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그림은 미국의 산업생산과 한국 수출의 관계를 보여줍니다. 미세한 미국의 생산 변동이 한국 수출의 격렬한 변동으로 이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경영학계에서는 ‘채찍효과(Bullwhip effect)’라고 부릅니다.  채찍효과란 채찍의 손잡이 부위를 몇 센티만 움직여도 채찍의 끝 부분이 몇 미터 이상 움직이듯, 공급사슬(Supply Chain)의 가장 끝에 위치한 기업들이 월등히 큰 재고의 변화를 겪는 현상을 지칭 합니다.

제일 먼저 채찍효과를 발견한 곳은 세계적인 생활용품 제조업체인 프록터앤갬블(‘P&G’)로, P&G의 아기 기저귀 물류 담당 임원은 수요 변동을 분석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아기 기저귀라는 상품의 특성상 소비자 수요는 늘 일정한데, 소매점 및 도매점 주문 수요는 매우 불규칙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문 변동의 폭은 ‘최종 소비자→소매점→도매점→제조업체→원자재 공급업체’로 이어지는 공급사슬에서 최종 소비자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증가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즉 한국이나 중국, 혹은 대만 등 선진국 소비자들의 수요에 의존하는 물품을 제조하는 기업이 많은 나라일수록 선짓국 소비자의 사소한 주문 변동에도 큰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채찍효과는 왜 발생할까?

다양한 요인이 채찍효과를 발생시키지만,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수요의 왜곡에 있습니다.  소비자의 수요가 갑자기 늘면 소매점은 앞으로 수요 증가를 기대하는 심리로 기존 주문량보다 더 많은 양을 도매점에 주문하게 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예전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꼬꼬면 사례가 대표적 입니다. 이 대목에서 잠깐 금융감독원 권오상 전 국장이 쓴 책 『고등어와 주식,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의 한 대목을 인용해보겠습니다.

당신의 회사는 제빵 기계를 만드는 회사이다. 각종 부품업체로부터 부품을 구매해 기계를 만들어 제빵업자에게 판매한다. 그러면 제빵업자는 다시 빵을 만들어 제과점에 판매하고, 제과점은 제빵업자로부터 사온 빵을 다시 개인들에게 판매한다.  (중략)

문제의 시발점은 개인들의 기호 변화다. 보통 하루에 100개의 빵을 제빵업자로부터 사온다고 하자. 그러던 어느 날부터 갑자기 빵이 많이 팔리면서 재고가 부족해 못 파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래서 제빵업자에게 이제부터는 날마다 150개를 공급해 달라고 주문한다. 그러자, 경쟁 빵집의 거동을 유심히 관찰하던 다른 빵 가게들이 ‘우리도 경쟁에서 밀릴 수 없지!’라며, 덩달아 주문량을 늘린다.

이제부터는 제빵업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자. 기존에는 10군데의 빵집에 각각 100개씩의 빵을 공급해 왔다. 빵 100개 당 빵 만드는 기계 1대와 직원 4명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총 10대의 기계와 40명의 직원이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약속이나 한 듯, 10곳의 빵집이 주문을 각기 150개로 늘렸다.  그러니까 이제는 총 1,500개의 빵을 만들어야 요구 받은 주문을 채울 수 있다 . (중략)

결국 고민 끝에 이 제빵업자는 기계를 5대만 추가 주문하는 게 아니라 10대를 주문한다. 그리고 그 즉시 소문이 퍼진다. 경쟁 제빵업체들은 안절부절 못한다. 시장 조사를 해보니, 제과점들이 주문을 대폭 늘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질세라 경쟁회사들도 기계주문 대수를 늘리고 직원도 뽑는다,

자. 이제 우리의 제빵 기계업자의 입장이 되어보자. 갑자기 지역 내에 있는 5개 제빵업체들이 모두 10대씩 기계를 주문하는 거다. – 책 212~214쪽

꼬꼬면 사례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당시 공급이 주문을 따라가지 못했고 또 사람들은 자신이 맛보지 못한 히트 상품에 대한 관심 때문에 더 열렬하게 꼬꼬면 맛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결국 꼬꼬면을 만들어 팔던 ㈜팔도는 전남 나주에 공장을 새로 설립하고, 이천 공장도 라인을 증설하는 등 팔도가 사업 확장에 사용한 비용만 2000억 원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꼬꼬면의 인기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2013년 팔도는 라면 시장 점유율 10%를 돌파하지 못하고 다시 업계 4위로 주저앉고 말았고, 나주 공장의 봉지면 라인 하나는 가동을 중지하고 말았습니다.

반도체는 ‘채찍의 끝’

각 경제주체들은 자신이 주어진 ‘정보’ 하에서 최대한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각 경제주체에게 전달되는 정보가 그리 정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 특히 서로 경쟁 관계에 있기에, 제대로 된 정보가 전달되기 보다 수 많은 노이즈 속에서 오히려 진실이 은폐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소비자부터 자신이 정말 신제품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계속 주문할 것인지 여부를 알지 못합니다. 다들 깜깜이 절벽 속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난이도 높은 일을 추진하는 셈입니다.

이 결과 공급사슬망의 끝에 위치한 기업들은 항상 급격한 수요의 변동에 직면하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반도체 산업 입니다. 지난 해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공전의 호황을 기록했지만, 4분기 접어들면서 가격이 떨어지는 가운데 실적 전망이 갑자기 나빠졌습니다. 미국 등 선진국의 정보통신제품 소비, 고용 통계 등은 안정적으로 증가하는데 반도체 수출이 감소한 것입니다.

누구나 그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어하지만,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습니다. 아마존을 비롯한 클라우드 서비스 회사들의 주문이 줄어들었는지, 아니면 2018년 10월부터 시작된 주가 폭락 사태 때문에 반도체 유통기업들이 겁에 질려 재고를 처분하려 나섰는지. 아마 여러 요인이 섞여 있겠죠.  하지만 시장에서는 미국 등 선진국의 정보통신제품 소비가 견조한 가운데 반도체 수요가 준 것을 ‘채찍 효과’로 이해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반도체는 한국의 제1 주력상품입니다. 전체 수출의 6분의1을 차지합니다. 그런 탓에 한국 경제는 매우 변동성이 크고, 또 한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은 높은 주가 변동성에 노출될 수 밖에 없습니다.  2017년의 급등, 그리고 2018년의 날벼락 같은 주가 조정이 출현한 이유를 따져 보면 결국은 한국의 주력 수출산업이 대부분 부품과 원자재 등 공급사슬망의 끝에 위치한 탓에 선진국 소비자의 사소한 기호 변화에도 주문의 급격한 변동을 겪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디 최근 제롬 파월 미 연준의장이 쏘아 올린 희망의 불꽃(신중한 금리 인상)이 채찍의 끝(한국)까지 고루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