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에도 유독 미국 경제가 식지 않는 이유?

고금리에도 유독 미국 경제가 식지 않는 이유?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하락한 환율: 지난주 금융시장에서 나온 가장 눈에 띄는 신호는 환율 하락입니다. 1350원 수준이던 원·달러 환율이 이틀 만에 1312원으로 내려왔습니다. 이런 속도로 하루만 더 떨어지면 우리에게 익숙한 구간인 1200원대 환율로 접어들 수도 있습니다.

이례적인 고금리 이어져: 환율이 하락한 것은 금융시장의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올해 내내 전 세계를 짓눌러 온 고금리라는 긴축 기조가 누그러질 것 같다는 기대가 형성된 것인데요. 우선 전 세계가 긴축을 하면 왜 우리나라 환율이 오르는지 이해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긴축은 전 세계 소비를 둔화시킵니다. 이는 곧 한국의 수출 감소로 이어지고, 국가 전체적으로 봤을 때 달러 유입이 줄어들게 됩니다. 달러 유입이 줄어들면 한국에 대한 투자 전망이 어두워지므로 외국인들의 주식 투자 수요 역시 감소합니다. 결국 줄어든 달러 유입과 반대로, 달러 유출이 늘어나게 되죠.

해변에서 관찰되는 파도나 밀물 썰물처럼, 경기는 늘 뜨겁거나 차갑기 마련입니다. 그에 따른 금리 변화도 늘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이어진 고강도 긴축이 유별났던 이유는 금리가 큰 폭으로 올랐단 점입니다. 또한 금리 인상의 약효가 잘 나타나지 않으면서 이례적으로 고금리가 길게 이어졌다는 점입니다.

실제 미국은 0%이던 기준금리를 5%까지 급격하게 끌어올렸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왜 소비와 고용, 투자가 줄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은 아직 정확히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긴축의 약효가 왜 나타나지 않는지 의문이 남아 있는 셈인데요. 그 이유를 알아야 앞으로 얼마나 더 고금리가 이어질지를 전망할 수 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이 문제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왜 이례적인 고금리의 약효가 없는 것일까요.

1️⃣ 고금리가 소비와 투자를 냉각시키는 이유는 저축을 늘리고 소비를 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코로나 기간 이미 소비 위축을 겪으면서 충분히 저축을 해놨고, 그래서 고금리에도 저축을 늘리거나 소비를 줄이지 않았다는 설명입니다.

2️⃣ 그래도 고금리라면 소비를 줄이기 마련이지만, 하필 그 고금리가 장기간의 코로나 봉쇄가 풀린 직후에 나타난 고금리였습니다. 미국 소비자들은 고금리 그 자체보다 2년 만에 가능해진 외출과 여행에 더 민감하고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인데요. 고금리가 소비를 줄이는 결과로 이어지면 소비와 관련한 업종에서 고용도 줄이게 되는데, 그 연결고리가 처음부터 깨진 셈입니다.

3️⃣ 고금리가 경기를 냉각시키는 가장 유력한 경로는 고금리에 따른 파산과 부채 축소입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이미 부채를 줄이고, 금융회사의 건전성 강화를 진행해 오고 있어서 그 영향이 적었습니다. 거기에 뭔가 위기가 생길 것 같으면 정부나 중앙은행이 나서서 돈을 풀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게 상식이 되어버린 것도 대규모 연쇄 파산이 나타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올해 상반기에 미국 중소형 은행들의 위기가 부각되자 미국 연준이 대대적인 돈 풀기를 시행한 것도 그 사례입니다. 덕분에 ‘편안한 고금리 시대’가 계속됐습니다.

4️⃣ 미국 정부가 주요 산업의 전 세계 공장들을 미국으로 유치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공장을 짓고 설비 투자를 하고 직원들을 새로 뽑는 일이 미국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한쪽으로는 물가를 잡기 위해 일부러 경기를 냉각시키는 고금리 정책을 취하면서도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을 쏟아붓는 이상한 정책인데요. 미국에 공장을 세우는 게 공급망을 안정시켜 궁극적으로는 물가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묘한 논리로 연준은 시장에 찬물을, 미국 정부는 뜨거운 물을 붓는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5️⃣ 발달한 자본시장도 미국의 경제주체들이 고금리를 극복하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고금리가 시장을 냉각시키는 이유는 고금리 탓에 기업들의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량한 기업들은 비용만 늘어나지만, 덜 우량한 기업들은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고 파산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돈을 빌려준 기업의 파산을 우려한 투자자들은 더 우량한 기업으로만 눈길을 돌리게 되는데요. 이같은 악순환이 시작되면서 시장이 냉각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 기업들은 은행 대출이 아닌 자본시장에서 유상증자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면서 고금리의 충격을 피해 가고 있습니다. 미국의 주식시장은 전 세계 투자자들이 몰린 덕분에 풍부한 거래량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다른 나라 기업들보다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용이합니다. 유상증자가 아니더라도 전환사채라도 팔아 자금을 조달할 수 있죠.

실제로 2022년 미국 기업들은 약 270억달러 규모의 전환사채를 발행해서 자금난을 피해 갔습니다. 올해도 세계적으로 800억달러의 전환사채가 발행될 예정인데요.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미국 기업들이 발행한 물량입니다.

미국, 고금리에 대한 면역 강해: 고금리가 시장을 냉각시키는 가장 큰 경로인 부동산 시장의 침체도 미국에서는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데요. 미국의 주택 소비자들이 이미 장기 고정금리로 대출을 받아놓은 상태여서 고금리에도 이자 비용 상승이 나타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택 수요자들이 장기 고정금리로 돈을 빌려서 집을 살 수 있는 것 역시 자본시장이 발달한 덕분입니다. 장기 고정금리 채권의 수요가 풍부한 미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이렇게 보면 미국은 전 세계에서 고금리에 대한 면역력이 가장 강한 국가입니다. 그런 나라가 주도한 고금리 정책이니 고금리의 약효가 번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건 (이제 와서 보니) 당연해 보입니다. 그래서 내년에도 미국은 고금리로 인한 충격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금리의 빠른 인하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미국 이외의 나라들은 어떨 것이냐가 중요한 질문이 될 텐데요. 위험요인과 기회요인이 둘 다 존재합니다.

1️⃣ 고금리가 장기화되면 고금리를 버티지 못하는 약한 고리부터 깨지기 시작합니다. 미국 이외의 나라들에서 고금리의 부작용이 먼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험요인)

2️⃣ 올해 미국 경제의 특징은 서비스업의 뜨거운 수요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년은 서비스업보다는 제조업 경기가 더 돋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다른 나라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서비스업은 아무리 호황이라도 그 온기가 다른 나라들로 번지기 어렵지만, 세계의 공장들을 미국으로 옮겨오기 위한 투자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그 혜택이 미국 이외의 나라들로 옮겨갈 연결고리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회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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