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너지던 손정의를 일으킨 회심의 베팅?

🎰 무너지던 손정의를 일으킨 회심의 베팅?
이철민의 리멤버 밸리

사모펀드 VIG파트너스의 대표이며, 투자ㆍ테크ㆍ미디어 분야에 대한 글도 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잇따른 투자 실패로 인해 ‘투자의 귀재’라는 칭송이 사라졌던, 세계적인 투자사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 회장 이야기입니다. 그 시작은 2017년 야심차게 시작했던 100조원짜리 비전 펀드의 포트폴리오인 위워크의 상장이 실패한 2019년 하반기부터였습니다. 다행히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투자 기업들의 가치가 급등하고 쿠팡이 상장에 성공하면서 다시 재기하는 듯했지만, 그 기간마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2분기 소프트뱅크그룹 전체가 약 3조2000억엔(약 30조원)의 천문학적인 손실을 기록하며 다시 한번 최악의 상황에 내몰렸기 때문입니다. 실적 발표 후인 8월 기자회견장에서 손 회장이 “큰 수익을 내고 있을 때 정신이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많이 부끄럽고 반성하고 있다”며 참담한 심정을 실토한 것이 큰 화제였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손 회장에겐 한 가닥 희망이 있었습니다. 해당 기자회견 중 비전 펀드 성과를 설명하면서 “AI 유니콘 등 473곳을 투자했고… 그 중에서 미래의 알리바바나 Arm 같은 회사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던 것인데요. 과거 소프트뱅크의 성공을 대표하는 알리바바와 함께 아직 투자 결과가 나오지 않은 Arm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던 것입니다.

Arm 어떤 회사?: 일반인들에겐 다소 생소한 Arm은 Advanced RISC Machine의 약자로 1990년 영국에서 설립된 팹리스(생산 공장이 없는)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의 이름입니다. 영국 에이콘 컴퓨터와 미국 VLSI 테크놀로지 그리고 애플 등 3사의 합작회사였는데요. 애플이 Arm에서 설계한 CPU를 아이팟에 사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전세계 CPU 시장은 PC 기반의 인텔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신생 업체인 Arm은 이를 피해 저전력 CPU 설계에 집중했습니다. 막 시작된 모바일 기기들은 배터리의 한계 때문에 전력 소비를 최소화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이 예상은 아이팟의 성공과 함께 적중했습니다. 이후 스마트폰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Arm의 설계 기술은 90%가 넘는 AP(Application Processor, 스마트폰용 CPU)에 사용되기에 이릅니다.

그렇게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게 된 Arm에 눈독을 들이던 소프트뱅크는 2016년 234억 파운드(약35조원)에 Arm의 지분 100%를 인수하며 런던 증시에서 상장 폐지를 단행합니다. 당시 주가 대비 무려 43%의 프리미엄을 지급한 것인데요. 모바일은 물론이거니와 IoT(Internet of Things)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Arm의 중요성이 더 커질 거란 확신에 따른 선택이었다고 합니다.

무산된 엔비디아와의 빅딜: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손 회장의 확신은 현실이 됐고, Arm을 재매각해 대박을 만들어내는 일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한창 비전 펀드의 손실이 문제가 되던 2020년 9월, 소프트뱅크는 Arm을 400억달러(약 47.5조), 인수가보다 13조 가까이 높은 가격에 엔비디아에 매각하는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릅니다.

GPU(Graphic Processing Unit, 그래픽 처리 장치) 분야의 절대 강자인 엔비디아가 Arm을 100% 인수함으로써 반도체 분야의 새로운 공룡이 탄생할 수 있다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나왔습니다. 때문에 18개월 정도로 예정됐던 각 국가별 기업결합심사 결과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고요. 그런데 작년 초 미국과 영국, EU, 중국 등 주요 정부들이 모두 두 회사의 결합이 반도체산업의 경쟁 구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거란 입장을 표명하면서 결국 거래는 무산되고 맙니다.

Arm 나스닥 상장으로 한번 대박친 회장: 바로 그 시점부터 소프트뱅크는 Arm의 미국 증시 상장을 공식화했고, 약 1년반 동안 절치부심 준비해 왔습니다. 그 결과가 지난주 14일 나왔는데요. Arm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되면서 공모가 대비 첫날 25% 급등하며 시가총액 650억 달러(약 85조원)를 기록한 것입니다. 엔비디아가 인수하려 했던 가격 대비 주식 가치가 무려 63%나 증대된 것으로, 손 회장이 다시 한번 ‘대박’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아직 상장 초이기 때문에 Arm의 현 시총이 적정한 수준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논란이 있습니다. 하지만 손 회장은 여세를 몰아 본인이 확신을 가지고 있는 AI 분야에 대한 추가적인 투자를 예고한 상황입니다. 이미 챗GPT의 개발사인 오픈AI에 대규모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이러한 집착에 가까운 일관성이 더 큰 성과로 이어질지 지켜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