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프로 뭉친 미국과 사우디, 왜?

🏌🏻‍♂️ 골프로 뭉친 미국과 사우디, 왜?
이철민의 리멤버 밸리

사모펀드 VIG파트너스의 대표이며, 투자ㆍ테크ㆍ미디어 분야에 대한 글도 쓰고 있습니다.

미국과 사우디가 골프 뭉친다? : 지난 6일(미국 현지 시각) 미국의 골프투어인 PGA와 사우디아라비아가 창설한 골프투어인 LIV가 합병한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PGA 소속 프로 선수들도 트위터에 올라온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인터뷰했을 정도로, 진짜 뜬금없이 전격적으로 합병이 발표된 것인데요. 이 때문에 전세계 골프 업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습니다(🔗관련 기사).

PGA야 전세계 골프를 대표하는 미국 투어라서 잘 알려져 있지만, LIV는 생소한 이름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이번 합병의 파장이 큰 이유는 그간 두 투어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이 워낙 시끄러웠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은 2021년 사우디가 국부펀드(PIF)를 동원해 PGA에 대항하는 이른바 슈퍼골프리그(SGL)를 출범시키겠다는 발표였습니다(🔗관련 기사).

인권 이슈 희석시키려는 사우디의 노림수? : 사우디의 그런 발표는 이른바 ‘스포츠 워싱*’의 일환이었습니다. 빈 살만 왕세자가 실권을 잡은 이후 발생한 반체제 언론인 암살·인권 탄압 등을 가리려는 목적으로 스포츠에 오일 머니를 적극 투자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라는 것이죠.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뉴캐슬을 인수하고,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자국 축구 리그에 영입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었습니다(🔗관련 기사).

📌 스포츠 워싱: 특정 국가나 집단의 부정적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스포츠팀을 운영 또는 후원하는 등의 행위

‘우승 상금 2~3배’ 머니 파워로 밀어붙인 사우디 골프투어 : 2022년 6월 SGL은 LIV로 이름을 변경해 공식 출범했습니다. 천문학적인 이적료와 상금을 내걸었는데, 매 대회마다 총상금 2500만달러에 우승 상금은 400만달러로 웬만한 PGA 대회의 2~3배나 되고, 최하위도 12만달러나 주는 그야말로 돈 잔치였습니다. 더스틴 존슨, 케빈 나, 세르히오 가르시아, 이안 폴터, 필 미켈슨, 리 웨스트우드 등 전성기는 다소 지났지만 여전히 최상급 선수들 48명이 대거 참여한 이유입니다(🔗관련 기사).

사우디 골프투어 참여자 출전 정지중징계로 맞선 PGA : 위기를 느낀 PGA의 대응은 강경했습니다. LIV에 참가한 선수들에게 PGA 투어 출전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린 것이죠. 한때 세계 랭킹 1위였던 더스틴 존슨 등 일부 선수들은 스폰서십 계약이 해지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LIV를 선택한 선수들에겐 사우디 인권 문제를 둘러싼 미디어들의 집요한 질문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관련 기사).

당시의 상황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PGA에 대한 흥미로운 다큐 <풀 스윙>에 아주 잘 담겨 있습니다(🔗관련 내용). 이안 폴터가 PGA 투어에서 컷오프 탈락을 경험하며 프로 골퍼로서의 경력 문제를 고민하는 과정과 LIV를 선택하는 과정 그리고 그에 대해 집요하게 문제 제기하는 미디어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습니다.

문제는 LIV의 공식 출범 이후 PGA는 물론 LIV도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입니다. PGA의 경우 프로 선수들을 붙잡기 위해 대회별 상금을 올리는 과정에서 자금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LIV는 투어 자체에 대한 팬들의 주목도가 예상보다 낮아서 스폰서를 구하기 어려웠습니다. 심지어 시청률에서는 PGA의 10분의 1 수준에 머무는 굴욕도 맛봐야 했습니다(🔗관련 기사).

두 투어의 합병은 이러한 양측의 실질적인 문제들을 한꺼번에 해결하기 위한 묘책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문제는 너무 전격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인데요. 때문에 LIV로 이적한 선수들은 돈을 충분히 벌고 다시 PGA로 돌아올 수 있게 된 반면, 그간 PGA를 지켰던 선수들은 허탈할 수밖에 없게 된 상황입니다(🔗관련 기사).

이번 합병의 진짜승자는 사우디? : 더 큰 이슈는 합병 이후 투어의 운영을 PGA가 담당하지만 자금 투자는 LIV에게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합의했다는 점입니다. 물론 이사회는 PGA가 과반수를 차지하고 CEO도 선임하기로 했지만, 사실상 사우디가 세계 골프 투어의 전면에 공식적으로 나서게 됐다는 비판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사우디가 진정한 승자라는 비아냥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죠(🔗관련 기사).

그래서 최종적 합병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을 듯 합니다. PGA 선수들의 집단적인 반발(🔗관련 기사)도 무마해야 하고, 미국 정치권 우려(🔗관련 기사)도 불식시켜야 하고, 911 희생자 유가족 등 일부 시민들의 규탄 여론(🔗관련 기사)도 잠재워야 하며, 관계 당국의 반독점 가능성 조사(🔗관련 기사)도 피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