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급 파괴 부작용, 그 대처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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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급 파괴 부작용, 그 대처법은?

최근 기업들이 잇따라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으로 이어지는 직급 체계 파괴에 나섰습니다. 파괴라는 말에 걸맞게 직급을 파격적으로 줄이거나 호칭 자체를 바꾸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따른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연공제도 개혁 없이 직급만 바뀌어 냉소와 반발을 자아내거나, 승진의 동기부여 효과가 사라지거나, 책임 회피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등의 문제들입니다. 그러한 부작용에 기업은 어떠한 대처법을 마련해야 할까요?

일본에는 회사원 ‘시마 코사쿠島 耕作‘를 주인공으로 무려 40년 가까이 이어오는 만화 시리즈가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주인공인 시마가 승진을 할 때마다 ‘시마 과장’ ‘시마 부장’ ‘시마 상무’ 등으로 제목이 바뀝니다. 이제 70대 중반인 주인공은 사장과 회장을 거쳐 지금은 ‘시마 사외이사’편이 연재 중입니다. 만약 비슷한 시리즈를 한국에서 기획하더라도 이제는 이런 식의 제목을 붙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전통적 직급이 사라지는 직급과 호칭 파괴가 대세가 됐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기업의 직급 또는 호칭 파괴를 외국계 기업, 혹은 스타트업이 주도했지만, 지금은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권까지 퍼지고 있습니다. ‘파괴’라는 말에 어울리게 형태도 다양합니다. 기존의 몇 개 직급을 묶어 선임, 책임, 수석 등의 새로운 직급으로 통합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프로’ ‘리더’ 등 직급으로 보기 어려운 호칭을 도입하기도 합니다. 아예 서로의 영문 이름 또는 별명을 부르거나 이름 뒤에 ‘님’을 붙여 직급 호칭을 갈음하기도 합니다. 이제 같은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도 호칭만 가지고는 서로의 ‘급’을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가 왔습니다.

직급 파괴, 그 목적과 부작용
인사의 근간이 되는 직급체계를 바꾸는 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각종 제도는 물론 구성원 인식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것이 직급과 호칭인 만큼, 당연히 바꾸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때론 역효과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기업의 직급과 호칭에 변화를 추진하는 이유와 그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살펴봅시다.

기업이 직급 파괴에 나서는 이유
많은 기업들이 앞다퉈 직급과 호칭 파괴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직급과 호칭을 단순화해 구성원들이 느끼는 심리적인 위계를 줄이고 자유로운 토론과 의견 제시가 가능한 수평적 조직 문화를 조성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5~6단계 이상의 위계 중심 직급과 호칭 체계가 상하관계를 강조해 소통을 막고 경직된 조직문화를 만들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기존의 호칭이 조직의 실질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도 직급과 호칭을 손보려는 이유의 하나입니다. 팀제가 일반화되면서 부 밑에 몇 개의 과가 있고, 그 조직의 장이 부장과 과장이 되는 이른바 ‘부과제’를 운영하는 조직은 이제 찾아보기 힘듭니다. 조직이 바뀐지 이미 오래인데, 호칭만은 과거의 것을 사용하니 왠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고직급화의 역효과를 완화하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경영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한 제조 대기업의 구성원 중 부장 비율은 2012년 7.2%에서 2020년 16.3%, 2025년에는 23.3%가 될 것으로 예측된 바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고직급화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실무자가 아닌 관리자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막상 일을 수행하는 사람은 줄어들어 조직의 실행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호칭과 직급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실무자라는 인식을 갖게 하기 위해 직급 단계를 축소하고, 호칭을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앞서 설명한 목적 외에 직접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숨겨진 목적도 있습니다. 바로,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입니다. 대부분의 조직이 직급 상승과 보상의 증가가 연계되어 있는 상황에서 고직급화는 곧바로 인건비 부담 증가로 이어집니다. 이와 같은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서도 기업 조직은 직급체계 개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직급 파괴의 부작용
많은 조직들이 다양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호칭과 직급체계를 바꾸고 있지만, 그것을 계기로 획기적인 효과를 거두었다는 기업이나 조직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오히려 남들보다 앞서 직급과 호칭을 바꾸었다가 예측하지 못한 부작용에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한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직급과 호칭의 변화는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어렵습니다. 직급과 호칭 파괴가 성과를 거두지 못하게 만드는 부작용들을 살펴봅시다.

첫 번째로 기존의 연공적인 제도의 개혁과 연계되지 않은 직급과 호칭만의 변화는 구성원의 냉소와 반발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과거의 다단계 직급을 유지하면서 호칭만을 통일하는 것은 진정한 변화가 아닌 보여주기식 조치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은 것입니다. 젊은 구성원들은 겉으로만 변했다는 불만을 토로하고, 상대적으로 고직급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기득권을 빼앗겼다 여기는 모두의 불만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직급과 호칭이 지닌 승진의 동기부여 효과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위계를 중시하는 우리의 조직문화에서 호칭의 상승은 보상만큼이나 대외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직급과 호칭을 없앴을 경우, 기존 고직급자들의 박탈감과 함께 낮은 직급에서는 성장을 동기부여하는 자극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직급과 호칭의 파괴는 책임 회피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연공이 중시되는 조직문화에서는 같은 팀원이더라도 직급이 높은 선배가 더 많은 책임과 업무를 부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직급과 호칭이 사라진 상황에서는 실제 조직 책임자가 아니라면 굳이 더 많은 책임을 지고자 할 유인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직급 파괴를 성공적으로 이끌려면
오랜 기간 조직의 질서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어왔던 직급과 호칭을 부작용 없이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껏 유지해온 직급체계의 토대라 할 수 있는 권위적·연공적인 조직 운영이 미래 조직의 지향점이 될 수 없다면, 어렵다는 이유로 과거의 방식을 지속할 수도 없습니다. 직급과 호칭의 파괴가 소기의 성과로 이어지도록 하기 위해 조직이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들을 알아봅시다.

연공적 인사 체계를 함께 바꿔야
조직이 바꿔야 할 대상은 호칭이나 직급 자체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연공에 기반을 둔 인사체계입니다. 이것을 외면하고 겉으로 드러난 직급과 호칭을 바꾸는 것은 포장을 바꾸면서 내용물까지 바뀌길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해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경우, 30년 이상 근속자의 보상이 1년차 신입사원에 비해 2.95배에 달합니다. 이는 일본의 2.27배보다도 훨씬 큰 것입니다. 이처럼 연공성이 심한 보상 구조는 모든 세대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젊은 구성원들이 보기에 30년차 선배가 객관적으로 신입사원의 3배 이상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이처럼 불공정한 구조는 없습니다. 선배 세대도 불편합니다. 성과와 무관하게 연공에 따라 보상이 올라가는 구조는 스스로 조직에 부담이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형적인 급여 구조를 그대로 둔 채, 호칭만 바꾸면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가능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공허할 수 밖에 없습니다.

버블 경제 붕괴 속에서 연공적 보상의 문제를 우리보다 먼저 깨달은 일본 기업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캐논이나 도요타와 같은 일본 기업들은 10년 이상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정기적 승급을 폐지하고, 연차가 아닌 성과와 역할 중심의 보상을 강화함으로써 연공성을 낮추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리 역시 긴 호흡으로 성과와 역할에 근거한 공정한 보상제도로 탈바꿈 해야 합니다.

모범과 지원을 통한 공감대 형성
한 조직에서 같이 일하지만, 처한 입장이 다른만큼 직급 파괴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는 손해를 보고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직급과 호칭을 바꿔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대부분 공감을 합니다. 그래서 조직은 구성원들의 공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해야 합니다. 이때 일방적인 설명회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경영진의 솔선수범입니다. 많은 경우 사원들의 호칭을 파괴하고 연공에 따른 처우를 줄여가면서 임원의 경우는 과거의 호칭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특권적인 처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어렵습니다. 직급과 호칭의 변화는 임원과 사원을 막론하고 전사적으로 진행할 때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습니다.

또한 아직까지 직급이 중요한 한국 사회의 특성을 고려해 구성원들의 대외활동이 어려움에 처하지 않도록 배려와 지원도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조직 내부적으로는 직급과 호칭을 없애더라도 구성원들이 외부 활동을 할 때 자기소개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대외용 호칭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적 접근이 함께 가야 한다
영국의 BBC는 2019년 특집 기사에서 한국의 ‘꼰대’를 소개하면서 한국의 권위적인 조직문화를 다룬 특집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그때 권위주의의 상징으로 든 사례는 회의가 끝난 후, 이른바 팀의 ‘막내’가 회의록을 정리하거나, 후배가 선배를 위해 식당에서 수저를 깔고 물컵을 채워 놓는 것 등이었습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것들이 타자의 시각에서는 특집 기사가 될 정도로 놀랍게 보였던 것입니다. 저런 모습은 아직도 우리 조직에서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것들을 놓아둔 채로 호칭만 바꾼다고 수평적인 문화가 될 수는 없습니다. 호칭과 직급은 조직문화를 구성하는 아주 작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물론 최근 MZ세대가 부각되면서 많은 조직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소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인 젊은 세대들의 시각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무언가를 들으려는 진심보다는 보여주기식으로 듣는 시늉만을 한다는 비판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소통이 아닌 ‘쇼Show통’은 더 큰 부작용만을 낳을 뿐입니다. 수평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오랜 기간 몸에 배어 있는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특히 상사와 부하 간 의사소통의 법칙 등을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넷플릭스를 봅시다. 이 회사는 공식적으로 구성원들에게 ‘상사를 기쁘게 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사업을 위해서라면 상사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반대할 수 있으며, 가장 나쁜 것은 상사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감추는 것이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직급이 아니라 그와 관계없이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란 뜻입니다.

✍🏻 작성자 강승훈 :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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