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 자동화의 암흑지대, 밝아질까

물류 자동화의 암흑지대, 밝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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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센터는 예부터 ‘자동화’에 인색했습니다. 제조업의 공장에서는 흔히 보이는 로봇 자동화 설비 같은 것은 물류센터에서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 이유는 단순한데 큰 돈 들여 자동화 설비를 구축하는 것보다 ‘사람’을 쓰는 게 더 저렴하고, 효율적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규모가 있는 물류센터에는 컨베이어벨트나 DPS(Digital Picking System), DAS(Digital Assorting System)와 같은 피킹, 분류 지원 설비가 들어선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물류센터에선 수십년 된 저런 설비조차 구경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로봇요? 그런 게 있을 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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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자동화에 대한 물류업계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는 듯합니다. 이커머스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물류센터는 종전보다 더욱 복잡한 업무를 요구받게 됐습니다. 그런데 거대한 물류센터 안에서 끊임없이 쇄도하는 고객 주문에 맞춰 적절한 상품을 찾아 픽업하고, 합포장하여 택배 출고 준비까지 마무리하는 과정은 말처럼 쉽지만 않습니다. 어느 순간 사람의 힘만으로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게 됩니다. 이 시점에 업체들은 자동화와 시스템을 고민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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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빠른 배송 경쟁으로 물류센터와 연결되는 배송망 또한 다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종전 일반적이었던 택배뿐만 아니라 당일배송, 새벽배송 등 더 빠른 배송 네트워크가 결합되기 시작합니다. 오늘 밤까지 받은 주문을 다음날 새벽 7시까지, 오늘 오전까지 받은 주문을 오늘 밤까지 배송하는 등의 ‘타임라인’을 맞추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물동량을 물류센터에서 미리 포장하고 준비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물류센터에서 처리해야 하는 업무는 전보다 복잡해졌는데, 물류센터에서 일할 노동자는 점점 더 구하기 힘들어지는 악재가 겹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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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경 변화의 영향일까요. 전에는 잘 보이지 않던 로봇 자동화 설비들이 최근 몇 년 사이 물류센터에 들어서는 모습이 조금씩 관측됩니다. 예컨대 CJ대한통운과 롯데글로벌로지스, 신상마켓과 같은 업체들이 자사 물류센터에 AGV(Automated Guided Vehicle), AMR(Autonomous Mobile Robot) 로봇을 도입해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GTP(Goods To Persons) 방식으로 물류센터 선반에서 상품을 픽업하고 다음 작업대로 이동시키는 집품 업무를 이 로봇이 수행합니다.

이커머스 물류업체 파스토의 용인 물류센터에 설치된 노르웨이 로봇업체 오토스토어의 격자형 자동화 설비. 이 또한 GTP 방식으로 구동됩니다. ⓒ파스토

이런 시장의 흐름을 인지했는지, 물류로봇 업체 또한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영업에 한창입니다. 당장 물류 관련 전시회를 간다면, 물류 로봇은 어디서든 흔히 만나볼 수 있습니다. 공장 자동화 로봇을 개발하던 솔루션 업체들의 ‘물류 신사업’ 진출도 이어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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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아직까지 물류센터에 로봇 설비를 도입해서 전과 비교하여 확연히 거대한 성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저는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움직임이 시작된 만큼, 그 성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히 검증될 것입니다.

자동화가 닿지 않은 영역 : 멋있어 보이는 로봇 자동화 이야기를 조금 했습니다만, 사실 물류센터 안에는 여전히 자동화가 닿지 않는 많은 영역이 존재합니다. 그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을 쓰는 게 자동화 설비를 도입하는 것보다 더 저렴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자동화 기술이 임계점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예를 들어 택배 허브터미널에는 이미 전국에서 올라온 택배를 지역별로 분류하는 자동화 분류기(Sorter)가 설치돼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는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화물의 부피와 무게, 형태를 인식하고 특정 상품을 원하는 위치로 분류할 수 있는 설비가 들어서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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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피 김포 물류센터에 설치된 자동 체적기. 자동화 설비에서 체적한 무게와 부피 데이터는 항공운임을 결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커넥터스

하지만 흔히 ‘까대기’라 불리는 택배 물류센터 상하차 영역의 자동화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업계의 평가를 받습니다. 까대기란 쉽게 말해서 택배 허브터미널과 서브터미널에 도착한 간선화물차량에 물량을 싣고 내리는 업무를 의미합니다. 흔히 ‘지옥의 택배 알바’라고 익히 알려진 그 녀석이죠.

예전 인터뷰를 했던 만화 <까대기>의 이종철 작가에 따르면 그가 한창 까대기 현장에서 일할 때 11톤 차량 한 대에 실린 1500박스 정도의 상품들을 하차하는 데 대략 30~4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어림잡아서 한 시간에 2000 박스 이상을 사람 작업자가 하차하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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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힘들고 고된 업무를 왜 사람 노동자가 일일이 하고 있을까요. 사실 관련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택배 하차 작업을 멋지게 자동화한 로봇은 이미 개발됐습니다. 다만, 그 가성비가 사람에 미치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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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 자동화 컨설팅 분야에서 활동하는 업체 LG CNS 측에 따르면 하차 로봇이 현재 처리할 수 있는 작업량은 한 시간에 600~1000개 수준입니다. 상용화를 위해서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생산성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입니다.

이커머스 상품을 처리하는 물류센터에서도 자동화가 닿지 않은 부분은 있습니다. 앞서 GTP 방식의 로봇이 물류센터에 들어섬에 따라서 집품 업무가 자동화됐다는 이야기를 했죠. 하지만 이렇게 로봇이 옮겨온 상품을 검수하고 포장하는 업무는 여전히 사람이 맡고 있습니다.

검수와 포장 업무에 한창인 브랜디 동대문 패션 물류센터의 모습 ⓒ커넥터스

이 또한 관련된 자동화 기술이 없진 않습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기반으로 상품을 학습하고, 비전 인식하여 자동으로 상품을 집고 포장하는 로봇팔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면 맞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로봇팔을 쓰는 업체가 거의 없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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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CNS 측에 따르면 이 로봇팔이 이커머스 물류센터에서 취급하는 1만개가 넘는 다양한 상품 SKU(Stock Keeping Units)를 충분히 학습하고 인식하는 데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학습을 한다 하더라도 로봇팔이 사람 작업자 이상으로 빠르고 정확한 작업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습니다. 다양하게 겹쳐있는 상품을, 다양한 포장재 규격에 맞춰, 다양한 부자재와 함께 포장하는 업무를 로봇이 수행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과연 물류센터의 자동화 암흑지대는 밝아질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물류센터의 ‘완전 자동화’는 아직까지 요원해 보입니다. 실제 물류센터에 들어선 자동화 설비들은 대부분 특정 영역의 ‘부분 자동화’를 지원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죠. 그 중에서도 설비 투입으로 인한 ‘경제성’이 명확히 보이는 부분에 우선 투자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존재하는 자동화 투자비용에 대한 의문을 불식시키고, 물류 현장에 자동화를 스며들게 하기 위한 설비업체들의 고민이 한참인 듯합니다.

“초기 자동화에 따른 투자비용 부담을 이야기하는 고객사들이 많습니다. LG CNS도 IT를 기반으로 로봇을 구독 형태로 제공하는 서비스 RaaS(Robot as a Service)를 준비하며 고객사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투자 부담을 줄인 로봇 모델이 정착한다면, 장차 새로운 물류센터 자동화의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이준호 LG CNS 스마트물류사업부장)”.

✍🏻 작성자 엄지용 : 커넥터스 운영자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헬개미마켓 주인장. 배민커넥트, 쿠팡이츠 부업 라이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일을 주로 하지만, 다른 일도 곧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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