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적의 40%는 비영업 공간 활용 원칙 인위적 포토존보다 최고의 경험에 초점

면적의 40%는 비영업 공간 활용 원칙 인위적 포토존보다 최고의 경험에 초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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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 요약 : 낙후돼 있던 서울 익선동과 창신동, 대전 소제동을 부흥시키고 상권을 형성한 데 이어 롯데, 신세계 등 대형 유통 업체들의 기획, 시공 등으로 손을 뻗치고 있는 공간 디벨로퍼 ‘글로우서울’은 오프라인 매장을 디자인할 때 다음의 원칙을 반드시 지킵니다.
1. 종횡으로 고객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공간의 ‘순차적인 흐름(sequence)’을 고민한다.
2. ‘피크-엔드(peak-end) 법칙’에 입각해 매장의 중앙과 출구(혹은 입구)에 가장 힘을 준다.
3. 전체 면적의 60%만 영업에 활용하고 40%는 콘텐츠로 채우는 ‘6대4 법칙’을 따른다.
4. 적은 제작비로 사진만 잘 나오게 하는 인위적인 ‘포토존’은 기획하지 않는다.


“디저트가 맛있으면 음료가 부실하고, 인테리어가 멋있으면 디저트가 맛없고, 디저트와 음료가 맛있는데 인테리어가 멋있으면 내 자리가 없다.”
지난해 트위터에 ‘한국 카페 특징’이란 제목으로 올라와 추천 세례를 받았던 글의 내용입니다. 갓 떠오르는 국내 명소, 소위 ‘핫플레이스(핫플)’를 찾았다가 기나긴 대기 줄에 발길을 돌려본 사람이라면 “내 자리가 없다”는 문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좋은 음식과 분위기로 입소문이 난 곳들은 항상 트렌드를 앞서가는 방문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비기 때문입니다. 소셜미디어(SNS)에 인증 사진이라도 남겨보려다가 ‘인싸’ 대열에 합류하는 일이 녹록지 않음을 깨닫고 돌아서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식당, 카페부터 스파, 쇼핑몰에 이르기까지 업종 불문 손대는 매장마다 이렇게 비집고 들어가기 힘든 ‘핫플’로 만드는 업체가 있습니다. 오프라인 공간 운영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며 자영업자들은 물론 대기업의 부러움까지 사고 있는 ‘글로우서울’이 그 주인공입니다. 글로우 서울은 익선동의 ‘청수당’ ‘온천집’ ‘살라댕방콕’ ‘호텔세느장’ 등 식당과 카페를 연달아 성공시키고, 버려진 가옥들이 즐비하던 종로 한복판을 데이트 명소로 변신시키면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2014년 익선동 후미진 골목에 첫 현대식 매장들을 열고 인적 드문 동네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공 사례를 발판으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던 대전 소제동에 적산가옥 건축 양식을 살린 카페 거리를 조성했습니다. 최근에는 해발 120m에 있어 걸어서 오르기조차 힘든 서울 창신동 절벽 마을을 젊은이들의 성지로 탈바꿈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외진 곳에 대체 사람이 올까” 하고 반신반의하면서 절벽 마을을 오르면 운동화를 신은 채 사진 찍기 바쁜 Z세대 무리와 마주하게 됩니다.

이렇듯 낙후된 동네를 부흥시키면서 존재감을 드러내긴 했지만 글로우서울이 도시 재생사업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개장한 롯데 의왕프리미엄 아웃렛 ‘타임빌라스’를 비롯해 곧 개장을 앞둔 신세계 수원 스타필드 등 대형 쇼핑몰의 경영 컨설팅과 공간 기획, 시공까지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작년 한 해에만 외주 개발 의뢰가 500건이 넘었습니다.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활약하고 있는 것 외에도 공간 디자인, 브랜딩, 부동산 개발 등 전방위로 손을 뻗치고 있는 셈입니다.

글로우서울의 유정수 대표는 회사를 ‘공간 디벨롭퍼(developer)’라고 정의하고 공간에 최적화된 콘텐츠, 건축 디자인, 인테리어, 브랜드 관리, 운영 등의 종합 솔루션을 제공하는 업체라고 설명합니다. 애플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제공하면서 완성도 높은 스마트 기기를 만들고 있듯이 부동산 개발 및 건축이라는 ‘하드웨어’와 콘텐츠 디자인 및 운영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같이하는 회사만이 완성도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게 그의 철학입니다. 이처럼 공간에 대한 모든 것을 망라하는 ‘풀필먼트(fulfillment)’ 기업을 표방하는 글로우서울의 유 대표를 DBR가 만나 손대는 매장마다 지역의 랜드마크로 만들어내는 노하우를 들었습니다.

상권이 없는 곳에 상권을 만드는 역발상
창업을 할 때 상권 입지 분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글로우서울이 지금까지 주요 매장을 연 익선동, 대전 소제동, 창신동은 모두 상업용 건물이라곤 거의 찾아보기 힘든 소외 지역이었습니다. 이를 두고 대규모 자본을 가지고 부동산을 전략적으로 개발하는 투기업자가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지만 출판사에서 근무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유정수 대표가 2015년 9월, 나이 서른여섯에 요식업에 뛰어들 당시만 해도 그의 수중에는 대출을 끌어다 서울에 자가 하나 겨우 마련할 정도의 목돈밖에 없었습니다. 건물주도 아니고 꼬박꼬박 임대료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유동 인구가 거의 없고 상권이 형성되지 않은 곳에 매장을 내는 것은 큰 위험이 따르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유 대표는 어쩌다 이렇게 낙후된 지역에 발을 들이게 된 걸까요.

시작은 익선동이었습니다. 유 대표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무렵의 익선동은 동네 이름보다는 낙원 상가 인근으로만 알려져 있었습니다. 지역이 슬럼화되면서 빈집들이 방치돼 있었고, 지구 단위 기획으로 묶여 있어 증축이나 신축 허가도 나지 않았습니다. 3호선과 5호선, 1호선이 가로지르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종로3가 한복판에 있지만 어르신들이 간간이 찾는 고깃집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상권이라 할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강북과 강남에 사는 친구들이 빠르게 접선할 수 있는 이곳에서 자주 놀곤 했던 유 대표는 여기에 지인들과 소소하게 모일 수 있는 아지트 하나를 갖고 싶었고, 요리 잘하는 친구 한 명을 어렵게 설득해 가게를 열었습니다. 교통도 제법 괜찮고, 임대료도 싸고, 음식도 맛있고, 대박을 꿈꾸는 것도 아니니 가게 운영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장사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이런 무모한 결정도 가능했습니다.

개발 전 대전 동구 소제동(왼쪽)과 서울 종로 익선동
태국 리조트를 구현한 ‘살라댕방콕’(왼쪽)과 버려진 모텔을 동유럽식 호텔로 개조한 카페 ‘호텔세느장

호기롭게 연 첫 이탈리아 레스토랑인 ‘글로우 키친’의 성적표는 처참했습니다. 젊은 사람들의 인적이 끊긴 동네에서 양식당을 열 때부터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두어 달은 지인들의 방문 덕분에 잘되는 듯 보였으나 점점 손님은 줄고, 월세 낼 돈과 직원 월급 줄 돈도 바닥이 났습니다. 사업을 시작할 땐 손님이 없으면 사람을 덜 쓰면 된다고 순진하게 생각했는데 아무리 덜 써도 최소 직원은 필요했고 예상하지 못한 지출들로 인해 한 달에 적자가 600만∼700만 원씩 쌓여갔습니다. 돌이켜 보면 문제가 한둘이 아녔습니다. 메뉴 가짓수만 100개가 넘어 ‘김밥천국’을 방불케 했고, 지인이 요청하는 건 닥치는 대로 팔았습니다. 피자와 파스타 가게인데 소주를 찾는 손님이 있으면 소주를, 위스키를 찾으면 위스키를 냈습니다. 그리고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가장 큰 장애물은 단연 열악한 ‘입지’ 조건이었습니다.

장사를 제대로 하려면 익선동부터 떠나는 게 누가 봐도 당연했숩니다. 그런데 가게를 운영하면서 시간을 보낼수록 동네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가 유 대표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당시 익선동은 상업적 관점에선 황무지나 다름없었지만 사진 동호회와 애호가들 사이에서 노다지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잘 정돈되고 보존된 북촌 한옥마을과 달리 날 것 그대로의 100년 묵은 생활형 한옥들과 실제 주민들의 정취가 묻어나는 골목이 최고의 ‘출사 포인트’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습니다. 정형화된 기와집이나 전통 담벼락 대신 수십 년간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기괴한 전선과 타일, 최소한의 보수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가옥들이 레트로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낡고 허름한 가옥 틈새로 전문 포토그래퍼와 늘씬한 모델들이 사진을 촬영하는 풍경이 연출되곤 했습니다. 이처럼 특색 있는 공간을 버리고 떠나기는 너무 아까웠습니다. 무엇보다 소셜미디어(SNS)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시대였고 ‘사진이 잘 나오는 포인트’라는 건 마케팅 측면에서의 잠재력을 뜻했습니다.

이에 유 대표는 동네를 떠나는 대신 동네를 바꿔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의 발길을 유도해야 했고, 눈길을 끌려면 매장한 개론 역부족이었습니다. 일단 어느 정도 콘텐츠가 있어야 집객 효과가 발생하고, 그래야 콘텐츠도 더 모이는 선순환의 고리가 정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식당과 카페, 먹고 마시는 일은 가까운 거리에서 해결이 돼야 대중을 끌어들일 빌미라도 제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매장을 확충하기 위해 유 대표는 집 살 돈까지 모두 긁어모아 익선동에 있던 한옥 다섯 채를 임대했습니다. 그리고 글로우키친과 비슷한 시기 익선동에 1호 카페를 열었던 익선다방(현 익선다다)과 의기투합해 동시다발적으로 매장을 확장하면서 시너지를 도모했습니다. 이때 당시 60평짜리 공간의 임대료가 월 150만 원 안팎에 불과했기에 감당할 수 있는 야심 찬 계획이었습니다. 물론 이곳을 생활 터전으로 삼고 30∼40년씩 살던 주민들이 집을 상업용 공간으로 변경하는 일이 드물다 보니 임대 공간을 찾는 일부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오는 집마다 속속 계약하며 계획을 실천해나갔습니다.

다음으로 공간에 걸맞은 이야기를 짰습니다. 출판사에서 책을 기획해본 경험이 있고 스토리텔링에 대한 지식이 있었는데, 이를 식당에 접목할 생각을 미처 못 하다가 실패의 쓴맛을 보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브랜드를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이야기가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입니다. 이에 그는 이미 브랜드가 훼손된 글로우키친을 접고 100여 개에 달하던 메뉴를 나라별로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콘셉트로 각 나라를 다닐 때 가장 좋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국적인 공간들을 디자인했습니다. 한옥이 즐비한 주변 경관과는 대비되는 휴양감을 선사하도록 디자인한 것입니다. 이렇게 새로 문을 연 매장이 태국 리조트를 구현한 ‘살라댕방콕’, 고요한 일본 정원을 연출한 일식당 ‘심플도쿄’, 그릴 스테이크 전문점 ‘익동정육점’, 버려진 모텔을 동유럽식 호텔로 개조한 카페 ‘호텔세느장’ 등입니다. “한 번 망한 브랜드를 되살리는 건 죽은 자를 되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을 잉태할 수는 있어도 죽은 자를 부활시키긴 어렵듯이 낡은 브랜드를 리뉴얼하는 것보다는 처음부터 새로운 브랜드를 기획하기로 했다.” 유 대표의 말입니다.

낙후된 지역의 오리지널리티에 주목
매장 수가 하나둘 늘고 관련 해외 여행지를 방불케 하는 멋진 공간들의 사진이 SNS에 올라오자 예상대로 손님이 알음알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국내외 언론사 등 미디어에 노출되고 광고 촬영지 등으로 활용되면서 익선동이 사진과 영상을 찍기 좋아하는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10월 매장들이 오픈한 지 6개월 만에 네이버에 ‘익선동’이 검색어 1위에 등극하고, SNS에서 최단기간 1만 건을 돌파하는 등 이슈의 중심에 섰습니다. 5년간 꾸준히 돈을 벌자 임대하던 공간을 직접 매입할 자금이 생겼고 부동산 확보를 통한 안정적인 운영도 가능해졌습니다.

익선동이 살아나는 것을 목격하면서 유 대표는 반드시 입지가 좋은 곳에 자리 잡지 않아도 스스로 그런 입지를 만들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물론 실패 위험은 있지만 누가 봐도 좋은 A급 입지를 고른다 해도 비싼 땅값이란 위험이 따라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미 가격이 오를 대로 오른 금싸라기 땅에서 높은 분양가 등 다른 차원의 위험을 감수하느니 가격도 싸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게 훨씬 의미도 있고 성공할 경우 보상도 크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사람들을 찾아오게 하기까지 유무형의 비용이 들겠지만 최소 5개 정도의 매장과 콘텐츠만 확보해도 궁금한 사람들은 기꺼이 찾아오고 집객 효과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체득했습니다.

낮은 임대료 외에 낙후된 지역이 가지는 또 다른 강점은 바로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였습니다. 고층 빌딩이 다 올라가 있고 개발이 끝난 곳에는 더 파헤칠 이야기나 추가할 수 있는 부가가치가 제한적인 데 반해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지만 미개발된 곳일수록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사람들의 기대 심리를 자극하고 참신함을 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유 대표는 “역사적 사건 중에서도 눈부신 한강의 기적보다는 남북 분단, 6·25 전쟁, 일제 강점 등의 주제가 영화 소재로 다뤄지듯이 주요 서사는 아픔에서 비롯된다”면서 “이미 화려하게 발전한 테헤란로 등 도심보다는 묻혀 있고 외면받아온 공간일수록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여지가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렇게 남들이 모르는 숨겨진 공간을 찾던 글로우서울이 익선동에 이어 두 번째로 발굴한 곳이 바로 대전 동구 소제동입니다. 대전역 인근의 이 동네에는 일제 강점기에 처음 깔린 철도와 철도 종사자들의 숙소인 관사가 있습니다. 일본식 적산가옥이 모여 있는 독특한 지역이자 100년의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지만 2019년 글로우서울이 진입하기 전까지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마을이 가진 오랜 역사에 매료된 유 대표는 이 적산가옥들을 잇달아 매입했습니다. 이 같은 과감한 투자도 지역의 땅값이 주변 시세와 비교해 저렴했기 때문에 가
능했습니다. 그리고 익선동에 진출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가옥의 양식은 보존하되 여행의 콘셉트와 세련된 감각을 더한 매장들을 열었습니다.

이런 근대도시의 정취와 현대의 멋이 어우러지면서 소제동은 빠르게 젊은이들의 데이트 명소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유 대표는 “이야기를 발굴한다는 게 꼭 지역적 특색, 특산물을 알리거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오랜 시간을 견뎌낸 공간이 흔적 없이 사라져 ‘시간의 공백(missing link)’이 생기기 전에 공간을 현대화하고 새롭게 보이게 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라고 말했습니다.

2022년 현재 글로우서울이 도시 재생의 불씨를 심고 있는 곳은 1960년대 지어진 옛 주택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창신동 절벽 마을입니다. 이미 불씨가 번지기 시작하면서 카페 ‘도넛정수’, 태국 식당 ‘밀림’ 등 지난해 하반기에 문을 연 매장이 SNS 핫플로 떠오르고 있고 인근에 루프톱 카페들도 생겨나면서 동네가 사진 명소로 입소문
이 나고 있습니다. 계획에 따르면 올해 안에 직영 매장은 5개까지 늘어날 전망입니다. 절벽이라는 이름답게 고지대에 위치하고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분명 전통적인 상권 입지를 고려할 때 부적격 요소입니다. 하지만 일단 사람들의 관심이 생겨야 여러 편의 시설과 인프라도 구축될 수 있다는 게 글로우서울의 이전 경험이 알려준 교훈입니다. 익선동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 뒤에야 정부가 한옥문화 지구로 선정하고 보존, 관리에 나섰고, 소제동 역시 글로우서울의 진입 이후 대전시가 역사문화공원으로 지정한 바 있습니다. 창신동도 콘텐츠가 늘어나고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하거나 민원을 제기하기 시작하면 주차장 등 인프라도 따라올 수 있다는 게 유 대표의 설명입니다.

영감보다 시스템에 의존하는 공간 디자인
그렇다면 이렇게 고정관념을 깬 ‘불편한’ 입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글로우서울이 운영하는 매장들을 찾아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공간 디자인, 시각디자인, 콘텐츠 노출 등에 있어 대중을 사로잡는 노하우는 무엇일까요. 유 대표는 “브랜딩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영감에 의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우리는 영감보다 시스템에 의존한다”면서 “즉각적으로 아이디어가 구현될 수 있는 게 아니라 브랜딩까지 가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고 여러 요소가 축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브랜드를 ‘예술의 영역’이 아니라 ‘산업의 영역’에서 바라본다는 설명입니다.

실제로 이 회사의 직원들은 수십∼수백 개에 달하는 프로젝트를 관통하는 의사결정의 기준, 일종의 알고리즘을 따라 움직입니다. 기획 단계에서 체크리스트를 하나하나 작성해보면서 디자인과 콘텐츠를 다듬고 깎습니다. 그리고 브랜드의 방향성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겨 이 알고리즘을 수정하지 않는 한 최대한 일관성 있게 주어진 알고리즘을 준수합니다. 그중에서 회사가 공간 디자인과 관련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규칙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객의 시선을 따라가라: 수직보다 종횡
일반적으로 건축가나 공간 디자이너들은 CAD(Computer-Aided Design)를 켜서 전체 평면도부터 그린 뒤 3D 툴로 입체적인 스케치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글로우서울에서는 디자이너들에게 이 과정을 반드시 거꾸로 하도록 주문합니다. 먼저 3D 툴로 스케치부터 시작해서 가장 마지막에야 평면도를 그리도록 하는 식입니다. 이 같은 접근은 업계의 관행에 비춰보면 언뜻 유별나지만 고객의 시선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고객이 특정 장소를 방문할 때 위에서 아래로 전체 공간을 내려다보고 조망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대개 본인의 위치에서 앞과 옆의 단면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한 번에 모든 공간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고 이동하면서 시간 순서대로 달라지는 풍경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매 순간순간 고객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고민하지 않은 채 전체 도면부터 그려놓고 시작하면 개별 공간의 특성에 맞는 그림이 나오기 힘듭니다.

유 대표는 “건축물을 하늘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건 신과 건축가밖에 없다”면서 “그 누구도 건물을 수직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종횡으로 보는 게 훨씬 중요한데 건축가들은 건축 도면에 익숙해서 개별 공간이 가진 특성을 쉽게 간과하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글로우서울은 공간의 ‘순차적인 흐름(sequence)’을디자인의 주요 요소로 고려합니다. 다시 말해, 고객은 매장 입구, 안쪽, 구석 등을 동시에 보지 못하고 차례로 이동하기 때문에 카메라 무빙을 따라가듯이 순간순간 어떤 장면이 보일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창신동 절벽 마을에 있는 태국 식당 ‘밀림’은 이런 철학을 잘 구현한 매장입니다. 밀림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길을 잃은 게 아닐까’라는 의심이 수시로 들 정도로 식당까지 가는 길이 험난하고 불친절합니다. 구불구불 인적 드문 골목길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골목 맨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입구가 자취를 드러냅니다. 그런데 이렇게 동굴 같은 곳을 헤매다 입구를 통과하는 순간 골목 안쪽에선 상상하기 힘든 장면이 펼쳐집니다. 탁 트인 절벽의 광경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폐쇄적인 공간이 개방적인 공간으로 바뀌는 순간의 극적인 반전. 이렇게 시간 순서에 따른 극적인 효과가 글로우서울의 노림수이자 밀림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입니다. 이런 식으로 연속적인 동선을 따라가면서 사고하지 않으면 자칫 공간 디자인을 평면도에 꿰맞추는 형국이 된다는 게 유 대표의 설명입니다.

창신동의 태국 식당 ‘밀림’은 공간의 순차적인 흐름과 입구(출구)를 강조하는 글로우서울의 공간 디자인 원칙을 따랐다

2. 고객의 기억에 각인되라: 피크-엔드 법칙
이 같은 밀림의 디자인에는 매장의 ‘입구’를 중요시하는 글로우서울의 또 다른 원칙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입구는 단지 첫인상을 결정할 뿐 만 아니라 고객에게 마지막 인상을 남기는 출구이기도 합니다. 공간의 연속성을 고려한다는 의미가 매 순간 똑같은 비중으로, 똑같은 힘을 줘야 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실제로 글로우서울은 ‘피크-엔드 법칙(peak-end rule)’을 기반으로 매장의 중앙과 출구에 고객을 사로잡을 만한 가장 핵심적인 무기를 배치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교수가 제시해 널리 알려진 피크-엔드 법칙은 사람들이 나중에 어떤 경험을 평가할 때 매 순간 느낀 만족감의 평균값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절정(peak)에서의 경험과 결말(end)에서의 경험의 평균을 토대로 휴리스틱 하게 판단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법칙을 토대로 글로우서울은 아무리 협소한 공간일지라도 매장 중앙에 반드시 눈길을 끄는 오브제를 심어 넣고, 모든 경험이 종결되는 퇴장의 순간에도 고객의 기억에 강렬하게 남을 만한 요소를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유 대표는 “오프닝이 정말 화려한 영화여도 결말이 별로면 안 좋은 기억으로 남고, 반대로 결말이 정말 마음에 들거나 반전이 있으면 걸작으로 기억이 되곤 한다”면서 “마지막에 무엇으로 각인되느냐가 앞의 모든 경험을 뒤엎을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제주 속 자연을 구현한 카페 ‘청수당’을 들어가고 나올 때는 대나무 숲 사
이의 돌다리를 건너가야 합니다. 아울러 매장 중심부에는 개울물이 흐르고 화산석, 이끼, 초목들이 조경을 완성합니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의 료칸을 연상시키는 샤부샤부 전문점 ‘온천집’ 입구에는 설원을 떠오르게 하는 흰색 자갈밭과 디딤돌이 펼쳐져 있고 양옆에서 호롱불이 길을 밝힙니다. 이 돌을 밟으며 걷다 보면 고객은 마치 원래 머물던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이끌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렇게 들어간 온천집의 중정에는 향나무, 대나무, 온양석 등으로 둘러싸인 노천 온천이 있고, 연무기를 통해 뿜어내는 김은 실제 일본의 온천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착시를 일으킵니다. 이때 노천탕이 피크, 입구는 엔드의 역할을 합니다.

카페 ‘청수당’에 들어가고 나갈 때는 대나무 숲 사이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일본의 료칸에서 영감을 얻은 일식당 ‘온천집’의 중앙에는 노천탕이 자리하고 있다

3. 공간의 여백을 사수하라: 6대4 법칙
하지만 이렇게 중심부의 3분의 1 이상과 출구(혹은 입구)를 공들여 꾸미는 데는 반드시 기회 비용이 따릅니다. 공간의 면적 대비 수익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글로우서울의 모든 디자이너는 마치 좌우명처럼 ‘6대4 법칙’을 외우고 있습니다. 이는 전체 매장 면적의 60%만 영업에 활용하고 나머지 40%는 영업 목적이 아닌 다
른 콘텐츠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법칙입니다. 조경이든, 전시든 콘텐츠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를 수 있겠지만 40%의 여백을 둠으로써 오히려 공간의 매력을 배가하고 나머지 60%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철학이 이 법칙의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이런 볼거리를 중앙과 장내 곳곳에 배치할 때 소외되는 면적 없이 고객이 어떤 좌석에 앉든, 어떤 각도에서 바라보든 각기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객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지 않고 일정한 간격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만약 매장 내 볼거리가 부족하면 모두가 창가 자리나 룸만 원한다든지 선호의 쏠림이 생기고 경험의 편차가 생길 위험이 있습니다. 이렇게 외면받는 곳을 없애고 매장 전체가 하나의 공연장, 전시장처럼 문화 공간으로서 어느 위치에서든 볼거리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유 대표의 설명입니다. 글로우서울이 법칙에 이름까지 붙여가
면서까지 이 ‘골든 룰(golden rule)’을 강조하는 까닭도 명문화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영업 공간을 확장하고 싶은 유혹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매장에 조금이라도 더 많은 테이블을 놓고 좌석을 배치하면 줄 서서 기다리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고객들도 수용할 수 있고 매출과 수익도 늘릴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법칙을 강제함으로써 공간의 여백을 없애고 회전율을 높이려는 욕심을 원천 차단하고 있습니다. 유 대표는 “살라댕방콕의 경우도 매장 크기가 40평에 달하는데 마당이 워낙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40석밖에 넣지 못했다”면서 “만약 주방을 제외한 30여 평에 모두 좌석을 넣었으면 훨씬 매출이 올라가겠지만 그렇게 하면 그만큼 고객의 거리를 침범하고 경험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율을 지키는 것 못지않게 너무 뻔하지 않은 콘텐츠로 이 40%를 채우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령 태국 음식점인 살라댕방콕은 동남아의 이국적인 리조트를 연상시킵니다. 매장 중앙에는 휴양지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 수영장이 있고, 주변 곳곳에는 야자수와 폭포가 에워싸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라댕방콕 창업 당시만 해도 한국에 있던 태국 음식점의 인테리어 소품은 코끼리 상이나 불탑, 알록달록한 태국 사원 그림 일색이었습니다. 이런 틀에 박힌 전통문화에서 탈피해 라탄과 전등갓 등 참신한 소품을 더하려는 노력은 ‘호화로운 열대 리조트에서 즐기는 캐주얼 타이 다이닝’이라는 새로운 콘셉트로 연결됐습니다.

4. 손쉬운 포토존은 경계하라: 사진보다 경험
글로우서울이 운영하는 매장들의 사진들이 SNS에 많이 올라오고 ‘사진 찍기 좋은 공간’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보니 글로우서울에 컨설팅을 의뢰하는 업체들은 대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mable)한 공간을 디자인해달라’고 주문합니다. 특히 방문객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photo zone)’을 조성해 달라는 요청도 적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입소문 마케팅을 겨냥해 접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글로우서울은 절대로 포토존을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합니다. 사진이 찍히는 건 환영하지만 사진이 찍히기 위한 장소를 인위적으로 기획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포토존에 대한 회사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마디로 ‘적은 제작비로도 손쉽게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곳’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설악산 정상에서도 사진을 찍어 SNS에 포스팅합니다. 하지만 설악산 정상을 포토존이라 부르지 않는 까닭은 이곳이 사진만을 남기기 위해서 의도된 지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상까지의 힘든 등반의 경험이 준 성취감과 쾌감, 아름다운 경치를 기억하고 싶은 사람들이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을 뿐입니다. 이처럼 사진으로 박제하고 싶을 만큼 인상적인 ‘경험’에 초점을 맞출 뿐 경험이 배제된 사진용 공간을 만드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게 글로우서울의 방침입니다. 마치 낙산공원 벽화마을의 천사 날개 그림, 착시현상을 의도하고 트릭아트(TRICK ART) 미술관처럼 사진을 찍으면 특별해지지만 실제 방문해서 눈으로 봤을 때 특별하지 않은 공간은 경계합니다.

이 같은 원칙에 따라 직원들 역시 특정 (벽)면이나 점을 강조하기보다는 어느 각도에서 어느 장면을 봐도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입체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유 대표는 “포토존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다르다는 의미”라면서 “현장에 머무르는 동안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고 싶고 이런 경험에서 감동을 얻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사진도 찍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성공하는 공간 브랜드의 조건

1. 스칼라가 아닌 ‘벡터(크기와 방향)’
이렇게 브랜딩이 반짝이는 영감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높은 성공률을 입증해야 합니다. 그러나 첫 매장인 글로우키친의 문을 닫으면서 유 대표가 배운 점은 소비자에게 좋은 것을 전부 모아놓고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다 담는다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초기 방향 설정이 중요하고 브랜드는 ‘벡터(vector)’ 와 같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물리학에서 스칼라(scalar)는 ‘크기’로 결정되는 양을 가리키고, 벡터는 ‘크기+방향’ 모두에 의해 결정되는 양을 가리킵니다. 가령 한 사람은 10의 힘으로, 다른 사람은 20의 힘으로 같은 물체를 민다고 해봅시다. 두 사람이 미는 방향이 같으면 총 30의 힘이 물체에 더해지지만 방향이 반대 방향이면 오히려 둘이 상쇄돼 10이란 힘밖에 가해지지 않습니다. 브랜딩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간 디자인, 콘텐츠, 사이니지 (Signage, 간판이나 표지판 등 정보를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구조물), 음악 등 매장을 구성하는 거의 모든 요소에 힘을 주고 CS(고객 만족)에 무게를 둬도 그 방향이 제각각이면 오히려 각 요소가 서로의 힘을 빼앗기 쉽습니다.

이처럼 브랜드는 벡터와 같기에 ‘선택과 집중’이 중요합니다. 가령 F&B사업부가 메뉴를 개발할 때 소비자에게 좋은 것만 대접한다고 모든 식자재를 최상급으로 공수해 파스타 한 그릇의 가격을 5만 원씩 받는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소비자의 지불 용의에 맞게 합리적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정해진 예산 내에서 수익을 내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힘을 주는 부분이 있으면 반드시 빼는 부분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유 대표는 “직원들에게도 항상 ‘재료발’로 승부를 보려면 애당초 요리사가 필요 없고, 스페인산 타일 같은 최고급 자재로 승부를 보려면 공간 디자이너가 필요 없다고 강조한다”면서 “갓 잡은 신선한 1++ 한우는 요리사 없이 굽기만 해도 맛있지 않나”고 반문했습니다. 꼭 필요한 브랜드의 방향과 부합한다면 1++ 한우든, 스페인산 타일이든 당연히 쓸 수 있겠지만 이때 어디에서 지출을 덜어낼지를 알고 소비자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을 찾는 게 곧 실력입니다.

바라산과 백운호수 사이에 자리해 자연과 어우러지는 콘셉트를 강조한 롯데 의왕 프리미엄 아웃렛 ‘타임빌라스’

비슷한 맥락에서 글로우서울은 공간의 새로움에 힘을 많이 주기 때문에 음식이나 음료에서는 힘을 빼는 편입니다. 주변과 대비되는 차별화된 풍경을 선사하면서 음식이나 음료까지 기대되는 맛에서 너무 벗어나면 새로움과 새로움이 만나 좋은 경험이 배가되기보다 오히려 불편하게 다가가거나 역효과가 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익
선동의 ‘살라댕방콕’이나 소제동의 ‘치앙마이방콕’, 창신동의 ‘밀림’ 등 태국 음식점들도 메뉴는 비슷비슷하고 한국인들에게 제법 친숙한 맛입니다. 또한 ‘온천집’의 경우도 노천탕이라는 공간의 특색과 잘 어우러지게 한 방향으로 정렬이 되면서도 대중에게 낯설지 않은 샤부샤부를 메뉴로 선택했습니다.

이렇듯 무작정 최고의 것, 새로운 것을 고집하기보다는 무엇에 방점을 둘 것인지 방향을 잘 설정하려면 프로젝트마다 사공이 많아서는 안 됩니다. 이에 따라 글로우서울은 프로젝트별로 선장의 역할을 하는 팀장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합니다. 대표가 전부 관여하기엔 프로젝트가 너무 많기도 하고, 선장이 시행착오를 겪거나 실패하더라도 여럿이 참견해서 방향을 잃는 것보다는 철저하게 망하고 배우는 게 낫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프로젝트별로 서로 다른 역량을 보유한 약 5∼6명의 크리에이터를 배정하고 디자이너든, 건축가든, 콘텐츠 개발자(ex. 메뉴 개발자, 스파 전문가 등)든 그중 한 명이 리더의 역할을 맡도록 권한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회사의 직원 68명 가운데 경영지원 부문에 종사하는 7명을 제외한 61명이 모두 이런 ‘크리에이터’라는 카테고리로 묶입니다. 유 대표는 “직원마다 핵심 무기가 다른 만큼 압도적인 역량을 가진 특정 개인의 플레이에 기대기보다는 모든 프로젝트를 팀플레이로 하되 과정을 지휘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감독을 반드시 둔다”고 말했습니다.

2. 가성비가 아닌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
글로우서울이 현재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매장 브랜드는 약 30여 개 입니다. 당연히 잘되는 브랜드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안 되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매장 대부분은 팬데믹의 여파를 비껴갔고 2000평이 넘는 야외 공간을 강조한 롯데 의왕 프리미엄 아웃렛의 경우 해외여행을 못 가는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들며 특수를 누렸습니다. 물론 낡은 브랜드 중 일부는 수명이 단축되긴 했지만 손익분기점이 평균 1년이고 운명을 다한 브랜드는 원래도 빠르게 정리하는 편이기 때문에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크지는 않았다는 설명입니다. 그렇다면 오프라인 공간 기획 업체인 글로우서울은 어떻게 오프라인의 가치가 위협받는 팬데믹 상황에서도 건재함을 과시할 수 있었던 있었을까요.

일단 글로우서울은 오프라인 공간이 계속해서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영역으로 크게 두 가지를 꼽고 있습니다. 하나는 레포츠, 즉 야외 활동이고 다른 하나는 여행입니다. 이는 전반적으로 한국인의 여가 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나타난 트렌드입니다. 주5일제, 주 52시간 등이 정착되고 근무시간이 짧아지면서 사람들이 주말에 야외에 나가거나 여행을 하는 빈도가 증가한 만큼 앞으로도 이런 흐름이 쉽사리 꺾이지 않을 것이란 게 회사의 관측입니다. 늘어난 여가를 누가 빼앗느냐를 두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대결이 격화되고 있을 뿐입니다. “원래 이 트렌드가 최소 10년 이상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자연 친화적인 야외 공간, 여행지를 테마로 한 공간을 기획해 왔는데 코로나19로인해 예상했던 미래가 너무 빨리 다가왔다”면서 “코로나 시기와 잘 맞아떨어져 ‘때아닌 특수’를 누렸지만 한편으로는 ‘때아닌 (매출) 절벽’을 대비해 새로운 트렌드를 발굴해야 한다는 부담도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콘셉트는 바뀌더라도 핵심은 바뀌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오프라인 공간이 소비자들의 여가 시간을 온라인에 빼앗기지 않으려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아니라 ‘시성비(시간 대비 성능)’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소비자들은 물건을 얼마나 싸게 살 수 있는지가 아니라 황금 같은 주말이나 평일 저녁 시간을 얼마나 알차게 보낼 수 있는지에 따라 지불 용의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온라인이 따라올 수 없는,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경험을 선사하는 것이 디지털 혁신 시대에 오프라인 공간 브랜드가 살아남기 위한 조건입니다.

글로우서울은 지금까지 전체 부동산의 약 10%인 상업용 공간에서 이런 기획력을 주로 입증해 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동안 구축한 시스템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20%에 해당하는 오피스나 70%에 달하는 주거용 공간 분야에서도 최적화된 콘텐츠를 개발하고 건물의 가치를 극대화하면서 지역의 랜드마크를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 작성자 김윤진 : DB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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