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문화를 만들려면 눈에 보이는 것부터 바꿔라

좋은 문화를 만들려면 눈에 보이는 것부터 바꿔라
김태규의 HR 나우

기업 문화가 바뀌기 어려운 이유 :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 외에는 모든 것이 변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라는 유명 노래 가사도 있죠. 모든 것은 변합니다. 그런데 변화시키려고 해도 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기업 조직입니다.

변화에 대한 조직 구성원들의 보편적인 반응은 저항이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의 저항은 회사로 하여금 많은 시간, 자원, 노력을 하게 만들기에 변화를 두려워하는 경영자들도 많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조직 구성원들은 ‘어떠한 형태의 조직변화에도 저항한다’고 합니다.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인간은 비용과 혜택(Cost & Benefit) 분석을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데 불확실성이 높으면 혜택보다는 비용에 더욱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겁니다.(Rousseau & Tijoriwala, 1999)

가시성이 낮을수록 저항은 커진다 : 성공적인 조직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요? 조직을 변화시키는 것은 곧 조직 문화를 바꾸는 것이고 조직 문화는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 가시성의 정도에 따라 조직의 상징, 공유된 행동, 조직의 가치, 공유된 가정과 철학으로 나뉩니다. 가시성이 낮은 문화, 즉 추상적인 개념일수록 구성원들의 저항이 커집니다.

그러므로,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려면 가시성이 큰 부분에서 출발해야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변화가 가시성이 낮은 부분까지 스며들게 하는 거죠.

눈에 보이는 걸 바꾸면 모든 게 바뀐다 : 영국 항공(British Airways)은 프리미엄 서비스로 유명한 회사입니다. 그런데 1970년대 까지만 해도 정 반대였습니다. 영국 항공의 파일럿들은 대부분 군 조종사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란 ‘제 시간에 뜨고, 제 시간에 착륙하는 것’ 뿐이었죠. 시간을 맞추는 것이 서비스의 전부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당시 영국 항공 서비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끔찍하다” 였습니다. 6~70년대를 거치면서 교육과 구조 조정을 통해 조직 문화를 바꾸려 했지만 구성원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말, 영국 항공은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항공사’라는 찬사를 받게 됩니다. 존 킹(John King)이 1981년도에 회장으로 취임하며 생존 계획을 만들고 콜린 마샬(Colin Marshall)을 CEO 로 임명하면서 Putting People First (PPF – 사람 우선 주의) 프로그램을 실시한 것이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전의 시도와는 크게 달랐습니다. 구성원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직접 바꾸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선 직원들을 세계 각지의 최고급 휴양지로 순차적으로 여행을 다녀오게 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생각을 바꿔야 한다든지의 요구사항은 일체 없었습니다. 직원들은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됐죠.

PPF 프로그램을 시행한 지 몇 년이 지나자 서서히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이 서로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구성원간 소통이 활발해졌을 뿐 아니라 ‘영국 항공은 대단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구나’라는 것도 인식하게 됐습니다.

1984년도에는 항공기 도색을, 85년도에는 직원들의 유니폼을 바꿨습니다. 군대와 유사해 보이던 요소들을 눈에 보이는 것부터 고객 친화적으로 바꾼 것입니다. 이런 ‘가시성 높은’ 변화가 쌓일수록 직원들도 자연스레 고객 친화적인 태도와 의식을 갖게 됐습니다. 결국 1987년, 민영화에 성공하며 서비스로 명성 높은 글로벌 항공 회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국내 사례도 있습니다. 제가 한 대형 로펌의 자문을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 로펌의 경영진은 리더와 실무진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것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육, 워크샵, 면담, 참여경영 등 다양한 노력을 해왔죠.

이러한 시도들은 직원들의 가치관과 철학에 변화를 주려는 노력이었습니다. 가시성이 낮은 부분만을 건드리려 했던 거죠. 문제는 예상 외의 요인으로 인해 해결됐습니다. 회사 건물 2층에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고 로펌의 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바쁜데 카페 갈 시간이 어디 있다고’라며 반대하는 임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경영진은 그 카페에 최고 수준의 바리스타를 채용했습니다. 직원들은 최고의 바리스타가 제공하는 음료의 맛을 궁금해하며 카페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음료의 맛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이 카페는 로펌 구성원 모두의 편안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리더와 실무진간의 비공식적 소통이 물꼬를 트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둘 사이의 보이지 않던 두꺼운 벽이 서서히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년 간의 교육으로도 이뤄내지 못한 변화가, 카페라는 공간이 들어오면서 일어난 것입니다. 공간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 심지어 생각의 변화로까지 이어진 겁니다.

요즘은, 특히 젊은 스타트업을 중심으로 사무실 공간 조성에 공을 들이거나 파격적인 복지를 도입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혹자는 “아직 돈도 잘 못 벌면서, 웬 사무실은 이렇게 으리으리해”라며 조소를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요소들이 더 나은 행동과 생각, 나아가 문화를 만들어낸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입니다. 리더십, 조직변화 등을 주로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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