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세일즈, 데이터는 이유를 안다

✂실패한 세일즈, 데이터는 이유를 안다

거절하는 손바닥

‘세일즈맨을 키우는 것은 8할이 거절’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영업 실패 확률이 그만큼  높다는 뜻인데요. 반복되는 거절로 지친 영업 사원이라면 이 글을 일독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영업에서 거절 당할 가능성은 숫자로 봐도 처참합니다. 콜드 콜*을 통한 잠재 고객 미팅 가능성은 2% 내외이고, 콜드 메일*의 응답률은 0.03%에 그칩니다. 2016년 미국에서 진행된 연구에서는 세일즈 제안이 거절될 확률을 평균 90%로 봤습니다. 고객이 먼저 연락을 해오는 인바운드도 스펙, 금액, 기간 차이 등 다양한 이유로 거래가 무산되곤 하죠.

📌 콜드 콜/메일 : 사전에 접촉하지 않은 잠재 고객 대상으로 비즈니스를 유도하는 전화, 이메일

고객 수가 상대적으로 많은 IT나 보험 등 업종에서는 몇 차례 영업 실패가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문이 있어야 생산이 시작되는 건설, 조선, 기계 등 수주 산업에서는 한 번의 실패가 매출에 큰 타격을 불러옵니다. 장기 공급 계약을 맺는 제조업이나 서비스업도 마찬가지고요.

세일즈와 구직 과정은 닮았습니다. 기업이 구직자에게 탈락 사유를 알려주지 않는 것처럼 다수의 조직이 이유도 모른 채 계약 연장이나 입찰에 실패하고, 구매 논의가 무산됩니다. 당연히 CRM(고객관계관리) 시스템에도 정확한 정보는 올라가지 않겠죠. 

만약 고객의 거절 이유를 파악하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늘은 고객 관점에서 실패한 세일즈 제안의 원인을 분석한 연구를 소개합니다.

연구 방법

먼저 연구팀은 제안을 받은 기업 구매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시도했습니다. 고객의 요구와 계획, 공급자의 제안, 고객-공급사 간 커뮤니케이션, 경쟁 현황 등의 자유로운 의견을 들었습니다. 총 113건의 거래에 대해 1500쪽 분량이 모였습니다.

그 다음 수집된 정보를 토픽 모델링(Topic Modeling) 기법으로 분석했습니다. 토픽 모델링은 비정형 데이터인 텍스트의 주제를 확인하기 위한 머신러닝 기법 중 하나인데요. 이를 통해 거절 이유를 5가지로 추려낼 수 있었습니다.

연구 결과

1️⃣ 거절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힌 건 ‘계약 가격’(23.8%)이었습니다. “다른 조건은 비슷하기 때문에 나는 오로지 가격만 본다”는 답변도 존재했죠. 구직 과정을 떠올려 볼까요. 서류와 면접 과정을 거치고 최종 면접 이르면 비슷한 스펙을 가진 지원자들이 남습니다. 이때는 각 구직자의 능력 차이보다는 면접자의 선호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많죠. 세일즈도 마찬가지입니다. 구매 담당자 관점에서 마지막 단계에 올라온 공급사들의 능력은 대체로 유사합니다. 따라서 거래 업체 선정에서 가격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겁니다.

2️⃣ 두 번째는 ‘프레젠테이션’(21.7%)이었습니다. 세일즈 피칭을 하는 자리에서 고객사의 반응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 말만 늘어놓는 기업은 거부 대상에 오르기 쉽습니다. 키오스크나 다양한 디스플레이 장치를 통해 자신들의 계획을 멋지게 펼쳐 보이는 도전적인 기업들과 달리 진부한 방식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이어가는 기존의 공급사들 역시 감점을 받았고요. 

3️⃣ 세 번째는 ‘혁신적인 아이디어 제안’(20.6%)이었습니다. 구매 담당자들은 누구나 구매 행위를 통해 자사의 혁신과 발전을 꾀합니다. 원가 절감, 수율 상승, 품질 향상, 납기 단축 등이 대표적이죠.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나 비전과 관련된 것일 수도 있고요. 고객사의 비전과 가치에 걸맞은 혁신적인 제안이 없다면 거래를 트는 것도, 이어 나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4️⃣ 네 번째는 ‘기존의 관계’(18.2%)였습니다. 사실 B2B 비즈니스에서 기존 공급 업체의 존재는 매우 큰 장벽으로 느껴집니다. 크게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핵심 공급 업체가 바뀌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구매팀 담당자 역시 공급 업체 변경에 매우 신중한 편입니다. 물론 기존 공급 업체가 불량품 납품, 납기 지연, 매너리즘 등을 방치했다면 오랜 협력 기간이 계약을 끊을 좋은 명분이 되기도 하겠지만요.

5️⃣ 마지막은 ‘담당자 이슈’(15.8%)였습니다. 고객사와 공급사 담당자 간 문제는 어느 곳에서든 존재합니다. 같은 회사에서도 부서 간 이견이 존재하는데 일하는 방식과 사용하는 용어까지 상이한 두 기업의 불협화음은 어찌 보면 필연적이죠. 담당자 이슈가 심각하다면 공급사에서는 적절한 교체를 고려해야 하지만 공급사 임원들의 문제 불감증, 대체 인력의 부족 등으로 인해 지지부진해집니다. 그리고 그 이슈가 어느덧 계약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조사 결과 구매자들의 거절 사유는 대상이 기존 거래 기업인지, 도전자 기업인지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도전자 기업을 거절한 주요 이유는 가격 문제였습니다. 반면 기존 공급 업체를 거절할 때에는 기존 관계와 담당자 이슈 등 여러 가지 이유가 고려됐습니다.

So What?

거절 이유가 다르듯 기존 거래 업체와 신규 업체의 대응 전략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신규 업체 : 하버드경영대학원에서 발간하는 매거진 HBR에 따르면 신규 고객 확보 비용은 기존 고객 유지보다 5~25배나 많이 든다고 합니다. 본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됐지만 구매자들은 잘 알지 못하는 신규 기업에는 다소 매정합니다. 새로운 기업이 제대로 된 능력을 갖췄는지 검증하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기 때문이죠. 삼성전자도 반도체 라인에 기존 일본산 불화수소 대신 국산 제품을 투입하기 위해 수많은 테스트를 거쳐야 했습니다. 따라서 신규 기업이 택해야 할 전략은 명확합니다. 간단명료하게 작성된 제안서와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되 가격 측면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겁니다.

기존 업체 : 반면 현재 거래 중인 업체는 관계 강화와 담당자의 만족도에 보다 초점을 맞춰야 할 겁니다. 확률적으로는 지금의 거래 관계가 양사의 유대 측면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오랜 친구에게 무례해지기 쉬운 것처럼 계속된 거래가 자칫 매너리즘, 관행에 의존하는 업무 방식, 태만 등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습니다. 지금 거래 중이라고 안심하기보다는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공함으로써 계속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관계로 인한 문제가 없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하고요.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노랫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거절은 언제나 두렵습니다. 하지만 거절 이유를 분석하고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면 빈도를 낮출 수는 있을 겁니다.

✍ 김진환 : 가천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외국계 대긱업과 국내 스타트업 기업에서 13년 이상 영업과 사업개발 업무 담당. ‘필자생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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