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례로 배우는 워케이션 혁명

🛫 일본 사례로 배우는 워케이션 혁명

수영장 위에 태블릿

지난 주 국내 워케이션 현황과 원활한 소통을 위한 방법을 소개해드렸는데요(🔗링크). IT 기업 위주의 시범 단계인 국내와 달리 일본에서는 코로나 이전부터 워케이션이 성행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8년 긴 노동시간에서 비롯된 열악한 근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일하는 방식 개혁’이라는 캠페인을 추진했는데요. 그 일환으로 워케이션이 언급됐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는 직원 복지 차원에서 기업들에게 워케이션 제도를 적극 활용하도록 권장했습니다. 

하지만 워케이션 제도가 기대만큼 쉽게 정착하지는 못했습니다. 한 예로 일본항공(JAL)은 2017년 워케이션을 도입했지만 연간 이용자 수는 20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직원들 사이에서 ‘휴가 중에도 일을 시키기 위한 구실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죠. 업무 방식과 문화가 유연하게 바뀌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만 도입한 탓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한 겁니다.

그랬던 일본에서 코로나 이후 워케이션을 즐기는 사람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JAL처럼 제도를 만들어 장려하지 않아도 리모트 근무가 확산되면서 원하는 장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늘어난 겁니다. 

지난 4월 야후 재팬은 직원들의 거주지 제한을 없앤 ‘어디에서나 오피스’ 제도를 발표했습니다. 이전에는 원격 근무를 허용하면서도 오전 11시까지 사무실에 도착할 수 있는 범위 내에 거주하길 요구했는데요. 이제는 거리 제한을 없애고 통근 수단도 전철이나 고속열차(신칸센), 버스에서 비행기까지 용인했습니다. 

이런 근무지 제한 폐지는 IT 기업을 넘어 전통적인 대기업으로도 조금씩 확산되고 있습니다. 일본 최대 통신사 NTT는 올해 7월부터 기획이나 시스템 개발 업무에 종사하는 직원들에게 워케이션 근무를 허용했습니다. 제조업체인 미쓰비시홀딩스는 사무직을 중심으로 전체 직원의 10%가 전면 재택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미쓰비시케미컬, 도요타도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전면 재택근무 혹은 출근과 재택근무를 섞은 하이브리드형 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근무지에 대한 제약이 점차 사라지면서 워케이션이라는 공식적인 제도가 도입되지 않더라도 일과 휴가가 섞이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2~3일만 출근하는 하이브리드형 근무에서도 워케이션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예컨대 목요일이나 금요일은 여행지에서 일을 하다가 주말에는 휴가를 즐기는 식으로요. 

일본의 워케이션 비즈니스

생활양식의 변화는 곧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의미합니다. 여행과 일이 섞인 삶, 취미와 업무가 섞인 라이프스타일이 확산되면서 이에 대응해 기업들도 워케이션 관련 산업을 키우고 있습니다.

1️⃣ 아도네스(ADDress) : 가장 호응이 좋은 건 숙박을 해결해 줄 주거 구독 혹은 호텔 구독 서비스입니다. 매번 예약해야 하는 귀찮음과 부담스러운 비용을 해결해주는 거죠. 일본의 대표적인 주거 구독 서비스로는 아도레스가 있습니다. 한 달에 4만 엔(약 40만 원)을 내면 아도레스가 운영하는 일본 곳곳에 있는 숙박 시설에서 머물 수 있습니다. 아도레스는 여러 군데 거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주목했고, 코로나 이전부터 프리랜서와 1인 사업자들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다 팬데믹 직후 서비스 신청자가 쇄도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들은 대부분 평범한 회사원이었죠.

목조 식탁과 건축물
아도레스의 시네마현 쓰와노초 저택과 오피스

2️⃣ 도큐호텔 : 호텔 또한 워케이션 시장에 주목해 ‘다거점 숙박 플랜’이라고 불리는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도큐호텔은 지난해 4월,  ‘츠기 츠기(tsugi tsugi・‘다음 다음’이라는 뜻. 호텔을 옮겨 다니는 움직임을 표현)’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는데요.  30박에 18만 엔(약 180만 원), 60박에 36만 엔(약 360만 원)으로 일본 전국에 위치한 39개의 도큐호텔과 리조트형 호텔인 도큐배케이션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숙박할 수 있는 서비스입니다. 동반 1인까지 머물 수 있고 숙박을 원하는 호텔에 빈 객실이 있다면 어디든 예약이 가능합니다. 총 100명을 모집했는데 무려 933명이 신청해 인기를 실감케 했습니다. 호텔 구독 서비스의 시장성을 확인한 도큐호텔은 지난해 12월 숙박 가능 시설을 78개까지 늘렸고, 올해 3월부터는 일본의 몇몇 호텔과 제휴해 173개로 이용 가능한 호텔을 확장했습니다. 숙박 일수 또한 짧은 단위인 13박 상품까지 추가해 2주간 워케이션을 계획하는 사람들도 이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3️⃣ 사누(SANU) : 최근에는 별장을 구독하는 서비스도 등장했는데요. 일본 스타트업 사누는 월 5만500엔(약 55만 원)을 지불하면 사누가 지은 32개 동의 별장에서 원하는 만큼 머물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보였습니다. 대부분 자연에 둘러싸인 곳에 위치해 있고 별장 내외부는 전부 목재를 사용해 만들어 머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가능합니다. 별장 안에는 와인 셀러를 포함한 가전과 주방용품이 전부 구비돼 있습니다. 이 서비스 또한 출시하자마자 인기를 끌어 현재 300명이 이용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4️⃣ 피치항공&ANA항공 : 숙박만 해결된다고 끝은 아니겠죠. 호텔 구독 서비스가 늘자 덩달아 정해진 기간 내 마음껏 이용 가능한 항공권 서비스도 등장했습니다. 일본의 저비용 항공사(LCC) 피치항공은 워케이션 수요를 겨냥해 지난해 11월 한 달간 일본 내 33개 노선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자유탑승권을 시범 출시했습니다. 자유탑승권은 철도에서는 쉽게 볼 수 있지만 항공 업계에서는 흔치 않은 시도였는데요. ANA항공 또한 2020년 1월부터 3개월간 한시적으로 주거 구독 서비스인 아도레스와 제휴해 항공권을 세트로 판매한 바 있습니다. 월 3만 엔을 추가 지불하면 국내 2개 도시의 왕복 항공권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겁니다.

이처럼 숙박과 교통의 구독 서비스를 잘 활용하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원할 때 다른 지역으로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구독 서비스가 점차 활발해지면서 직장인의 워케이션을 위한 인프라가 정비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워케이션 시설 만들기

워케이션 인프라를 직접 구축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휴양지에 위성 오피스를 만든다거나 호텔과 같은 숙박 시설을 법인 단위로 계약하는 식인데요. 도심 내 오피스 개발 업체들도 지방으로 눈을 돌려 워케이션 시설을 건설하고 있다네요. 일부 대기업은 자사가 직접 위성 오피스를 설치해 직원들의 워케이션을 독려하기도 합니다. 미쓰비시 UFJ은행은 도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유명 휴양지 가루이자와를 포함해 전국 6곳에 워케이션 시설을 오픈했습니다.

부동산 개발 업계에서도 워케이션이 가능한 위성 오피스를 자사의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우기도 합니다. 유수의 금융기관과 외국계 기업이 몰려 있는 도쿄의 마루노우치 지역 내 오피스 빌딩을 다수 소유한 미쓰비시지쇼가 대표적인데요. 미쓰비시지쇼는 와카야마현에 위성 오피스를 만들고 자사가 운영하는 오피스 빌딩 내에 입주한 회사의 직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프린스호텔은 개인 고객뿐 아니라 법인의 워케이션 프로그램 수요가 상당하다는 판단으로 2020년 9월, 법인 대상 영업팀을 설립하고 워케이션 상품을 개발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복리 후생 차원으로 워케이션이 가능한 호텔과 계약을 검토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가 프린스호텔과 연간 계약을 진행하면 직원들은 원할 때 언제든 전국에 위치한 5군데의 프린스호텔에 묵으면서 일할 수 있습니다. 팀워크를 다지고 싶은 경우 팀 전체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 동안 머물 수 있습니다. 친목을 위해 골프나 볼링 같은 게임을 무료로 이용할 수도 있고요. 프린스호텔은 향후 기업 고객 시장을 연간 8∼10억엔 규모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워케이션은 그 경험 자체가 신사업에 활용될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곳이 항공업과 여행업인데요. 새로운 도시에서 일과 휴가를 즐긴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경험은 항공 노선 개발이나 지역 관광 상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실제로 JAL항공은 사원이 워케이션으로 방문한 지역에서의 경험을 살려 여행 상품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지역 경제를 살리는 워케이션

이런 근무 방식의 커다란 변화와 워케이션의 확산을 일본 지자체들은 무척 반기고 있는데요.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면서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지자체들에게 워케이션은 절호의 기회입니다. ‘관계 인구’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죠. 관계 인구란 특정 지역으로 완전히 정착하는 건 아니지만 자주 같은 지역을 방문하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지자체는 저출생과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정주인구를 유입시키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그 대안으로 관계 인구를 늘리는 방향으로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해 나가고 있습니다.

1️⃣ 와카야마현 : 대표적인 곳이 워케이션 성지로 떠오른 와카야마현입니다. 이곳에서는 지자체가 나서서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워케이션 시설을 개설했습니다. 특히 지역 곳곳에 리모트 근무의 인프라가 되는 와이파이를 설치했는데, 시라하마초의 해변에까지 와이파이를 설치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푸른 백사장에서 컴퓨터를 켜고 일하는 사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많은 일본 직장인들의 뇌리에 깊이 박혔습니다.

해변에서 노트북하는 사람
시라하마초 워케이션 홍보 사진

와카야마현은 전략적으로 현을 대표하는 상품으로 워케이션을 내세웠습니다. 2017년 8월에는 ‘워케이션 포럼’을 개최해 관련 강연과 패널 간 토론으로 기업들에게 워케이션의 장점을 알렸고요. 수도권 내 기업을 초청해 3박4일로 워케이션 체험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또 가족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을 개설하기도 했는데요. 낮에는 부모가 일을 하는 동안 자녀들이 자연학습을 하고 밤에는 가족끼리 바비큐를 즐기는 일정으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처럼 와카야마현은 당시 생소한 개념이었던 워케이션의 장점을 다방면으로 체험해 볼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미쓰비시지쇼가 위성 오피스를 설치할 때도 시라하마쵸 지자체뿐 아니라 지역 내 기업들까지 적극적으로 협력했습니다. 직원들이 현지에서 어떻게 일정을 보내면 좋은지 플랜을 제안하거나 이동에 필요한 교통수단, 체험 활동 예약을 지원했습니다. 지역 내 오피스 용품 제조 기업이 물품을 지원하기도 하고요. 이런 지자체와 지역 내 기업들의 도움으로 미쓰비시지쇼는 상당한 운영비를 절감했습니다. 시설의 관리와 운영을 담당할 직원을 별도로 상주시킬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죠. 

와카야마현은 미쓰비시지쇼, 글로벌 IT 기업 세일즈포스를 포함해 2017년부터 3년간 100곳이 넘는 기업과 협업을 이뤄냈습니다. 더불어 와카야마현의 호텔들도 재건축을 통해 업무 공간과 회의실을 마련하는 등 워케이션에 적합한 시설로 탈바꿈했습니다.

2️⃣ 니가타현 묘코시 : 니가타현에 위치한 지방 도시인 묘코시 또한 일찍이 워케이션 센터를 설치해 관계 인구를 늘리는 데 힘을 쏟고 있습니다. 묘코시는 단순히 자연경관을 내세우기보다는 기업들이 가치를 얻을 수 있는 워케이션 프로그램을 개발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배우는 워케이션’을 콘셉트로 고객의 니즈에 맞는 비즈니스 연수 프로그램을 만든 건데요. 예를 들어 인재 육성 전문 기업과 함께 개발한 ‘히어 데어’는 산속 트래킹에 비즈니스 게임을 접목해 불확실한 환경에서 가설을 세우고 의사결정을 하는 법을 몸으로 배우는 프로그램입니다. 묘코시는 ‘워케이션’에서 휴가가 아닌 일이 주체가 되는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함으로써 기업들에게 어필하고 있습니다.

묘코시 워케이션이 제공하는 4가지 가치

3️⃣ 나가노현 : 도쿄와 인접한 나가노현은 워케이션 매력도가 높은 12개 마을을 지정하고 해당 지역 내에 워케이션 시설을 만드는 기업에 150만 엔 한도의 보조금을 지급합니다. 이처럼 일본 정부와 지자체에게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워케이션 열풍은 지난 수십 년간 고민하던 생산성 저하와 지역 인구 감소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묘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일본 워케이션의 특징

일본 사례에서 눈여겨볼 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국내 워케이션 정착에 도움이 될 만한 노하우를 알아봅시다.

1️⃣ 기업-정부-지자체의 조직적 협력 : 개인의 자발적인 의사에 의존해서는 제도를 확산시키고 시장 규모를 키울 수가 없습니다. 원격근무가 불가능한 직원들도 있고, 사비를 들이는 데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죠. 그래서 일본의 기업들은 직접 자사 직원들을 위한 워케이션 시설이나 위성 오피스를 만들어 개개인의 부담감을 덜고 있습니다. 또 지자체는 이런 기업들을 지역 내 기업과 연결해 지원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죠.

2️⃣ Vacation << Work : 일본 워케이션의 특징은 휴가보다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입니다. 도심 내 오피스에서는 쉽지 않은 팀 빌딩 활동이나 아이디어 워크숍 등에 워케이션을 적극 활용하는 방식입니다. 미쓰비시지쇼는 워케이션에 ‘업무 장소를 바꿔 직원들을 동기 부여하고 대화 속에서 혁신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강조합니다. 즉 워케이션은 단지 장소를 바꿔 일하는 걸 넘어 적극적으로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탄생하도록 지원하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3️⃣ 일하는 방식 개혁&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 : 마지막으로 일본은 워케이션을 통해 그동안 고심했던 두 과제 해결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워케이션 트렌드는 여태까지 팽창을 지속한 도시 집중 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워케이션 인구 증가는 관광객을 늘리는 것보다 더욱 큰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 지역 주민들과의 친밀한 교류는 해당 지역에 대한 강력한 호감으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누적된다면 해당 지역으로의 이주까지 고려하는 인구도 늘어날 수 있겠죠. 

한국에서도 최근 워케이션이 커다란 화두로 떠오르고 있으며 지방에 위성 오피스를 설치하는 기업들이 생기고 있는데요. 일본의 사례는 한국에 시사하는 점이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워케이션을 개인이 여행을 즐기며 일하는 차원을 넘어, 기업은 생산성을 높이고 직원의 만족도를 높이는 기회, 지자체는 지역 재생의 기회로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 정희선 :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MBA를 취득한 후 글로벌 컨설팅사 LEK 도쿄지점에서 경영 컨설턴트로 근무. 현재 산업・기업 정보 분석 플랫폼을 제공하는 일본 유자베이스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 중. 서적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 출간, 일본 트렌드 관련 칼럼 연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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