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가 디지털화되면 안 되는 이유

화폐가 디지털화되면 안 되는 이유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새로운 사실: 세계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CBDC(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지폐가 아닌 디지털 화폐) 발행을 새해에도 계속 검토하고 추진할 것이라는 예상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방어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을 통해 돈을 풀거나 거둬들이면서 금융 시스템을 운영하는 현재의 방식은 여러 잇점이 있긴 하지만 송금이나 교환 환전에 비용이 많이 들고 은행 계좌를 만들고 사용하는 접근성이 지역과 계층에 따라 좋은 경우도 있고 나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단점을 디지털 화폐는 모두 해결할 수 있고 그것은 중앙은행이 하지 않으면 민간이 하게 될 것이라는 게 중앙은행들을 서두르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디지털 화폐가 발행되면 사용이 편리해지고 송금도 간편해지는 장점이 생기는 반면 화폐의 사용과 이동이 모두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고 디지털 접근성이 떨어지는 계층은 디지털 화폐 사용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는 게 지금까지 제기된 디지털 화폐의 단점입니다.

마이너스 금리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일부 통화정책 전문가들은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고 현금을 없애면 소유하고 있는 돈이 모두 디지털화되기 때문에 마이너스 금리의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계좌에 있는 1억원이 1년 후에는 9500만원이 된다면(이자율이 마이너스 5%) 사람들은 은행 계좌의 돈을 모두 인출하겠지만 디지털 화폐가 보급되고 현금이 사라지면 ‘인출’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므로 마이너스 이자율의 적용이 가능해집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런 디지털 화폐의 장단점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는데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입니다.

시중은행 역할도 중앙은행이: 첫째는 중재기관의 소멸(disintermediation)입니다. 중앙은행은 돈을 거둬들이고 싶을 때도 있고 돈을 풀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 일을 직접 하지는 못합니다.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려서 사람들이 은행으로 대출을 받으러 오게 유도하거나 금리를 높여서 대출 창구에서 좀 더 멀어지게 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돈을 공급하거나 회수하는 일은 중재기관인 시중은행이 담당합니다.

시중은행이 필요한 이유: 중앙은행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구조이고 금리를 10여년간 계속 낮게 유지했지만 경제가 살아나지 못하는 것도 그런 간접적인 통화 공급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옳은 방식이라는 게 중재기관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의 요지입니다.

정부 기관인 중앙은행이 국민들의 계좌에 직접 돈을 꽂거나 빼는 일이 발생하면 통화정책은 더 효율화될 수는 있겠지만, 정부가 그런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경기를 식혀야 할 때 과열시키는 버튼을 쉽게 누르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경기를 부양하고 살리는 일은 항상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이 항상 옳은 선택은 아닐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경기를 식힐 필요는 있을 수 있지만 그 역시 그 판단을 중앙은행이 하는 것이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중앙은행은 신호를 보내고 실제 자금의 흐름은 시중은행을 중간 지대에 두고 나타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시스템이라는 것이 CBDC의 등장을 바라보는 우려 섞인 시각의 요지입니다.

쉽게 말하면 정부(또는 중앙은행)가 지금보다 더 쉽고 자의적으로 시중에 자금을 공급하고 회수하는 칼을 갖게 되면 그것이 효율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계획경제의 특성처럼 비효율적인 경제가 된다는 겁니다. 스테로이드같은 약을 자주 쓰면 오히려 부작용이 커지지만 디지털 화폐 시스템에서는 정부가 그런 처방의 유혹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입니다.

계획경제와 잘 맞는 CBDC: 실제로 중국이 CBDC를 먼저 도입할 수 있는 이유는 중국의 금융시스템이 이미 다른 나라와 장벽을 쌓고 있는 폐쇄적 시스템이면서 은행들이 대부분 국가 소유여서 사실상 국가의 통화정책이 인민들에게 직접 적용되는 계획경제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결국 디지털 화폐가 각국에 보급되면 전 세계 경제가 중국 같은 계획경제 시스템으로 바뀌는 흐름이 생길 텐데 그것이 긍정적인 방향이냐에 대한 고민입니다.

신흥국 통화를 보유할 이유가 없어진다: CBDC의 등장이 가져올 수 있는 두 번째 고민거리는 통화대체(currency substitution)입니다. 우리가 미국 달러화가 기축통화라는 것을 다 알고 있지만 은행에 달러예금보다 원화예금을 더 많이 하고 지갑에 달러화 대신 원화를 넣고 다니는 것은 달러화를 보유하는 것에 따른 불편함 때문입니다.

그러나 달러화가 디지털 화폐로 바뀌고 계좌만 있으면 디지털 달러를 보유할 수 있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은 유로나 달러 같은 안전한 통화로 본인의 예금을 운용하고 필요할 경우 현지 화폐로 ‘디지털 방식으로’ 쉽게 바꿔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건 사용하는 소비자들 입장에서는 안전하고 유리하지만 주요 화폐가 아닌 이머징 국가들의 화폐는 그 가치가 더 하락할 것이라는 게 CBDC에 대한 우려입니다. (전 세계 이머징 마켓들이 별 잘못도 없이 터키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주요국들 가운데 어느 한 나라가 디지털 화폐를 공식화할 경우 그 사용의 편의성 때문에 다른 국가의 화폐들도 디지털화를 선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게 디지털 화폐의 등장을 우려 섞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이들의 걱정입니다.

인재 끌어들일 하이닉스의 묘수
오늘의 이슈

새로운 사실: SK하이닉스가 최근 인수한 인텔의 낸드플래시사업부(신설 회사명 솔리다임)가 미국에서 별도의 회사로 운영되며 미국 증시 상장을 곧 추진하게 될 예정입니다.

인재 모집용 상장: 증시에 상장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반도체 관련 회사들은 증시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보다 오히려 인재를 모으기 위해 상장 추진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스톡옵션 대박 낼 기회 적은 반도체 인재들: 실제로 반도체 관련 전공을 가진 이공계 인재들의 고민은 이미 기존 회사들이 대부분 성장한 상태여서 반도체 회사에 입사를 해도 스톡옵션 등으로 거둘 수 있는 개인적인 부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 대학에서 컴퓨터과학 전공이 늘어나는 이유는 페이스북, 구글 같은 앱 하나로 크게 성공하는 가벼운 스타트업에 몸을 실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분야 인재들은 기존 회사에 입사하기보다는 소규모 반도체 설계 회사 등을 창업하거나 그런 회사에 입사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산 거품으로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 상황에서는 연봉이 얼마나 높으냐보다 인재들에게 제시할 수 있는 대박의 기회가 얼마나 있느냐가 구직자들에게 더 매력적인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LG화학에서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이 별도로 증시에 상장하면서 직원들은 ‘잘하면’ 5년치 연봉을 한 번에 벌 수 있을지도 모르는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런 기회들이 유능한 인재를 불러모으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놓치면 아까운 소식

🏭 코로나19 확산으로 중국 현지에 봉쇄령이 내려져 삼성전자의 시안 공장이 가동률을 낮췄습니다. 다만 삼성전자의 주가에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공급이 줄어들면서 메모리 가격 하락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증권사들은 올해 메모리 반도체 가격 전망을 기존보다 높이고 있습니다.

🚁 SK텔레콤이 관계사인 티맵모빌리티와 ‘하늘을 나는 택시’로 통하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에 나섭니다. 양사는 합작법인을 통해 UAM 상용화에 필수인 통신·플랫폼 서비스 사업을 벌일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