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따라만 가도 성공?

🤔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따라만 가도 성공?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경제성장률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따라가면 성공? : 일본 주식시장의 고점은 1989년 12월이었고, 일본 경제는 1990년대부터 꺾였다는 게 중론입니다.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용어도 그래서 나왔고 우리나라가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도 수시로 언급됩니다. 

지난 30년 동안 일본 경제는 우리가 따라가지 말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지난주에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한 강연에서 언급한 설명한 몇 가지 사실들(🔗관련 기사)은 우리나라가 앞으로 30년 동안 일본의 지나온 30년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만 있더라도 꽤 성공한 역사가 될 것이라는 우울한 결론으로 이어집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을 우리는 피해 가야 한다고 생각하던 우리의 상식과는 다른 설명이어서 당황스럽기도 한데요. 우리나라의 어떤 요인들이 그런 우울한 시나리오를 담고 있는지 알아보는 건 중요한 일이니 한번 체크해보겠습니다.

일본을 20~30년 늦게 따라가는 한국 :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은 90년대의 일본과 매우 흡사합니다. 경제성장률이 비슷하게 둔화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현재 고령화 속도도 그 무렵의 일본과 비슷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이 14%를 넘으면 고령사회로 분류하는데요. 일본은 1994년부터 우리나라는 2017년부터 고령사회가 됐습니다. 3년 후에는 우리나라의 노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데요. 일본은 이미 2006년에 이를 경험했습니다. 인구 구조가 경제 상황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가정하면 우리나라는 일본을 약 20~30년 정도 늦게 따라가고 있는 것으로 보는 게 크게 틀린 가정이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3만3000달러)은 2020년에 일본(4만달러)을 거의 따라잡았습니다. 30년 정도 늦은 게 아니라 거의 비슷하게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가를 감안한 구매력평가지수 기준으로는 한국이 4만5000달러, 일본이 4만3000달러로 일본을 앞지르기도 했습니다. 지금부터 잘하면 일본의 전철은 밟지 않아도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차라리 부러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울한 예상이 나오는 것일까요?

크게 두 지표가 달라 : 일본과 우리나라가 비슷한 상황이긴 하지만, 두 가지 중요한 지표가 크게 다르기 때문입니다.

1️⃣ 대외순자산 꺾이기 시작한 한국 : 첫째가 대외순자산이라는 지표인데요. 이건 쉽게 말하면 그동안 벌어놓은 돈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든 무역 등을 통해 돈을 벌면 그 돈을 달러로 쟁여놓기 때문에 경상수지 흑자를 지속적으로 기록하는 나라는 대외순자산이 계속 쌓여가기 마련인데요.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되기 직전인 1990년에 대외순자산이 이미 세계 1위였고 그 규모도 1조달러가 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대외순자산 순위가 세계 13위 수준이고 그 규모는 5000억달러에도 못 미칩니다. 

(참고로 대외순자산은 외환보유액과 유사한 지표입니다. 다만, 외환보유액은 정부가 따로 갖고 있는 외화 주머니라면 대외순자산은 가계와 기업, 정부의 외화자산 전체에서 가계와 기업 정부의 외화부채 전부를 뺀 숫자입니다. 외채가 1000억달러이면서 외환보유액도 1000억달러일 수 있지만, 대외순자산은 부채와 자산을 통산한 개념이므로 그 상황에서 대외순자산은 0입니다.)

이런 차이는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되면서 경제가 꺾이기 직전 20년 동안 부지런히 무역흑자를 기록하면서 달러를 잘 벌어들였기 때문인데요. 우리나라는 이제 막 부채를 다 갚고 달러를 벌어들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벌써 꺾이기 시작한 탓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강연에서 언급한 <일본은 부자 노인 한국은 가난한 노인>이라는 표현(🔗관련 기사)은 일본 노인들이 부자고 한국 노인들은 가난하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곧 초고령 국가가 될 테니 둘 다 노인인 건 마찬가지인데, 일본은 그래도 대외순자산을 많이 쌓아놓은 부자 노인이고 우리나라는 대외순자산이 별로 없는, 그냥 가난하기만 한 노인이라는 뜻입니다. 참고로 일본의 현재 대외순자산은 4조 달러에 육박합니다. 

2️⃣ 자원도 빈약해 : 둘째는 부족한 대외순자산을 만회할 자원이 더 빈약하다는 데 우리나라의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나라의 30년은 일본의 지나온 30년에 비해 더 어려움이 클 것입니다.  

인구 구조가 그 나라 경제에 얼마나 부담을 주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지표는 부양비입니다. 15세부터 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와 비교해 나머지 노인이나 어린이들이 얼마나 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인데요. 이게 낮을수록 몸이 가볍고 컨디션이 좋다는 의미입니다. 일본은 전성기 부양비가 46%였고 지금 66%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이 41% 정도인데 앞으로 30년 후에는 놀랍게도 100%에 육박하게 됩니다. 

일본, 인구 감소 고려하면 경제성장률 양호한 수준 : 지난 30년간 일본의 경제성장이 더디긴 했지만, 그건 나라 전체의 GDP 규모가 그렇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지표를 보면 일본만큼 부지런히 뛰어온 나라도 없습니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인구가 감소하는 속도보다 더 빨리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빠른 속도로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한 것을 감안하면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그렇게 낮지 않습니다. 2000년의 GDP를 100으로 볼 때 지금 미국과 영국은 약 140, 독일과 프랑스는 120이 된 반면, 일본은 113 정도에 그칩니다. 이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비웃지만, 생산가능인구 1명당 GDP의 추이를 보면 2000년을 100으로 놓을 때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모두 120 수준이지만, 일본은 135입니다.

한국은 생산성 높이려는 노력 부족해 : 쉽게 말해 일본은 고령화의 고통을 치열한 생산성 향상으로 버텨왔다는 뜻입니다. 거기에 고령화가 시작되기 전에 벌어둔 대외순자산이 그 고통을 줄이는 완충재가 되어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완충재도 부족하지만, 생산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매우 부족하다는 게 이창용 총재의 지적입니다. 

국가가 생산성을 높인다는 건 매우 냉혹합니다. 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을 구조조정하고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킨다는 의미인데요.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그런 시도를 계속하면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런 시도는 고통스러우니 다들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어서 이 위기를 벗어나자고 한다는 게 문제(🔗관련 기사)라는 진단입니다.

옳은 지적으로 들리지만, 그 고통을 구조개혁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그 과정에서 피해를 본 집단이 반발하게 될 텐데 그게 정치적으로 감내할 수 있는 카드인지도 의문입니다. (구조 개혁의 대상이 대부분 기득권이거나 표가 많은 유권자 집단입니다.)

또한, 그런 시도도 경제가 견뎌낼 수 있는 시기에 해야 하는데 이미 한국은 그 단계를 지나 병든 노인이 된 상태여서 그 시도가 가능한지 의문이라는 걱정도 나옵니다. 

아무튼 우리의 고령화는 일본보다 더 고통스러울 가능성이 높고 그러지 않기 위해 해야 할 개혁도 늦어지고 있습니다. 굳이 희망을 찾자면 그래도 일본의 젊은이들보다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더 나아 보인다는 게 한국은행 총재의 한국 경제 진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