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년 기업의 굴욕…도시바 상장폐지 이유?

💢 150년 기업의 굴욕…도시바 상장폐지 이유?
이철민의 리멤버 밸리

사모펀드 VIG파트너스의 대표이며, 투자ㆍ테크ㆍ미디어 분야에 대한 글도 쓰고 있습니다.

도시바, 올해 연말 상장 폐지 예정 : 갑자기 뉴스에 일본 기업 도시바(東芝, Toshiba)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창업한 지 150여년이 되었고, 1949년 도쿄 증시에 상장된 지 무려 74년이 된 올 연말, 도시바의 상장 폐지가 확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장 폐지일은 12월 20일로 예정되어 있으며, 상장 폐지 이후에는 대주주인 사모펀드 주도하에 일련의 기업 가치 제고 기간을 가질 것이라고 합니다.

전자 산업 발전과 같이해: 매우 익숙한 이름이기는 하지만, 도시바가 구체적으로 어떤 회사이고 어떤 사업을 하는지 아는 사람들은 드뭅니다. 일본 IT 가전 산업이 전 세계를 호령하던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도시바가 만든 일부 제품들이 국내에서도 판매된 적이 있긴 하지만, 도시바의 주력 산업 분야가 소비자 가전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시바의 모태는 1875년 다나카 히사시게라는 이름의 발명가이자 엔지니어가 자신의 이름을 따 설립한 다나카 제작소입니다. 그 뒤 여러 회사와 합병이 있었고, 1939년 현재의 법인이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공식 회사명은 도쿄시바우라전기(Tokyo Shibaura Denki) 주식회사였는데, 그 줄임말인 도시바를 브랜드로 사용하다 1984년 사명까지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창업 초기인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엔 전구를 발명한 GE와 협력을 통해 전구를 생산하는 사업을 주력으로 했습니다. 이후 전자 산업의 눈부신 발전과 궤를 같이하면서 라디오, TV, 레이더, 철도 시스템, 엘리베이터, 로봇, 의료기기, 반도체, 컴퓨터, 발전설비 등 첨단기술 분야 전반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전성기를 구가하게 됩니다.

2015 분식회계 드러나면서 위기 시작 : 2000년대 들어 도시바는 큰 성장을 하지 못했지만, 연결 기준 6조엔에서 8조엔(당시 약 55조원에서 90조원) 사이의 매출을 안정적으로 유지했습니다. 그러다 2015년 결정적인 사고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른바 분식회계 사건이 터진 것인데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소니나 샤프 같은 일본의 다른 기술 IT·가전 기업이 한국과 중국 기업들과 경쟁에서 밀려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서도 도시바는 꿋꿋이 이익을 내고 있었다고 발표했는데, 알고 보니 거짓이었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회계연도 기준으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다양한 사업 부문에서 이익을 부풀렸던 것인데요. 그 규모가 최대 2천억엔(약 2조원) 규모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7년엔 원자력발전의 원천 기술을 가진 미국 자회사 웨스팅하우스가 건설 중이던 발전소의 기술 결함 문제로 천문학적인 지체보상금을 지급하게 됐고, 결국 자본잠식에 빠졌습니다.

매각 자구책 마련에도 실패 상장폐지 결정 : 이를 만회하기 위해 사업 부문을 매각하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가전 사업은 중국 메이디에, 이미지센서 사업은 소니에, 의료기기 사업은 캐논에, 원전 사업 중 일부는 히타치GE에, PC 사업은 샤프에, 반도체 사업은 SK하이닉스와 베인캐피탈 컨소시엄에, 웨스팅하우스는 브룩필드 컨소시엄에 매각했죠. 많은 행동주의 펀드들이 도시바의 주주로 참여하게 된 것도 그 시점부터였습니다.

그 뒤 다양한 방식으로 회사의 지배 구조를 바꾸고 성과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 무산되었습니다. 그러다 올해 3월 일본산업파트너즈(JIP)라는 이름의 사모펀드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이 약 2조엔(약 18조원) 규모의 경영권 지분 매각과 공개매수를 통한 상장폐지 패키지를 제안했고, 받아들여졌습니다.

당연하지만 자본 이익을 추구하는 사모펀드가 상장을 폐지하면서까지 경영권을 인수했으니, 도시바의 구조조정과 기업가치 개선에는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입니다. JIP도 이후 재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요. 그 계획이 순조롭게 이행될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당분간 도시바에 쏠릴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