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플이 애플했다
애플의 신제품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띈 3가지
9월 안으로 애플의 신제품이 출시되죠. 아이폰14, 아이폰14 프로, 에어팟 프로, 애플워치8, 애플워치 SE2세대, 애플워치 울트라 등 신규 시리즈들이 이미 줄줄이 공개됐는데요.
국내외 언론에선 다양하게 향상된 이 신제품들의 기능에 주목했습니다. 실제로 아이폰14는 신형 프로세서를 탑재하고 카메라 기능을 강화했고, 애플워치는 손목 온도 측정, 여성의 생리 주기 추적 등 개선된 기능을 내놨습니다. 에어팟 프로는 재생 시간이 부쩍 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특징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3가지였는데요. 바로 ①위성 통신 ②자동 긴급 구조 요청 ③다이내믹 아일랜드입니다. 애플이 그리는 미래를 이 기능들에서 엿볼 수 있었습니다.
1️⃣위성 통신, 신 사업의 첫 삽을 뜨다
위성 통신 프로젝트는 애플이 수년간 준비해 온 회심의 무기입니다. 2019년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애플은 당시 위성 통신 방식의 혁신을 위해 소프트웨어⋅하드웨어 엔지니어를 고용했습니다. 이 프로젝트가 미래 신사업을 위한 ‘비밀 팀’에 의해 진행된다는 사실도 함께 전해졌고요.
그 뒤로 작년부터, 저궤도 위성 통신이 아이폰에 탑재될 거란 소문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대만의 애널리스트 구오밍치가 그 소문의 출처인데, 그는 애플에 관해 가장 정확하게 예측하는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년 8월 구오밍치는 위성 통신이 아이폰13에 탑재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당시 애플은 이 보고서 내용을 모두 부인했고 실제로 아이폰13엔 그 통신이 탑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년 뒤 구오밍치의 예측은 신제품에서 100% 현실이 됐습니다.
구오밍치는 위성 통신을 도입하면 네트워크에 아이폰이 연결되지 않는 환경에서도 문자 등 텍스트 기반의 커뮤니케이션을 구현할 수 있을 거라 예측했었습니다. 당시 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두 회사가 있었는데, 애플은 그 중 미국의 위성 통신 회사인 글로벌스타와 협력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도 남겼죠. 그리고 올해, 애플은 그의 예측대로 글로벌스타와의 협력을 공식화했습니다. 그 덕에 글로벌스타 주가는 급등했고, 경쟁사인 이리듐 커뮤니케이션즈의 주가는 같은 기간 6.8% 하락했습니다.
다만, 글로벌스타가 제공하는 GSP-1700은 네트워크 속도가 9.6kbps에 불과합니다. 1G 수준의 데이터 통신도 안 되는 속도죠. 만약 이 속도가 빨라진다면 문자 메시지를 주고 받는 것 이상의 위력이 생길 거예요. 특히 자율 주행차나 뜬소문으로만 존재하던 애플카가 출시된다면, 그 중요성이 커질 겁니다.
네트워크가 촘촘히 구축된 도시 지역이면 상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지역이라면 저궤도 위성을 통한 위치 정보 공유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죠. 참고로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는 저궤도 위성을 통한 초고속 인터넷을 서비스 중입니다. 현재 북미, 캐나다, 영국에서 이미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고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애플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작은 실험을 시작한 게 아닐까 해요.
2️⃣긴급 구조 요청을 통한 스마트 시티 구축
이번엔 이례적으로 아이폰이나 애플워치 모두 긴급 구조 요청 기능이 들어갔습니다. 앞서 언급한 위성 통신이 이 기능을 위한 제반 환경으로 쓰였죠. 특히 주목할 점은 ‘충돌 감지 기능’입니다. 자동차 탑승 중 사고가 나면 애플워치나 아이폰이 이를 감지하고 10초간 카운트 다운을 합니다. 만약 사용자가 반응이 없으면 자동으로 긴급 구조 요청 전화를 걸어줍니다.
애플은 자이로스코프*와 가속도계를 활용해 첨단 센서 융합 알고리즘을 개발했다고 밝혔는데요. 이 알고리즘은 기계적으로 설계한 게 아니라, 전문 충돌 테스트 연구소에서 실제 차량을 대상으로 실험한 데이터의 결과물입니다. 애플은 일반 승용차를 대상으로 정면, 후방, 측면 충돌, 전복 등 차량 사고를 직접 시뮬레이션해 새로운 모션 센서 데이터를 수집했다고 합니다.
📌자이로스코프 : 3차원 운동을 알아차리는 장치. 기기의 방향을 측정하고 유지하게 하는 도구로 쓰임
애플이 굳이 신제품 행사장에서 ‘긴급 출동’ 기능을 여러 차례 강조한 건, 스마트 시티 시장에 발을 걸치기 시작한 하나의 시그널이 아닐까 싶습니다. 스마트 시티는 매우 급성장하는 시장입니다. 베리파이드 마켓 리서치에 따르면, 작년 1120억달러 규모였던 스마트 시티 내 사물 인터넷(IoT) 시장 규모는 올해부터 2030년까지 23%가 넘는 연평균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입니다.
특히 스마트 시티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시민의 안전인데요. 이를 고려하면 이번 발표는 의미가 크죠. 응급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사고 직후 골든 타임을 얼마나 지킬 수 있는가에 달렸으니까요.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앞으로 안전을 위해 아이폰이나 애플워치를 구매하는 시민들이 늘어날 겁니다. 기업이나 기관들도 스마트 시티를 설계하면서 애플 제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테고요.
3️⃣애플의 마케팅 역량 보여준 다이내믹 아일랜드
앞선 두 기능이 애플의 사업 영역 확장 측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다이내믹 아일랜드는 애플의 마케팅적 역량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이었습니다. 그간 M자형 노치(화면 상단 테두리. 위 사진 속 빨간 화살표가 가리키는 검정색 영역)에 불만을 가진 아이폰 사용자들이 많았는데요. 다이내믹 아일랜드는 이 노치를 사용자의 앱 활용도에 따라 자유자재로 크기를 바꾸며 알림창 역할을 하도록 하는 기능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눈에 거슬리던 노치가 하나의 디스플레이로 활용되며 사용자 경험을 극대화하는 것이죠.
사실 애플은 하드웨어도 잘 만드는 회사입니다. 일반 이용자들의 주목도는 낮은 편이지만요. 한때 맥북 에어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를 가장 잘 구동할 수 있는 랩톱으로 평가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애플의 하드웨어 역량이 저평가되는 건 오랜 라이벌 삼성전자의 존재감 때문입니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시장 혁신 방식은 상이합니다. 애플은 소프트웨어와 감성을 강조한다면 삼성전자는 하드웨어 기능 개선과 기술 진일보를 강조합니다. 실적 발표에서도 이런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나고요. 다이내믹 아일랜드 출시 이전 애플은 홍보용 사진에서 노치 부분이 자연스럽게 안 드러나는 사진을 마케팅용 사진으로 써왔습니다. 반면 삼성전자는 기술로 승부했죠. 크기를 훨씬 줄인 핀홀(카메라가 들어있는 구멍)을 세상에 내놨고, 점차 핀홀의 위치를 옮기거나 아예 안 보이게끔 진화해왔습니다.
그래서 삼성전자에 더 호의적인 일부 청자에겐, 다이내믹 아일랜드는 ‘눈 가리고 아웅’식으로 느껴졌을 겁니다. 노치의 크기가 줄었지만, 어찌 됐든 까만 영역이 디스플레이상 계속 존재하니까요. 반면 애플에 호의적인 청자들은 열광했습니다. 인지하지 못했던 ‘알림’이라는 공간을 ‘재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시장의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훨씬 진일보했다는 건데요. 활용을 못 하던 애물 단지 같은 노치를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공간으로 살렸다는 점, ‘다이내믹’이라는 이름처럼 알람 아이콘이 탄력적으로 변하는 모습, 그리고 애플의 둥근 형태의 UI와 심미적으로 통합된 느낌. 이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진 이번 신제품 발표는 ‘애플다움’ 그 자체였다고 평가 되네요.
Comment : 애플이 움직이면, 안드로이드 진영이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습니다. 위성 통신이나 긴급 알람 같은 기능이 어떻게 안드로이드에서 구현되는지 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다이나믹 아일랜드에 향후 어떤 대응 기능이 나올지도 지켜봐야겠습니다. 소비자로서는 이런 경쟁이 즐거울 수밖에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