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상담소] 상사의 가스라이팅, 무시해도 될까요?

[직장인 상담소] 상사의 가스라이팅, 무시해도 될까요?

직장에서 가스라이팅 하는 모습

힘들지 않은 척 ‘정신 승리’가 요구되는 회사 생활. 여러분들의 직장 내 자신감 회복을 위해 DBR 마음 전문가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처방’해드립니다.

📩 중견기업 마케팅팀 김 대리(32)의 고민은?

“팀원들 모두 김 대리를 보면 답답하대.”

팀을 옮기고 얼마 안돼 직속 상사인 박 과장님에게 들은 말입니다. 저는 뭐든 꼼꼼하게 더블체크하고 넘어가야 안심이 되는 사람입니다. 철저한 삶의 태도를 지키면서도 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새벽 출근, 야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직속 상사는 ‘느리다’ ‘고지식하다’는 피드백만 반복했고 칭찬 한마디 해주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보는 사람에 따라선 답답하게 느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아이디어 덕에 팀이 칭찬을 받았을 때도, 박 과장님이 시킨 일을 완벽히 수행해 위신을 살려드렸던 순간에도 칭찬 대신 침묵. 그러다 다음 날엔 “그런데 말야 김 대리는 일하는 스타일은 고지식해”라고 하시더군요.

이런 날이 6개월 가량 지속되다 보니 ‘아, 내가 정말 일을 잘 못하나 보다’ ‘이 정도면 내 기준에서도 최선을 다한 건데 뭐가 잘못인 거지? 난 정말 이 팀엔 잘 안 맞는 사람인가 봐’라고 자책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가 기여하는 몫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직속 상사는 결과와 상관없이 일하는 방식이나 태도에 문제가 있다는 식이니 억울하기도 하고, 자책감도 커져 밤잠을 설칩니다.

특히 박 과장님뿐 아니라 팀 전체가 저를 부정적으로 느끼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을 땐 마치 왕따를 당하는 것 같은 고립감까지 느꼈습니다. 저는 아침잠, 밤잠 줄여가며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부정적인 평판을 만회하려고 했습니다. 자괴감은 커지는데 업무 강도까지 세지니 스트레스 없이 하루를 끝내는 날이 드물 정도가 됐습니다.

얼마 전 연말 송년회 겸 팀 전체 회식이 있었습니다. 함께 대화를 나누다 팀장님이 “김 대리는 어쩜 그렇게 일을 빠리빠릿하게 잘해? 안 힘들어?”라고 여쭈셨습니다. 비꼬는 게 아니었습니다. 팀장님은 진심으로 제가 일을 빨리 끝내기 위해 과로하는 게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지금도 잘하고 있다며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말씀해주기까지 했습니다. 회식이 끝나고 귀가할 무렵, 팀 내 다른 과장님들도 과로하지 말라며 말씀해줬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다른 팀에서 일하는 동기로부터 우리 팀장님이 “젊은 사람 중에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친구는 처음 봤다”며 저를 극찬하셨다는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머리가 띵해졌습니다. 혹시 저를 답답하게 본 것이 박 과장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의심이 됐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인정해주고 있는데 혼자만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라고 거짓말한 것은 아닌지 하고요. 박 과장님 본인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챘는지 다음 날 먼저 제 자리에 와서 회사 내에 몇 명 없는 대학 동문이라 더 챙겨주고 싶어 쓴소리를 하는 거라고 해명했습니다. 억울하고 화가 났습니다. 이후 박 과장님이 비슷한 피드백을 던지면 싫은 티도 몇 번 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내 말을 잘 들은 덕에 팀장님한테도 인정받은 것”이라며 점점 더욱 많은 일, 더 빠른 처리를 요구했습니다.

요즘 저는 반쯤 포기한 상태입니다. 박 과장님이 무슨 요구를 해도 ‘넵봇(넵+로봇)’처럼 무성의하게 답하고 최대한 제 페이스대로 일하려 합니다. 일이 많은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지만 이런 상사와 함께 일해서는 보람을 찾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제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박 과장님은 저를 안 좋게 보는 걸까요.

😰 김 대리님은 지금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어요

사회에서 단체생활을 하는 많은 직장인은 관계 속에서 성취를 찾습니다. 회사 내에서 칭찬을 받는 게 곧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나를 답답해한다는 피드백은 견디기 힘든 상처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선 답답하게 느낄 수 있구나’라고 말씀하신 대목에 시선이 갔습니다. 상사의 피드백에 대한 감정을 털어내지 못하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애쓰며 더 열심히 해 성과를 높이려는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다만 자신에게 엄격해지기 전에 내가 기분이 상했다는 걸 완전히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화도 나고 상처도 받았으며 너무 억울하다고요. 그리고 자신에게 말해주세요. 결과를 떠나 그동안 꼼꼼하고 성실하게 일해왔다는 걸 사람들은 몰라줘도 적어도 나는 안다고, 고생했다고요. 

이제 자신에 대한 엄격함을 내려놓고 피드백으로부터 한발 물러서서 상황을 바라보세요. 모두가 당신을 답답하게 생각한다는 말은 김 대리님의 일부 모습만 보고 꺼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도 없고, 모두에게 좋은 말을 들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중요한 건 칭찬이든 걱정이든, 긍정적인 피드백이든 부정적인 피드백이든 모든 말은 한순간에 스쳐 지나가는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연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본인이 일을 더 꼼꼼하게 하는 게 맞는 해결책인지 더 생각해보세요. 답답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잠을 줄여가며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방법은 처음에는 통할지 모르지만 결국 임시방편에 불과합니다. 자신을 혹사시키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면 업무는 물론 일상생활도 점점 지치게 될 겁니다. 김 대리님은 한마디의 피드백에 매달려서 내가 더 잘하고, 내가 더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상황을 무마하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정말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이 능사일까요?

상사는 그동안 김 대리님을 가스라이팅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이득을 위해 지속적인 거짓말로 김 과장님을 이용한 것 같은데요.

가스라이팅의 개념을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가스라이팅은 1944년 개봉한 미국의 스릴러 영화 ‘가스등’에서 유래했습니다. 영화에서 아내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한 남편은 멀쩡한 아내를 문제 있는 사람으로 만들며 정신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가스등을 일부러 희미하게 한 뒤 아내가 어둡다고 할 때면 “당신이 잘못 봤다”라며 화를 내면서요. 아내는 점점 자책하게 되죠. 이처럼 가해자가 모든 상황을 조작하고 상대를 다루는 걸 가스라이팅이라고 합니다.

가스라이팅 진단 방법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상대의 방식대로 일이 진행된다 : 김 대리님 역시 상사의 요구대로 더 많은 일을 빠르게 수행했습니다.

2️⃣ 내가 잘못한 일이 없는지 스스로 점검하게 된다 : 김 대리님도 상사의 의견에 일단 자신부터 탓하며 일에 열중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죠. 실제 가스라이팅 상황에서는 가해자의 의견에 동조하기 쉽습니다. 즉, 상사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확인하기 전에 그 생각에 동조해 자신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하고 행동하는 방식으로 가스라이팅이 된 셈입니다. 

3️⃣ 상대에게 문제가 내 탓이라는 말을 듣는다 : 상사는 회식에서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동문이라 챙겨주려고 했던 것이다”라는 말로 김 대리님이 더 자책하게 만들었습니다. 가스라이팅의 가장 큰 문제는 소속감과 친밀감 속에서 교묘하게 가해가 이뤄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피해자가 스스로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가스라이팅은 특히 친밀한 관계라도 둘이 동등하지 않고 한쪽이 지배적인 입장에 있을 때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연인이나 부부 관계뿐 아니라 당연히 회사 내에 ‘상사-부하 직원’의 권력 관계에서도 일어나기 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 당신은 이미 유능한 사람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우선 상사의 압박과 가스라이팅은 곧 김 대리님이 그만큼 유능하다는 반증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내가 더 잘해야 인정받는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이미 자신이 유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또한 김 대리님은 스스로 무슨 잘못을 했는지 알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서 잘못을 찾는 수동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보세요. 그리고 팀 회식 이후로 상사에게 싫은 티를 냈다고 하셨지만 이제 좀 더 정확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해야 할 때입니다. 아마 상사도 당신의 기분이 상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죠. 하지만 ‘모범생’ 성향의 당신이 결국은 자신의 말을 따를 것이라는 것을 알고 계속 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김 대리님이 좀 더 행복하게 직장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현재 상황에서 취해야 할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우선 당신이 이 상황의 피해자라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상사는 김 대리님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자신만의 생각이 아닌 팀원 전체의 의견이라는 식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혼자 끙끙 앓기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봐줄 수 있는 주변인에게 사실을 알리는 것이 좋습니다. 타인의 객관적인 의견을 꼭 들어보며 이 평판을 직접 검증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회사 내에서 같은 편을 만들어야 합니다. 단 한 명이라도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를 만들어 두세요. ‘진실’을 마주하기 힘들어 소심하게 혼자 어려움을 감내하는 태도를 견지했기에 폭발 직전의 상황까지 온 것입니다. 김 대리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팀장님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팀 내 인간관계를 조율하는 것 역시 팀장이 해야 할 일이고요. 

다만 처음부터 폭로하듯 지금까지의 마음고생을 밝히면 오히려 직속 상사를 음해한다는 오해를 줄 수 있을지 모릅니다. 따라서 커피 타임이나 정기 미팅 등을 통해 친밀감을 높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친밀감이 형성됐다면 팀장님께 공식적으로 1대1 미팅을 요청해보십시오. 이때 감정보다는 이성을 앞세우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즉 ‘이런 점 때문에 마음이 괴롭다’기보다는 ‘이런 점 때문에 업무에 방해가 된다’고 말하는 것이 이 문제가 개인 간의 갈등이 아닌 업무의 연장선상에서 의미 있는 문제 제기임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사내에서 불필요한 감정노동을 유발하는 활동을 할 경우 가해자가 징계 등 처벌을 받을 수 있게 된 시대인 만큼 회사를 통해 공식적인 항의 절차를 거쳐야 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한 상사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메일이나 메신저처럼 기록이 남아 증거가 될 수 있는 형태로 진행하시길 권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 노력으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회사를 옮기는 것도 감내해야 할지 모릅니다. 이 회사에서 자기 의견을 제대로 내지 못한 채 계속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게 행복한 일일까요. 부서를 옮기는 게 비교적 자유로운 회사라면 팀을 옮기는 것도 방법이겠죠. 입을 닫고 어려움을 고스란히 감내하는 방식은 최선의 선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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