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저축에도 ‘너지’가 필요하다

💸 연금 저축에도 ‘너지’가 필요하다

 저축

부담을 덜어주는 시점의 마법

우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최고의 효용, 만족, 이익을 가져다주는 선택이 분명히 있는데도 이와 거리가 먼 결정을 자주 내리곤 합니다. 과식, 과로, 과음, 과도한 흡연은 일상적으로 하는 반면 운동은 너무 적게 하고 교육과 기술 개발 투자엔 소극적입니다. 또한 은퇴 후 풍요로운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데도 저축에는 인색하죠. 모두 근시안적인 의사결정의 결과이고 그 대가는 매우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잘못된 행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도움을 청할 곳은 많습니다. 다이어트, 금주·금연, 연금 저축 증대를 위한 프로그램을 온라인·오프라인 어디서든 찾을 수 있죠. 문제는 이런 프로그램에 실제로 등록하는 행위 자체가 생각보다 실행하기 어려운 과제라는 겁니다.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프로그램이 등록 촉진 장치를 마련합니다. 가령 건강관리 센터는 여러 주에 걸쳐 금연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금연을 원하는 흡연자는 즉시 시작되는 프로그램이나 몇 주 후 시작되는 프로그램 중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은행은 고객의 선택에 따라 정기/저축 예금으로의 즉시 자동이체 또는 미래의 특정 시점에 시작되는 금융상품을 제공합니다. 모두 선택 시점을 현재와 미래로 이분화해 서약 행위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을 줄이도록 설계된 겁니다.

목표를 추구하고 달성하고자 하는 동기를 유발하는 특별한 시점이 있습니다. 어떤 날짜가 ‘새로운 시작 또는 새 출발’로 인식되는 순간이 긍정적인 변화를 끌어내는 적기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존 베시어스(John Beshears) 교수 중심으로 결성된 하버드대 연구진은 이를 연금 저축 프로그램에 적용해봤습니다.

연금 저축을 늘리는 목표의 시작을 알리는 미래 시점을 새해, 봄의 첫날, 생일 등 새 출발이 연상되는 날짜로 설계하면 사람들이 목표지향적 선택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새 출발 프레임의 저력

연구진은 실험에 참여한 미국 4개 대학의 직원 6082명을 두 그룹으로 나눠 각각 다른 조건을 제공했습니다. 1그룹에서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세 개였습니다. 

1️⃣ 즉시 퇴직 연금 기여율 높이기
2️⃣ 3, 4, 5, 6개월 후 퇴직 연금 기여율 높이기
3️⃣ 선택 포기

2그룹도 비슷한 과제를 수행했지만 미래 특정 시점에 연금 기여율을 높이는 계획을 조금 다르게 설정했습니다. 3~6개월이라는 기간이 아닌, 새 출발을 암시하는 날짜를 넣은 건데요. 2그룹의 선택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즉시 퇴직 연금 기여율을 높이기
2️⃣ 참여자의 다음 생일, 새해 첫날 또는 봄의 첫날에 퇴직 연금 기여율 높이기
3️⃣ 선택 포기

연구 결과 2그룹의 참여자는 1그룹보다 선택을 포기하는 확률이 더 낮았습니다. 지금 당장이든 미래의 어느 시점이든 퇴직 연금 기여율을 높이는 선택지를 고를 확률이 1그룹에 비해 약30%p 높았습니다. 특히 미래 시점 계획안 즉, 2️⃣번을 선택한 2그룹 참여자 수는 1그룹보다 54%p나 많았습니다. 

우편 발송 후 8개월 기간 평균 연금 기여율도 2그룹이 1그룹보다 약 25%p 높았습니다. 새 출발 프레임이 즉각적인 연금 기여율 상승뿐만 아니라 연금 참여자가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연금에 투자하도록 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고무적인 결과를 얻어낸 겁니다.

기념일보다 강한 새 출발 프레임 : 연구진은 추가적으로 특수일 프레임을 적용한 플라시보 그룹으로 참가자들이 휴무일이나 기념일을 새 출발로 인식하는지 검증하기 위해 3그룹을 구성했습니다. 추수감사절, 밸런타인데이 등 특별한 휴무일이나 기념일을 미래 특정 시점으로 지정한 3그룹을 2그룹의 새 출발 프레임과 비교해봤는데요. 3️⃣번을 고르지 않은 참여자가 2그룹에서 3그룹보다 55%p 높았습니다. 우편 발송 후 8개월간 평균 연금 기여율도 2그룹이 3그룹보다 31%p나 높았고요. 이는 선택된 특수일이 저축보다는 소비와 연관이 깊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특수일이 우연히 1일이나 월요일 같이 새 출발을 암시하는 날짜와 겹쳤다면 매우 다른 결과가 나왔을지 모르겠습니다.

연금 저축 장려하기 위한 필살기

근로자가 퇴직 연금에 더 많은 저축을 하도록 장려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대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죠. 확정기여형 연금 형태의 확산으로 인해 대부분 근로자는 퇴직 연금 기여금 및 기여율과 관련한 결정을 스스로 내려야 합니다. 또한 퇴직 후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도록 더 많은 저축을 해야 함에도 연금 저축률은 여전히 너무 낮습니다. 현시점의 소비, 보상, 만족, 쾌락 등을 과대평가하는 ‘현재 편향(Present Bias)’이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새 출발 프레임은 현재 편향을 극복하고 연금 저축의 의미 있는 증가를 유도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하고 목표지향적인 너지(Nudge)입니다. ‘몇 달 후부터’라는 막연한 미래 시점 대신에 ‘봄의 첫날’이나 ‘다음 생일’ 같은 새 출발을 의미하는 날짜만 활용해도 미래를 위한 저축이 늘어날 겁니다. 이 연구 결과는 비단 연금 저축에만 적용되는 얘긴 아닙니다. 목표 달성과 날마다 씨름하는 투자자, 경영진, 정책 입안자라면 한 번쯤 시도해볼 만한 전략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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