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이 워라벨에 미치는 영향

📧 이메일이 워라벨에 미치는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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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매일 몇 통의 이메일을 주고 받으시나요? 미국 직장인들은 하루 평균 100통 이상의 메일을 쓴다고 하는데요. 업무 시간의 약 28%가 할애된다고 합니다. 쉴 새 없이 도착하는 이메일을 모니터하고 분류하고 회신하는 과정은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닙니다. 특히 업무 시간 외에 이뤄지는 이메일 소통은 극도의 피로감을 일으켜 직장인의 워라밸을 무너뜨립니다. 직장인 1515명이 참여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주말이나 저녁 늦은 시간 등 정규 업무 시간 외에 주고받는 이메일이 51%에 달한다고 합니다. 

업무 시간이 아니므로 즉시 회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76%가 1시간 내에, 32%는 15분 내에 답했다고 합니다. 경계이론과 자아중심주의에 따르면 이메일 수신자는 발신자가 기대하는 회신 속도를 과대평가하는 편향(Email Urgency Bias, EUB)이 있습니다. 그래서 메일을 신속히 읽고 답해야 한다는 과도한 강박감에 시달리게 되는 거죠. 영국 런던경영대 연구진은 EUB가 직장인의 ‘항시대기상태’를 조장하고 행복 지수를 낮추는 원인임을 밝혀내고 이를 개선할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메일과 웰빙의 관계, 어떻게 연구했을까?

연구진은 온라인 학술 연구 크라우드소싱 플랫폼인 ‘프롤리픽아카데믹’을 통해 설문에 참여할 직장인을 모집했습니다. 스페인과 미국의 직장인 3308명이 모였습니다. 이들은 수신자와 발신자로 나뉘어 메일을 주고받는 직장 동료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메일은 긴급한 회신을 요구하는 것과 급하지 않은 것으로 분류했고, 참여자들은 긴급 여부를 알고 실험에 임했습니다.

주관적 웰빙은 4가지 방식으로 측정했습니다.

1️⃣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 : 0∼10 중 선택. 0=만족도 제로, 10=최고 만족도
2️⃣ 지난 4주를 돌이켜 볼 때 느낀 감정 : 긍정/부정 중 선택
3️⃣ 업무로 인한 극도의 피로감을 겪은 빈도 : 1∼5 중 선택. 1=극히 적음, 5=매우 자주 또는 항상
4️⃣ 워라밸 만족도 : 1∼7 중 선택. 1=강한 부정, 7=강한 긍정

매개변인으로 쓰인 스트레스는 “얼마나 자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1∼5의 척도로 측정했습니다. 과중하다는 생각이 거의 들지 않았다면 1, 매우 자주 또는 항상 느낀다면 5를 선택하는 식입니다.

수신자 관점에서 이메일 예상 회신 속도는 “발신자가 당신이 얼마나 빨리 회신하길 바라는가?” “발신자가 당신으로부터 즉각적인 회신을 받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두 가지 질문으로 측정했습니다. 참여자들은 1∼7의 척도(1=전혀 아님, 7=매우)로 질문에 답했습니다.

연구 결과는?

분석 결과 긴급한 회신이 필요치 않은 이메일을 받았을 때 수신자는 발신자가 기대하는 회신 속도보다 평균 1.4배 더 빠르게 회신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발신자가 실제로 기대하는 회신 속도가 1시간일 때 수신자는 발신자가 약 43분(60÷1.4) 안에 답해주기를 기대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실제로는 17분이나 여유가 있는데도 말이죠. EUB가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긴급한 회신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받았을 땐 더 심각한 EUB가 관찰됐습니다. 수신자의 예상 회신 속도는 비(非)긴급 메일에 비해 약 1.5배나 빨랐습니다. 즉, 긴급 이메일 발신자의 기대 회신 속도가 1시간일 때 수신자의 예상 회신 속도는 29분(=43÷1.5)이라는 뜻입니다. 

수신자의 예상 회신 속도가 빠를수록 스트레스와 피로감은 높아졌습니다. 역으로 워라밸과 전반적인 삶에 대한 만족도는 하향 곡선을 그렸고요. 긴급 여부에 관계없이 이메일을 받았을 때 수신자가 느끼는 강박감은 상당한 듯합니다.

업무 시간과 비업무 시간 간 EUB의 차이도 분명했습니다. 업무 시간에 주고받은 이메일에 대한 수신자 예상 회신 속도는 비업무 시간의 예상 회신 속도보다 약 1.4배가 빨랐습니다. 역시 업무시간에 받은 이메일의 긴급성이 더 커 보이는가 봅니다.

이메일 스트레스 줄이려면?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은 사용자에게 더 많은 통제력과 자율성을 부여하는 문명의 이기가 돼야 합니다. ‘항시대기상태’로 수신자를 강박감에 시달리게 하는 구속의 수단이 되어선 곤란합니다. 다행히 강박의 근본 원인인 EUB는 발신자의 간단한 넛지 메모로 쉽게 제거될 수 있습니다. 기대하는 회신 속도를 분명히 언급하면 수신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건데요.

예를 들어 “긴급한 회신이 필요한 이메일이 아니니 시간 날 때 회신 부탁합니다”라는 짧지만 명확한 넛지 문구를 추가하는 겁니다. 실험에서도 이 방식을 도입하자 수신자와 발신자 간 회신 속도 기대치의 격차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스트레스는 줄고 행복도가 증가하는 긍정적 효과도 뒤따랐고요.

물론 수신자 스스로도 예상 회신 속도에 대한 강박감을 줄이려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바로 회신하지 않아도 괜찮아요”라는 넛지 이메일을 하루 한 통 자신에게 보내는 건 어떨까요.

✍ 곽승욱 :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테네시대에서 재무관리 전공으로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행동재무학, 경제학, 기업가치평가, 투자, 금융시장과 규제 등을 주로 연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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