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진정한 반도체 최강자가 되려면

한국이 진정한 반도체 최강자가 되려면
이주완의 IT산업 나우

‘시스템 반도체 비전과 전략’, ‘반도체 비전 2030’. 이 두 타이틀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바로 비메모리 반도체입니다. 앞의 것은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2030년까지의 비메모리 육성 청사진이고, 뒤의 것은 역시 지난해 삼성전자가 발표한 2030년까지 비메모리 세계 1위 달성 전략입니다. 정말 2030년이 되면 정부와 삼성전자가 기대하는 비메모리 1위 시대가 올까요?

비메모리는 메모리 시장의 3.3배이며 안정성도 높아: 메모리 반도체를 제외한 나머지 품목을 보통 비메모리 반도체라고 일컫습니다. 예를 들면 로직IC, 마이크로프로세서, 아날로그, 센서, 광학, 개별 반도체 등이 비메모리 반도체입니다. 전체 반도체 시장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7% 정도 됩니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인 메모리 반도체의 3.3배 정도 되는 시장인 겁니다.

비메모리 시장은 규모 면에서도 메모리 시장보다 훨씬 크지만 변동성도 작습니다. 수급 상황에 따라 가격이 요동치는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이 가능합니다. 지난 17년간 메모리 시장의 규모가 줄어든 건 8번인 데 비해 비메모리는 3번에 불과합니다. 또한, 시장의 평균 변동성도 메모리는 20.5%나 되지만 비메모리는 절반인 9.8%입니다.

비메모리 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은?: 73.6%와 45.2%. 2020년 2분기 한국 기업들이 D램과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각각 차지하고 있는 시장점유율입니다. 한국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자타가 공인하는 메모리 반도체 1위 국가이며 장기간 독주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메모리 시장으로 넘어가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집니다. 2018년 기업 매출과 전 세계 반도체 시장 통계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삼성전자의 비메모리 시장점유율은 3.8%에 그쳤습니다. 지난해에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점유율 100%를 차지하더라도 비메모리 시장점유율은 높아지지 않습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생산은 반도체 통계에서 삼성전자가 아닌 퀄컴, AMD, 엔비디아 등 설계∙개발 기업들의 실적으로 잡힙니다.

통상적으로 비메모리 가운데 광학, 센서, 개별 반도체 3종류 실적을 합쳐서 발표하는데 이 분야 Top 10을 기준으로 할 때 일본, 유럽, 미국의 매출은 각각 한국의 5배, 3배, 2배입니다. 포트폴리오 구성도 한국은 광학에 치우쳐 있고 센서와 개별 반도체는 취약합니다. 그나마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가운데 강점을 지니고 있는 것은 모바일 AP와 이미지센서 등인데 이마저도 자사 휴대폰에 탑재되는 물량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요. 또한, 비메모리 반도체 가운데 4차 산업혁명 관련 수요 확대가 기대되는 품목들은 센서, 아날로그, 통신칩(로직 IC) 등인데 아날로그 시장 역시 미국이 독주를 하고 있습니다.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미국 기업이 6, 유럽 기업이 3, 일본 기업이 1개입니다.

인프라, 양산 능력 등은 강점, 비메모리 최적화는 과제: 메모리 강자인 한국 기업들이 비메모리에 집중하면 쉽게 상위권에 진입할 수 있을까요? 여기서 일단 파운드리는 제외해야겠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정이나 설계 관점에서 볼 때 메모리와 비메모리는 유사점도 많지만 그 차이도 크기 때문에 비메모리 굴기(崛起)의 성공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속단하기 이릅니다. 메모리는 누설 전류와 전하량 관리가 중요한 반면, 비메모리는 속도와 정확성이 중요합니다. 메모리 반도체를 통해 축적된 기술, 인력, 시설 인프라 등은 큰 강점으로 꼽을 수 있으나 다품종 소량 생산, 다층의 금속 배선구조 등은 경험치가 낮고 설계 기반도 취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난 20여년간 비메모리 시장 진입을 꾸준히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진입장벽이 높고 메모리 시장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만, 이제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이 배수의 진을 치고 총력을 기울일 것이고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도 기대되므로 엄청난 자본과 맞춤형 인력이 투입되고 다수의 전략적인 M&A가 추진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의 20년과 향후 10년은 조금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요?

포스코에서 경영컨설팅을 합니다. 복잡한 IT 이슈를 쉽게 설명합니다.

리멤버 나우를 지인들과 공유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