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LINE 최장기 CFO, 글로벌 빅테크로의 성장을 디자인하다

네이버·LINE 최장기 CFO, 글로벌 빅테크로의 성장을 디자인하다

리멤버 Pro:logue

리멤버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커리어를 완성해가는 프로페셔널(Pro)들의 이야기(logue)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성공 서막을 여는 영감과 인사이트를 선사하겠습니다.


황인준 | 現 LY주식회사 CGIO, LINE Financial CEO, 前 네이버·LINE CFO

굴지의 기업 재무·투자를 책임져 온 재무 전문가입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뉴욕대 MBA를 마친 뒤 외국계 투자은행을 거쳐 우리투자증권 상무를 역임했습니다. 이후 네이버에 합류해 최장기 CFO로서 굵직한 재무 사업들을 총괄했습니다. 현재는 LINE의 글로벌 투자·금융 사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우리증권-LG증권 합병(2005), 네이버의 코스피 이전 상장(2008), 네이버-한게임 분할(2013), LINE의 미국·일본 동시 상장(2016), LINE-야후 재팬 합병(2023)… 웬만한 기업 재무 담당자가 한 번도 경험하기 힘든 초대형 기업 프로젝트를 두루 책임진 국내 IT 산업 내 최고의 재무 전문가가 있습니다.

네이버 최장기 CFO로서 7년간 약 4배의 매출 성장을 뒷받침하고, LINE의 재무적 디자인을 완성해 오늘날 대표 글로벌 메신저로서의 위상을 떠받친 주역이기도 하죠. 바로 오늘 프롤로그의 주인공 황인준님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이든, 기업이든 편해졌다 싶을 때가 오히려 위기예요. 그때 필요한 게 도전입니다.” 

 

누구보다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지만 실상은 좌충우돌의 연속이었습니다. 뉴욕대 MBA 출신의 재무 엘리트답지 않게 삼성전자에서 야심차게 커리어를 시작하지만, 정작 주어진 건 문서 복사 등 잔심부름과 “왜 여기 왔냐”는 선배들의 조롱이었습니다. 잘나가던 직장을 2번이나 박차고 연봉까지 깎아 이직하지만 1년 만의 퇴사란 좌절도 맛봐야 했죠.

언뜻 엉뚱한 선택들로 보이지만 황인준님에겐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낸 도전들로 기억됩니다. 오늘날 네이버, LINE의 성장을 이끌어낸 재무 베테랑은 과연 어떤 커리어를 밟아왔을까요? 리멤버가 황인준님을 직접 만나 그 여정을 자세히 들여다 봤습니다.

서울 역삼동 리멤버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황인준님/리멤버

Chapter. 1
서울대·뉴욕대 재무 엘리트의 첫 직장은 삼성전자?

황인준님은 1989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2년 뉴욕대에서 MBA를 합니다. 은행이나 증권사에 취업하는 여느 재무 엘리트들과 달리, 그가 첫 직장으로 택한 건 다름 아닌 삼성전자였습니다. 

증권사나 은행이 아니라 삼성전자로 가신 이유는요?

경제학 전공자로서 이상한 의무감 같은 게 있었어요. 당시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못살던 시절이었잖아요. 선진국이 되려면 제조업이 먼저 잘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죠. MBA까지 하다 보니 외국계 은행이나 증권사들의 오퍼가 좀 들어왔지만 전부 마다했습니다.

삼성전자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하셨나요?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업무를 맡게 돼요. 당시는 삼성이 지금처럼 돈을 잘 벌던 시절이 아니었어요. 반도체 투자도 무모했단 소리를 들을 만큼 아직 성과가 안 나오던 때였죠. 매일 자금이 부족해 조달 업무가 상당히 중요했습니다.

제조업 베이스의 회사였는데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입사하고 일주일간은 아무도 말을 안 걸더라고요. 나중에 기껏 한다는 소리가 “서울대 나오고 미국에서 공부까지 하고 온 녀석이 여긴 왜 왔냐. 너 같은 사람은 안 와도 된다”였죠. 환영은 못해줄 망정. (웃음) 알고 보니 제 앞에 MBA 출신이 3명 더 있었는데 전부 관뒀더라고요. 잘못 왔나 싶었어요. 1년간은 문서 복사 같은 잡일만 했습니다.

그래도 6년을 계셨어요.

기왕 하는 거 즐거운 마음으로 했죠. 복사할 자료 중엔 시답잖은 게 대부분이었지만 흥미로운 것들도 있었을 거 아녜요. 그런 자료들은 1부씩을 더 복사해 재미 삼아 쭉 읽어봤어요. 회사가 돌아가는 업무 밑바닥을 거기서 많이 배웠죠. 각 업무 사정도 잘 알게 되면서 부서원들과 친분도 많이 쌓게 됐고요. 그렇게 1년쯤 지나니까 “똘똘하다” “사람 괜찮다” 소리를 듣게 됐어요.

덩달아 기회도 찾아왔습니다. 일본계 은행에서 대규모 차입을 해야할 일이 있었는데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거예요. 마침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 최신 컴퓨터 운영 체제도 다뤄본 제가 큰 도움이 될 수 있었어요. 해외 전환사채나 주식 발행 등 점점 더 큰 프로젝트들도 경험하게 되죠. 나름 잘해냈습니다. 1년 특진해 과장도 달았거든요.

서울 역삼동 리멤버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황인준님/리멤버

Chapter. 2
삼성 출신 에이스, 연봉까지 깎아 이직한 사연?!

IMF 사태가 한창이던 1998년, 황인준님은 외국계 투자은행으로 이직합니다. DLJ(도널슨, 루프킨 앤드 젠레트), CSFB(크레딧 스위스 퍼스트 보스턴)에서 본격적인 IB를 접하고 배웁니다.

 

“‘일을 하며 성장할 수 있는가’가 제겐 중요합니다. 그 자극을 주지 못하면 삼성이라도 관둬야죠.”

 

삼성전자는 왜 관두셨나요?

어느날 교보문고에 갔는데 ‘30대에 하지 않으면 안될 50가지’란 책을 봤어요. 50가지 중 첫번째가 ‘회사를 그만둬라’더라고요. (웃음) 그 한마디가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삼성전자는 월드클래스가 아니었거든요. 저는 ‘일을 하며 성장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사람인데 여기선 별 자극을 못 받겠더라고요. 1998년 새해 다짐으로 ‘1년 내 투자은행 이직’을 결심했어요. 이직이 안 되면 무조건 퇴사라도 한다는 각오로요.

왜 투자은행이었나요?

외국계 투자은행 사람들이랑 일할 기회가 많았는데 굉장히 스마트하고 일을 잘하더라고요. 이직하면 자극을 많이 받을 거라 생각했죠. IB도 배워보고 싶었고요. IB는 M&A나 IPO 등 기업들의 굵직한 재무 고민에 최적의 솔루션을 제시하는 일이에요. 업무 역량을 확장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가보니 어떠셨나요?

영어가 네이티브가 아닌 사람은 저밖에 없었습니다. 문서든, 토의든 전부 영어를 쓰는데 죽을 맛이었죠. 아차 싶었습니다. 잘나가던 직장까지 때려 치고 도전한 건데 도리어 잘릴 걱정을 하는 판이니 밤마다 잠이 안 오더라고요.

2~3년간 M&A 3건 정도를 연달아 맡았는데 ‘못하면 죽는다’는 각오로 매일 밤새며 일했어요. 그러면서 일이 많이 늘었습니다. 2000년 DLJ를 CSFB가 인수하는데 그 후로도 3년을 더 다녔어요. 막판에 돌이켜보니 DLJ 때부터 함께 한 동료들은 어느새 다 잘리거나 나갔더라고요. 아시아에선 제가 거의 마지막 생존자였어요.

외국계 투자은행에 몸담은 지 4년이 지난 2003년 황인준님은 다시 삼성행을 택합니다. 삼성증권에서 DLJ, CSFB에서와 같은 IB 부문을 담당하게 된 건데요. 그런데 이직 1년 4개월 만인 이듬해 돌연 사표를 냅니다. 

왜 다시 삼성이었나요?

당시 황영기란 분이 삼성증권 사장이 됐어요. 나중에 우리금융지주·KB금융지주 회장까지 지낸 분이세요. 삼성전자 때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데 식견과 안목이 대단해 함께 일할 때 큰 자극을 주시기도 했어요. 삼성전자를 관둘 때 “연수 보낸 셈 칠 테니 나중에 부르면 오라”고 하셨는데 기억하시고 스카웃 제안을 주신 거예요. IB 부문을 함께 키워보고자 하시더라고요. 연봉도 깎고 이직했습니다. 집사람은 “미쳤다”고 했죠.

그러나 이른 시기에 삼성증권을 관두셨어요. 

처음엔 오래 머무를 생각이었어요. 황 사장님 밑이라면 성장할 거란 믿음도 있었고, 친정에 온 만큼 잘해서 임원까지 해보잔 각오도 다졌죠. 그런데 막상 업무에 별 흥미를 못 느끼겠더라고요. 외국계와 국내 증권사의 IB가 많이 다르더라고요. 외국계는 굉장히 큰 딜들만 다루는데 여긴 그런 면에서 굉장히 아쉬웠죠. 설상가상 1년쯤 지나 사장님이 우리금융지주 회장으로 가버리세요.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겁니다.

서울 역삼동 리멤버 사무실에서 인터뷰 중인 황인준님/리멤버

Chapter. 3
수십년 관행도 타파, 국내 기업금융의 새 판을 짜다!

2004년 삼성증권을 관둔 황인준님은 같은 해 우리금융지주에 재무기획부장으로 합류합니다. 이례적인 기성 은행권으로의 이직인 데다, 또 한 번 연봉을 깎아 아내의 “미쳤다”는 잔소리와 함께 말입니다.

우리금융지주는 어떻게 가게 된 건가요?

몇 군데 오퍼가 들어와 외국계 투자은행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차였어요. 그런데 우리금융지주로 가셨던 황영기 회장님께 또 연락이 온 거예요. “와서 나를 좀 도와라.” 처음엔 굉장히 망설였어요. 은행 재무제표 한 번 본 적이 없는데 재무기획부장이라니 막막했죠. 그쪽 내부 우려도 컸고요. 쉰살쯤 되는 우리은행 부장들 눈엔 갓 마흔의 지주회사 부장이 얼마나 애송이로 보였겠어요. 황당해하는 눈치들이더라고요.

그런데 연봉까지 또 깎고 들어가셨다면서요?

성장에 되게 목말라 있던 시점이었어요. 금융지주회사, 기성 은행의 로직을 경험해보고도 싶었고요. 처음엔 집사람한테 바가지 좀 긁혔죠. (웃음)

주요 과제가 무엇이었나요?

당시 우리금융지주는 해마다 실적 문제로 난항을 겪었어요. 공적자금이 투입된 터라 예금보험공사와 목표치를 논의해 결정해야만 했거든요. 달성을 못하면 전체 성과금이 안 나오니 예보와 은행 관계사들을 잘 조율해야 했는데 이게 큰 골칫거리였습니다. 서로 입장이 아예 다르니 저도 처음엔 너무 난처했어요. 이 바닥 사람들도, 돌아가는 판도 잘 몰랐으니 더더욱이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투자은행 IB하면서 먹었던 ‘짬밥’이 무기가 되더라고요. IB는 영업의 속성이 있어요. 예보랑 은행 관계사들을 IB 고객처럼 대하자 마음 먹고 그때부터 스킨십을 무작정 늘렸습니다. 매일 찾아가 점심도 먹고 볼일이 없어도 죽치고 앉아 계속 얘기를 들었어요. 1년쯤 지나니 각자 사정이 훤히 보이더라고요. 그제야 안정적인 합의점들이 찾아졌습니다. 그때 은행권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2005년 황인준님은 증권 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우리증권과 LG증권 간 M&A를 맡아 성공적으로 이끕니다. 2년 뒤 이 같은 공적을 인정받아 양사 합병으로 탄생한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IB사업부 상무 자리에 오릅니다.

임원으로서 추진한 과업이 무엇이었나요?

그간 한국 증권사들의 IB 업무 방식을 지켜보며 가장 문제라 생각했던 게 바로 ‘형님 영업’이었어요. 당시엔 IB 부서들이 ‘기업 영업 1부’ ‘기업 영업 2부’ 이런 식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별다른 기준이 있던 게 아니에요. 단지 각 부장과 어느 기업이 친하느냐에 따라서만 구분된 거였죠. 이런 구조에서 직원들이 술 접대 말고 배우는 게 뭐가 있었겠어요?

이 구조를 개편하고자 했어요. 선진 투자은행처럼 산업별로 묶는 방식으로요. 가령 테크 그룹이면 IT 회사 전체를, 제조 그룹이면 제조업 전체를 커버하는 식이었죠. 직원들은 산업 전문성을 쌓아 성장할 수 있고, 회사로서도 데이터베이스가 한 데 모이니 고객사에 훨씬 전문적인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었고요.

내부 저항은 없었나요?

오랜 관행이다 보니 굉장히 저항이 심했어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다” “우리나라에선 안 통할 방식이다” 말들이 많았죠. 하지만 끝까지 밀어붙였어요. 당시 본부장이셨던 NH투자증권 정영채 사장님이 “IB 업계 1등이 되는 큰 계기가 됐다”고 두고두고 고마워하세요.

우리투자증권 상무 때인 2008년 언론사가 진행한 금융 전문가 좌담회에 참여한 황인준님/매일경제

Chapter. 4
‘코스피 이전’ ‘한게임 분사’ 이끈 네이버 최장기 재무 사령관

2008년 황인준님은 자신의 커리어 황금기를 열어준 네이버(당시 NHN)의 최고재무책임자로 전격 발탁됩니다. 같은 해 코스피 이전 상장, 2013년 한게임과의 기업 재분할 등 네이버의 중대 변곡점마다 초대형 재무 작업들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최장기 네이버 CFO로 활약하게 됩니다.

네이버엔 어떻게 합류하게 된 건가요?

당시는 네이버의 성장이 주춤하던 때였어요. 재무적으로도 뭔가 돌파구를 찾아줄 새 CFO를 찾고 있었는데 마침 외국계 투자은행 대표 한분이 절 추천했어요. IB를 잘 알면서도 일반 회사 경험도 있는 제가 적임으로 보였다는 거예요. IB만 했던 사람들은 다른 기업의 조직 문화에 잘 적응 못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요즘도 “어떻게 그리 회사를 잘 골라 갔냐”고 많이들 물어요. 하지만 그땐 네이버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 (웃음) 이해진 창업자 등 대주주들을 직접 만나보고서야 마음이 생긴 거죠. 이전엔 기업을 어느 정도 반열에 올려놓은 나이 지긋한 임원들만 봐 왔거든요. 그런데 저랑 나이대도 비슷한 새파란 사람들이 맨땅에서 사업을 일으켜세우고 그도 모자라 훨씬 더 키워내고 싶어 미쳐 있는 모습들을 보게 된 거죠. 굉장히 신선한 자극이 되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바로 제안을 받았는데 고민 없이 수락했습니다.

그간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계통의 회사였어요. 적응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많았죠. 첫 회의 때부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더라고요. IT 개발 중심의 회사라 그런지 쓰는 용어부터 달랐거든요. 비즈니스 로직도 보통 회사와는 크게 달랐어요. 회의 내내 돈 버는 얘기가 아니라 돈 쓰는 얘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한 화면에 나오는 광고가 총 2개인데 하나를 없애자는 거예요. 유저들이 불편해한다고요.

‘아니, 이걸 없애면 대체 그 매출은 어디서 메우려고?’ 의구심이 들었죠. 그런데 길게 보니 남은 1개에 프리미엄이 붙어가면서 오히려 매출이 더 늘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제조업·금융업과 다른 새 비즈니스 로직을 많이 경험하고 배웠습니다.

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네이버의 코스닥→코스피 이전 상장을 입사 3개월 만에 완수하셨어요.

사실 이전부터 많이 나오던 주장이었고 명백히 필요한 일이었어요. 코스닥에 있으면 자금 조달 면에서 불리함이 컸거든요. 코스피200 같은 인덱스에 들어가야 외국계 대형 펀드 등한테서 투자를 받을 수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네이버가 ‘대장주’였다 보니까 코스닥에서 엄청 만류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나 핑계들이 많았죠. 하지만 ‘안 되는 게 어딨어’란 마인드로 밀어붙였습니다.

네이버-한게임 분할은 13년을 함께 한 두 대형 상장사를 쪼갠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았을 듯합니다.

CFO로서 경험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였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손댈 게 차고 넘치는 굉장히 터프한 일이었죠.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추후 LINE 등 모바일 부문과의 시너지에 집중한다”는 사업 전략을 위해선 꼭 필요한 일이었기에 후퇴란 없다는 각오로 했습니다.

네이버의 역대 최장기 CFO였습니다. 재임 기간을 회고하신다면요?

여러 재무 프로젝트들을 총괄하며 일관되게 다짐했던 건 ‘비즈니스 인에이블러(Business enabler)가 되자’는 것이었어요. CFO는 좁게 보면 그냥 회계팀장이에요. 하지만 넓게 보면 돈이 들고 나는 전 과정을 들여다 볼 수 있기에 사업의 전략을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해요. 각 사업의 성장을 위해 어떤 투자나 관리가 필요한지 적재적소로 판단해 굉장히 다양한 이니셔티브를 제기해볼 수 있는 거죠. 단순한 회계팀장으로 남지 않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2008년 11월 28일 코스피로 이전 상장한 NHN 관련 기사/매일경제

Chapter. 5
아시아 최대 IT 플랫폼의 재무 디자인을 완성하다

2016년 초 네이버는 모바일 메신저 LINE의 글로벌 사업 확장을 위해 베스트 인력을 일제히 투입합니다. 이 과정에서 황인준님 역시 LINE의 CFO로 가게 됩니다. 그리고 같은 해 7월, 2년 넘게 보류된 LINE의 미국·일본 동시 상장이란 숙원 사업을 완수해냅니다. 업계에선 “국산 IT 서비스가 글로벌 무대에서 독자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어느새 네이버 CFO 7년… 고개만 까딱해도 다들 알아서 움직였어요. 너무 편해진 게 오히려 위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LINE CFO로는 어떻게 가게 되신 건가요?

사실 상장 2년 전부터 LINE CFO도 겸하고 있었어요. 매주 한국-일본을 오가며 상장 준비를 했죠. 그러다 2015년 말 도쿄증권거래소에서 지침이 하나 떨어져요. “둘 중 한 곳의 CFO만 맡으시오.” LINE도 차후 상장사로서 독립된 의사 결정을 해야하니 모회사 CFO가 자회사까지 관장하면 안 된단 얘기였죠.

원래는 LINE CFO를 따로 뽑을 생각이었어요. 근데 마땅한 적임자가 없더라고요. 상장일이 다가올수록 제가 가겠단 생각이 굳어졌어요. 네이버 CFO를 어느새 7년이나 했더라고요. 고개만 까딱해도 다들 알아서 움직이고… 너무 안정되고 편해진 게 오히려 위기란 생각이 들었죠. 결국 이해진 의장한테 “LINE에 가고 싶다”고 직접 말씀드렸어요.

미국·일본 동시 상장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셨습니다. 어려운 순간은 없었나요?

상장 막바지라 너무 신경 쓸 게 많았습니다. 시장 상황부터 안 좋았어요. 그때 마침 브렉시트 이슈가 터졌거든요. 공모가 산정 직전이었는데 금융 시장이 요동을 쳤죠. 상당수 IPO가 줄줄이 취소되고 LINE에도 안팎의 우려가 쏟아졌어요.

CFO로서 중대한 판단 기로에 섰습니다. ‘상장, 이거 계속 밀어붙여도 돼?’ 고민에 빠져있을 때 큰 힘이 된 게 바로 오래 전부터 알아둔 외국 대형 기관 투자자들이었어요. 이들 여럿이 “이 이슈는 금방 진정될 거니 걱정 마라”고 지지를 보내주더라고요. 여러 업계를 거치며 빚어진 오랜 신뢰 관계가 빛을 발했던 거죠. 덕분에 뚝심 있게 상장을 추진해갈 수 있었어요.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미국에선 그해 가장 큰 IT 회사 IPO로 기록됐어요.

2016년 LINE의 뉴욕 증시 상장 기념 행사에서 금색 종을 울리고 있는 황인준 당시 LINE CFO. 뉴욕 증시에선 평일 아침 개장과 오후 폐장 때 큰 종을 울리는 200년 된 전통이 있는데 그날 상장한 기업에 타종 기회가 주어지기도 한다./네이버

“LINE의 성공은 라이브도어 인수에서 시작됐다”는 말도 나옵니다. 여기에도 결정적 기여를 하셨다고요?

2010년 일본 포털 업체 하나가 시장에 매물로 나왔단 정보를 입수하게 돼요. 그게 라이브도어였죠. 창업자가 분식회계를 저지르며 좀 망가져 있었는데 이 의장한테 인수를 건의했어요. 마침 중국 게임 자회사가 계속 적자를 내는 중이었는데 이걸 팔고 그걸 사자고 제안했죠.

그때까지 일본 진출엔 여러 걸림돌이 있었어요. 그중 하나가 현지 인력 채용이었는데 인수만 잘 성사되면 이 문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겠다 판단했어요. IT 산업에 잘 특화된 현지 인력 200~300명을 고스란히 확보할 수 있던 거니까요. 다행히 판단은 적중했습니다. 바로 1년 뒤 LINE이 탄생했거든요. 지금도 상당수 인재가 남아 LINE의 성장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2023년 10월 네이버의 LINE과 소프트뱅크의 야후 재팬 간 합병이 전격 성사됩니다. 아시아 최대 IT 플랫폼 ‘LY주식회사’가 탄생한 순간인데요. 그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습니다. 합작 법인 설립, 경영 통합 등 2019년부터 4년에 걸친 정교한 융합 작업이 수반됐는데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산업을 경험한 CFO의 노련함이 빛났다”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일본 최대 모바일 플랫폼과 포털 사이트 간 결합이었습니다. 그 과정을 회고하신다면요?

상장 2년쯤 지났을 무렵 수익성을 높일 새 돌파구가 필요해졌어요. 메신저는 유저 식별 정보가 제한적이잖아요. 때문에 맞춤형 광고 등을 시도할 수 없어 광고 단가를 높이기 어렵단 사업적 한계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포털과 합쳐 서로 시너지를 내보자는 논의가 나온 거예요.

하지만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란 두 거인의 합을 맞춰가는 일이 보통은 아니었어요. 굉장히 많은 이해관계자들의 컨센서스를 이뤄내야 했습니다. 그간의 역량, 경험을 끌어모아 모두가 수긍할 통합의 절차를 디자인하는 데 주력했어요. 나름 성공했다고 자부합니다.

2021년 LINE과 야후 재팬 간 경영 통합을 위한 합작 법인 설립을 알리는 기사/한겨레

Chapter. 6
국내 최고 IT 재무통, 글로벌 경영자로 발돋움!

2024년 현재, 황인준님은 글로벌 투자·금융 사업을 이끄는 경영자로도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투자 영역에선 LY주식회사 CGIO(글로벌최고투자책임자), Z벤처캐피털(전 LINE Ventures) 대표로서 각국 기업 투자를 주도하고 있고, 금융 부문에선 LINE Financial의 CEO로서 대만·태국·인도네시아 등지의 핀테크 사업을 이끌고 있습니다.

 

“프로란 회사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사람”

 

경영자로서의 미션은 무엇인가요?

각 사업이 잘 성장할 발판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게 기본적 목표예요. 우선 투자 부문에선 LINE이 강세인 일본뿐 아니라 미국, 중국 등에서도 투자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후배 기업들이 성장에 더 박차를 가할 수 있도록 제 노하우도 많이 나누고 성장 동력을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금융 부문은 LINE이 먼저 잘 자리잡은 일본·대만·태국·인도네시아를 위주로 사업을 전개해 나가고 있어요. 우선 이 나라들에서 흑자화를 이뤄내는 게 목표지만, 이밖의 국가들에선 어떤 사업을 해나갈 수 있을지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LINE을 비롯해 해외 사업 경험이 많으세요. 그만의 어려움이 있다면요?

오랜 기간 벤처 투자를 맡으면서 알고 지낸 스타트업 대표들이 해외 진출 조언을 구할 땐 이렇게 얘기해요. “창업자 당신이 외국에 가서 몇년간 살 각오를 해야한다. 5년쯤 버틸 생각하면 3년 정도엔 뭔가 뚫릴 거다”라고요.

하루 아침에 잘될 거란 생각을 버려야 해요. LINE이 성공한 것도 앞선 검색 사업의 실패 덕분이거든요. 실패가 실패로 끝나는 게 아니라 현지 비즈니스 로직을 이해하는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저도 정말 수시로 해외에 가서 현지 사업을 점검하고 이사회와 만나 이야기를 나눠요.

후배 재무 직무자들에게 해줄 조언이 있다면요?

숫자에만 갇혀 있지 말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어요. 숫자를 보고 있으면 회사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누구보다 잘 알 것만 같죠. 하지만 숫자에 가려 그 이면에 담긴 임직원들의 피땀을 보지 못하면, 이 회사의 진짜 실력과 앞으로의 필요한 전략, 비전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종종 자신이 맞닥뜨리는 숫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봐야 해요. 그러려면 자기 우물에만 머물러선 안 되죠. 다른 부서나 회사 사람들도 많이 만나보고 그 산업, 나아가선 세상 전반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이해할 줄 알아야 합니다.

2018년 황인준님이 이끄는 LINE Financial은 인도네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KEB하나은행과 현지 은행 법인 관련 파트너십을 체결했다./LINE

황인준님이 생각하시는 ‘프로’란 무엇인가요?

가끔은 이런 상상을 해요. ‘첫 직장에 남았으면 어땠을까.’ 인생은 모르는 거지만 아마 순탄하게, 승승장구하며 잘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럼 또다른 의문이 들죠. ‘왜 난 투자은행에 가서 죽어라 일하고, 네이버에 와서 생고생했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확신할 수 있어요. 그 도전들이 없었다면 지금 모습의 ‘황인준’도 없다는 걸요.

결국 프로란 회사의 이름이 아닌 자신의 이름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하는 사람입니다. 20대 때부터 스스로에게 “나는 프로다”는 얘길 많이 했어요. 절 증명해주는 건 회사도 직급도 아닌 바로 제 자신이란 걸 빨리 깨쳤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자신의 이름으로, 자기만의 브랜드로 빛나기 위해 안주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두가 프로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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