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파월쇼크의 진짜 의미

⚡️ 이번 파월쇼크의 ‘진짜’ 의미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지난주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뉴스는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금리 인하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한 발언이었습니다. 이건 참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왜냐면 시장은 지금의 금리가 일시적으로 과도하게 높은 금리이며 내년엔 낮아질 걸로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장의 기대가 깨지고 있다: 시장이 그렇게 생각해 온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금리는 코로나발 인플레 때문에 갑자기 높아진 금리이고, 무엇보다 이런 높은 금리를 유지하면 고금리 후유증으로 많은 경제 주체들이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울 거라는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도 있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이 10년 이상 저금리를 유지한 이유는 ‘저물가·저성장’ 때문이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잠시 고물가·저성장’으로 바뀌었지만 고물가는 곧 진정될 것이고 저성장인 것은 별 변화가 없으니 금리도 다시 내려올 거란 생각은 매우 합리적인 편이었습니다. ‘잠시’라고 생각했던 게 생각보다 좀 더 길어지는 게 맘에 걸리긴 해도 내년쯤 되면 예상대로 흘러갈 것이란 게 컨센서스였습니다.

인플레가 생각보다 오래갈 수 있다는 경고가 간혹 나오긴 했지만 ‘하늘로 날아오른 비행기는 오래 날더라도 기름이 떨어지면 내려온다’는 생각이 대세였습니다. 그런데 고금리가 오래갈 것이란 파월의 언급을 계기로 혹시 요즘의 금리가 곧 낮아질 예정인 임시 금리가 아니라, 새로운 뉴 노멀 금리가 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주가가 많이 내린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금리의 뉴 노멀이 올라갔다: 앞서 표현한 뉴 노멀 금리를 경제학자들은 ‘중립금리’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 나라의 잠재 성장률에 딱 맞는 금리여서 이 금리를 유지하면 인플레도, 디플레도 생기지 않는 딱 적당한 금리를 의미하는데요. 문제는 이 금리가 어느 정도 수준인가를 정확히 알 방법은 없다는 겁니다.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추론하기도 합니다. 파월이 언급한 고금리의 장기화는 다른 표현으론 중립금리가 코로나 이전에 비해 올라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짚고 넘어갈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저성장과 고금리가 어떻게 오래 공존할 수 있느냐’는 질문입니다. 시중 금리가 5%라는 의미는 <5%의 이자를 물고도 돈을 빌려 어딘가에 투자해 5%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곳이 많아서, 너도 나도 5% 금리로 돈을 빌리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5%의 금리로는 아무도 돈을 빌려 투자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아무리 올려도 시중금리는 올라가지 않습니다.

저성장인데 고금리가 어떻게 유지될까?: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들도 저성장 국면에선 투자보단 예금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저성장 상황에서는 돈을 빌려쓰려는 사람보다 돈을 빌려주려는 사람이 더 많아집니다. 금리는 그래서 내려갑니다. 정상적인 경제라면 성장률이 낮은 나라의 금리는 계속 높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몇가지 예외적인 상황이 있습니다. 저성장이지만 누군가가 고금리라도 계속 돈을 빌리려고 한다면 ‘저성장 고금리’가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럼 그 ‘누군가’는 과연 있을까요? 있다면 누구일까요?

바로 정부가 그럴 수 있습니다. 저성장의 불경기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점점 더 심화하는 고령화 현상 속에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계속 투자해야 하고 돈을 풀어야 하고 노인들을 부양해야 합니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는 시중에서 계속 돈을 빌려야 합니다. 고금리라고 해서 안 빌릴 수는 없습니다.

저성장 상황에서는 시중 투자처가 줄어들기에 놀고 있는 여유 자금이 늘어나지만, 정부의 자금수요가 그보다 더 많다면 금리는 상승한 채로 유지될 수 있습니다. 만약 저성장 상황에서 고금리가 뉴 노멀이 된다면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오면 정부가 고금리 부채를 계속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이자 지출이 너무 많아지는 걸 막기 위해 금리를 낮추려는 시도를 중앙은행과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지난 30년간 저성장으로 정부가 국민들을 부양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정부 부채가 계속 늘어나서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독보적으로 1위인 국가가 됐습니다. 그리고 정부 지급 이자를 줄이려고 장기 금리도 제로로 눌러버리는 양적완화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여러 축적된 경험은 ‘저성장과 불경기는 저금리하고만 동행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왔습니다. 그래서 높은 금리가 장기적으로 가능하려면, 보다 높은 성장률이 새로운 노멀로 뒷받침 돼야 합니다.

고성장·고금리 시대가 실현될까?: 요즘 미국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현상들(예를 들면 공장의 미국 이전 등)은 미국이 다시 고성장 국가가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게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직 미국의 물가가 높은 건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서이고 그건 노동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어나서가 아니라 고령화나 코로나로 인한 인력 미스매치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란 주장도 여전합니다. 세상이 근본적으로 좀 바뀐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일시적 현상으로 나타나는 일인지 속단할 수 없기에 시장은 더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