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의 택배 침공, 한진의 합종연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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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택배 침공, 한진의 합종연횡

합종(合從). 적대 관계에 있는 여러 집단은 언제든지 더 큰 힘을 가진 누군가와 대항하고자 과거는 묻고 힘을 합칠 수 있습니다. 연횡(連橫). 합종한 세력들은 언제고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다시금 반목하고 갈라집니다.

합종연횡. 중국 전국시대에 등장한 국가 간 외교 전술에서 나온 말인데요. 이 전략의 결과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합종과 연횡을 반복한 끝에 진나라는 전국 7국을 통일했고, 영원한 제국은 없었습니다.

요즘 한국의 택배업계 분위기가 이와 비슷합니다. 쿠팡이 오랜 기간 로켓배송 파트너로 함께해온 한진을 통해 처리하던 물량 계약을 최근 해지했습니다. 한진이 대신 처리하던 월 720만건 가량의 로켓배송 물량 중 절반 수준인 300만건 이상이 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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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은 한 편에서 ‘퀵플렉스’라는 이름으로 택배 대리점을 모집하며 얼마 전까지 협력 관계였던 택배업체의 네트워크를 파고들고 있습니다. 업계에선 한진이 처리하던 물량을 이제 쿠팡 ‘퀵플렉스’가 수행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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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쿠팡만 이럴까요. 컬리는 작년 CJ대한통운과 협력해 새벽배송 지역을 지방으로 넓혔습니다. 하지만 컬리의 물류 자회사이자 택배사업자 넥스트마일이 현재 CJ대한통운 담당인 충청권으로 새벽배송을 위한 물류거점을 확장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결국 새벽배송으로 같은 고객사를 끌어모으고 있는 이 두 기업의 협력관계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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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로 과거 택배 고객사였던 유통업체가 택배의 ‘경쟁사’로 거듭나는 시점입니다. 이런 상황에 택배업체는 불안합니다. 특히나 관계사의 물량 지원을 받을 수 없는 ‘3PL(3자 물류) 업체’라면 그 불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처럼 불안한 상황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입장을 직접 확인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국내 최대 3PL 업체이자 77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最古)의 종합물류기업 ‘한진’이 성장 전략을 발표하는 대표이사 간담회를 지난 28일 열었기 때문입니다.

3PL이 2PL과 맞서는 법

한진은 국내 택배업계 2등을 다투고 있는 업체입니다. 과반 점유율을 달성한 CJ대한통운이 업계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한진은 CJ대한통운에 이어 롯데글로벌로지스와 비슷한 점유율로 각축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앞서 한진을 국내 최대의 3PL 업체라 표현했는데, 여기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매출로 치면 CJ대한통운과 롯데글로벌로지스가 한진의 위에 있습니다만, 이들은 순수한 3PL업체라 보기 어렵습니다. 규모의 차이는 있겠지만 CJ대한통운과 롯데글로벌로지스는 관계사의 물량 지원이 뒷받침되는 상황입니다. 두 회사 모두 3PL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는 해도 기반 물량이 있느냐 없느냐는 물류업체의 ‘평화’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한진에는 관계사의 물량 지원 같은 게 없습니다. 물론 국적 항공사로 ‘대한항공’의 지위는 압도적이지만, 대한항공이 제조·유통사처럼 직접 물량을 창출해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결국 이 또한 누군가의 물량이겠죠). 그 말인즉, 한진은 순수한 3PL 업체로 관계사의 물량 지원을 받는 2PL(2자물류) 업체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한 한진의 경쟁 전략이 ‘합종’입니다. 적의 적은 우리 편이라 했던가요. CJ그룹, 롯데그룹 계열 유통사들과 경쟁하는 업체들이 한진을 이용하는 고객사가 된다고 합니다. 마치 미국에서 아마존과 경쟁하는 유통사들이 페덱스를 이용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될까요?

실제로 농협, GS리테일과 같은 유통업체들이 한진과 오랫동안 협력한 우량 화주사이고요. 이 외에도 한진은 지난해 카카오모빌리티와 네이버(전통시장)의 택배 협력사로 참가했고, 최근에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물류 플랫폼 카카오 아이라스(iLaaS) 파트너로 합류했습니다. 곳곳에서 합종 전선을 만들고 있습니다.

“한진은 경쟁 택배사들과 비교하여 고정 물량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말 순수하게 3PL 비즈니스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이 양대 회사에 소속되길 원치 않는, 싫어하는 회사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대기업 중에도 있고, 물류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중소기업 중에도 많습니다. 경쟁사들에 비해 조금 늦긴 했지만, 한진은 2024년 대전에 메가 택배 허브터미널을 오픈할 예정입니다. 한진 대전 허브는 경쟁사들의 곤지암(CJ대한통운), 진천(롯데글로벌로지스) 허브와 다르게 여러 중간 규모 지원(서브) 물류센터를 통해 운영 효율성을 끌어올릴 것입니다.”
– 노삼석 한진 대표이사

다가온 연횡에 맞서는 법 

사실 문제는 한진과 같은 택배 영역에서 경쟁하는 2PL 물류기업이 아닐 수 있습니다. 2PL 물류기업과 맞서고자 그들의 계열사와 경쟁하는 유통업체들과 ‘합종’을 택한 결과가 영원한 연합으로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네, 당장 ‘쿠팡’이 그렇습니다. 한진의 최대 합종 파트너였던 쿠팡은 어느 순간 한진의 경쟁사가 돼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합종 뒤에 따라온 ‘연횡’입니다.

이에 대응하는 한진의 전략은 다시 한번 ‘합종’입니다. 쿠팡 또한 한진에 있어 언젠가 떠날 수 있는 기업이라 보고, 이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한진 측 설명입니다. 이번 쿠팡의 이탈로 월 300만건 이상의 물량이 한진에서 빠져나갔지만, 곧바로 한진은 공영홈쇼핑과 아모레퍼시픽 등 또 다른 화주사를 유치하여 월 250만건 이상의 물량을 수복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합종 전선의 탄생입니다.

“우리는 쿠팡이 언젠가 나갈 것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진은 쿠팡의 중국발 국제 전자상거래 물량을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광저우에서 약 1년 동안 서비스를 정착시켰는데, 더 낮은 단가를 제시한 다른 물류업체가 그 물량을 가지고 갔습니다. 국내 또한 시기를 가늠하는 문제였지 언제든 쿠팡은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보다 큰 이슈는 쿠팡이 택배회사를 만들었다는 겁니다. 현재 쿠팡의 택배는 집화가 없기 때문에, 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앞으로 기존 택배회사들의 물량을 빠르게 흡수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진뿐만 아니라 모든 택배업체들에게 있어 쉽지 않은 사업 환경이 분명하고, 이에 우리 임원들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 노삼석 한진 대표이사

새로운 합종 전선을 찾아서 

한진의 미래 전략은 새로운 합종 전선을 찾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택배 서비스 영업은 이미 물량이 충분한 중대형 고객사를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던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한진은 이제 ‘롱테일 브랜드 업체’까지 영업 대상에 적극 포섭한다고 합니다. 물량 규모와 상관없이 중소업체와 스타트업까지 막론한 브랜드들의 D2C(Direct to Customer)를 지원한다고요.

덩달아 한진이 고객사에게 제공하던 물류 서비스의 범위는 더욱 넓어질 겁니다. 기존 택배가 제공하던 익일배송을 넘어서 새벽배송, 당일배송, 시간지정배송 등 새로운 타임라인을 개척할 예정입니다. 또 기존 한진의 소상공인 대상 방문택배 서비스 ‘원클릭택배’는 국제특송 서비스와 결합하여 글로벌 물류 영역까지 연계, 확장합니다.

“한진이 소상공인, 스타트업과 같은 작은 고객사에 집중하는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트렌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진뿐만 아니라 DHL과 같은 글로벌 물류회사들이 모두 롱테일 전략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자신 있게 롱테일에 계속 더 투자할 수 있습니다.”
– 조현민 한진 마케팅 총괄 사장

종전 한진이 구축한 합종 전선이 대부분 ‘화주사’와의 연합이었다면 이제는 전혀 새로운 영역의 연합군과 손을 잡기도 합니다. 최근 한진은 ‘숲(Swoop)’이라는 이름의 K패션 브랜드 글로벌 진출 지원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세일즈, 마케팅 에이전시와 협력하여 한국 패션 브랜드의 해외 판로를 개척하고, 이와 연관된 글로벌 물류를 한진이 수행하겠다는 계획입니다. 한진의 서비스에 전에 없던 마케팅 가치사슬이 추가됐고, 이를 외부 업체와 연합해 만들어낸 모습입니다.

한진은 이렇게 확장해 구축한 여러 새로운 사업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입니다. 지금까지 한진은 물류 인프라 중심의 사업을 해왔지만, 앞으로는 ‘물류 플랫폼’ 사업을 강화하려고 합니다. 화물을 보관하고 운송하는 물리적 물류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다양한 니즈를 원스톱으로 해결해 가치를 증대하는 ‘물류 솔루션 회사’로 진화하겠다는 것이 한진이 밝힌 포부입니다.

2021년 한진은 매출 2조5041억원, 영업이익 994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창립 80주년인 2025년까지 이 숫자를 매출 4조5000억원, 영업이익 2000억원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에 1500억원, IT분야에 1500억원, 물류 인프라 부문에 8000억원, 도합 1조1000억원을 투자할 예정입니다.

한진의 거의 유일한 인수합병 사례인 한진드림익스프레스 백암 물류센터 모습. 한진은 매출 목표 달성을 위해 M&A까지 고려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커넥터스

천하대세(天下大勢), 분구필합(分久必合), 합구필분(合久必分). 천하의 대세는 나눠짐이 오래되면 합쳐지고 합쳐짐이 오래되면 또 언젠가 나눠진다.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에 활동한 소설가 나관중의 저서 <삼국지연의>의 서문은 합종연횡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진시황 영정 사후 1000년도 더 지난 나관중 시대에도, 다시 5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한국에서도 합종과 연횡은 한창입니다.

✍🏻 작성자 엄지용 : 커넥터스 운영자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헬개미마켓 주인장. 배민커넥트, 쿠팡이츠 부업 라이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일을 주로 하지만, 다른 일도 곧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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