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왜 어려울까?

발행 종료 안내
지난 5년간 이어진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가 오늘(23.11.26)부로 발행을 종료합니다. 해당 코너에 보내주신 성원 잊지 않고, 앞으로 더 나은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제는 왜 어려울까?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전문가들도 ‘경제’는 자주 틀립니다: 사람이 어떤 병에 걸리면 어떤 증상이 나타나며, 그런 증상이 반복되면 대략 몇개월 후에 죽는지는 의사라면 대부분 비슷하게 예측합니다. 또, 그 예측은 대개 들어맞습니다.

의학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분야가 그렇습니다. 대체로 전문가들의 의견이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고 그게 들어맞을 확률도 높습니다.

왜 경제만 그럴까?: 그러나 경제는 다릅니다. 세계적 석학들도 전혀 다른 의견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측도 맞기보다 틀리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분야는 아무도 정답을 모릅니다.

때문에 금융 시장이란 게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한 주식을 두고 오를 거란 기대와 내릴 거란 비관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누구는 사고 누구는 파는 거래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분야의 불확실성이 유독 큰 이유가 뭘까요? 바로 경제의 영역에 던져지는 질문들이 사실은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연방기금금리 선물 시장은 미래의 기준금리 예상치를 놓고 베팅을 하는 파생상품 시장입니다. 거기서 미국의 기준금리는 내년 5월부터 내릴 거란 전망이 거의 100%입니다. 그러나 그런 금리 인하 전망으로 인해 요즘처럼 주가가 계속 오르면, 그로 인한 소득 증대와 심리적 효과로 사람들의 소비와 투자가 늘어납니다. 그럼 결국 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집니다.

사람들의 금리 전망이 실제의 결과를 바꾸고, 그 결과가 원래 예상을 틀리게 만드는 이상한 흐름은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많은 이들이 금리가 내리지 않을 거라고 비관해야 금리가 비로소 내려가는 일은 금융 시장의 결과물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훨씬 커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입니다.

과거의 공식들이 통하질 않는다: 요즘 미국의 고용은 매우 좋지만(고용주 입장에선 매우 힘든 상황이지만), 그게 소비를 계속 늘릴 수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과거에는 고용이 좋으면 소비도 좋았지만, 그땐 일하려는 근로자가 늘 넘치고 고용이 좋다는 건 일하는 근로자가 늘어났다는 말과 동의어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하려는 근로자 집단 자체가 수축되는 상황입니다. 때문에 고용이 타이트하다고 소비가 늘어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근로자 100명 중 80명이 고용된 상황(A)과 80명 중 75명이 고용된 상황(B)을 비교하면, B가 고용이 좋은 상황이지만 전체 소비는 B가 더 나쁠 수도 있습니다. 역시 우리가 처음 접하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진 늘 노동 인구의 모수가 늘어나던 시절을 우리는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의 시대는 기존의 일자리를 꽤 소멸시키게 될 겁니다. 그때가 되면 인공지능이 만든 높은 경제 성장에 발맞춰 금리를 높이 올릴지, 아니면 일자리 소멸로 인한 소비 감소에 부응해 저금리가 대세가 될 것인지도 우리가 가보지 않은 세상이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200년 전에 있던 직업은 대부분 사라지거나 줄어들었지만 새 일자리가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일자리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헌데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온 혁신과 조금 다릅니다. 기존엔 혁신이 새 서비스를 새로이 등장시켜왔지만, 인공지능은 새 서비스를 만들기보다 기존 서비스의 공급 주체를 바꾸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때문에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새 직업이 계속 탄생할까”를 재차 질문한다면 역시 답하기 어려워집니다.

제조업은 서비스업보다 혁신도 빠르고 상향 평준화 경향도 강해서 그 어떤 나라도 제조업 강국의 지위를 오래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란 그걸 내수로 극복하려 하지만, 50억 인구를 대상으로 수출하던 나라가 그 시장에서 지위를 잃은 뒤 자국의 5000만 내수 시장을 활성화해 복구할 수 있을까요? 한국의 미래를 어떻게 예상해야 하는지도 도무지 답을 낼 수 없는 오리무중의 질문입니다.

한동안 세상을 휩쓸던 ESG 열풍의 미래도 궁금한 영역입니다. 공장에서 필요한 모든 에너지를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RE 100’ 정책도 현실적으로는 원자력 발전까지 거기에 끼워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계속 나올 만큼 친환경 정책의 한계가 뚜렷합니다.

이 역시 친환경 정책을 강하게 추진하면 추진할수록 그 부작용이 강해져서 친환경 정책에 브레이크가 더 강하게 걸리는 이상한 회로를 타게 되는 생소한 상황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친환경 정책이 강하게 추진될수록 강력한 가격 경쟁력과 규모의 경제로 그 시장의 거의 유일한 공급자일 수밖에 없는 중국의 친환경 생태계 장악이 더 빨리지고 그 결과 친환경 정책에 계속 브레이크가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정책이 얼마나 더 전진할 수 있을지도 가보지 않은 영역에 대한 궁금함일 뿐입니다.

반도체와 IT 기기의 혁신이 얼마나 더 진전될지도 우리나라의 수출 회복 전망과 그에 따른 환율 흐름의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질문이지만 역시 아무도 답을 모릅니다.

희망 섞인 전망은 사람들의 귀에 듣기 좋으므로 비관론보다 더 자주 등장하긴 합니다. 그러나 귀에 자주 들린다고 그게 사실에 가까운 건 아닙니다. 미국의 가전 유통 업체의 실적이 계속 지지부진한 배경은 새로운 IT 기기가 몇년 전부터 별로 등장하지 않으면서 소비가 위축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과연 스마트폰에 맞먹는 새로운 IT 기기가 또 등장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계속 그래왔다는 것이 미래에도 계속 그럴 거라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 역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민주화되지 않은 상태로 1인당 GDP가 2만달러를 넘은 거의 최초의 국가인 중국은 중진국 함정을 벗어나 도약할 수 있을지, 중국의 변화 때문에 독일과 프랑스가 각자 자국의 대표 산업에서 경쟁력과 소비 시장을 잃고 있는데 이 두 나라가 이끌던 유럽 경제는 그럼 어떤 운명이 될지, 경제에 한해선 세상에서 제일 신기한 나라인 일본에서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을지도 아무도 가보지 않은 세상에 대한 막연한 예상에 그칠 뿐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큰 경제 블록들인 미국·유럽·중국·일본에 이렇게 풀리지 않는, 그러나 중요한 질문들이 계속 던져지고 있습니다. 아무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그 대답은 오리무중입니다. 이게 당연한 상황에서 하루하루 그 미래의 결과에 베팅하는 게 금융 시장의 현실입니다. 과연 우린 어떤 믿음을 갖고 투자라는 걸 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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