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터스] 미디어는 ‘커머스’가 될 수 있을까

미디어는 ‘커머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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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커머스’ ‘미디어 커머스’가 뜬다는 이야기, 이제 식상할지 모릅니다. 망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혔습니다. 괜히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과 같은 미디어 기업이,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츠 기업이 ‘커머스’ 비즈니스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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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온라인 스토어에서 팔리고 있는 오징어 게임 관련 상품 ⓒNetflix

반대편에서는 커머스 기업의 ‘미디어’ 확장도 만만찮습니다. 아예 콘텐츠 플랫폼을 따로 하나 만들어버린 쿠팡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티몬이 커머스와 하나도 상관없어 보이는 웹예능 콘텐츠를 만들고 있습니다. 티몬 이전 블랭크가 ‘고등학교 간지 대회’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이미 비슷한 짓(?)을 했습니다. 모바일 홈쇼핑 같다는 평가를 왕왕 들었지만 저마다의 문법을 찾아가고 있는 ‘라이브 커머스’도 콘텐츠와 커머스의 결합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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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커머스는 기업뿐만 아닌 개인의 삶까지 파고 들었습니다. 이미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등 소셜 미디어 채널을 활용하여 상품을 판매하는 개인은 흔하다 못해 수두룩합니다. 이러한 개인 판매자를 모아서 플랫폼을 구축한 ‘브랜디’, ‘에이블리’와 같은 버티컬 커머스 기업의 성장세는 눈부십니다. 개인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기획사 MCN(Multi Channel Platform) 플랫폼들에게 ‘커머스’ 사업은 안하는 게 이상할 만큼 필수적인 사업 포트폴리오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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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슬퍼하는가

그러던 저에게 커머스 사업을 하는 한 대형 MCN 플랫폼 관계자와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콘텐츠와 커머스의 결합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현실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웬걸. 질문을 받은 그 분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왠지 모를 깊은 슬픔이 그의 얼굴에서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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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정확히 확인하지 못했던 그 이유를 저는 최근에야 다른 MCN 플랫폼 관계자와의 대화를 통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 다르게 콘텐츠와 미디어를 결합하고자 했던 MCN 플랫폼의 도전은 쉽지 않은 암초가 가득했습니다.

대표적인 어려움은 ‘힘의 균형’에서 나타났습니다. MCN 플랫폼과 콘텐츠 크리에이터, 그 사이의 힘의 축은 플랫폼보다는 크리에이터 쪽에 쏠려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영향력 있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를 커머스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MCN 플랫폼 입장에서 적지 않은 노력과 비용을 쏟아야 합니다.

예컨대 광고를 중개한다면 30~40%를 넘어서는 수수료를 크리에이터에게 지급하는데, 그렇게 해선 플랫폼에 도저히 남는 게 없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국내 대형 MCN 플랫폼들 중에선 ‘영업 이익’을 남기는 곳을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콘텐츠와 커머스의 서로 다른 목표를 일체화하는 것도 큰 숙제로 다가옵니다. MCN 플랫폼들이 흔히 협업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는 기본적으로 미디어업자입니다.

재밌는 콘텐츠를 기반으로 더 많은 구독자와 트래픽을 만들고자 합니다. 나아가 고정적으로 채널을 방문하는 ‘팬덤’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래야 그들이 유튜브로부터 더 많은 수익을 정산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커머스’는 기본적으로 상품을 많이 팔아 매출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매출을 만들기 위해서 콘텐츠 중간에 몰래(자연스럽게), 혹은 대놓고 ‘상품’을 노출시켜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콘텐츠의 스토리텔링과는 이질적인 무엇인가가 콘텐츠를 보는 사람들의 눈에 밟힐 수 있습니다. 순식간에 구독자가 이탈하는 어떤 상황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실제 이런 비슷한 사례는 2020년 뜨거웠던 유튜버 뒷광고 논란을 꺼내지 않더라도, 최근의 많은 미디어 PPL에서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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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인즉 콘텐츠 크리에이터는 상품 광고를 받아 ‘커머스’를 하더라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평소에 만들었던 콘텐츠의 방향과 부합하는 한정된 카테고리의 상품을, 그 중에서도 구독자들에게 소개하더라도 떳떳할 수 있는 상품을 골라서 받게 됩니다. 광고주의 숙제를 받은 앞광고를 명기 하더라도, 그 빈도를 늘리는 건 크리에이터들에게 또 부담스럽습니다. 여기서도 구독자의 숫자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바꿔 말하면 MCN 플랫폼 입장에선 커머스 비즈니스의 ‘확장성’이 제약된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가능성

회의적인 이야기를 했지만, 그럼에도 저는 미디어와 커머스가 결합돼 만들어낼 수 있는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디어를 떼고 커머스만 놓고 보더라도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은 상품을 잘 팔기 위한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상품 상세 설명에 잔뜩 들어가는 사진과 텍스트, 영상도 사실 모두 콘텐츠입니다. 콘텐츠의 재미와 커머스의 매출은 별 상관이 없을 수 있지만, 콘텐츠가 커머스에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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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커머스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통제가 어려운 사람 크리에이터가 아닌 처음부터 철저하게 기획된 가상의 크리에이터, ‘버튜버(버추얼 유튜버)’나 ‘가상 인간’을 콘텐츠의 전면에 내세우는 방향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특정 카테고리에 걸맞은 커머스를 염두에 두고 콘텐츠를 쌓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 크리에이터와는 다르게 불미스러운 이슈에 휘말려 상품 브랜드에 타격을 줄 리스크도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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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기준 전 세계 유튜브 슈퍼챗(후원금) 기준 상위 10위 채널. 1위부터 9위까지 모든 채널이 카툰 렌더링의 탈을 쓴 ‘버추얼 유튜버’입니다. 인간의 자존심을 지킨 10위는 목사님(…)입니다. ⓒ플레이보드

콘텐츠와 커머스, 나아가 물류의 결합도 주목할 만합니다. 물류를 콘텐츠 크리에이터 생태계의 통제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물류는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효율을 만듭니다. 추가 매출을 원하는 크리에이터가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효율을 물류에서 만들 수 있다면 생태계에 머물 유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로 혼자서 보내면 3000원인 택배비를 1600원에 쓰게 해줄 수 있는 게 물류의 힘입니다. 혼자서는 구하지 못하는 상품을 소싱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 또한 물류의 힘입니다. 국내에만 국한됐던 판로를 글로벌까지 확장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또한 물류의 힘입니다. 종합몰 이상의 트래픽을 뽑아내고 있는 패션 버티컬 커머스 브랜디와 에이블리는 이미 이 공식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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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류 입장에서도 ‘콘텐츠’와의 결합에서 신사업 기획의 기회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물류는 지원 사업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매출을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물량을 가진 화주사에게 휘둘리기 마련입니다. 이커머스 시대로 넘어와서도 물류의 형태만 B2B에서 B2C로 바뀌었을 뿐 그들의 입장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반면, 콘텐츠는 매출을 만들어냅니다. 물류가 동작하는 시작점인 ‘물량’이 콘텐츠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어느 정도 이상의 데이터 분석 역량이 쌓인다면 ‘콘텐츠로 발생할 매출’을 예측하여 사전에 물동량을 준비해두는 것과 같은 운영의 묘가 가능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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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물류와 콘텐츠가 결합된 어떤 상품을 만든다면 물류는 전통적인 지원 사업에 머물지 않을 수 있습니다. 통합 마케팅 및 운영 대행 사업을 통해 스스로 ‘물량’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됩니다. 더 낮은 단가로 화주사를 영업했던 기존 방식을 ‘더 높은 매출’을 만들어주면서 그에 따른 물류까지 처리해주는 방식의 영업으로 전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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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이야기했지만 콘텐츠와 커머스의 결합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둘 중 하나만 잘하는 것도 어려운데, 둘 다 잘하고 적절한 균형을 배분해야 하니 더 까다롭습니다. 앞으로 콘텐츠의 재미와 커머스의 매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이가 나타날 수 있을까요? 사실 ‘개인’ 단위에선 하나둘 나오고 있는 듯 합니다. 이를 조직 단위로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짜는 누군가가 이 판에서 두각을 나타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 작성자 엄지용 : 커넥터스 운영자이자 콘텐츠 크리에이터,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헬개미마켓 주인장. 배민커넥트, 쿠팡이츠 부업 라이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일을 주로 하지만, 다른 일도 곧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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