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터스] 쿠팡의 PB 밀어주기 논란을 바라보며

쿠팡의 PB 밀어주기 논란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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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의 최근 분위기는 많이 슬픕니다. 올해 쿠팡은 주요 경영 아젠다 중 하나로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를 설정하고, 생태계 이해관계자와의 ‘상생’을 적극 강조하고 있습니다. 강한승 쿠팡 대표가 나서 “소상공인과의 상생은 우리 사업에 있어 앞으로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이야기할 정도로요. 쿠팡이 언론에 배포하는 홍보 자료도 거진 생태계와의 ‘상생’에 맞춰져 있음은 물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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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쿠팡의 이런 대외 메시지와는 반하는 이슈가 최근 연이어 터지고 있습니다. 시작은 조선일보가 쏘아 올렸습니다. 조선일보가 제기한 이슈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첫 번째는 ‘쿠팡 PB(Private Brand) 제품의 상당수는 카피 제품’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쿠팡 직원들이 PB 상품의 리뷰를 작성했다’는 것입니다. 리뷰가 상품 노출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니 만큼, 이를 쿠팡 PB 상품 밀어주기로 볼 수 있다고 조선일보는 해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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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받은 수많은 언론사의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여기 본격적으로 불을 지핀 것은 참여연대, 한국YMCA, 한국소비자총연맹 등 시민단체들입니다. 총 6개 시민단체가 연합하여 쿠팡의 위법 소지를 주장하며 지난 14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서를 제출하기 이릅니다.

시민단체들이 제출한 신고서에 따르면 쿠팡이 ‘소속 직원들에게 아무런 대가도 지급하지 않고 조직적으로 상품에 대한 리뷰를 작성하도록 했다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만약 쿠팡이 ‘쿠팡 또는 계열회사의 직원이 작성한 리뷰라는 표시’ 또는 ‘쿠팡체험단이 작성한 리뷰라는 표시’를 하지 않은 채 직원을 동원해 리뷰를 작성했다면, 이는 표시광고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주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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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에는 한겨레가 이 소식을 받아 빌드업 했습니다. 쿠팡은 직원뿐만 아니라 리뷰를 자주 작성하는 고객들 중에서 ‘쿠팡체험단’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쿠팡체험단에게는 무상 상품을 제공하고 ‘상품평’을 받고 있었죠.

쿠팡체험단 모집 안내. 쿠팡체험단에 선정된 이들은 ‘무상 상품’을 제공받고, 해당 상품에 대한 구매후기를 작성합니다.(구매후기 미작성시 재초대 불가) ⓒ쿠팡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쿠팡은 쿠팡체험단을 활용한 리뷰 마케팅 상품을 입점 업체들에게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갑이라 볼 수 있는 쿠팡의 권유를 입점업체들이 거절하긴 어렵기에 경쟁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게 한겨레의 입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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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가 일파만파 커지자 쿠팡도 대응에 나섭니다. 쿠팡에 따르면 쿠팡의 상품평은 99.9%가 직원이 아닌 구매고객이 작성합니다. 쿠팡 직원이 소비자로 가장해 상품평을 작성하지 않으며, 만약 쿠팡 직원이 상품평을 작성하더라도 해당 사실을 반드시 명기한다는 설명입니다. 쿠팡은 시민단체들이 거짓주장을 반복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런 주장이 반복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함께 보면 좋아요! : 참여연대는 거짓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후략), 쿠팡 뉴스룸]

 

결국 이 사태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출동하기 이릅니다. 저 또한 이번 사건을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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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논란이 위법이냐 아니냐는 법률 전문가가 아닌 제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쿠팡 입장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억울한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논란의 핵심 주제인 ‘PB 밀어주기’와 ‘리뷰 마케팅’, 이거 사실 유통업계에서는 좀 해묵은 이슈거든요. 쿠팡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노출 권력’을 둘러싼 논란들

 

이번 쿠팡의 PB 상품, 더 나아가 ‘자사 상품’ 밀어주기와 같은 논란은 유통업계에서 왕왕 있었습니다. 플랫폼에 입점한 공급사들 사이에서는 ‘심증’은 있지만 막상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으니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던 일이었습니다.


가깝게 드러난 사례로는 조금 다른 케이스지만
2020년 네이버가 자사가 운영하는 스마트스토어의 상품을 네이버쇼핑 입점 오픈마켓에 비해서 노출을 밀어줬다는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명령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네이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명령에 불복했고 소송전이 이어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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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유통업체가 PB 상품을 만드는 것만 놓고 보자면, ‘잘못’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이마트의 노브랜드, 마켓컬리의 컬리스, 무신사의 무신사스탠다드, GS25의 유어스까지. 이미 우리 생활 속에 파고든 PB상품들이 한 가득입니다. PB는 독립적인 상품을 확보하고, 중간유통상의 개입을 최소화해 상품 마진율을 높이는 방법이 됩니다.

 

유통업체의 PB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노출 권력’ 때문입니다.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 플랫폼이 됐든, 이마트와 같은 오프라인 매장 운영업체가 됐든 ‘상품 노출’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유통업체의 전통적인 권한이었기 때문입니다. 초기 규모가 작은 유통업체들은 이 노출 권력 자체가 없기 때문에 입점 브랜드업체와 비교하여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점차 트래픽이 커지면서 권력 관계는 역전되기 시작합니다.

 

예컨대 오프라인 매장에서 눈에 잘 띄는 선반 위치를 ‘골든존(Golden Zone)’이라 부릅니다. 여기 들어가는 상품을 결정하는 권한은 유통업체에게 있습니다. 통상 ‘잘 팔릴 가능성이 있는 상품’, 혹은 ‘전략적으로 밀어주는 상품’을 여기 배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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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매장에서도 눈에 잘 띄는 ‘위치’에는 별도의 가격이 책정되기 마련입니다. 트래픽이 많이 발생하는 위치는 그 자체로 광고 상품이 되기도 합니다. 증명된 광고 구좌라면 이를 차지하고자 하는 업체들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이런 좋은 위치에 자사가 기획, 개발한 PB상품을 배치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PB상품은 공급사의 상품을 판매하는 것보다 더 큰 마진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굳이 남 주기보다는 자사 상품을 밀어주는 게 더 돈을 많이 버는 방법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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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과 브랜드의 밀당

하지만 PB 상품 밀어주기는 생각만큼 간단하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PB 상품을 밀어준다고 해서 전부 잘 팔리는 것은 아닙니다. ‘노출’ 보정을 받는다면 초기 상품 매출이 어느 정도 밀리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그 상품이 ‘반짝’을 넘어 계속해서 팔리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상품력이 따라줘야 합니다. PB상품 그 자체로 독립적인 가치를 만들거나, 가격이 저렴하고 품질이 나쁘지 않은 ‘가성비’를 확보해야 합니다.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PB 상품은 대개 이 둘 중 하나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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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군다나 유통업체가 충성 고객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선 상품뿐만 아니라 선택권(Selection)까지 확보해야 한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유통업체가 압도적으로 훌륭한 PB상품의 카테고리를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PB 가득한 노출은 유통업체를 방문하는 고객 경험 측면에서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없습니다.

PB상품 밀어주기로 인해 빈정이 상한 브랜드업체가 히트상품을 빼고 경쟁 유통업체에 상품을 몰아주는 결과가 펼쳐지는 건 유통업체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습니다. 예컨대 신라면을, 진라면을 찾아 GS25 매장에 방문한 고객의 눈에 오모리김치찌개 라면밖에 보이지 않는다면 그 매장은 과연 지속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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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쿠팡의 PB 밀어주기는 브랜드가 애매한 쿠팡 입점 업체, 그 중에서도 쿠팡이 만든 PB상품과 직접적으로 경쟁하고 있는 상품에겐 ‘생사’가 오락가락할 수 있는 중요한 이슈입니다. 더군다나 쿠팡은 불특정 다수의 3자 판매자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PB 상품을 기획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디자인이 평준화된 카테고리에서 ‘카피’가 큰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쿠팡이 아디다스는 되지 못할지언정, 중국산 삼선 슬리퍼의 영역은 충분히 PB로 잡아먹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고객에게는 더 저렴한 상품이 팔려서 좋겠지만, 기존 쿠팡에서 동일 카테고리의 상품을 팔던 판매자에게 달가운 상황은 분명 아닙니다. 이 이슈는 몇 주 전에 자세히 언급했으니 이번엔 참고글로 갈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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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있었던 리뷰단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상품평 대행업체들 ⓒ크몽

쿠팡이 입점업체에게 판매했다는 ‘리뷰 마케팅’ 광고 상품도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이커머스 업계에서 특정 상품의 리뷰를 돈 받고 작업해주는 업체들은 쿠팡 이전부터 존재해왔습니다. 당장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오픈하면 가장 많이 받는 전화가 리뷰 작업을 해주는 마케팅대행사의 연락이고, 재능기부마켓 크몽 같은 앱을 보면 널려 있는 곳이 리뷰 마케팅업체입니다.

공짜 상품을 제공하고 리뷰로 교환하는 체험단요? 배달의민족, 요기요와 같은 배달 플랫폼을 보면 음식점 단위로 진행하고 있는 흔하디흔한 마케팅 방법입니다. 주문한 고객이 리뷰를 남겨주면 스팸 한 조각, 만두 한 조각을 얹혀 주는 식입니다.

어쨌든 ‘리뷰’가 매출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업체들이 인식한 지는 시간이 꽤 지났습니다. 이 때문에 네이버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으로 대표되는 소셜 미디어는 이미 마케팅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요. 요즘 같은 세상에 순수한 후기(?)를 찾기 힘든 건 어디서든 마찬가지이기에 쿠팡의 이야기로만 치환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쿠팡의 경우 그 마케팅을 외부 대행업체가 아닌 플랫폼이 ‘스스로’ 했다는 차이점이 있겠습니다. 굳이 남 주느니 쿠팡을 이용하는 고객 생태계를 활용해 리뷰단을 꾸리고, 마찬가지로 쿠팡 생태계에 있는 판매자에게 광고 상품으로 판매한 모습입니다. 쿠팡은 체험단뿐만 아니라 다양한 마케팅 프로그램을 내재화해서 운영하고 있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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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고 상품이 비싼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입점 판매자들의 몫이라 생각합니다. 가격이 비싸 보인다면 안 하면 되는 것이고, 가격이 싸다고 생각하면 하면 됩니다. 만약 쿠팡이 플랫폼의 노출 권력을 활용하여 입점 판매자들에게 마케팅 상품을 ‘강매’한 것이 아니라면, 이것 또한 특별한 이슈로 봐야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쿠팡을 ‘절대갑’의 위치로 규정하기엔 아직 국내 이커머스판이 너무나 치열합니다.

어쨌든 이번 쿠팡의 이슈는 주목할 만합니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PB와 리뷰 마케팅에 얽힌 여러 이슈들은 쿠팡만의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향후 ‘공정거래위원회’의 판단 결과에 따라서 유통업계의 전략 방향에 많은 변화가 찾아올지 모르겠습니다.

✍🏻 작성자 엄지용 : 커넥터스 운영자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헬개미마켓 주인장. 배민커넥트, 쿠팡이츠 부업 라이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일을 주로 하지만, 다른 일도 곧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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