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전세 피해 특별법의 치명적 맹점?!

🏧 이번 전세 피해 특별법의 치명적 맹점?!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새로운 사실 :  정부가 전세 사기 피해자 대책을 담은 특별법을 발의하기로 했다는 뉴스입니다(🔗관련 기사). 이 뉴스를 이해하려면 전세로 임차한 집이 경매로 넘어갈 때 낙찰 대금을 배분하는 구조 등 복잡한 법규를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전세 사기 또는 깡통 전세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하다고 모르고 지나칠 정보는 아닌 듯합니다. 최대한 간단히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세입자는 전세를 들어갈 때 대출이 하나도 없는 집에 들어가느냐(A형), 아니면 이미 집주인의 대출이 있는 집에 들어가느냐(B형)에 따라 운명이 갈립니다. 세입자에겐 경매에 들어갈 때 A형이 훨씬 더 나은 상황이 됩니다. 이런 경우를 <세입자가 대항력을 갖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대출이 하나도 없는 집’, 안전할까? : A형이든 B형이든 집주인이 어딘가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집주인의 집(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이 경매로 넘겨지는 건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A형 세입자가 거주 중인 집은 그 집을 경매에서 낙찰 받은 사람이 전세금을 모두 물어주지 않으면 그 세입자를 내보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A형 세입자는 가만히 있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A형 세입자는 안전한 것 같지만, 전세금을 모두 돌려줘야 하기에 A형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은 아무도 낙찰 받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2억원에 전세로 들어간 A형 세입자가 사는 집이 2억원보다 가치가 높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럼 경매에 나오기 전에 집주인이 시장에서 팔아서 2억원을 돌려주고 남은 돈을 가져갔을 겁니다. 아마 그 가격엔 팔리지 않으니 경매로 나왔겠죠.

반대로 2억원보다 가치가 낮으면 괜히 전세금 2억원만 물어줘야 하니까 그 집은 0원에도 낙찰받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즉, A형 세입자는 그 집에서 영원히 거주할 순 있지만 아무도 낙찰을 받지 않으니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진 못합니다. 그러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 집이 2억원보다 비싸지면 그때서야 누군가가 낙찰을 받고 그 사람이 전세금 2억원을 돌려주겠죠.

더욱 암담한 ‘대출이 있는 집’ : B형의 경우엔 이런 희망도 없습니다. 이런 집은 세입자가 대항력이 없는 경우라 경매에서 낙찰 받는 사람은 법적으로 세입자에게 아무 것도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세입자의 입주 시점보다 먼저 돈을 빌려준 은행이나 채권자들이 있기 때문에, 경매에서 낙찰된 금액으로 그 빌려준 돈들을 먼저 갚고 남는 돈이 있을 때만 세입자가 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이번에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것도 이런 B형 세입자들 때문입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전세 사기 피해 특별법’의 맹점

정부가 추진 중인 특별법엔 <B형 세입자들이 혹시 자기가 거주 중인 그 집을 경매에서 낙찰받으려고 할 경우(그러면 전세 세입자가 그 집의 주인이 되겠죠) 우선매입권을 준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선순위 대출이 1억원 있는 집에 2억원을 내고 전세로 들어갔는데 그 집이 경매로 넘어가게 되면 누군가가 그 집을 낙찰 받을 텐데요. 그 집을 누군가가 1억8000만원에 낙찰받았다면 그 B형 세입자가 원할 시 같은 가격에 그 집을 구매할 수 있게 한다는 겁니다. (이 경우 경매에서 그 집을 낙찰 받은 사람은 낙찰을 포기해야 합니다.)

만약 세입자까지 경매에 뛰어들면 가격이 그만큼 더 올라갈 수도 있겠죠. 때문에 세입자는 가만히 구경만 하다가 제3자가 낙찰 받은 그 가격에 그 집을 살지 말지 결정만 하라는 배려를 해주는 겁니다.

그러나 사실 이 구조는 세입자 입장에선 아무런 금전적 혜택이 없습니다. 세입자가 그 경매에 뛰어들어서 비싸게 낙찰 받든,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제3자가 낙찰 받은 가격에 저렴하게 구입하든, 아니면 그냥 쫒겨나든 별 차이가 없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선순위 대출 1억원이 있는 그 집(전세금은 2억원)이 1억8000만원에 낙찰됐다면, 누군가가 낸 낙찰 금액 1억8000만원 중 1억원은 은행으로 넘어가고 남는 돈 8천만원만 B형 세입자에게 돌아갑니다. 그럼 전세 보증금 중 1억2000만원은 결국 못 돌려받은 셈이 됩니다.

그 세입자가 우선매입권을 선택한 경우에도 마찬가집니다. (세입자가 어딘가에서 1억8000만원을 구해와서) 그 집을 1억8000만원에 구매하게 되면, 1억원은 은행으로 가고 8000만원은 본인이 돌려받습니다. (자기가 자기에게 돌려준 셈이 되죠.) 그럼 세입자는 전세금 2억원과 어디선가 구해온 1억8000만원을 투입해 8000만원만 돌려받은 채로 그 집의 소유자가 됐으니 결국 3억원에 그 집을 매입한 꼴이 됩니다. 경매에서 1억8000만원에 낙찰가가 책정된 집을 3억원에 산 셈이 됐으니 결국 1억2000만원 손해를 본 겁니다.

그런데 그 세입자가 그 집을 아예 사버릴 생각으로 경매에 참가했다면 경매의 경쟁률이 높아져서 그 세입자는 아마 2억원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그럼 2억원의 낙찰 대금 중 선순위 대출을 해줬던 은행에 1억원이 먼저 가고, 남는 1억원은 세입자인 본인에게 돌아갑니다. 결국 전세금 2억원에 낙찰금액 2억원까지 총 4억원을 투입해서 1억원을 돌려받았으니 그 집을 3억원에 구입한 셈이 됩니다. 2억원에 낙찰된 집을 3억원에 구입한 셈이 됐으니 결국 1억원을 손해본 겁니다.

언뜻 앞의 두 경우보다 손해액(1억원)이 적다고 생각되죠. 하지만 사실 그 집이 2억원에 낙찰된 건 본인이 무리하게 가격을 써내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뿐입니다. 그 집은 당장 시장에 매물로 내놔도 1억8000만원밖에 안 되는 집입니다. 때문에 사실 1억2000만원을 손해 본 셈입니다. 결국 앞선 두 경우와 손해액이 같습니다.

낙찰 대금을 더 올라가도 마찬가집니다. 만약 그 집을 그 세입자가 무리해서 3억원에 낙찰 받으면 낙찰 대금 3억원 중 1억원은 선순위 대출을 해준 은행으로 가고 남는 돈 2억원은 세입자가 원래 집주인에게 줬던 전세금으로 돌려받으니 세입자는 총 5억원을 투입해 2억원을 돌려받고 3억원에 집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럼 실제론 1억8000만원짜리 집을 3억원에 낙찰받았으니 1억2천만원이 손해입니다.

그 집이 선순위 은행 대출 금액보다 더 낮은 가격(예를 들면 7000만원)에 낙찰됐다고 가정해 봅시다. 세입자가 우선매입권을 행사하면 7000만원은 은행으로 가고 세입자는 총 2억7000만원(전세금 2억원+낙찰 금액 7000만원)에 그 집을 매입한 셈이 됩니다. 7000만원짜리 집을 2억3000만원에 매수했으니 이번에는 2억원이나 손해입니다.

쫓겨나는 게 오히려 이익 : 위에서 설명해 드린대로 이 세입자는 우선매입권이 있든 없든, 그 집을 낙찰 받든 포기하고 쫒겨나든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그 집이 2억원이나 3억원이라는 비싼 가격에 또는 선순위 은행 대출 금액보다 더 낮은 가격에 제3자가 낙찰 받았다면 우선매수권을 행사해서 그 집을 구매할 게 아니라, 그냥 쫓겨나오는 게 오히려 이익입니다. 그러니 우선매입권은 피해자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실제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정부가 내놓는 또 하나의 대책은 그 집을 세입자가 아닌 LH공사가 우선매입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LH공사가 그 집을 시장 가격(낙찰 가격)으로 인수하게 되고 세입자는 일반적인 경우라면 낙찰 가격에서 선순위 대출금 1억원을 초과하는 돈은 전세 피해액 일부로 돌려받고 그 뒤에는 쫒겨나게 되는데요. LH공사가 그 세입자가 원할 경우 시세보다 저렴한 월세를 받고 그 세입자에게 그 집을 다시 임대해준다는 것입니다.

이 대책의 장점은 전세 피해 세입자가 실질적인 금전 혜택을 다소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시중 월세와 LH공사가 받을 월세의 차익만큼 매월 지원하는 셈이 되니까요. 문제는 그 도움과 지원이 정부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란 점입니다. 그 피해자가 아니었으면 그 LH공사의 임대주택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전세 피해자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려 어쩔 수 없이 인근의 일반 주택으로 가야했던, 그래서 괜히 더 높은 월세를 내야 하게 된 ‘어떤 저소득층 세입자’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지원이란 점입니다.

그렇다고 정부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을 재정을 통해 직접 지원하기도 어렵습니다. 만약 이번 전세 사기 피해액을 정부가 재정으로 보전해준다면 과거 보이스피싱 피해자들도, 일반적인 사기 피해자들도 왜 정부가 금전적으로 보상하고 지원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만약 차별적으로 지원한다면 여론이 관심을 갖는 피해자들은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피해자들은 지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는데 그건 합리적 보상 기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정부가 금융사에 ‘경매 자제’를 요청한 진짜 속내
오늘의 이슈

피해자들은 사기꾼에게만 당하지 않는다 : 빌라 전세 사기는 몇몇 사기꾼들이 마음 먹고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보이지만 피해자들은 그런 사기꾼들의 빌라에서만 나오진 않습니다. 이 뉴스는 최근 6개월 사이에 서울에서 거래된 빌라의 절반 이상이 과거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됐다는 내용인데요(🔗관련 기사). 결국 빌라 가격이 요즘 꽤 내렸다는 것이니 새로운 뉴스는 아닙니다. 요즘 가격이 내리는 건 서울 빌라만 그런 게 아니니까요.

문제는 이렇게 가격이 내려가는 빌라에선 언제든 빌라 사기 피해자들과 동일한 피해자들이 나올 수 있다는 점입니다. 3억원짜리 빌라로 생각하고 2억5000만원에 전세로 들어갔는데 그 빌라 가격이 2억원으로 내려가면, 그 세입자는 일반적인 집주인과 계약한 것임에도 빌라 사기꾼에게 당한 것과 동일한 결과를 맞게 됩니다.

누구까지 피해자로 볼 것이냐 : 그래서 빌라 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특별법의 가장 어려운 지점이 <피해자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이냐>를 정하는 겁니다. 전세 피해자들 중엔 맘 먹고 사기를 친 집주인에게 당한 피해자들도 있지만, 어쩌다 보니 가격이 내려 전세금을 못 돌려주게 된 집주인 때문에 속을 썩는 피해자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두 피해자들은 동일한 구조의 피해자들입니다. 집주인이 사기꾼이었으면 정부가 구제해주고 집주인이 사기꾼이 아니라 일반인이라면 정부가 구제해주지 않는 것은 또 이상합니다. 그렇다고 집값이 내려서 생긴 모든 전세 피해를 다 구제해주기도 어렵고요. 정부가 이 피해 구제를 위해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 건 피해자들을 특정하기 어렵고 자칫하면 집값 하락으로 인한 전세 피해를 정부가 모두 구제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차후 집값이 반등한다면? : 반대로 생각하면, 집값이 어느 정도 오르면 많은 빌라 전세 피해자들이 피해를 복구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정부가 빌라 전세 피해자들이 거주 중인 집을 경매로 넘기는 걸 자제해달라고 금융사들에 요청(압박)한 것은 피해 구제를 위한 특별법이 통과될 때까지 잠시 기다리라는 의미도 담고 있지만, 시간을 끌어서 집값이 반등하기만 하면 전세 피해자들의 피해액이 감소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