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금리를 쉽게 못 올리는 이유?

일본이 금리를 쉽게 못 올리는 이유?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엔화 폭락

4년새 30% 낮아진 엔화, 전망은?: 코로나 이전에 일본 돈 100엔을 사려면 1160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870원이면 가능합니다. 일본 엔화의 가치가 4년 사이에 약 30%가량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시장에서는 엔화의 가치가 더 하락할지 아니면 이제 반등할 때가 됐는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엔화는 더 추락할까요? 아니면 반등을 시작할까요?

한국 경제에도 영향: 엔화 가치가 어떻게 될지가 중요한 질문인 이유는 우리나라 경제에도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엔화가 계속 하락하면 일본 여행을 떠나는 한국인들에게는 좋겠지만,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는 한국 기업들의 가격 경쟁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엔화가 상승하면 좋을까요? 그것 역시 문제입니다. 저렴한 엔화 이자를 노리고 일본에서 돈을 빌려 해외에 투자하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일본으로 되돌아가면서 우리나라에 투자된 외국인 자금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엔화 가치 하락은 일본의 저금리 정책 영향: 엔화 가치를 전망하려면 그동안 엔화가 왜 계속 떨어졌는지를 알아야 하는데요. 그건 의외로 간단합니다. 일본의 통화당국이 엔화 가치를 일부러 계속 누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엔화 가치를 일부러 누르고 있다기보다는 일본의 금리를 계속 낮게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코로나 이후에 금리를 제로 수준에서 5% 넘는 수준까지 가파르게 올렸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계속 제로금리를 유지하는 중입니다. 그게 엔화 가치가 계속 하락하는 원인입니다.

엔화 가치가 다시 올라가기 시작하려면 일본의 통화 당국이 유지했던 저금리 정책이 바뀌어야 합니다(관련 내용). 그렇다면 일본은행이 내년부터는 과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할까요?

제로금리 유지하는 이유는?: 일본은행의 움직임을 예측하려면 일본은행이 왜 지금까지 제로금리를 계속 유지해 왔는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트라우마’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날씨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무렵, 밖에 외출을 나갔다가 몇 번 계속 감기에 걸린 경험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제 날씨가 충분히 풀렸더라도 외출하기가 두렵겠죠. 일본은행도 경기가 좋아지는 줄 알고 금리를 올렸다가 낭패를 본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나라가 다 금리를 올려도 일본은행은 계속 신중한 모드를 이어가고 있다고 추측합니다.

물론 일본도 경기가 계속 나빴던 건 아닙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수출도 잘되고 물가도 좀 오르면서 경기가 좋았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때도 금리를 선뜻 못 올리고 있었는데 그렇다 보니 요즘처럼 엔화 가치가 하락해서 달러 엔 환율이 120엔대로 치솟기도(엔화 약세) 했습니다. 요즘 달러엔 환율은 150엔까지 올랐으니, 그때보다 더 심한 엔화 약세인 거죠.

미국 통화정책과 엇박자 우려: 그 당시 일본은행은 참다 참다 결국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2006년과 2007년에 한 차례씩 두 번 금리를 올려서 기준금리를 0.5%까지 올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본은행이 이렇게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 시점에 <미국은 금리 인상을 마무리하고 오히려 금리 인하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만약 지금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한다면 지금도 똑같은(미국은 금리 인상을 마무리하고 오히려 금리 인하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상황이 될 겁니다.

당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죠. 미국은 금리 인상을 멈추고 금리 인하 시점을 보고 있는데 일본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니 세계의 자금이 일본으로 몰리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일이 없는 세상 안전한 안전자산으로 엔화가 부각되면서 달러엔 환율은 80엔대까지 하락했습니다. 이른바 엔화 초강세 현상이 빚어진 거죠.

세계 경기는 그 이후로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거치며 하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엔화 초강세로 수출기업들이 애를 먹고 투자와 고용이 훼손되면서 다시 경제가 추락했죠.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이 일본을 추월하면서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것은 이 무렵입니다.

과연 일본의 선택은?: 일본은행이 왜 금리 인상을 주저하고 있는지 좀 이해가 가는 대목입니다. 문제는 일본의 이런 상황이 앞으로도 일본이 계속 금리를 올리지 못하게 될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 경기가 좋을 때는 주저하다가 못 올리고 더 이상 참기 어려운 뜨거운 상태가 오면 그때부터는 다른 나라 경기가 식어가기 시작해서 역시 금리를 올리기 어렵게 됩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일본 경제가 노쇠했기 때문이고, 자신감을 잃은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세계 경기가 좋아도 그 온기가 뒤늦게 퍼지기 시작하니 통화정책은 항상 앞서 설명해 드린 고민이 생깁니다. 과연 일본은 내년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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