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러브콜 받는 아파트 고충 해결사?

🔎 대기업 러브콜 받는 아파트 고충 해결사?

아파트

한국에서 ‘아파트’가 점하는 위치는 매우 독특합니다. 단순히 인구의 60%가 거주하는 공간일 뿐만 아니라 교환가치가 있는 상품이자 계급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좁은 도시 면적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고안된 주거 형태지만 도곡동이나 한남동 등의 유명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 된 지 오래입니다.

상부상조 가로막는 폐쇄성

한국 아파트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폐쇄성’입니다. 외부인, 차량 심지어 물건까지도 쉽게 아파트 단지 안으로 진입할 수 없으며 반드시 출입문을 지키는 관리인을 거쳐야 합니다. 또 다른 특징은 ‘동질성’입니다. 외부에는 배타적이지만 내부 주민끼리는 단지에 갖춰진 편의, 상업, 운동, 교육 시설 등을 공유하고 비슷한 소득수준과 생활양식을 향유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밀집된 지역에서 더불어 살아가면서도 막상 주민들은 자신이 속한 ‘아파트 공동체’에 대해 의외로 잘 알지 못합니다. 이웃을 모르니 모든 세대가 쿠팡이나 마켓컬리에서 똑같은 생수, 화장지를 주문하면서도 가구별로 따로 배송을 받고, 똑같이 제철 과일을 원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구매처와 경로로 비싼 값에 구매합니다. 뭉치면 구매력이 생길 수 있는데도 세대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아파트 관리 현황에 대해서도 잘 모릅니다. 경비원, 미화원의 역할은 단지를 ‘어제의 상태로 온전히 돌려놓는 것’ 혹은 ‘별문제 없게끔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노고는 눈에 띄지 않습니다. 매달 아파트 관리비를 꼬박꼬박 내고 도시·수도·가스 비용을 부담하면서도 이 돈이 합리적으로 책정됐는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하기 힘들다는 얘깁니다.

이렇게 불투명한 아파트의 관리 체계를 개선하고 입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뛰어든 기업이 바로 스타트업 ‘살다’입니다. 2019년 사업 개시 이후 직원 55명의 회사로 성장한 이 회사는 아파트 관리 앱 ‘잘살아보세’를 운영하는 업계 선두 업체 중 하나입니다. 올해 7월 기준 전국 약 1만8000개의 아파트 단지 중 40%에 해당하는 7000개 단지와 서비스 이용 계약을 맺고 있으며, 아파트 중대형 관리 회사의 절반 이상과 손잡고 아파트 관리의 디지털 전환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살다는 다른 프롭테크 기업들과의 비교를 거부합니다. 아파트 관리의 디지털화는 데이터를 축적해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주민을 이해하기 위한 초석일 뿐 사업의 장기적인 방향은 타사와 다르다는 건데요. 이와 관련해 정성욱 살다 대표는 “우리는 아파트에 모여 사는 ‘주민’에게 초점을 두고, 주민의 편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하인(servant)이 되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다”고 말했습니다. 

팬데믹 이후 좁아진 사람들의 생활 반경에 맞춘 ‘하이퍼로컬(hyperlocal, 지역 밀착)’ 서비스가 늘어나고 ‘슬세권’*을 선점하기 위한 플랫폼들의 경쟁이 가열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살다는 어떤 차별화된 청사진으로 대기업들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는 것일까요?

📌 슬세권 : 슬리퍼와 세권의 합성어로 슬리퍼 같은 편한 복장으로 각종 여가,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 권역을 가리키는 신조어

디지털화를 통한 ‘관리’의 페인 포인트 해소

살다의 정성욱 대표는 삼성물산을 거쳐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11년간 인수합병(M&A) 등의 업무를 담당하다가 해외에서 매출 1000억 원 규모의 종합상사형 사업체를 경영한 연쇄 창업가입니다. 6개국에 거점을 둔 사업체를 경영하면서 정 대표의 경험은 주로 ‘공간의 차이를 메우는 일’에 집중돼 있었습니다. 한 지역에 있는 상품을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키는 종합상사든, 한 기업에 필요 없는 사업을 다른 기업에 넘기는 M&A든 참여자들의 효용을 모두 높일 수 있는 파레토 최적의 솔루션을 찾고 차익을 얻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이 발달하고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물리적 경계가 파괴되기 시작했습니다. 공간 차를 겨냥하던 사업 기회는 점점 축소됐고 종합상사가 설 자리가 좁아졌습니다. 이에 전략을 바꿔 ‘시간의 차이’를 공략한 사업 기회를 찾던 정 대표는 한국보다 15년 앞선 일본의 인구 모형에 주목했습니다.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한국에 닥칠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데요.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게 한국의 ‘주택 문제’였습니다.

한국의 아파트 시공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세대원 수가 줄어 1~2인 가구 합계가 전 가구의 60%를 넘어서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세대 구성에도 변화가 생겼지만 4인 가구 위주의 표준화된 공간 구성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당장 시설물을 부수고 다시 짓기 힘들다면 아파트의 주거 서비스나 공간 활용이라도 인구구조나 생활양식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야 하는데 딱히 아파트 입주민의 다양한 수요를 해결하는 서비스도 보장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는 카페, 헬스장, 골프연습장, 독서실, 사우나 등 시설이 점점 단지 안으로 들어오고, 팬데믹 이후 생활 반경이 더 좁아지고 있음에도 고질적입니다 예약 시스템은 여전히 불편하고 아날로그에 멈춰선 관리 체계는 나날이 높아지는 주민들의 수준과 편의의 기대치를 충족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살다
살다는 아파트 관리 개선을 통해 단지를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만들고, 주민들이 새로운 가치와 연결될 수 있도록 제안하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이에 살다는 ‘아파트 관리가 대체 왜 이렇지?’라는 호기심을 더 파고들기 시작했습니다. 깊숙이 들여다보니 ‘주민-현장 근무자-현장 관리자-관리 회사’ 등 이해관계자별로 페인 포인트(pain point)가 다 달랐고 모두가 불만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1️⃣ 주민의 애로사항 : 먼저 ‘주민’의 경우 매달 많게는 몇십만 원씩 관리비 청구서를 받지만 이 관리비가 어디에 쓰이는지 확인할 수 없다는 데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일이 생겨 민원을 넣지 않는 한 입주, 퇴거할 때 아니면 관리인과 소통하는 일도 드물었습니다. 집에 있지 않으면 안내 방송을 놓치는 일이 부지기수고 각종 행정과 문서 작업이 전자화되지 않다 보니 단지 내 의사결정에 참여하거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목소리를 낼 기회가 제한됐습니다.

2️⃣ 현장 근무자의 애로사항 : 경비원이나 미화원 등 ‘현장 근무자’들은 자신들의 일이 표시가 잘 안 나는 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분명 온수가 끊기거나 엘리베이터 운행을 중단한다고 안내 방송을 했는데도 못 들은 주민들이 불만을 제기하기도 하고, 순찰을 돌고 청소를 했는데 기록이 안 남아 의심을 받는 등의 불상사가 잦았습니다. 주로 종이와 펜으로 기록을 하다 보니 일의 구체적인 내역을 증명하는 데 한계가 있기도 했고요.

3️⃣ 현장 관리자의 애로사항 : 관리사무소에 있는 ‘현장 관리자’들은 이런 근무자를 관리 감독하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노후화되거나 파손된 시설을 수리하고 돈과 차량을 관리하는 것도 관리자들의 주요 업무지만 역시나 가장 어려운 건 사람 관리라고 했습니다. 통상 경비원이나 미화원들은 각기 다른 영세 업체에서 파견되는데요. 이들이 한데 어울려 일하다 보니 얼굴은 마주치더라도 말을 섞어본 적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고, 단지별로 업체도 다 다르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고가 터져서 부랴부랴 출동할 때만 서로가 무엇을 하는지 알 뿐이었죠.

4️⃣ 파견사의 애로사항 : 현장 관리자들을 파견하는 ‘관리 회사’는 조직이 영세해 실질적인 현장 통솔이 불가능하다는 난관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본사 직원은 10명 남짓인데 100여 개 단지를 관리하다 보니 단지별로 입찰을 따내고, 계약을 유지하고, 현장 관리자들의 임금을 지급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수익을 내는 회사도 거의 없습니다. 국내 5000개가 넘는 주택 관리⋅경비⋅미화 업체 중 시장의 약 70∼80%를 점유한 약 200여 개 회사만 1% 남짓한 영업이익률을 남기는 수준입니다. 관리의 1차 책임이 회사에 있고 정말 큰 사고가 터지면 과태료를 물거나 소송에 휘말릴 위험이 있는데도 현장 관리자에게 모든 걸 위임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입니다.

이 같은 이해관계자의 페인 포인트를 해소하려면 ‘관리의 디지털화’가 급선무였습니다. 이에 살다는 관리비 조회나 실시간 CCTV 확인 등의 기능을 갖추는 것은 물론 경비원들이 순찰 포인트를 휴대폰 QR로 찍어 인증하게 하고, 순찰 전후 사진을 촬영해 기록하게 했습니다. 또한 안내 방송을 녹음하면 텍스트로 전환해 공지사항에 올라가게 하는 등 이해관계자들의 편의를 높이고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살다는 관리비 조회, 전자 투표 등 여러 업무를 전산화함으로써 ‘관리의 디지털화’에 주력하고 있다.

관리 데이터 기반의 ‘주민’ 맞춤형 솔루션 제안

관리의 디지털화 작업에 몰두하다보니 점점 이를 통해 축적되는 데이터베이스(DB)의 가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흩어져 있을 때는 큰 의미가 없던 관리인들의 기록이 한곳에 모이니 완전히 다른 의미를 띠게 된 것이죠. 이 데이터는 입주민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과 같았습니다. 

예를 들어 DB를 활용하면 관리인은 각 동과 호마다 세대주와 세대원은 누구인지, 차량의 입출입, 차량 번호, 도시·수도·가스 요금, 외부인 출입 빈도 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본적인 정보만이 아니라 더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답까지도 이미 가지고 있죠. 

가령, 가구마다 음식물 쓰레기는 언제 얼마나 버리는지, 밤에 몇 시에 불을 끄고 자고 몇 시에 일어나는지, 출퇴근 시간은 대략 언제인지, 임대료는 안 밀리고 꼬박꼬박 내는지 등을 아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당근마켓처럼 수많은 사람이 연결된 동네 생활 플랫폼도 참여자 신원이나 개인정보에까지 접근할 수는 없습니다. 네트워크 효과에 기대어 개인 간 자발적인 거래에 의존해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아파트 관리에서 시작한 플랫폼에서는 주민들이 스스로 밝히지 않아도 관리인이라는 ‘문지기(Gatekeeper)’를 통해 입주민들을 이해할 수 있는 데이터가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기업이 개인의 필요에 맞춘 제안을 하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정 대표는 “특정 기업이 국내의 아파트 거주민 2500만 명, 1만8000개 단지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며 “하지만 이 단지의 70∼80%를 관리하는 200여 개 관리 회사와 관계를 맺고 이들이 가진 데이터를 디지털화해 확보하면 역으로 단지와 주민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사생활 침해나 개인정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규제를 준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부인의 출입을 꺼리는 폐쇄적인 아파트 공동체에서 단지 안을 자유롭게 들락날락하는 것은 물론 출입문까지 통과할 수 있다는 건 관리인의 특권이자 관리 데이터를 쥔 플랫폼 기업의 차별점이라는 설명입니다.

전기차와 주차장, 타다의 향후 성장 동력

특히 빠르게 디지털 전환이 이뤄지고 있는 차량 관리 분야에서 이런 데이터의 활용 잠재력은 더 클 수 있습니다. 살다는 차가 주행하는 동안의 데이터는 추적하지 못하지만 주차장에 정차해 있는 동안의 데이터는 모두 확보하고 있습니다. 주차장 차단기 앞에 서서 진입을 시도하는 순간부터 차량 번호가 찍히고 관리의 대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근 살다가 모빌리티 대기업과 추진 중인 대표적인 사업은 바로 아파트 주차장의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입니다. 최근 테슬라, 현대차 등의 전기차에 대한 시장 수요가 확인되기 전까지만 해도 아파트 내 충전 시설이 들어온다는 것에 입주민들의 반발이 컸습니다. 

하지만 전기차 상용화 이후 시장 반응이 우호적이자 전기차 충전 시설에 대한 주민들의 태도도 바뀌었습니다. 더욱이 공급만 있으면 수요가 뒷받침되는 시장이라는 자신감이 생기면서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 전기차 연관 사업인 충전 시설 확충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초기 인프라만 깔아 놓으면 고정적인 수입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매력이 큰 비즈니스인 셈이죠.

그런 의미에서 아파트 주차장은 기업들에 굉장히 매력적인 장소로 떠오르고 있는데요. 이는 주차장을 관리하는 살다에도 새로운 기회입니다. 입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주차장을 활용하면 기업은 토지 임대나 매입 등에 투자하는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전기료가 싼 야간을 이용해 완속 충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별도로 충전 시설에 들르지 않아도 집에 차량을 세워두는 시간 동안 충전을 할 수 있으니 편리하죠. 또한 인프라 구축은 또다른 DB의 축적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언제 충전을 하고 얼마나 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면 아파트에 충전 시설을 구축하는 모빌리티 기업에도, 그 아파트의 입출입을 관리하는 살다에도 유용할 수 있습니다.

차량 공유 서비스

살다는 심지어 휴맥스모빌리티와 함께 차량 공유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는데요. 카셰어링이 늘어나고 세대별로 보유하는 차의 평균 대수가 줄어들면 주차 공간을 어떻게 에너지 생산, 충전, 보관 공간이나 기타 편의 공간으로 전환할지 논의가 활발해질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울러 차량 공유 서비스 그 자체도 확장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아파트 내 렌터카를 두는 것에 대해 주민들의 우호적인 반응과 수요를 확인한 만큼 이를 향후 전기차 공유 등으로 얼마든지 확장할 수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입니다. 주민 입장에서는 전기차를 구매하지 않고도 아파트 단지에 있는 공유 차량에 쉽게 접근해 사용해볼 수 있고, 제휴사는 더 많은 사용자에게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전기차에 대한 대중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구매로 연결되게 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안팎을 연결하는 문지기

이처럼 관리 데이터의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아파트 주민의 필요를 세분화해 살펴볼 수 있게 되면 동네나 단지별 수요에 따라 맞춤형 제안이 가능하고 공간 활용의 범위도 넓어집니다. 이미 아파트라는 공동체 자체가 어느 정도 소득 수준, 생활양식에 있어 동질성이 보장된 집단인데다 데이터까지 뒷받침된다면 마케팅 관점에서 타기팅도 수월해진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살다에 따르면 실제 이 데이터들을 이용할 경우 지금까지 세대 단위로 ‘파편화돼 있던 수요’를 단지 단위로 묶고 마케팅과 물류 효율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수요가 집적되면 분산돼 있을 때보다 입주민의 구매력(Buying Power)이 높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거래상 우월한 지위에서 기존에 단지에서 이용할 수 있던 제품과 서비스를 더 좋은 조건으로 구매하고, 원래 이용할 수 없었던 제품과 서비스에도 접근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죠. 

실제로 대기업들이 협업을 제안하는 이유도 살다를 통하면 단지별 대단위 수요를 적재적소에 타기팅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IT/가전 기업 : 살다가 아파트 단지의 신혼 입주나 이사 수요에 대한 데이터를 IT/가전 기업에 제공하면, 이를 토대로 특정 단지에 이사가 몰릴 때 한시적으로 특가 이벤트를 실시할 수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한시적으로 이뤄지는 할인 이벤트는 해당 물리적 공동체 내에서만 폐쇄형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시장가격을 교란하지 않으면서 묶음 수요를 겨냥할 수 있어 기업과 주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죠.

물류 회사 : 마찬가지로 물류 회사의 경우 가구 단위로 일일이 배송하던 작업을 단지 내 특정 거점까지 배송한 뒤 해당 단지의 관리인들이 나머지 구간에서 배분하도록 하면 효율을 높일 수 있습니다. 배달원의 이동 거리를 단축할 뿐만 아니라 소분 후 비닐, 박스에 세심하게 개별 포장해 각 가구에 따로 배송하던 물건들을 단지 단위로 묶음 배송하면 포장비용 등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렇게 관리인에게 넘길 경우 ‘라스트 마일(Last Mile)’에서의 배송의 질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여러 물류 회사의 배송 기사들이 각기 다른 유니폼을 입고, 각기 다른 철가방을 든 채 재빠르게 여러 장소에 물품을 실어 나릅니다. 자연히 외부인의 단지 내 출입이 잦고 원거리를 이동하는 시간 싸움이라 물품이 파손되거나 오배송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신원이 분명한 소수의 관리인이 배송을 담당하면 주민들도 신뢰할 수 있고, 여러 장소를 오가며 이동하는 배달원보다 상품을 온전한 상태로 옮기면서 실수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잘 상하는 음식이나 신선 식품의 경우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만 다른 물품들은 묶음 배송을 통해 물류의 효율과 질을 개선하고 배송비를 낮출 수 있겠죠. 이 경우 관리인의 업무가 과중해지지 않도록 적절한 노동의 배분과 초과근무에 대한 보상을 하는 게 중요합니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진출 : 시범 단계이긴 하지만 살다는 궁극적으로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에서도 아파트 밀집 지역 내 거점을 만들어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를 구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 거점을 주민의 필요에 따라 공동 구매 목적의 간이 매장, 소형 물류 거점인 MFC(Micro Fulfillment Center) 등 다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인데요. 현재 다산 신도시에서 ‘잘스(Jal’s)마켓’이란 이름의 오프라인 거점을 식품, 와인 공동 구매 매장으로 활용하면서 시범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네 상권에 입점한 상가들은 막연하게 주민들의 수요를 추측해 공급할 품목을 정한 뒤 고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요. 잘스마켓은 온라인으로 연결된 주민들의 구체적 수요를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기다림이 짧습니다. 아울러 날짜, 요일, 시간 등에 따라 목적을 다변화하면 공간, 시간 활용의 효율을 극대화할 수도 있습니다. 

먹거리뿐 아니라 반려동물 사료 판매처나 의료 서비스를 연결하는 병원, 더 나아가 동네 정보가 모여서 유통되는 곳 등으로도 변신이 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단지 내 소형 물류센터인 MFC를 두고 관리인들이 배송에 참여하게 하는 방안도 물류 회사들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살다와 배타적인 계약을 맺으려는 업체들도 많다고 합니다.

살다가 경험한 수많은 시행착오들

물론 살다의 원대한 사업 비전과 전략이 일사천리로 실행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관리의 디지털화부터 난이도가 높습니다. 지금도 현장 근무자, 현장 관리자, 관리 회사 등 이해관계자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복잡한데 이를 바탕으로 아파트 단지 내 주민과 외부의 기업들을 대해야 하니까요. 전선이 방대하다는 것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스타트업에 있어 큰 장애물입니다.

사업 초기에는 수요와 공급을 연결만 하면 플랫폼이 굴러갈 것이라 기대했지만 이는 큰 오산이었습니다. 사업 구상을 실험⋅검증하는 PoC(Proof of Concept)에서부터 벽에 부딪혔습니다. 

1️⃣ 통근 버스 : 가령,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안 좋은 경기도 아파트 단지를 묶어서 통근 버스를 운영하던 사업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아이디어는 흠잡을 데 없었습니다. 용인에 사는 직장인들은 주로 판교∼강남으로 출근하고, 일산에서는 강북, 김포에서는 여의도로 출근하는 이들이 많으니 단지별 수요를 묶어보자는 발상이었죠. 버스 한 대를 채울 수 있게 최소 30∼40명만 모으면 효율을 달성하면서도 주민들의 편의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통근 버스는 ‘정시성’이 생명이다 보니 비가 많이 온다든지, 시내 교통 상황이 안 좋다든지 등 변수가 생겨 단 하루라도 시간이 지체되면 이용자 만족도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회사에서 공식 통근 버스를 운영하는 경우 만에 하나 지각하더라도 사정을 이해받을 수 있지만 사설 서비스를 이용하면 개인이 오롯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이변에도 시간을 칼같이 맞추려면 서비스를 고도화해야 하는데 영세한 스타트업에 이런 추가 투자를 감당할 만한 재무적 여력이 있을 리 없죠. 이 경험을 통해 살다는 주민들이 원하고, 주민들의 페인 포인트를 해소할 수 있다고 해서 모든 서비스를 단숨에 구현할 수는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 단지 내 공유 냉장고 : 마찬가지로, 주민들이 멀리 편의점까지 갈 필요가 없도록 아파트 단지 내 유휴 공간에 공유 냉장고를 비치하고 입주민 인증만 하면 간단한 식음료를 꺼내어 마실 수 있게 하려던 서비스도 구현되지 못했습니다. 이 역시 수요는 있었으나 표준화된 모델이 없고 홍보가 잘 안 되다 보니 적절한 공간을 찾아 주민들의 합의를 끌어내기까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됐습니다. 

이를 수행할 회사의 재무적, 운영적 역량도 아직은 미흡했습니다. 이에 살다는 모든 서비스가 가동하고 지속가능해지기까지는 생각보다 더 많은 투자가 요구된다는 것을 깨닫고 비즈니스 가치나 시장 규모가 커서 비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 사업들에 전략적으로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3️⃣ 관리 회사 시장점유율 확대 : 이런 어려움에 비하면 오히려 관리 회사들을 상대로 한 영업과 아파트 시장점유율 확대는 상대적으로 수월했습니다. 전국 6000여 개에 달하는 영세한 관리 회사들 입장에서는 디지털화, 현대화를 시도하는 살다와 손잡는 것만으로도 아파트 단지 계약을 수주하거나 연장하는 데 훨씬 유리합니다. 입찰에 사활을 거는 상황에서 살다는 매력적인 파트너인 셈이죠.

물론 관리 회사가 솔루션 계약을 맺는다고 소속 관리인들이 살다 앱이 제공하는 모든 기능을 자유자재로 이용하거나 사용자 경험(UX), 인터페이스(UI)에 빠르게 숙련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안내 방송을 녹음해 텍스트로 전환하는 기능이나 차량 등록, 순찰 기록 등 여러 기능의 활용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 임계점을 넘지는 않았지만 얼리어댑터들을 중심으로 점점 적응해가고 있는 단계라고 하네요.

환경친화적이고 아름다운 아파트 공동체

살다는 환경적으로나 심미적으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에너지 절약, 이산화탄소 배출 감소, 물류 포장 절감 등 환경과 관련된 고민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외에 서울에너지공사와 전력 피크 절감 전용 앱 개발을 위해 협업하고, LS일렉트릭과 가정용 스마트 전력 플랫폼 사업 활성화를 위해 상호 협력하기로 한 것도 이런 고민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활동들입니다. 전력 소비 정보에 대한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여 전기요금을 아끼면서도 에너지 절약 등에 동참하도록 유도하려는 겁니다.

일련의 목표는 과거와 다를 바 없는 아파트 공동체를 오늘날 사회와 환경 변화에 맞게 재편하겠다는 살다의 청사진을 담고 있습니다. 주민들의 잠재 수요를 간파해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가치를 저렴하고 편리하게 만들어 전달하겠다는 것이 주민을 위한 ‘서번트’를 표방하는 전략의 요체입니다. ‘살다’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입니다. 아파트 입주민을 위한 소통 플랫폼으로서 살다는 유의미한 가치를 빚을 수 있을까요? 이들의 행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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