓으셨거든요. 가만 있을 수 없잖아요? 저 역시 지지 않고 그 이유들을 캐물었어요. 어느새 BCG 면접의 데자뷰처럼 거꾸로 제가 대표님을 인터뷰하고 있더라고요. (웃음)

대표님이 어깃장을 놓으셨던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알고보니 CSO 선발 자체를 못마땅해하셨더라고요. CSO는 당시 투자사 제안으로 뽑게 된 자리였는데, 기존 사업을 헤집고 너무 많은 변화를 요구할까봐 부담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렇게 면접은 옥신각신 끝났지만 결국 CSO로 발탁됐습니다. 경영자는 외로운 사람들이거든요. 당돌하게 자신과 눈높이를 맞추면서 고민을 함께 발전시킬 사람들이 필요한데 그 적임이라고 보셨나 봐요.

하지만 CSO로서 해야할 일도 결국 다수가 꺼리는 그 변화들을 만들어내는 일이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물류 독자화’였어요. 모회사한테 물류가 종속돼 있었거든요. 매출을 올리려면 적시에 많은 물건을 팔아야 하고 물류가 탄력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모회사가 바쁘다고 안 해주면 일이 안 됐던 거죠. 때문에 이건 다른 모든 성장을 가능케 할 단연 가장 중요한 이니셔티브였어요. 당연히 진작 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된 나름 심각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였나요?

‘새로운 일이라서’였어요. 사내에 물류를 해본 사람이 없었어요. 잘할 자신도 없고 부담스러워서 다들 꺼리기만 했던 거예요. 그렇다고 대기업처럼 인력을 턱턱 뽑는 것도 한계가 있었죠. 이제 정답이 나왔잖아요? 다들 조건이 같으니까 아무나 나서면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했어요. 컨설턴트 출신이니까 공부 하나는 자신 있잖아요. 열심히 공부해서 6개월 만에 모회사와의 관계를 끊어냈고 1년 안에 독자적인 물류팀을 세팅해냈습니다. 

이제 규모 있게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거죠. 그 다음은 본격적으로 세일즈 이니셔티브들을 해나가면 됐습니다. 마침 1~2년쯤 지나 상품기획본부장 자리가 공석이 돼 겸직하게 됩니다.

 

“새로움이란 문제는 그 새로움을 해나감으로써만 극복되더라고요.”

 

상품기획본부장으로선 어떤 이니셔티브에 주력했나요?

사입을 도입했습니다. 물류 독자화도 이룬 만큼 매해 인기가 좋았던 제품들을 싹 파악해 값이 싼 비시즌에 창고가 가득찰 정도로 확보해두고 시즌이 오면 판매했습니다. 패션몰로서 마진을 쉽게 남길 수 있는 너무 당연한 방법인데 아무도 안 하고 있더라고요. 겸직 전후론 뷰티·스포츠·명품 등으로 판매 카테고리도 넓혔어요. 나중에 나이키 입점으로만 100억원 연매출이 들어왔어요.

MD(상품기획자)들의 평가 구조도 바꿨습니다. 다들 죽어라 일하는데 영업 이익은 크지 않았어요. 살펴보니 부서 목표가 오로지 매출로만 잡혀있더라고요. 쿠폰을 뿌려대며 매출만 올리고 마진은 내팽개치기 십상인 구조였던 거죠. 이 목표를 영업 이익 중심으로 바꾸고 나니 쿠폰 없이 매출을 키울 전략들을 스스로 잘 고안해내시더라고요. 가끔 쿠폰을 쓰자고 해도 본인들이 먼저 말리기도 했죠.

진작 이뤘어야 하는 변화들인데, 새로움을 향한 두려움이 발목을 잡고 있던 거예요. 안 해봤으니 두렵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참 묘한 게, 새로움이란 문제는 그 새로움을 해나감으로써만 극복이 되더라고요. 해나가면서 “이거 되지 않느냐”를 보여주면 풀리더라고요. 하나의 변화가 만들어낸 성과가 다시 새 변화의 동력이 되는 과정이 반복되며 회사도 비약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여성 패션 플랫폼 W컨셉 서비스 소개/W컨셉

Chapter. 5
불경기에 연타석 흑자… 매출·이익 다 잡는 해결사로!

· “장기적이고 강력한 성장 비결은 뚜렷한 비전”
· ‘브랜드 파트너십’ ‘신상→중고거래’ 새 비전
· W컨셉 가치 2.6배↑ 트렌비 1년 만에 흑자

W컨셉 세일즈 조직을 총괄 운영하시면서 매출이 3배 이상 올랐습니다. 2020년엔 드디어 흑자 전환에 성공합니다.

어찌 보면 당장 기업 매출이나 마진을 올리는 건 쉬워요. 물류 독자화나 사입처럼 당연히 해야할 과제를 뚝심 있게 추진하면 되죠. 관성, 두려움이 문제지 최소한 방향을 모르진 않잖아요. 하지만 강력하면서도 장기적인 성장은 비전에 달려있어요. 조직원 상당수가 짐작도 못할 새 비전을 제시해야 할 때도 많죠. 그걸 드라이브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W컨셉엔 어떤 새 비전이 필요했나요?

이 회사가 사랑받았던 이유는 여성 의류 편집샵으로서 독보적이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당시 3000개 이상의 디자이너 브랜드 중 모든 곳이 다 그 독보성에 기여한 건 아닙니다. 상당수 매출은 상위 20개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이끌어나갔죠. 그럼에도 모든 브랜드를 MD들이 동등하게 나눠 관리하며 거의 똑같이 대우하고 있었어요. 때문에 상위 편집샵들은 항상 좀 서운해 했죠. 가끔씩 “다른 플랫폼으로 가버리겠다”는 협박(?)도 했고요. 

당시 저희 위상이 공고해서 실제 이탈 위험은 크지 않았지만, 전 이게 굉장히 큰 문제라고 봤어요. 회사 스스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몰랐던 것이니까요. W컨셉은 ‘엄청 많은 브랜드들이 입점해 있어서’ 성장했던 게 아니에요. ‘고객들이 믿고 사랑할 브랜드가 있어서’ 성장했던 거죠.

향후부턴 그런 브랜드들을 더 집중 지원·발굴해 대형 백화점에도 입점시키고, 해외 무대에서도 인정받게 해 다른 어떤 플랫폼보다도 더 믿고 함께 커나가고 싶게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려면 이 브랜드들과 훨씬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해 여성 의류 편집샵으로서 더욱 유니크한 플랫폼이 돼야 했죠. 그게 드라이브해야할 새 비전이었습니다.

비전 실현을 위해 구체적으로 하신 일은 무엇인가요?

저부터 발벗고 나섰습니다. 각 브랜드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실장님, 실무진들을 최대한 만나 “꼭 함께 성장하자. 말로만 그치지 않겠다”고 말씀드리면서 라포를 쌓았죠. 유통 플랫폼 이사급 세일즈 헤드가 브랜드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다니는 경우는 처음 봤다면서 긍정적인 의미로 좀 놀라시더라고요.

정말 말로만 그치지 않도록 실제 조직도 정비했어요. 해당 브랜드들만 담당할 MD팀을 따로 구성했죠. 단순 업무만 돕게 한 게 아니라, 아예 1대1 맞춤 성장 전략을 함께 짜도록 했습니다. 저도 브랜드와 수시로 소통하며 함께 경영 고민을 나누고 디스커션 파트너가 돼 드렸습니다. 소통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프로모션은 물론 시즌별 상품 기획까지 브랜드마다 먼저 제안했고 차례로 성과가 났습니다.

제 회사 키우듯 진심으로 공 들인 결과, 이 브랜드들을 저희 주력으로 거듭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MD 조직도 20위권 밖의 라이징 스타를 발굴해내는 데 주력하게 해 효과를 극대화시켰고요. 이는 추후 W컨셉이 굴지의 대기업들한테 높은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매각될 수 있던 핵심 요인으로도 작용합니다.

2021년 SSG닷컴이 W컨셉을 2650억원에 인수하죠. 4년 만에 3배 가까운 기업 가치를 인정받은 건데요. 하지만 돌연 그해 연말 회사를 관둡니다.

매년 40%씩 성장 중이었어요. 탄력이 붙은 상황이라 투자 전후로 기대가 많았습니다. 대기업의 인수인 만큼 주력 브랜드들의 해외 진출 등 숙원 사업도 수월히 진행될 줄 알았어요. 하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은 훨씬 더 컸습니다.

해외 진출은커녕 이 브랜드들을 줄줄이 경쟁사들한테 뺏겼어요. ‘여기만큼은 절대 뺏기지 말자’고 애착하던 브랜드마저 넘어가던 날엔 눈물이 절로 나더라고요. 경쟁사들의 민첩한 투자 속도를 대기업이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패션 디자이너셨어요. 그 때문인지 정말 실력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함께 기업을 키워가겠단 비전을 정말 사랑했어요. 제 손으로 꼭 실현하고 싶었는데 외려 경쟁사에 속수무책으로 잠식돼 가는 상황을 못 견디겠더라고요.

2021년 W컨셉을 2650억원에 인수한 SSG닷컴/파이낸셜뉴스

W컨셉을 떠나 명품 커머스 플랫폼 트렌비에 다시 한번 CSO로 가게 됩니다.

불경기에 스타트업 돈줄이 말라 1000억원대 투자가 불발된 상황이었어요. 트렌비로선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핵심 과제였습니다. 우선 해외 지사 통폐합 등 돈이 안 되는 여러 사업을 구조조정했습니다. 비용 감축이 그 자체로 중요했던 건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남은 에너지를 끌어모아 당장 필요한 일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어요.

특히 당시 트렌비의 서비스 방식은 단언컨대 비전이 없었어요. 각종 온라인 명품 사이트를 비교해 최저가로 명품을 사들여 되팔고 있었는데 이는 절대 지속가능하지 않은 모델이었습니다. 코로나 때 명품 매장들이 죽 쑤면서 반짝 떠오른 사업 모델일 뿐이었죠. 설령 계속 잘 팔려 시장이 커져간다고 해도 명품 업체들이 넋 놓고 방관하진 않았을 겁니다. 한마디로 미래가 없던 거예요.

새롭게 제시한 비전은 어떤 것이었나요?

당시 트렌비는 신상 사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입은 보통 신상보다 중고가 훨씬 마진이 높아요. 사입을 할 거면 당연히 중고를 하는 게 좋겠단 생각이 들었죠. 헌데 이 생각이 좀더 발전되면서 아예 ‘안전하게 인증한 중고 명품을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이 돼 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마진이 높은 건 물론이고 위탁 판매를 통해 수수료도 쏠쏠히 챙길 수 있었죠. 무엇보다 중고 명품을 사고파는 거래 문화를 우리가 안착시키고 그 선두주자가 되는 건 굉장히 건강한 비전이었어요. 명품도 안전하게 중고 거래하고 싶다는 니즈는 시장이 풀지 못한 오랜 숙제였으니까요. 명품 업체들이 굳이 견제할 분야도 아니었고요. 

 

“어차피 변화든 반발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빨리 변화를 이뤄내 성과를 입증하는 것만이 그 반발을 잠재울 길이죠.”

 

사업 구조를 대대적으로 전환하는 일이니 진통이 컸을 텐데요.

각자 눈높이에 맞춰 끊임없이 소통하고 설득했어요. 경영진과 투자사는 물론, 타운홀이나 소규모 팀 미팅을 자주 열어 실무진들과도 많이 소통했습니다. 그럼에도 몇몇 임직원들이 퇴사하는 등 부침은 있었어요.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더 속도감 있게 사업 변화를 추진했어요. 어차피 어떤 변화든 반발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변화에 확신만 있다면 더 가열차게 일해서 빨리 그 변화를 이뤄내고 성과를 입증해야죠. 그게 반발을 완전히 잠재울 길이니까요. 서비스 개발이 예정보다 빠르게 이뤄져 딱 3개월 만에 피봇에 성공합니다. 경쟁사 대부분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서비스 출시 첫달, 아주 극적으로 손익분기를 넘깁니다.

명품 커머스 플랫폼 트렌비 서비스 소개/트렌비

Chapter. 6
국내 OTT 업계 최초 여성 CEO 등극!

· 티빙서도 ‘매출·이익 승부사’ 역할 기대
· 넷플릭스 따라잡기 아닌 차별화로 승부
· “KBO 독점 중계로 야구 발전 같이 이룰 것”

작년 7월, 한국 OTT 1위 업체인 티빙 CEO로 발탁됩니다. 커머스에 강점이 있는 인사라 의외였단 업계 반응도 있었습니다. 

제안 자체로 영광스러웠고 욕심이 많이 났습니다. 예전부터 한국에서 넷플릭스의 아성을 넘볼 수 있는 OTT는 티빙밖에 없다고 봤거든요. 디즈니에선 못 다한 OTT의 꿈을 티빙에서 펼치게 된 것도 저로선 의미가 남달랐고요. 

우려 섞인 반응도 물론 알았죠. 하지만 크게 대수롭진 않았습니다. 알다시피 국내 OTT 업체들은 수년째 크게 적자예요. 이젠 흑자를 만들 역량을 보여야 하죠. 이때, 단순히 비용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매출을 확 끌어올리는 방식으로도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는 적임자를 찾으셨던 것 같아요.

제가 그런 적임자였다고 단언하는 건 아닙니다. (웃음) 다만, 대기업 등에선 이런 경험을 가진 분들을 찾기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젊은 기업에서 매출 성장과 흑자 전환을 함께 이뤄낸 제 경험을 높이 사주신 것 같습니다. 저 스스로도 자신감이 있었어요. 절대 지금 같은 적자가 나올 비즈니스는 아니라고 봤거든요. 어쩌면 경영자로서 행운이라고도 느꼈습니다. 

/아시아경제

 

“넷플릭스 등 글로벌 미디어는 로컬에 약해요. 현지 OTT의 강점을 십분 살릴 계획입니다.”

 

티빙 CEO로서 새롭게 제시하는 비전은 무엇인가요?

넷플릭스와 충분히 비견될 미디어 플랫폼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간 국내 OTT들이 넷플릭스에 크게 밀린 건 따라잡기에만 급급했기 때문이에요. 오히려 강한 차별화가 필요합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미디어는 로컬에 약해요. 디즈니 때 직접 배운 경험이기도 하죠.

한국 현지 OTT의 강점을 십분 살려 뚜렷이 차별화된 시청 경험을 제공할 거예요. 저희한텐 그간 한국에서 각별히 사랑받아온 콘텐츠 IP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 너무나 좋은 재료들을 OTT 특화로 잘 만들어낼 거예요. 아울러 글로벌 미디어들이 도저히 쉽게 넘볼 수 없는 한국적 맥락과 정서도 콘텐츠 속에 녹여넣을 거고요.

조만간 티빙이 선보일 국내 프로 야구 독점 중계가 그 대표 사례가 될 것 같아요. 한국 야구를 볼 때 팬이라면 공감할 그만의 재미 요소들이 있잖아요. 그 재미의 A-Z를 속속 끄집어낼 중계 콘텐츠를 만들어볼 예정입니다. 최근 2030세대의 야구 관심도가 10년 전의 절반도 안 된다고 하죠. 야구 시청 재미를 극대화해 돌아선 팬심을 되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면, 티빙이 정체된 야구 산업을 발전시킬 핵심 고리가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로컬 주체들과 함께 콘텐츠를 만들고 혁신해가며 한국 최고의 미디어 플랫폼으로 성장시키고자 합니다.

국내 1위 OTT 플랫폼 티빙 서비스 소개/티빙

Chapter. 7
최초 넘어 혁신 향한 해결사의 도전은 이제 시작!

· 커리어 지속 비결은 “자신과의 대화”
· 플랫폼 비즈니스 본질은 ‘공동’의 혁신
· “혁신 촉진해내는 게 플랫폼의 역할”

분야는 다르지만 줄곧 플랫폼 서비스에만 몸담아 오셨습니다. 아직도 뚜렷이 정의하기 어렵단 얘기가 많은데, 플랫폼 비즈니스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작정하고 의도한 커리어는 아니었어요. (웃음) 하지만 왜 제가 플랫폼 비즈니스에 끌려왔는지는 알 것 같습니다. 시장의 기본은 혁신이에요. 그리고 혁신의 주체는 보통 기업이죠. 그런데 플랫폼 시장은 혁신 주체가 아주 여럿인 비즈니스예요. 제조업처럼 대단한 기술로 새로운 제품을 찍어낸다고 해서 혁신이 이뤄지는 게 아닌 거죠. 때문에 플랫폼 사업자의 역할은 참여자들을 잘 조율해 혁신을 촉진한다고 정의하는 게 맞겠습니다.

W컨셉 땐 실력 있는 브랜드들을 지원해 그들이 좋은 의류로 시장을 혁신하도록 했고, 트렌비 땐 중고 명품 거래에 목마른 유저들이 거래할 수 있도록 안전한 판을 깔아줬을 뿐이에요. OTT도 결국 본질적으론 마찬가지예요. 기존 방송국 PD, 영화 감독뿐 아니라 크고작은 다양한 크리에이터들, 심지어 유저들과도 함께 혁신을 만들어 성장해가는 비즈니스죠.

제가 컨설턴트 초년 시절 때부터 간직한 태도, 즉 문제를 모두와 함께 최선을 다해 푸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플랫폼 비즈니스에 부쩍 더 이끌려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 OTT 업계 최초의 여성 CEO’ ‘1982년생 신진 기업 리더’란 타이틀로 조명받고 있죠. 순탄치 않은 여정이었고 이후로도 도전이 만만치 않을 듯합니다.

티를 잘 내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사실 많이 힘들었죠.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아직 부임 1년도 안 된 CEO라 그런지 성장통을 겪는 중이죠. ‘잘해낼 수 있을까’ ‘역량이 될까’하는 불안한 마음도 종종 들고요.

최근 5년간은 거의 매일 새벽에 일어나 1시간쯤 명상을 했어요. 하지만 제 마음을 단순히 위로하려던 차원은 아니에요. 명상을 하다 보면 중압감이나 스트레스는 잠시 내려가고 객관적인 제 상황과 문제가 보입니다. 그때 제 자신과 드라이하게 대화하고 고민하며 답을 찾아갑니다. 감정에만 짓눌려 있으면 섣부른 답이 나올 수 있는데, 자신을 메타적인 시선에서 들여다 보면 좀더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되더라고요.

꼭 명상이 아니더라도 저는 커리어의 중요한 고비마다 늘 이렇게 자신과 대화하며 풀어갔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나중에 돌아봐도 후회 없는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순간순간의 고비를 넘기고 도전을 이어나갈 수 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서울 역삼동 리멤버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최주희님/리멤버

 

“프로란 자신한테 주어진 문제를 책임지고 풀어내고야 마는 사람”

 

최주희님이 생각하시는 ‘프로’란 무엇인가요?

프로란 자신한테 주어진 문제를 책임지고 풀어내고야 마는 사람이 아닐까 합니다. 직장에서 주어지는 그날그날의 과제가 됐든, 중대한 커리어상의 선택이 됐든간에 말이죠. 그리고 문제는 결국 역량이 아닌 태도로 풀린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최선을 다해 고민해보고, 안 되면 역량 있는 동료들을 찾아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그럼 정답의 근사치라도 얻어낼 수 있습니다.

힘든 순간이 많겠죠. 하지만 흔들리는 순간에도 말 그대로 프로답게 풀어야할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면 결국 답이 나올 거예요. 그리고 주변에 꼭 도움을 구하고 함께 논의해보세요. 진짜 프로의 세계는 결코 고독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프로로 진화할수록 점점 더 어려운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고 혼자서 풀기란 어렵단 걸 프로라면 다들 알고 있으니까요. 겸허히 지혜를 구하면 힘을 꼭 보태줄 거예요.

반드시 풀어야 하고, 어떻게든 풀리고야 마는 게 문제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우리 각자의 문제 앞에 지지 말기로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