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의 마음을 움직이는 ‘언어 디자인’?

📝 직원의 마음을 움직이는 ‘언어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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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디자인’이란 말을 아시나요? 적확한 언어를 벼리고 벼린 다음 말하고 싶은 의지나 의도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심금을 울리는 문장으로 건축하는 과정을 말하는데요. 언어 디자인을 거치면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 같은 말이지만 전혀 다른 가치가 창조됩니다. 오늘은 언어 디자인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소개합니다.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 건축술

한 회사가 오랜 고심 끝에 주 5일 근무제를 파기하고 새로운 근무 형태를 도입했습니다. 경영층에서 결정한 근무 형태는 금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다음 날 직원들에게 “주 4.5일 근무제 전격 실시”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직원들의 반응은 생각만큼 뜨겁지 않았습니다. 경영층은 외부 자문을 얻어 다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지시 같은 계몽 형태의 메시지를  “회사는 여러분에게 금요일 오후를 선물로 주려고 합니다”라는 감성적인 메시지로 디자인했죠.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같은 방침이라도 어떤 언어의 옷을 입히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걸 경험한 겁니다. 이처럼 언어 디자인은 메시지 수신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 건축술입니다.  

언어의 틈새 메우기 

소설가 배수아는 저서 ‘당나귀들’에서 언어 디자인을 ‘언어의 틈새’를 메워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이라고 표현합니다. 언어의 틈새는 매일 만나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배운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순간을 말합니다. 언어의 틈새는 사물이나 현상에 담긴 의도를 배운 언어로 담아내지 못할 때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이 틈새를 메우기 위해 어제와 다른 언어를 동원해 사물이나 현상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언어는 그 과정을 통해 틈새를 메우는 새로운 매개체로 부각됩니다.

언어 디자인은 언어의 틈새를 메우기 위한 분투이자 애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배수아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언어 디자인은 언어를 통해 표현하고 싶은 욕망과 사물이 말하고 싶은 의도 사이의 간극을 줄이려는 영원한 투쟁. 즉 ‘언어와 사물이 그대로 등가가 되는 세상’을 향해 끝이 없는 싸움을 벌이는 과정입니다.

깨달음을 던져주는 문장 건축 과정 

언어 디자인을 통한 생각지 못한 깨달음은 전두엽을 자극할 정도로 폐부를 찌르고 살갗을 파고듭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 온 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우치다 타츠루의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에 나오는 말인데요. 무지를 나태의 산물로 생각했던 범상한 사람들의 생각에 일격을 가하는 주장이죠. 무지라는 개념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 근면이라는 개념과 마주치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은 겁니다. 바로 이런 경험이 언어 디자인의 성취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적인 문장을 시적 언어로 디자인하라

언어 디자인은 사실적이고 논리적인 문장을 감성적이고 시적인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기도 한데요. 미국의 마케팅 에이전시인 퍼플 피더가 만든 ‘단어의 위력’이라는 영상(🔗관련 내용)을 보면 언어를 디자인한다는 게 무슨 의미이고 얼마나 위력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한 남자가 “저는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I’m blind. Please help!)”라는 글을 써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보려 합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만이 동전을 놓고 갈 뿐이었습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한 여성이 펜을 들고 문구를 다시 씁니다. “참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하지만 전 볼 수 없네요(It’s a beautiful day and I can’t see it)” 그러자 길거리를 지나던 많은 사람들이 남자 앞에 동전을 두고 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뒤 남자의 앞에 동전이 수북히 쌓입니다. 오직 문장 하나가 만든 결실이었습니다.

시인의 언어로부터 발견하는 통찰

언어를 디자인하려는 노력은 주로 시인들의 언어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인들은 기존 언어 사용 문법을 의도적으로 파기하기도 하는데요. 그들이 사용하는 시적 언어는 평범해 보이지만 견고하게 자리잡은 통념이나 고정관념을 부수기도 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그 사람의 심장이 올라와 있다.” 박용하 시인 ‘심장이 올라와 있다’ 시의 일부입니다. 그는 심장과 눈을 연결시켜 ‘사람의 눈을 보면 심장 뛰는 모습을 알 수 있다’는 자신만의 통찰력을 담았습니다. 심장에 담긴 의미는 볼 수 없지만 심장 박동으로 전해지는 감정의 변화는 그 사람의 눈에 고스란히 담긴다고 생각한 시인의 따스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시인은 물아일체되어 사물의 욕망을 귀담아 듣고 그를 언어에 담아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언어의 연금술사’입니다. 틀에 박힌 언어를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가장 먼저 시인의 언어를 접해보길 권합니다.

언어를 디자인하면 없었던 생각도 새롭게 꿈틀거리고, 보이지 않았던 현상도 색다르게 상상하게 됩니다. 하고 싶지 않았던 행동도 어떤 언어를 접하느냐에 따라 갑자기 추진력을 받으면서 과감하게 실천하게 되기도 하고요. 방관하던 사람도 주먹을 쥐고 심장이 뛰는 삶을 살게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언어 디자인의 위력입니다.

​언어는 문맥을 타고 흐르는 깨달음의 보고이자 생각의 그릇입니다. 심오하지만 단순한, 단순하지만 깊이 있는 인생의 지혜는 적확한 개념으로 이루어진 문장 건축 디자인에 달려 있습니다. ‘언어를 디자인’하는 사람이 ‘미래를 디자인’하는 사람입니다. 

✍ 유영만 : 한양대학교 교육공학과 교수 / 지식생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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