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멤버 나우>는 리멤버와 ‘손에 잡히는 경제’ 진행자인 이진우 경제전문기자가 함께 만드는 ‘데일리 경제 콘텐츠 레터’ 입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의장입니다. ‘세계 경제 대통령’이라 불리는 그의 한마디에 세계 경제가 출렁입니다. 그런데 파월 의장의 발언은 자주 바뀌고, 때론 모호합니다. 그의 발언을 해석해 봤습니다. 한국 경제의 기둥, 반도체 산업이 위기라는데 진짜 위기가 맞는지도 짚어봤습니다. 11월 30일 ‘리멤버 나우’ 입니다.
1. 현재 금리는 역사적 기준으로 볼 때는 낮은 수준이지만, 성장을 가속화하거나 둔화시키지 않는 중립적인 경제 수준 바로 아래에 있다. ( 여러분들 눈에는 금리가 좀 낮아 보이긴 할 테지만,적정한 금리 수준까지 거의 다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멀지 않았습니다.)
2. 사전에 정해진 Fed의 통화정책 경로는 없으며 발표되는 경제지표가 더 중요하다. (여러분들은 우리가 금리 수준을 미리 정해놓고 그냥 막 달려가는 것 같겠지만, 그런 거 없습니다. 우리도 매번 경제지표를 확인하고 그때그때 판단합니다. 미래는 우리도 몰라요. )
3. 현재 과도하게 고평가된 자산군은 없다. ( 가끔은 Fed가 자산 가격의 거품이 커질 것을 염려해서 금리를 빠르게 올리는 경우도 있긴 한데 그럴 걱정도 안하셔도 되는 상황 입니다.)
한달 전에는 “아직 멀었다” 더니…
지난 달만해도 파월 의장은 “현재 미국 금리는 중립금리까지 도달하려면 아직 멀었다(far away)”고 말했습니다. ‘아직 멀었다’던 중립금리가 “이제 거의 다 왔다(just below)”고 하니 약간 갸웃거려지긴 하지만, 미국이 금리를 많이 올릴까봐 걱정했던 시장은 환호했습니다. 주가는 오르고 미국 달러 가치는 떨어졌습니다. (미국 달러는 안전자산이라 세상이 위험하고 우울할 때 가치가 오릅니다.)
시장에서는 그래도 12월에는 기준금리를 한 번 더 올릴 것이라고 보고 있지만 파월의 이런 발언으로 인해 내년의 금리 인상 횟수는 생각보다 줄어들 것으로 전망 하고 있습니다.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
파월 의장은 왜 한 달 전에 본인이 했던 말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거리낌없이 한 걸까요. 시장은 한 달 전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저 사람의 말을 왜 그렇게 잘 믿을까요.
파월 의장의 발언은 핸들을 왼쪽으로 틀었다가 오른쪽으로 틀었다가를 반복하는 운전과 다름없습니다. 시장이 너무 과열됐다 싶으면 강하게 시장을 식히는 발언도 하고 그러다가 너무 시장이 얼어붙는다 싶으면 다시 부추기는 발언 도 합니다.
발언의 내용만 놓고 보면 180도 다른 표현이 되지만 그 표현에 담긴 의도는 둘 다 “시장이 너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 는 겁니다.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하면 조용히 원하는 수준까지 금리를 올리려는 전략에 차질이 생깁니다. 때로는 금리를 많이 올리겠다고 엄포를 놓아서 실제로는 금리를 올리지 않으면서도 금리를 올린 효과를 거두기도 합니다.
아무튼 미국의 금리 인상 횟수나 속도가 예상보다는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보면 그렇다는 것이지 또 어떻게 바뀔 지는 모를 일입니다.
내년 반도체 시장 성장세가 확 느려질 것이라는 분석이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 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은 아예 올해보다 시장이 작아질 것이라는 권위있는 기구(WSTS)의 전망도 나왔습니다. 그래서인지 메모리반도체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는 계속 하락세 입니다. 두 회사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4배 수준입니다. 공장 등 회사 자산만 다 팔아도 시가총액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그만큼 시장이 두 업체의 앞날을 어둡게 보고 있다는 겁니다.
이 소식이 중요한 이유
우리나라는 올해 약 6250억 달러를 수출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중 반도체가 1300억 달러입니다. 20%에 육박합니다. 그만큼 반도체는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큽니다.
시장의 앞날을 예측하는 건 어렵습니다. 반도체 역시 수 많은 증권사와 기관의 전망에도 실제로 내년에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권위있는 기관’의 전망도 매년 많이 틀려 왔습니다.) 그러나 한국 1위 산업이니 만큼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반도체 시장 흐름을 읽는 ‘독법’ 정도는 익혀놓으셔도 좋을 겁니다.
근거 1: 가격이 내려간다
최근 반도체 시장의 앞날을 어둡게 예상하는 첫번째 근거는 “가격이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가격이 내려간다는 건 수요보다 공급이 많다는 뜻이니 상식적으로는 앞날을 어둡게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긴 합니다. 다만 이같은 소식을 접하실 때 몇 가지 주의하실 점이 있습니다.
반도체 가격 관련 소식을 잘 보시면 ‘현물거래가’와 ‘고정거래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현물 거래는 지금 시장에 가서 “D램 하나 주세요”라고 하면 얼마에 살 수 있는지 입니다. 그런데 애플이 삼성전자 반도체를 살 때는 시장에서 사지 않습니다. 몇 개월 전에 대량 구매를 합니다. 현물 거래로 거래되는 물량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현물거래가는 시장을 읽는데 중요한 지표가 아닙니다.
고정거래가는 기업간 거래 가격이긴 합니다. 고정거래가가 떨어지는 건 애플이 삼성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살 때 예전보다 싸게 산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몇 개월 전에 거래한다 하더라도, 지금 고정거래가가 떨어진다면 내년엔 실적이 안좋아질 것이라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정거래가를 볼 때도 ‘어떤 제품’의 고정거래가 인지를 잘 봐야 합니다. 이 소식에서 사례로 든 건 ‘PC용 제품’ 입니다. 11월 가격이 9월 보다 10%나 폭락했다고 하면 큰일 난 것 같지만, PC용 제품이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습니다.
PC 뿐 아니라 모바일 용 반도체 가격까지 전반적으로 떨어진다면 “위기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도 함정은 있습니다. 요즘은 ‘규격품’ 이 아닌 ‘맞춤형 제품’의 거래 비율이 적지 않습니다. 시장에 공개되는 가격은 모두 ‘규격품’ 가격입니다. 애플이 삼성에게 “우리한테만 꼭 맞는 제품을 만들어 공급해줘”라고 한다면 그 가격은 두 업체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특히 요즘 많이 팔리는 서버용 반도체 제품은 대부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시장에 공개된 가격이 다 내려간다고 해도 그게 반도체 업계 전부를 대변하진 못합니다.
근거 2: 전방 산업이 부진하다
가격이 내려간다랑 연결된 논리긴 하지만, ‘전방 산업 부진’도 반도체 시장 전망을 안좋게 볼 때 자주 나오는 얘기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애플입니다. 요즘 아이폰 판매가 예전같지 않습니다. 애플은 반도체를 많이 구매하는 회사기 때문에, 아이폰 판매가 부진하면 ‘악재’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측면도 생각해 보시죠. 오늘 한국의 통신 3사는 일제히 세계 최초로 5G 전파를 송출했습니다. 내년부터는 인터넷이 더 빨라진다는 얘기입니다.
인터넷이 빨라지면 영화 같은 걸 다운로드 받는 속도도 빨라지겠죠. 혹은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때도 더 좋은 화질로 볼 수 있겠지요. 이걸 뒷받침 해 주기 위해서는 더 많은 반도체가 필요합니다. 즉 폰이 적게 팔려도 반도체 수요는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모든 예측이 맞다고 해도
시장의 모든 부정적 예측이 맞다고 해 보죠. WSTS의 예측대로 내년에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0.3% 역성장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어림잡아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로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50조원 쯤 벌 것 같습니다. SK하이닉스는 매출 42조원, 영업이익 22조원 정도를 거둘 것 같습니다. 여기서 0.3% 덜해도 매출 140조원 짜리 시장이 그대로 남는 것입니다. 영업이익률이 좀 떨어질 순 있겠지만, 그래도 엄청난 흑자는 이어질 겁니다. 올해까지 이어졌던 ‘초호황’은 끝나겠지만, ‘호황’은 계속된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참고로 WSTS는 지난해 말 올해 반도체 시장이 7%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성장률은 15%가 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