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카카오 출신 인사 베테랑! 꿈의 기업 HR 이끈 그만의 철학은?

구글·카카오 출신 인사 베테랑! 꿈의 기업 HR 이끈 그만의 철학은?

리멤버 Pro:logue

리멤버가 각 분야에서 최고의 커리어를 완성해가는 프로페셔널(Pro)들의 이야기(logue)를 전합니다. 여러분의 성공 서막을 여는 영감과 인사이트를 선사하겠습니다.


황성현 | 現 인사·조직 자문 기업 퀀텀인사이트 CEO, 前 카카오 인사 부문 총괄 부사장, 前 구글 시니어 HR 비즈니스 파트너

국내외 일류 기업들의 인사·조직 전략을 진두지휘한 HR 전문가입니다. 서강대 경영학과를 나와 흥국상사, 야후코리아 등에서 HR 업무를 담당하고, 인사 전문 컨설팅펌인 타워스페린·링키지에서 HR 컨설팅 경험을 쌓았습니다. 이후 구글코리아로 이직한 뒤 미국 본사로 발탁, 각종 신사업 팀빌딩에 참여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카카오에서 인사 총괄 부사장 등을 지냈습니다. 현재는 HR 자문 전문사 퀀텀인사이트를 창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30여년간 국내외 굴지의 기업 HR을 책임져 온 인사·조직 전문가가 있습니다. 에너지·반도체·IT·컨설팅 등 분야를 막론하고, 대기업에서부터 스타트업은 물론 본인이 창업한 회사에 이르기까지 오직 HR 한길만 판 그야말로 ‘HR 장인’입니다. 

특히 세계 최고 IT 기업이자 “꿈의 직장”으로 불리는 구글 본사의 내부자로서 각종 신사업 조직 인사 전략을 구상한 주역이기도 하죠. 바로 오늘 프롤로그의 주인공 황성현님의 이야기입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 살아남게 한 가장 큰 힘은 지식도, 경험도 아닌 저 나름의 시선입니다. 남들이 궁금해 할 만큼 자기 생각과 철학을 발전시킨 사람만이 대체 불가한 쓸모를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HR 외길만 걸어온 그이지만 HR과의 만남은 엉겁결이었습니다. 첫 회사에선 글로벌 비즈니스를 꿈꾸며 선망한 해외 영업을 단념하고 피치 못해 들어간 게 인사팀이었고, 퇴사 후 “HR을 평생 직무로 삼겠다!” 호기롭게 장담하며 유학을 꿈꿨지만 IMF에 별안간 진로를 틀어야 했습니다.

이 같은 좌충우돌의 시간을 지나 황성현님을 국내 최고 수준의 HR 전문가로 빚어낸 일을 향한 그만의 시선과 철학은 무엇이었을까요? 리멤버가 직접 만나 글로벌 기업들의 생생한 HR 스토리와 함께 자세히 담아봤습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역 위워크의 한 회의실에서 인터뷰 중인 황성현님/리멤버

Chapter. 1
엉겁결에 시작된 30년 HR의 길?!

황성현님은 1993년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 같은 해 선경그룹 계열사 흥국상사에 입사해 인사팀에서 커리어를 시작합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인사 전문가답게 첫 출발부터 HR이었던 건데요. 그러나 본인은 정작 초년 시절을 “계획대로 흐른 게 없던 좌충우돌의 시간”으로 평가합니다.

시작부터 HR이셨어요.

그야말로 얼떨결의 시작이었어요. 처음 계획대로면 흥국상사에 들어가지도, HR을 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애초부터 경영학을 배우지도 않았을 거고요. 원래는 영문과에 가려 했어요. 어려서부터 영어를 워낙 좋아했거든요. 시키지도 않았는데 교과서나 사전을 통째로 외울 정도였죠. 친구들도 당연히 제가 영문과에 들어갈 거라 생각했고요. 그러다 대입 막판, 친척 어른의 전화 한 통으로 완전히 마음이 바뀌게 됐습니다.

무슨 전화였나요?

대뜸 “너 영문과 가서 뭐 배우는지 아니?”라고 물으시더라고요. 별생각 없이 “영어 공부하는 거 아니에요?”라고 답했는데, 웬걸 “인마, 거긴 셰익스피어를 배우는 곳이야”란 타박이 돌아왔어요.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영문과가 시나 소설을 공부하는 곳일 줄은 꿈에도 몰랐거든요. 그 시절 고등학생이 아는 게 뭐가 있었겠어요. 저는 그저 영어를 더 갈고 닦아 해외 비즈니스맨이 되고 싶었을 뿐이었죠. 결국 원서 접수 하루 전날에야 부랴부랴 진로를 바꿔 경영학과에 지원했습니다. 

취업은 그보다 훨씬 더 좌충우돌이었어요. 처음엔 한 외국계 은행에 들어가려 했는데, 선배랑 술을 진탕 마시다 그만 입사 면접을 펑크내 버렸습니다. 당시 그 선배가 흥국상사 인사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미안했는지 거기 입사 원서를 내주더라고요. ‘선경 정도면 어느 계열사든 아무렴 상관없지’란 생각으로 지원해 뽑혔어요. 하지만 그때만 해도 인사팀에 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럼 왜 인사 업무를 하게 되신 거예요?

휘발유·경유 등을 유통하는 회사다 보니까 외국에서 석유를 들여오는 부서가 있었어요. 해외를 오가며 일할 수 있다는 게 끌려 처음엔 그곳을 지망했죠. 그런데, 입사 직후부터 인사팀이 저를 뽑아 가려고 자꾸만 이런저런 훼방을 놓더라고요. 알고 보니 인사팀 고위 간부가 “황성현을 무조건 데려오라”고 지령을 내렸던 거예요. 

입사 때 공인 영어 시험을 치렀는데 그룹사 전체 1등을 했거든요. 당시만 해도 한국에선 영어를 잘하면 덮어놓고 대단한 존재로 봐 주는 문화가 강했습니다. 거의 한달간 이어진 인사팀 선배들의 회유 끝에 결국 백기 투항하고 인사팀에 들어갔습니다. 그게 저와 HR의 첫출발이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직무가 잘 맞으셨나 봐요.

아닙니다. 부서원들이랑 매일 새벽까지 술 마시는 게 일상이었어요. 날마다 무언가 쌓아가기보다 소진하는 기분으로 살았죠.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작심하고 한마디 하더라고요. “똑똑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왜 그러고 사냐. 대체 앞으로 뭘 할 생각이냐.” 일단 둘러댔습니다. “직장 생활이 뭐 별거냐. 월급 잘 모아 내 집 하나 마련하면 된 거지. 운 좋게 임원까지 달면 땡큐고.” 그랬더니 “그건 제대로 된 인생 목표가 아니지 않느냐”고 단호하게 쏘아붙이더라고요.

순간 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사실 마음 한 켠으론 저도 제 모습이 한심하다고 느꼈거든요. 제가 제 경력을 주도하지 않고 얼렁뚱땅 살다간, 남에 의해 제 인생이 결정될 거란 불안이 커졌습니다. 그날 아내의 쓴소리 덕에 마음을 다잡았어요. 주저 말고 무언가 도전해보자고 다짐했죠. 그래서 미국으로의 MBA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역 위워크의 한 회의실에서 인터뷰 중인 황성현님/리멤버

Chapter. 2
IT 버블 한복판서 HR의 중요성을 깨닫다

1997년 MBA를 준비하던 황성현님은 돌연 미국행을 포기, 한국에 남아 미국계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로 이직합니다. 여기서도 여전히 인사 업무를 이어나갑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평생 직장은 포기했지만 평생 직무는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MBA는 왜 단념하게 되셨나요?

IMF 사태 때문이었어요. 700원 수준의 환율이 단숨에 2000원대로 치솟았습니다. 유학 비용이 너무 커져 MBA는 포기하고 차선책으로 이직을 택했어요. 글로벌 회사니까 영어도 충분히 써 먹을 수 있고 MBA를 재도전할 때도 도움될 거라 봤죠. HR을 훨씬 체계적으로 배울 거란 기대도 있었고요.

원래 인사 업무에 별다른 애정이 없으셨어요. 그럼에도 직무를 고수한 이유는요?

그때는 지금보다 평생 직장 인식이 강했잖아요. 나름 촉망받던 주니어가 돌연 퇴사를 선언하니 다들 놀랐어요. 창사 이래 제가 부서 첫 퇴사자였거든요. 저도 처음엔 두려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평생 직장은 포기했지만 평생 직무는 해볼 수 있는 것 아닌가?’

한 직장에 머물면 부서가 계속 바뀌잖아요. 하지만 이직하더라도 직무를 고수하면 그 전문성을 계속 쌓아올릴 수 있게 되죠. ‘그래, 평생 직장은 회사에 달렸지만, 평생 직무는 나 자신에게 달렸다.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 누구도 대체하기 힘든 HR 전문가가 돼 보자!’ 그날부로 결심을 세우고 마인드를 바꾸니 열정도 덩달아 샘솟았습니다. 이직 후 제가 주도한 프로젝트가 글로벌 1위 작업으로 뽑히고, 본사 스카웃도 여러 번 받게 됐죠. 내부 사정으로 발령은 불발됐지만요.

1999년 황성현님은 글로벌 포털 야후의 한국 지사 인사팀장으로 합류합니다. 당대 최고 IT 기업의 HR을 디자인할 기회였으나, 입사 1년 만에 IT 버블이 붕괴하면서 조직이 급속도로 무너지는 위기를 겪습니다. 황성현님은 이 시기를 “조직 문화와 HR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절감한 때”로 평가합니다.

야후코리아로 이직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전 직장에선 HR이 정리해고 같은 다운사이징에만 집중돼 있었어요. 반도체 산업이 입사 무렵부터 침체였거든요. 이젠 도약하는 산업에 몸담아 성장을 떠받칠 조직을 디자인해보고 싶어졌죠. 그래서 주목한 게 당시 IT 붐과 그 1등 주자 야후였어요. 1년 넘게 매일 적극적으로 채용 사이트를 확인했고 자리가 뜨자마자 지원해 입사했어요.

공교롭게 입사 이듬해부터 IT 버블이 무너지기 시작했어요.

입사 후 1년까진 굉장히 잘나갔어요. 그러다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치기 시작해 그 뒤 2년은 침체와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땐 단순한 다운사이징이 문제가 아니라, 회사의 존립 자체를 걱정해야 할 만큼 하락세가 극심했어요. 핵심 인재들이 줄줄이 이탈하고 직원 간 갈등도 심했죠.

인사팀장으로서 굉장히 고된 시간이었을 것 같습니다.

어떤 회사든 잘나갈 땐 아무 탈이 없어요. 설령 있어도 보이지 않죠. 문제는 어려울 때입니다. 이때 그 조직의 진짜 실력이 드러나요. 당시 야후에선 “망할 것 같은데 언제 나갈까” “좋은 데 가면 나도 불러줘” 등 자조적 이야기가 만연했어요. 조직을 지탱할 문화가 없으니 모두 오합지졸이 됐던 거죠. 

반면 같은 시기 구글은 HR계의 워너비 회사가 됐고, 위기도 잘 넘겨 초일류 IT 기업으로 거듭났죠. 결국 건강한 조직 문화의 유무가 두 IT 공룡의 운명을 갈랐다고 봅니다. 그만큼 조직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 문화를 만들고 이끌어가는 HR은 또 얼마나 절실한지 뼈저리게 절감한 시기였습니다.

황성현님이 야후코리아에 재직 중이던 시절 본사 직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본인 제공

Chapter. 3
HR 컨설턴트로 변신… 다양한 인사 고민 마주한 5년

2002년 황성현님은 야후코리아를 관두고 HR 컨설팅에 도전합니다. 같은 해 미국계 HR 전문 컨설팅펌 타워스페린에서 컨설팅 경험을 쌓은 뒤, 2005년 조직 문화·리더십 전문 컨설팅펌 링키지의 한국 지사를 공동 창업해 운영하는 등 5년간 HR 컨설턴트로서의 길을 걷게 됩니다.

HR 컨설팅에 나선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이전까진 줄곧 개별 기업 인사 담당자로서만 일해왔잖아요. 좁은 우물에서 벗어나 다양한 산업의 HR 문제를 능동적으로 들여다 보며 저만의 시각을 기르고 싶었어요. 각양각색의 조직 문제에 직면하고 해법을 고민해 보는 경험이 HR 전문가로서의 진짜 실력을 쌓는 데 꼭 필요하다고 봤죠. 타워스페린과는 야후코리아 근무 때 협업을 많이 했는데 좋은 인상을 받으셨는지 먼저 스카웃 제안을 주시더라고요.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HR 컨설턴트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평가·보상에서부터 기업 문화 설계와 인사 철학 정립에 이르기까지 고객사의 크고 작은 조직 문제를 진단하고 솔루션을 제시하는 일이었어요. 필요한 경우 HR 교육도 진행했고요. 대표적으로 금호아시아나그룹·삼양그룹·대우조선해양·아모레퍼시픽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민감한 사안도 있어 해당 기업들의 이야기를 콕 집어 전해드릴 순 없습니다. 다만, HR의 중요성을 다시금 절감한 계기였다고는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인사 문제를 끝끝내 풀지 못한 기업들은 재계 수위권에 드는 대단한 곳이라도 어느새 고꾸라지더라고요. 반대로 아모레퍼시픽 같은 회사는 당시엔 그리 크지 않은 규모였으나 탄탄한 조직 문화를 갖추며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성장했죠.

창업은 어떤 계기로 하신 건가요?

HR은 크게 HRM과 HRD로 나뉘어요. HRM은 채용, 보상, 평가 등 좀 딱딱한 영역을 아우르고 HRD는 조직 문화, 리더십, 커뮤니케이션 같은 소프트한 영역을 포괄하죠. 타워스페린은 전자에 특화된 회사였는데, 사실 전 후자에 더 관심이 많았어요. 아무리 제도를 고치고 우수한 시스템을 들여와도 조직원들의 마음을 합치시키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경우를 현장에서 여럿 봤거든요. 시대 흐름상 이 분야가 점점 더 각광받을 거란 생각도 했고요.

때마침 타워스페린 본사 임원 중 링키지로 이직한 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절 기억하고 계셨다가 한국 지사 창업을 권유하셨어요. 링키지는 HRD가 강점인 회사인데 제 관심과 성향에 잘 맞을 거라 본 거죠. 좋은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관련 박사를 하신 분과 의기투합해 함께 창업했습니다.

그러나 2년이 채 되기 전에 창업한 회사에서 나오셨습니다.

사업이라는 게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서비스가 잘 팔리려면 그 자체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마케팅이나 영업도 무시할 수 없잖아요. 첫 창업이다 보니 이모저모에 서툴고 관련 인력도 확보하기 힘들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더구나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 시장에서 HRD는 ‘직원들이 듣는 HR 교육’ 정도로 이해되고 있었어요. 시장에 독립적으로 뿌리내릴 타이밍이 아니었던 거죠. 결국 HRD를 창업으로 꽃피워보기엔 너무 이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서울 강남구 삼성역 위워크의 한 회의실에서 인터뷰 중인 황성현님/리멤버

Chapter. 4
‘꿈의 회사’ 구글의 중심에서 HR을 디자인하다

2007년 황성현님은 세계 최대 포털 업체 구글의 한국 지사로 자리를 옮깁니다. 본사 사업 방향에 맞게 조직별 인사를 진두지휘하고 부서 간 업무 방식을 조율하는 HR 헤드로서의 역할을 부여받게 되는데요. 입사 이듬해 전 세계 구글 HR 직무자들로부터 ‘가장 구글다운 사람’으로 선정되는 등 빠르게 성과를 인정받고 존재감을 키워갑니다.

 

모두가 하나 같이 최고의 열정으로 일한다는 건 인사 담당자로서 꿈 같은 일이죠. 구글은 그 꿈을 현실로 만들줬습니다.

 

구글코리아엔 어떻게 가게 되셨나요?

이직을 고민하던 차에 먼저 연락이 왔어요. 3가지 조건의 인재를 찾더라고요. ‘영어를 잘하고, HR 전문가이면서, 컨설팅 경험도 있다.’ 듣자마자 제가 적임일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HR과 컨설팅 각각의 전문가는 많지만 양쪽을 아우르는 사람은 드물었으니까요. 망설임 없이 지원했습니다. 6개월간 12번의 1대1 면접을 치르며 역량과 컬처핏을 검증하더라고요. ‘구글은 구글이구나’ 감탄하며 입사했습니다.

입사 1년 만에 ‘가장 구글다운 사람’으로 뽑히셨어요.

“구글답다”의 정의가 있어요. ‘조화롭게 일하면서도 문제를 적극 나서 해결하는 사람.’ 이에 부합하게 일하고자 노력했습니다. 당시 구글코리아는 세워진 지 딱 3년 된 회사였어요. 전반적 인사 시스템을 안착시키고 조직을 구축해 가는 게 미션이었죠. 헌데 제 머리로만 해결한 문제는 하나도 없었어요. 여기 동료들은 물론 본사, 주변국 직원들과도 수시로 소통하고 교류했습니다. 이 점을 다들 인상적으로 봐주셨던 것 같아요.

한국 지사 근무 4년차인 2010년, 황성현님은 구글 본사에 전격 발탁됩니다. ‘꿈의 직장’ 구글의 중심에서 HR을 이끌어 갈 핵심 내부자가 된 겁니다. 여기서 그는 HR 비즈니스 파트너란 직책을 맡아 구글의 각종 신사업 빌드업 과정에 참여합니다.

본사엔 어떻게 발탁됐나요?

인사는 세팅을 마치고 나면 같은 일의 반복이잖아요. 어느 순간 지겨워져 새로운 일들을 벌려 봤어요. 자체 HR이 없는 아시아 지사를 지원하거나, 본사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HR 강의를 만들고 교육하는 일에도 참여했죠. 그럼에도 갈증이 다 안 풀려 그때부터 본사 근무를 꿈꾸게 됐어요. 첫 이직 후로 3년 앞을 내다보는 미래 이력서를 써 오고 있었는데, 그 무렵 ‘구글 본사 근무’를 거기 추가하게 됐죠. 미래 흐름을 예상해 제 목표를 구체화하고 실제로 달성해나가는, 저만의 적극적 경력 개발법이었어요.

목표를 분명히 하니 그때부터 로드맵이 짜이기 시작했어요. 먼저 PDP란 구글의 사내 경력 개발 솔루션이 있는데 이걸 적극 활용했습니다. 관리자들이 그 사람을 면밀히 분석해 적확한 커리어 조언을 주는 구글 특유의 HR 시스템인데, 덕분에 굉장히 구체적 과제들을 세워 실천하게 됐습니다. 현지 인력 수준의 영어 실력을 키우고, HR 이론을 더 익혀 자격증도 땄죠. 사내 인지도를 키우려 각종 글로벌 프로젝트에도 지원했고요. 이 같은 노력이 적중해 인터뷰 기회를 잡았고 바로 지원해 합격했습니다.

구글 본사 근무 시절 사내 핼러윈 데이 기념 행사에서 팀원들과 싸이의 ‘강남스타일’ 춤을 추며 공연하고 있는 황성현님/본인 제공

HR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구체적 역할은 무엇이었나요?

한국에선 아직도 생소한데, 쉽게 말해 ‘내부 HR 컨설턴트’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담당 부문 경영진에게 인사 전략을 조언하고 파트너로서 조직 구조를 함께 디자인하는 역할이죠. 채용·평가 등 인사 실무를 관장하는 일반적 HR 담당자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전 테크 부문을 맡아 신사업 진출 때마다 해당 기술 조직들을 세팅하는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네트워크, 커머스, 페이먼트는 물론 알파고 개발로 유명한 인공지능 팀 빌드업 등을 함께했습니다.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시작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도착 이틀 만에 바로 프로젝트에 투입됐습니다. 구글이라고 먼저 친절히 가르쳐주는 건 없더라고요. 게다가 모든 면에서 아득히 스케일이 컸어요. 건물부터 셀 수 없이 많은 데다 도시마다 퍼져 있어 누굴 만나려 해도 차를 타고 돌아다녀야 했죠. 무엇보다 제 관할 인력 규모도 어마어마했습니다. 한국은 전체 인원이 200명 안쪽인데, 본사는 전담 개발 인력만 1.6만이었죠. 물론 HR 헤드가 아니라 컨설턴트 역할인 만큼 불가능은 아니었지만 업무량과 심적 부담이 상당했습니다.

그럼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최고의 회사는 구글”이라고 회고하십니다.

자타공인 세계 최고 기업이잖아요. 전설적 프로그래머 제프 딘, 세계적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 등 초일류 거물급 리더들과 일해 본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습니다. 이들이 내뿜는 카리스마와 인사이트가 정말 대단했거든요. 하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구성원들의 열정이었습니다. 모두가 하나 같이 최고의 열정으로 일한다는 건 인사 담당자로서 꿈 같은 일이에요. 하물며 조직이 수백, 수천도 아니고 수만명에 달하니 보통 일이 아니죠. 

그 기저에 구글 특유의 조직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구글은 개인의 성장이 더해져 회사가 성장한다고 믿습니다. 그만큼 직원의 성장을 진정성 있게 지원하고, 저마다의 포텐셜에 집중해 자신만의 역량을 극대화하도록 하죠. 조직에 맞춰 개인을 다듬고 깎는 데 주력하는 여느 기업들과는 다른 겁니다. 애초부터 무수한 검증을 통과한 프로들인 만큼 한계보단 가능성을 믿는 거예요. 때문에 구글 직원들은 늘 최적의 성장 효능감을 느끼며 조직을 믿고 헌신할 수 있죠. 

이런 건강한 방식의 HR이 아주 성공적으로 굴러갈 수 있단 걸 두 눈으로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향후 인사 전문가로서 제 철학을 정립해 가는 데도 구글에서의 경험이 결정적이었고요.

구글 본사 근무 시절 동료들과 황성현님이 함께 찍은 사진/본인 제공

Chapter. 5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의 HR 수장에 오르다!

2014년 황성현님은 7년간 몸담아 온 구글을 떠나 미국 모바일 커머스 스타트업 샵킥에서 2년간 근무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2016년 카카오의 인사 총괄 부사장으로 전격 합류, 국내 최대 플랫폼 기업의 HR을 이끌게 됩니다.

구글을 떠난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대학원 진학 때문이었어요. 당시 관심이 생긴 HR 분야가 있었는데 꼭 공부해두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학교는 무난히 합격했는데, 그 무렵 구글 내 교육 휴직이 사라져 결국 회사를 관둬야 하더라고요. 고민 끝에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카카오엔 어떤 계기로 합류하셨나요?

구글을 관둔 후에도 밥벌이는 계속 해야하니 학업이 용인되는 이직처를 알아봤어요. 그 회사가 샵킥이었습니다. 여기서 인사 부문 부사장을 맡아 학업과 근무를 병행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한 헤드헌터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카카오 측에서 테크사에 한층 더 걸맞는 HR을 하고 싶어 하는데 제가 그 적임자로 판단된단 얘기였죠. 기술 인력 HR을 글로벌 법인 본사까지 가서 해봤으니 그 점을 높이 샀던 거예요. 하지만 그땐 고사했습니다. 자녀가 미국 현지 학교를 다녀 한국 회사로의 이직이 어렵다고 봤거든요.

황성현님이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샵킥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본인 제공

그 1년 뒤, 한국에 잠깐 들어올 일이 있었는데 다시 한번 제의가 왔습니다. 얘기나 한번 제대로 들어보잔 생각에 하루 시간을 내 김범수 창업자 등 당시 카카오 경영진을 만나봤어요. 장장 8시간의 마라톤 면담 끝에 합류로 마음이 돌아섰습니다. 경영진이 HR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무엇보다 여러 새로운 HR 시도에도 목말라 있더라고요. 제 기여가 분명히 있겠단 확신이 들었습니다. 아내를 설득해 저 홀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2015년 카카오는 파이랩(PiLab, People&Innovation Lab)이란 신개념 HR 연구 조직을 탄생시킵니다. 주관적 경험 대신 객관적 데이터에 기반해 더욱 합리적인 인사 부문 의사 결정을 이끌어보자는 취지의 조직이었는데, 당시 국내 기업으로선 선구적인 HR 실험으로 평가됩니다. 이 파이랩의 모태이자 데이터 HR의 선두주자 구글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황성현님이 해당 조직의 안착에 크게 기여합니다.

당시 파이랩은 “카카오의 데이터 중심주의를 인사 영역으로까지 확장한 시도”로 평가받았습니다.

국내 기업들의 고질적 문제가 ‘감에 의한 인사’입니다. 다른 영역은 상당히 객관화됐는데 인사만큼은 정성적 판단이 많이 작용하죠. 저도 한때 그게 불가피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구글을 통해 얼마든 데이터에서 중대한 HR 인사이트를 뽑아낼 수 있단 걸 확인하게 됐습니다. 천차만별로만 보이는 우수 조직·리더의 특징들을 데이터로써 객관적으로 도출해낸 옥시젠, 아리스토텔레스 연구 프로젝트 등이 그 대표 사례였죠. 카카오 파이랩은 위와 같은 시도를 국내 기업도 해볼 수 있음을 보여준 매우 앞선 도전이었습니다.

카카오 재직 시절 사내 행사에서 황성현님과 인사팀 동료들이 함께 찍은 사진/본인 제공

Chapter. 6
황성현표 HR의 다음 시선은?

2019년 말 황성현님은 그간의 직장 생활을 뒤로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섭니다. 바로 퀀텀인사이트란 이름의 인사·조직 자문사를 창업한 건데요. 4년여간 80곳 이상의 스타트업 HR 자문과 각종 인사 교육을 진행하고, 25개가량의 신생 기업 엔젤 투자도 이끌고 있습니다.

 

“프로란 자기 일에 대한 자신만의 뚜렷한 ‘관’을 가진 사람”

 

다시 창업에 나선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저는 평생 직장 대신 평생 직무를 택했던 사람이잖아요. 제 HR 경험과 지식을 어디서든 계속 나누며 살고 싶었어요. 하지만 특정 직장에 몸담는 건 더이상 내키지 않더라고요. 대기업 스카웃 제안도 많이 받았지만 전부 고사했습니다. 아무리 크고 매력적인 회사여도 오십살 넘은 외부 출신 임원 하나가 이룰 수 있는 변화란 많지 않거든요.

대신 스타트업계에선 제 쓰임이 뾰족할 거라 봤어요. 한국은 법률·재무·마케팅 등 다른 분야로는 스타트업 자문이 활발한데 HR 쪽으론 도움 줄 곳이 딱히 없거든요. 인사를 오래했고 스타트업이 주로 포진한 IT 분야 경험도 있는 만큼, 신생 기업들의 HR 구축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겠더라고요.

기업 자문에 있어 가장 주력하는 게 무엇인가요?

구글 퇴사 후 대학원에서 전공한 게 ‘긍정 조직 개발학’이었어요. 전통적 조직 개발은 주로 구성원들의 부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 학파는 긍정적 잠재력에 집중해 그 실현을 극대화하자는 관점이었죠. 이런 HR이 한국 기업들한테 특히 더 절실하다고 봤어요. 조직에 걸맞는 인재를 선별하고 이들의 잠재력을 폭발시킬 선순환 구조를 세팅하는 것, 그게 제가 스타트업들에 심어 주고자 하는 HR DNA입니다.

황성현님은 2019년 설립된 국내 창업가 육성 싱크탱크 TEU(Tide Envision University) 공동 대표로도 활약 중입니다. 2007년 구글·NASA가 후원해 세운 글로벌 창업 교육 기관 싱귤래리티 대학을 모태로, 예비 사업가나 엔지니어 등에게 각종 교육을 진행하고 실제 창업까지 연결되도록 돕는 비영리 교육 기관입니다. 현재 300명 이상의 수강생을 배출했고, 한 기수에 10개가량의 신생 기업을 탄생시키고 있습니다.
TEU에서 기획한 한 행사에서 청중을 상대로 연설 중인 황성현님/본인 제공

TEU엔 어떤 계기로 참여하셨나요?

구글 본사 때부터 싱귤래리티에 관심이 많았어요. 창립자 커즈와일과 함께 일하기도 했고 여기 직접 다녀본 적도 있었죠. 이후 귀국해 한국 최초 우주인으로 선발됐던 고산씨와 인연을 맺으며 그가 국내판 싱귤래리티를 운영 중이란 사실을 알게 됐어요. 한국에도 너무나 필요한 일이라 생각해 반가웠고, 함께 해보자고 권유해 흔쾌히 합류했습니다.

왜 한국에 필요한 일이라 보셨나요?

국내 기업들의 큰 약점 중 하나가 미래지향적 시선이 부족하다는 거예요. 단기 이슈에 매몰돼 장기 어젠다엔 비전과 대책이 없죠. 반면 해외에선 저마다 초장기 이슈까지 충분히 고민하고 솔루션을 찾고 있어요. 수십년 후 엄청난 수익을 올릴 사업들을 우리만 줄줄이 놓치는 거죠. 한국 창업가들한테도 이런 문제의식을 던져주고 향후 변화에 대응할 기술과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도록 돕는 일이 절실합니다.

산업 지형의 변화는 훨씬 더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HR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HR은 조직의 방향성을 뒷받침하는 근간이죠. 요즘 같은 시대엔 그 어떤 분야보다 미래지향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국내 HR은 아직 과거지향성이 커요. 여전히 지나간 성과만을 기준으로 직원들을 평가하는 게 스탠더드고, 새 직원 급여를 정할 때도 이전 담당자가 얼마를 받았느냐가 가장 핵심 기준으로 남아있죠. 평가와 피드백을 잘 구분조차 못하는 기업도 대다수고요.

이런 관성들을 깨야 합니다. 선진 기업들은 점점 객관적이고 데이터 중심적인 HR로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고 있어요. 그만큼 HR을 미래 예측과 대응의 핵심 툴이라 보는 거죠. 후배 HR 담당자들도 이 흐름에 꼭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작년 아시아 최대 병원 관련 학술 대회 ‘Korea Healthcare Congress’의 연사로 참여해 병원의 인재 관리를 주제로 발표 중인 황성현님/본인 제공

황성현님이 생각하시는 ‘프로’란 무엇인가요?

언젠가 비슷한 주제로 선배에게 들었던 말이 있어요. “프로란 아무 준비 없이 자기 일로 두 시간은 떠들 수 있는 사람이야.” 여기서 발전시켜 저만의 정의를 내려본다면, 프로란 자기 일에 대한 자신만의 뚜렷한 ‘관’을 가진 사람입니다. 한 주제로 두 시간이나 떠든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닐 거예요.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분들조차 한 시간 이상은 잘 버티지 못하거든요. 두 시간, 혹은 그 이상을 논하려면 전문성을 뛰어넘어 자기만의 관이 필요합니다. 좀 거창한 표현이지만 철학이 있어야 해요.

첫 직장을 떠난 순간부터 제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어요. ‘평생 직무는 지킨다!’며 허세 좋은 다짐도 했지만 그 어떤 보장도 없었잖아요. 그럼에도 지금껏 각양각색의 회사에서 HR이란 외길을 뚜벅뚜벅 걸어올 수 있었던 건 결국 저 나름의 시선을 잘 쌓아온 덕분 같습니다. 비단 HR이란 직무에만 한정된 얘기가 아니에요. 난다 긴다 하는 천재들이 즐비한 곳에서도 몇몇의 비범함이나 전문성만으로 결판 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더라고요. 남들이 궁금해 할 만큼 일을 향한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발전시킨 사람만이 진정 대체 불가한  쓸모를 증명했습니다.

전문성이 각광받는 시대죠. 하지만 잦고 빠른 변화에 많은 직장인들이 길을 잃고 헤맵니다. 그럴 때일수록 한 템포 멈춰 직무를 바라보는 자신만의 생각과 비전을 가다듬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저마다의 일에 심취해 동료들과 정신없이 떠들어 대는 나날이 하루씩 쌓이다 보면, 어느새 ‘평생 직무’의 꿈도 성큼 다가와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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