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도는 속도가 느려서 걱정이에요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돈이 도는 속도가 느려서 걱정이에요

새로운 사실: 지난 2분기에 우리나라의 통화유통속도가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이 뉴스는 돈이 풀려나가도 그 돈이 잘 돌지 않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게 왜 그런 의미냐면 통화유통속도는 경제가 생산하는 생산량인 GDP를 시중에 풀린 돈으로 나눈 수치인데요. 이게 제자리 걸음이라는 건 시중에 돈을 푸는 만큼만 GDP가 커진다는 뜻이고 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는 건 시중에 돈을 푸는 양만큼도 GDP가 커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돈이 도는 만큼 경제도 돈다: 일반적으로는 돈을 조금만 풀어도 GDP는 많이 늘어나는 게 정상입니다. 예를 들어 돈을 1만원 풀면 그 돈으로 누군가는 1만원어치 빵을 사먹고 그 빵을 판 주인은 그 돈으로 빵을 만드는 재료를 사고 남는 돈으론 옷을 사고 그러면 빵의 재료인 밀가루 회사도 돈을 벌어서 직원들 월급을 주고 옷을 파는 가게도 원단을 수입하면서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이론적으로는 전 세계에 풀린 돈이 단돈 1만원뿐이라도 그 돈이 빠르게 돌기만 하면 세계 경제는 아무 문제없이 돌아갑니다. 경제 주체들이 돈이 들어오기가 무섭게 그 돈을 써버리면 됩니다.

그 말은 바꿔 말하면 사람들 주머니에 돈이 들어와도 그 돈을 쓰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고 돈은 늘어났어도 늘어난 돈만큼의 GDP도 생산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통화유통속도가 낮아집니다. 직관적으로 생각해도 돈이 잘 돌지 않는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가 됩니다.

왜 돈이 돌지 않나요: 돈이 돌지 않는 이유는 1. 돈이 없거나, 2. 돈이 있어도 그 돈을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세상에는 1번 케이스와 2번 케이스가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푸는게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은 아닙니다만, 2번 케이스가 늘어날수록 돈을 푸는 보람과 효율은 떨어집니다.

돈이 있어도 돈을 쓰지 않는 이유는 1. 소비할 대상이나 투자할 대상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돈을 쓰지 않는 경우 중에는 2. 미래 경제 상황의 불확실성에 따른 불안 때문에 쓰고 싶어도 안 쓰고 쟁여두는 케이스도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결국 1번 또는 2번의 이유를 없애주면 사람들은 돈을 쓸 것입니다. 1번을 막기 위해 소비와 투자의 대상을 늘려주거나 2번을 겨냥해서 그 문제를 풀기 위해 소비자들의 미래 불안감을 없애주는 게 요즘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고민하는 경제정책의 처음이자 끝입니다.

불안감을 줄이는 방법: 미래의 불안감이 왜 생길까 생각해보면 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돈이 없거나 지금 당장은 돈이 있어도 미래에는 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으면 사람들은 돈을 쓰지 않습니다. 미래에 돈이 잘 들어오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지금도 잘 들어오고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고민을 해결해주는 건 시중에 돈을 더 공급해주는 방법 뿐입니다.

지금까지 시중에 돈을 공급하는 방법은 금리를 낮춰서 기꺼이 대출을 받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이자율이 아무리 낮아도 그 돈이 갚아야 할 돈이라면 불안해서 돈을 잘 빌리지 않게 됐습니다. 정부가 직접 돈을 푸는 재정정책을 언급하는 건 그 이유 때문입니다. 미국 중앙은행이 앞으로 계속 당분간 또는 영원히에 가까운 기간동안 저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자주 언급하는 것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한 행동입니다.

어떻게 해야 되나요: 사람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부동산이나 주식에 투자합니다. 그러나 자산의 가격이 올라가는 것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머리핀 하나를 서로 주고 받으면서 그 머리핀 가격을 올려놓고 저녁무렵 그걸 1억원에 사고 다시 1억원에 파는 일을 하더라도 그 거래가 끝나면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 투자로 번 돈을 다른 곳에 소비하거나 그 투자 대상인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면서 건물이나 상가 주택 등을 더 짓게 되면 그 과정에서 GDP가 늘어나고 경제가 살아날 뿐입니다. 중앙은행들이 자산 가격의 급등을 불안하게 바라보면서도 브레이크를 걸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해서라도 돈이 도는 걸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자산가격이 오르는 건 그런 식으로 경제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부작용도 있습니다. 자산가격이 오르면 돈을 번 일부가 소비와 투자를 늘리는 장점도 있지만 자산가격의 상승은 위화감을 불러오고 위화감은 분노와 불만으로 바뀌며 그 불만에 호응하는 포퓰리즘 정책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그런 정책은 더 빠른 속도로 경기를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자산가격의 상승으로 경기가 오히려 나빠지는 경로입니다.

지역화폐로 해결하는 방법: 지역화폐를 발행해서 일정 기간 후에는 사용하지 못하게 유효기간을 정해두면 사람들이 억지로라도 돈을 쓸 테니 그러면 돈이 돌 수 있다는 아이디어도 그런 이유로 나옵니다.

물론 이 아이디어는 여러가지 논란거리가 남습니다. 유효기간이 없는 현금보다는 유효기간을 따로 정해놓은 지역화폐는 안쓸 돈을 쓰게 만드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모든 월급을 다 지역화폐로 주는 등 그 지역화폐를 충분한 양으로 공급하지 않으면 안 쓸 돈을 억지로 쓰게 되는 게 아니라 어차피 쓸 돈을 지역화폐로 쓰는 것으로 그칩니다. 현금이었다면 서울의 백화점에서 사용했을 돈을 지역화폐로 주면 동네 치킨 가게에서 사용하게 되는 소비처의 이동은 해당 지역 경제로 보면 좋은 일이지만 국가 전체로 보면 나쁜 일이 되기도 합니다.

서울의 백화점은 사람들을 유혹하는 맛있는 먹거리를 동네 치킨가게보다 더 잘 만드는 능력이 있는 곳이므로(그러니까 유명 백화점입니다) 사람들이 거기에서 소비를 하면 그렇게 번 돈으로 더 맛있는 뭔가를 만들어내서 사람들의 소비를 더 촉진하고 그 과정에서 GDP 유발이 더 많이 됩니다. 지역화폐를 사용하자는 건 축구경기에서 골 잘 넣는 스트라이커 말고 고향 선배에게 패스하자는 말과 같습니다. 좋은 경기가 될 리 없습니다.

그러나 서울의 백화점은 이미 충분히 손님이 많아서 제품개발에 투입할 자금이 충분한 상태라면 지역의 치킨가게에 돈을 몰아주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유능한 스트라이커가 피곤한 상태라면 고향선배에게 패스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하는 게 필요한데 현실적으로는 그걸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오늘의 이슈

사모펀드가 자꾸 말썽인 이유

사모펀드란: 사모펀드는 49인 이하의 투자자만 가입할 수 있습니다. 소수의 가입자만 가입이 가능한 대신 펀드의 운용은 매우 자유롭습니다. 위험한 투자를 하든 뭘 하든 우리끼리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는 펀드입니다.

이런 펀드를 허용하는 이유는 그런 펀드를 허용해야 다양한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위험하다고 못하게만 하면 늘 안정적이지만 수익률이 낮은 투자대상에만 투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모험자본이 필요한 사업은 존재하기가 어렵습니다.

49인 이상의 투자자들이 가입하는 공모펀드는 누구나 가입할 수 있지만 그 대신 투자 대상도 규제하고 설명의 의무도 엄격하게 적용합니다. 자율성을 포기하는 대신 안정성과 대중성을 선택한 결과입니다.

사모펀드의 딜레마: 문제는 49인 이하의 투자자를 모으는 사모펀드는 그 정도 투자로는 펀드 운용사도 별로 돈을 벌지 못하고 그 돈을 모아봐야 투자할 대상도 한정적이라는 데 있습니다. 투자자들도 사모펀드를 가입하면서 한 펀드에 큰 돈을 투자하지도 않습니다. 사고 가능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형식적으로는 49인 이하로 모집하되 그런 펀드를 여러개 만들어서 사실상 그보다 더 많은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사례가 많았습니다. 펀드 쪼개팔기라는 편법 운용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운용하면 사실상 공모펀드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당연히 나옵니다.

사모펀드로 운용하자니 돈이 잘 안 모이고 공모펀드로 가자니 규제가 많아서 못하는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쪼개팔기를 하다가 사고를 내자 피해자들이 급증했습니다. 일반적인 사모펀드라면 피해자가 49인 이하인 것이 상식이지만 수백명의 투자자들이 손실을 입고 사회문제가 돼서 ‘알아서 하는 사모펀드’임에도 정부가 나서서 손실 구제를 해야 하는 아이러니가 생긴 배경입니다.

사모펀드는 어떤 위험자산에 투자하든 그러다가 돈을 떼이든 말든 투자자들이 알아서 하는 게 원칙입니다. 판매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면 개별 소송으로 해결할 일입니다. 그러라고 만든 게 사모펀드입니다만 쪼개팔기로 피해자가 많아지면서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이럴 거면 다 공모펀드로 팔고 정부가 다 관리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실제로 정부도 사모펀드들이 어떤 자산에 투자하는지 감시하는 시스템을 내년 상반기부터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 문제는 근본적으로는 저금리의 만연으로 마땅한 투자처가 없어진 것이 원인입니다. 안전한 곳은 금리가 낮아서 투자성이 떨어지고 수익률이 다소 높은 것은 리스크가 커서 고객을 모으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 시작입니다.

못 팔아서 망하거나 사고 나서 망하거나: 펀드 운용사는 고객에게 리스크를 지고 높은 수익을 노리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그 설득이 안 돼서 고객을 모으지 못하면 영업을 접어야 합니다. 하지만 영업을 접기는 어렵다 보니 위험한 듯 위험하지 않게 포장된 적당한 수익률의 정체 모를 상품들을 가져다 팔았습니다.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겠지만 투자 대상이 미심쩍더라도 고객에게 권할 다른 대안이 없다면 굳이 그 투자 대상을 살펴보지 않는 게 일반적입니다. 고객에게 아무 상품도 팔지 못해서 망하는 경우와 고객의 돈을 위험한 곳에 투자했다가 사고가 나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자산운용사 또는 판매사들에게는 어차피 마찬가지 결과라는 게 문제의 시작이었던 사건입니다.

빅테크 기업을 견제할 방법

새로운 사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이른바 빅테크 업체들의 시장 장악력이 커지면서 미국과 유럽에서 이들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정책수단을 고민 중입니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모인 결과로 나타난 독과점이지만 계속될 경우 독점력을 활용한 가격 인상 등 소비자들에게 부작용이 나타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어떤 식으로 견제하는 게 효과적이냐는 겁니다. 과거에는 전국망을 가진 독점기업을 지역별로 분할하는 것으로 경쟁을 유도했으나 지금은 그 수단도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언제든지 아마존이나 구글에 접속할 수 있고 사람들의 몸에 내재된 그 습관이 독과점의 원천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습관을 분할해야 하는게 그러긴 어렵습니다.

유럽에서는 빅테크 기업들이 얻게 되는 데이터를 유럽의 토종 IT기업들과 공유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라는 소식입니다. 이를테면 유럽의 소비자 A가 구글에서 어떤 키워드로 검색하고 아마존에서 어떤 상품을 구매하는지 그의 취향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보를 다른 기업들이 공유할 수 있게 되면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구글이나 아마존, 애플 등과 경쟁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놓치면 아까운 소식

👨‍🎤코로나가 만들어낸 유료 온라인 콘서트: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관객들이 공연장에 모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공연으로 수익을 올리던 가수나 연예인들은 어떤 탈출구를 찾을까요. 방탄소년단(BTS)이 내놓은 해법은 퀄리티를 높인 온라인 실시간 유료 공연 중계방송입니다. 입장료를 5만~6만원으로 정했는데 유료 관객이 100만명에 가까울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니었다면 굳이 온라인 콘서트를 기획할 이유도 적고 기획했더라도 그걸 보라고 할 명분도 적었을 텐데 오히려 위기가 좋은 기회로 바뀐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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