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3차 오일쇼크는 없다

💥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3차 오일쇼크는 없다
이효석의 주식으로 보는 세상

업라이즈 애널리스트이며, 유튜브 이효석아카데미를 운영합니다.

하마스의 이스라엘 침공.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하는 개념은 ‘이스라엘의 트릴레마’라는 개념입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는 과정에서 당시 지도자들은 새 나라의 3가지 정체성을 1️⃣유대 국가 2️⃣민주 국가 3️⃣고토(약속의 땅) 회복으로 제시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정체성들을 모두 유지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이게 이스라엘의 트릴레마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셋 중 하나는 양보해야 한다는 건데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게 유대 국가겠죠. 그러니 남은 방법은 2가지입니다. 민주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고토 회복을 양보하거나, 고토 회복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죠.

첫번째 경우를 따져볼까요. 고토 회복을 양보한다는 의미는 팔레스타인 독립 인정을 의미합니다. 국제 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죠. 실제로 1995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현실화되는 듯도 했죠. 하지만 이 협정에서 추구했던 ‘두 국가 해법(Two state solution)’은 이를 추진했던 라빈 총리가 극우 청년에게 암살 당하면서 동력을 잃었습니다.

이후 총리에 등극한 사람이 바로 네타냐후입니다. 당시 40대 젊은 정치인으로 이스라엘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됐는데요. 그는 지금도 총리 자리에 있습니다. 1995년부터 30년 가까운 기간 3차례에 걸쳐 집권을 하며 이스라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습니다.

네타냐후에겐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공존해왔지만, 작년 12월 3차 집권이 시작된 이후에는 부정적 평가가 압도적입니다. 이유는 그가 저지른 부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가 추진한 사법권 개혁은 사실상 ‘사법부 무력화’와 ‘민주주의의 명백한 후퇴’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이스라엘의 트릴레마 관점에서 보면, 네타냐후의 정책은 민주주의를 양보하더라도 고토 회복은 포기 못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입장에선 네타냐후의 노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거죠.

최근 이코노미스트지에선 이번 전쟁 때문에 네타냐후가 추진해왔던 팔레스타인 고립 정책은 실패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왜냐면 팔레스타인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더라도 이스라엘을 안전하게 지켜줄 거라 믿었던 무기 체계가 제 구실을 하지 못했고, 미국과 함께 추진했던 사우디와의 국교 정상화도 사실상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인질들에게 했던 비인륜적 행위들은 네타냐후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 키우는 효과를 만들어 줬습니다. 이스라엘의 트릴레마 관점에서 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전쟁으로 고토 회복을 민주주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스라엘 극우 세력들의 영향력이 더 커질 듯 합니다. 결국 중동 갈등이 쉽게 해소되긴 어려울 거란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유가는 어떻게 될까요? 정말 1973년 오일 쇼크를 재현할까요? 모든 전쟁은 인플레를 만드는 요인입니다. 공장이 파괴되면서 물건을 만들지 못하기 때문에도 그렇고, 새롭게 재건하는 과정에서도 인력과 물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산유국이 즐비한 중동에서 생긴 갈등이기 때문에 유가는 기본적으로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최근 일각에서 언급되는 1973년 오일 쇼크와 같은 일이 현실화되는 건 어려운 이유도 알아야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한 마디로 “1973년이랑 지금은 너무 다르거든!”인데요. 우선 1973년처럼 아랍 국가들이 하나로 똘똘 뭉쳐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상황이 아닙니다. 게다가 당시 설립된 OPEC에선 공식적인 석유 가격을 무려 70%나 인상했었지만, 지금 OPEC+는 이미 감산 중인 상황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가격이 그 정도로 인상된다면 증산 수요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큽니다.

둘째, 미국의 상황도 1970년대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당시 미국은 급증하는 소비에 비해 생산은 오히려 줄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미국의 소비를 충당하고 남을 정도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유가의 지속적인 상승을 위해선 공급의 문제뿐만 아니라, 수요 공급의 밸런스가 장기적으로 맞지 않아야 된다는 조건도 있습니다.

셋째, 미국에는 전략비축유가 많습니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 이래 급등하는 유가를 막기 위해서 전략비축유를 너무 많이 방출해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어서, 미국의 전략비축유가 1973년 오일 쇼크가 재현되지 않게 하는 이유란 것이 아이러니하실 텐데요. 미국의 전략비축유란 개념 자체가 1973년 오일 쇼크 이후였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미국이 90일 동안 수입할 수 있는 규모 이상의 전략비축유를 가져갈 거란 기준이 있다는 건데요. 이를 기준으로 보면 여전히 미국은 충분한 전략비축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은 그리 많은 원유를 수입할 필요가 없는 나라가 됐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금융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한 가장 중요한 변수가 유가입니다. 유가는 결국 인플레를 자극할 수 있고, 인플레를 걱정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다시 연준의 입을 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일 쇼크 수준의 유가 급등이 없다면, 다시 전쟁 이전에 우리가 걱정했던 주제였던 금리를 봐야할 겁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전쟁 이후, 사람들은 안전 자산을 찾기 시작했고, 미국 국채가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선택될 경우, 금융 시장이 크게 걱정해왔던 금리가 안정화될 수도 있을 겁니다.

세계 최고의 화약고에서 전쟁이 시작되면서 금융 시장의 긴장감도 크게 높아지는 상황입니다. 다만, 여러 시나리오를 세우고 대응한다면, 막연한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