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이 항상 미덕은 아닙니다

🙌 친절이 항상 미덕은 아닙니다

쇼핑백과 세일 표지

미끼에 따라 선택이 바뀐다

도서 정기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모바일로만 보면 비용이 저렴하지만 화면이 작아 불편할 것 같고, 반면에 종이 도서는 읽기 편하지만 구독료가 2.5배나 높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상품을 구매하시겠습니까?

A. 모바일 : 12만원
B. 종이 도서+모바일 : 30만원

각자의 선호 기준에 따라 결정이 다를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위의 예처럼 경우의 수가 두 가지라면 그럴지도 모르죠. 그런데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미끼 상품이 슬쩍 끼워져 있다면 앞서 고민하던 비교 상품 간의 선호도 균형이 무너지게 됩니다. 이때 어느 쪽으로 균형의 축이 기우는가는 세일즈 담당자가 어떤 미끼 상품을 투입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만약 B의 매출을 올리고 싶다면 ‘종이 도서’만 제공하는 또 다른 상품 옵션 C를 슬쩍 추가하면 됩니다. 이때 유의할 점은 새롭게 추가되는 C는 B에 비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품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A. 모바일 : 12만원
B. 종이 도서+모바일 : 30만원
C. 종이 도서만 : 30만원

이번엔 어떤 상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선택의 무게추가 급격하게 B로 쏠립니다. 단지 가지수만 하나 늘렸을 뿐인데 말이죠. 조금 더 들여다보면 이유는 명확해집니다. 먼저 종이 도서만 구독하는 상품 C를 선택할 확률은 0입니다. 같은 가격에 모바일까지 덤으로 볼 수 있는 B가 있기 때문이죠. B와 비교하면 C는 있으나 마나 한 무의미한 상품, 가치가 없는 상품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새롭게 추가된 C는 A와 B를 선택할 때 기준점 역할을 합니다. C를 기준으로 보면 A는 ‘가격이 저렴하다’는 좋은 면과 ‘모바일로만 볼 수 있다’는 나쁜 면이 있습니다. 반면 B는 모든 면에서 좋아 보이니 B를 선택하게 되는 거죠. C는 B 선택을 유도하는 미끼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처럼 얼핏 보면 의미 없는 것 같은 선택지를 추가해 고객의 선택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을 ‘미끼 효과’라고 합니다.

C의 가격을 B에 비해 아주 조금만 낮춰봐도 미끼 효과는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합니다. 예를 들어 C의 가격이 28만원이라고 해봅시다. 이때도 고객 입장에서는 B를 사는 게 유리합니다. 28만원으로는 종이 도서만 볼 수 있지만 2만원만 추가하면 모바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12만원짜리 모바일 서비스를 2만원에 이용할 수 있다니 훨씬 이득처럼 보입니다.

미끼 상품 구성 방법

미끼 상품은 목표 상품에 비해 모든 가치가 부족해 보여야 합니다. 단, 가격은 아주 약간 낮을 수 있습니다. 중국집의 곱빼기 메뉴에서도 같은 효과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짜장면 보통 사이즈 한 그릇은 7000원, 곱빼기는 8000원이라면 어떤 것을 주문할까요? 곱빼기를 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의 양이 조금 아쉬운 수준이라면 이런 현상은 더 심해지게 되고요. 이때 짜장면 보통이 곱빼기의 미끼 상품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누가 이런 미끼 효과에 영향을 받을까요? 의식적으로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죠. 그렇지만 우리 뇌는 의사결정의 대부분을 무의식적으로 처리합니다. 의사결정에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여 인지적 효율성을 높이려는 뇌의 작동 원리 때문이죠. 미끼 효과가 영향을 주는 곳은 바로 무의식 영역입니다. 이 무의식이 구매 결정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습니다.

가질 수 없는 것이 더 매력적이다

세일즈의 비밀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상황을 들어보겠습니다. 아이가 며칠째 수제 초콜릿이 먹고 싶다고 보채서 함께 백화점에 갔습니다. 매장을 한참 살펴본 아이는 A는 모양이 예쁘고, B는 더 맛있어 보이는데 어느 것을 고를지 고민이라고 했습니다. 이때 점원이 C 초콜릿을 소개했습니다. 찾는 사람이 많아 재고가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요. 아이가 C에 관심을 보이려 할 때, 옆에서 같이 듣던 다른 고객이 매장에 있던 C 전부를 주문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A와 B에는 관심도 주지 않고 C를 사러 다른 백화점에 가자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이의 마음이 바뀐 건 ‘희소성 편향(scarcity bias)’ 때문입니다. 희소성 편향은 공급이 부족해 살 수 있는 제품의 숫자가 한정됐을 때 발생합니다. 이와 관련된 두 가지 실험을 살펴봅시다.

쿠키 실험 : 사회심리학자 스티븐 워첼(Stephen Worchel) 교수는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쿠키의 품질을 평가해달라고 했습니다. 제공받은 쿠키의 양은 그룹별로 달랐습니다. A그룹은 쿠키를 풍부하게 제공받았고, B그룹 학생들에게는 두 개의 쿠키만 제공됐습니다. 어느 그룹이 쿠키 품질을 더 좋게 평가했을까요? 

겨우 두 개의 쿠키만 맛본 B그룹입니다. 실험을 여러 번 반복해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학생들은 쿠키 양이 희소하다고 느낄 때 쿠키의 품질을 훨씬 더 높게 평가했습니다. 또한 부족한 양을 제공받은 B그룹 학생들은 자신들의 쿠키에 A그룹보다 11% 더 높은 가격을 제시할 의사를 보였습니다. “귀한 것은 비싸다(Rara sunt cara)”라고 말한 로마인들의 말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죠.

희소성 편향의 작동 원리

캠벨수프 실험 : 코넬대 브라이언 완싱크(Brian Wansink) 교수는 실제 판매 현장에서 희소성 효과를 실험했습니다. 실험 장소로 선정된 슈퍼마켓에서 쇼핑객들은 다음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로 캠벨수프를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조건 1. 구매 수량 제한 없음
조건 2. 구매 가능 수량을 4개로 제한
조건 3. 구매 가능 수량을 12개로 제한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구매량과 구매 발생률에서 의미있는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구매 수량에 제한을 두지 않은 경우(조건1) 쇼핑객들은 평균 3.3개를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구매 수량에 제한을 둔 조건 2에서는 평균 3.5개, 조건 3에서는 평균 7개로 구매량이 늘어났습니다. 구매발생률도 수량을 제한할 때 더 높았습니다.

세일즈 현장에서는 고객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희소성을 강조하는 문구를 많이 사용합니다. 아래는 어느 마트의 계란 소개 문구입니다.

“단 한 번도 조류독감이 없었던 농장의 달걀을 매장 입고 후 최대 7일간만 판매합니다. 산란일로부터 단 하루 만에 입고한 초신선란”

여기서 희소성을 자극하는 문구가 사용된 곳은 총 세 군데 있는데요. 희소성 문구와 판매자의 속마음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단 한 번도 AI가 없었던 농장 → “요즈음 드물게 안전한 계란입니다. 안심하고 구매하세요!”
2️⃣ 최대 7일간만 판매합니다 → “구매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지금 구매하세요!”
3️⃣ 산란일로부터 단 하루 만에 입고 → “이렇게 신선한 계란 거의 없습니다. 빨리 구매하세요!”

희소성 편향을 활용한 아래와 같은 문구를 넣으면 고객의 관심과 구매 행동을 유도하기 용이합니다.

“딱 10개만 판매하는 제품입니다!”
“이 가격에 살 수 있는 것은 오늘뿐입니다!”
“한정 제품이라 지금이 아니면 내년에나 볼 수 있습니다.”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희소성이 ‘리액턴스(reactance)’라는 저항 심리와 결합되면 효과는 더욱 커집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재미있는 실험이 있는데요. 

학생들에게 포스터 열 장을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순서대로 정리하라고 요청하면서 정리의 대가로 포스터 중 한 장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학생들은 포스터들을 각자의 기준으로 배열했습니다. 배열이 끝난 후 새로운 지시가 추가됐습니다. 현재 배열된 포스터 중에서 세 번째 자리에 놓인 포스터는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포스터 선택과 희소성

새로운 규칙이 추가되고 포스터를 재배열하라고 하자 학생들 대부분은 종전의 세 번째 포스터를 첫 번째 자리로 옮겼습니다. 평가가 바뀐 이유는 새로운 지시에 의해 세 번째 포스터가 갑자기 희소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선택할 수 없는 물건을 더 매력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없다고 하는 것은 더 가지고 싶고,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더 하고 싶은 저항 심리가 희소성을 더욱 강화시킵니다. 저항 심리를 희소성과 결합해 다음과 같이 세일즈에 활용해볼 수 있습니다.

“현재 노란색 제품은 재고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회신을 주시면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이 매운 라면은 아무나 드실 수 없는 정말 매운 음식입니다. 절대 도전하지 마세요!”

세일즈 목적인 글에서 희소성 암시가 전혀 없다는 건 자칫 고객에게 “아, 그냥 천천히 생각하고 알려주세요. 이 제품은 언제든 구입 가능하니까요. 아무 때나 주문하시면 돼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친절한 말이기는 한데 ‘아무 때’는 결코 오지 않습니다. 즉, 세일즈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죠. 세일즈가 되지 않는 세일즈 글? 최악이죠. 친절이 항상 미덕인 것은 아닙니다. 특히 세일즈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 이수민 : 강의 중심 교육컨설팅 업체 SM&J PARTNERS 대표. ‘좋은 강사가 되고 싶은가요?’ , ‘이제 말이 아닌 글로 팔아라’ 저자

경영지식 콘텐츠를 만드는 국내 최고의 경영 매거진 '동아비즈니스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