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이 제로 금리를 깰 수 있다고?

🤔 일본이 제로 금리를 깰 수 있다고?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세계 경제를 뒤집은 일본 은행의 발표 : 지난 금요일 아침 일본 은행은 이런 발표를 내놨습니다. “10년물 국채 금리의 변동 폭 상한을 0.5%로 유지하겠지만, 0.5%라는 변동폭은 엄격한 제한은 아니며 앞으로 더 유연성을 가질 것.”(🔗관련 기사)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이 난해한 발언 때문에 전세계 금융 시장에 큰 소동이 있었습니다(🔗관련 기사). 같은 날(미국 시각으로는 목요일) 미국의 10년물 금리는 4% 위로 뛰어오르고 주가는 순항하다가 갑자기 꺾였습니다.

일본 은행의 이번 발표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일본도 이제 금리를 올릴지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일본 은행은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시장은 그렇게 해석했습니다.) 참고로 일본은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지금껏 세상에서 유일하게 제로 금리를 유지 중인 나라입니다. 일본에 지금 어떤 변화가 생기고 있는 걸까요.

2010~2022년 일본의 경제 성장률/세계은행

일본은 15년째 제로 금리입니다. 그 이유는 경제 성장률이 계속 변변치 않았고, 물가도 2%에 계속 못 미쳤기 때문입니다.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추는 건 자금 조달 비용을 줄여 투자와 소비를 늘려보자는 시도입니다. 그런데 이 정책엔 구멍이 하나 있습니다. 제로 금리라는 건 현재 그렇다는 것이지 다음달도, 내년도 그러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시장 참가자들은 지금 당장은 제로 금리지만 앞으로 금리가 오를 거라 걱정하고 투자와 소비에 주저하기도 합니다.

중앙은행이 ‘장기 금리’를 고민하는 이유 : 실제로 만약 금리가 앞으로 오를 것이라고 시장 참가자들이 판단하기 시작하면 3년물 5년물 10년물 시중 금리가 높게 오르기도 합니다. 10년물 금리는 지금부터 앞으로 10년 동안 고정 금리로 받게 되는 이자입니다. 때문에 시장 참가자들이 ‘지금은 제로 금리지만 10년 후 금리가 5%쯤 될 것’이라고 예상할 경우, 이들은 앞으로 10년간 매년 연 3%의 이자는 챙겨둬야 한다는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10년물 금리가 3% 언저리까지 뛰어오르게 되는 겁니다.

중앙은행의 고민은 여기에 있습니다. 시장 참가자들에게 금리가 낮으니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하라는 권유를 하기 위해 금리를 제로 수준까지 낮췄는데도, 시장에서는 금리가 곧 오를까 걱정하면서 장기물 금리가 올라갑니다. 그럼 장기물 금리도 아래로 끌어 내려야 합니다.

미국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적 완화 정책을 씁니다. 자국의 장기 금리를 아래로 끌어내리기 위해 연준이 시중에 돌아다니는 장기물 국채를 직접 사들이는 것이죠. 그리고 일본은 이것보다 한술 더 뜬 정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수익률 통제 정책(YCC)’이라는 건데 2013년부터 10년째 쓰고 있습니다.

이 뉴스(🔗관련 기사)는 2013년 일본 중앙은행이 YCC를 시작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장이 깜짝 놀랐다는 내용입니다.

일본의 YCC는 장기 금리를 ‘제로 금리까지’ 내리는 정책입니다. 미국의 양적 완화가 장기 금리(10년물 국채 금리)를 ‘그냥 어쨌든 최선을 다해’ 내려 보려는 정책이라면, YCC는 장기 금리(10년물 국채 금리)를 아예 제로로 끌어내리는 정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일본 은행이 매일 0% 금리로 시장 참가자들이 원하는 만큼 무제한으로 돈을 계속 (그것도 10년씩 장기로) 빌려주는 겁니다.

일본의 장기 금리를 낮춰온 메커니즘 : 구체적으로는 이런 방식입니다. 예를 들어 10년물 국채 금리가 0%라면 10년 후 1만원을 받을 수 있는 국채는 지금도 1만원에 거래됩니다. 은행에 1만원을 예금해도 10년 후 1만원을 돌려받으니 10년 후 1만원을 주는 국채도 1만원에 사는 투자자가 많습니다. 그러니 10년 후 1만원을 돌려주겠다며 돈을 빌리러 다니는 기업의 회사채(액면가 1만원)도 9900원쯤에는 거래됩니다. 그걸 사면 10년간 그래도 100원은 벌 수 있으니까요. 그 기업의 입장에서는 10년간 100원의 이자만 내고 9900원을 빌리는 셈입니다. (이게 저금리의 효과입니다.)

그런데 10년물 국채 금리가 1%로 오르면 10년 후 1만원을 받을 수 있도록 정해진 액면가 1만원짜리 국채는 9000원쯤에 거래되기 시작합니다. 1만원의 10년치 이자가 약 1000원이니까 안전한 시중 은행에 가서 9000원을 10년간 예금하면 10년 후에는 1만원이 됩니다. 때문에 시장 참가자들은 10년 후 1만원을 준다는 10년물 국채를 9000원보다 더 높은 금액으로 사지는 않습니다. 그럼 10년 후 1만원으로 돌려줄 테니 당장 돈을 빌려달라는 회사채는 국채보다 신용이 낮으니 더 낮은 가격, 한 8000원쯤에 팔리겠죠? 이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은 8000원을 빌리고 10년간 2000원의 이자를 내는 셈이 됩니다. 그렇게 시중 이자율은 올라갑니다.

중앙은행이 기준 금리를 제로 금리로 낮춰도 시중에서는 이런 일이 늘 벌어집니다. 제로 금리 정책의 구멍입니다. 단기 금리는 제로지만 장기 금리는 시장 참가자들의 향후 금리 예상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그런데 일본 은행은 매일 시중에 돌아다니는 1만원짜리 액면가의 10년물 국채를 1만원에 사들입니다. 그러니 시중 금리가 좀 올라서 10년물 국채가 9000원에 팔리려고 하다가도 당장 내일 아침에 일본 은행 창구로 가면 1만원에 사주니 9000원에 거래될 것 같던 그 국채를 9999원에 사겠다는 투자자가 나옵니다. 그래서 일본 은행이 국채를 계속 1만원에 사들이는 한 10년물 국채는 시장에서 항상 1만원에 거래되고, 일본의 10년물 국채 수익률은 늘 0%로 유지됩니다. 이게 일본 은행의 수익률 통제 정책(YCC)입니다.

그런데 일본 은행은 그동안 ‘우리가 항상 0% 금리로 국채를 1만원에 사들일 수는 없고 상황을 봐서 그때그때 0.5%까지는 금리가 움직일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건 일본 은행이 어떤 날은 9950원쯤에 사들이기도 하고 어느날은 1만50원에 사들이기도 한다는 뜻이고 10년물 금리가 0.5%쯤까지 올라가는 건 허용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지난주 금요일 일본 은행이 발표한 내용은 그 ‘0.5%’를 0.6%나 0.7%, 때로는 1.0%까지도 늘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일본의 10년물 국채 금리도 이제 1%까지는 오를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래서 일본 은행이 10년 동안 유지해온 수익률 통제 정책의 변화는 ‘일본도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일본 은행은 그 충격을 줄이기 위해 내년과 내후년의 물가는 올해보다 내려갈 것으로 예측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금리 인상이 당장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우회적으로 던졌습니다. 금리를 올릴 것 같기도 하지만, 금리를 올리지 않을 이유도 충분한 상황을 만든 것입니다. 시장 참가자들은 일본 은행의 내심이 어디에 있는지 더욱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그런 시장의 의심이 커질수록 일본의 시중 금리(10년물 국채 금리)가 1%에 근접하게 오르는 일이 앞으로 자주 생길 수도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