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VB 파산 → 금리 인하’ 시나리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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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VB 파산 → 금리 인하’ 시나리오, 가능할까?

이번주 초입부터 경제 화두는 단연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입니다. 지난주 목요일 자금 위기가 불거진 지 단 이틀 만에 초고속 파산하며 전 세계 금융계가 긴장하고 있습니다. 우선 중소형 은행들의 연쇄 도산 위기가 확산하고 있습니다. 벌써 어제 예치금 120조원 규모의 또다른 미국 은행 ‘시그니처은행’이 폐쇄했습니다. 이 은행은 가상자산 거래 주요 은행으로 꼽혔습니다. 앞서 지난주 ‘실버게이트’란 은행이 뱅크런 사태로 결국 청산했는데, 여기에 SVB 사태 충격이 겹치며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관련 기사). 또다른 중소 은행인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은 뱅크런 우려로 긴급 자금 수혈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에 미국 정부는 사태 확산을 막기 위해 “SVB 예금 전액을 보증하겠다”고 나섰네요(🔗관련 기사). (원래 미국의 예금 보호 한도는 1인당 25만달러입니다.)

현지 당국의 대처 때문이었는지 우려와 다르게 오늘 코스피는 ‘검은 월요일’을 면했습니다. 오히려 소폭 상승했습니다. 다른 아시아 증시도 비슷했는데요(🔗관련 기사). 다만 이 사태가 장기간 지속된 고금리에서 시작됐다는 분석이 많아 곧 기준금리 인상 여부를 결정해야할 연준과 한국은행의 태도가 더욱 신중해질 거란 의견이 많습니다(🔗관련 기사). (금리가 오르자 SVB가 보유한 채권 가치가 급락해버렸고, 은행에 돈이 부족하다는 걸 안 예금주들이 대거 예금을 인출하면서 이 사태가 촉발됐습니다.)

강종구
한국은행 국장

연준 긴축 기조엔 변함 없을 거예요

이번 SVB 사태의 원인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인한 국채 가격 하락과 기술 기업들의 수익 부진에 있다는 주장이 나오죠. 하지만 다소 과도한 얘기가 아닌가 합니다. 

1️⃣ 금리 인상 과정에서 일부 금융 기관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는 있죠. 하지만 이런 상황이 빈번히 생기진 않습니다. 당장 SVB 사태가 다른 금융 기관으로 번질 우려도 적어 보이고요. 대부분의 금융 기관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건전성을 대폭 강화했습니다. 충격을 견딜 능력이 높다는 뜻이죠. 특히 대형 금융 기관은 건전성이 더 높습니다.

2️⃣ 설령 일부 금융기관에서 위기가 생겨도 광범위한 금융 위기로 번질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미국 정부가 금융 안정 유지에 확고한 의지가 있기 때문이죠. 정부의 확고한 의지가 있다면 일부 금융 기관 부실이 발생해도 금융 시장이나 거시 경제에 미칠 파급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종합하자면, 이번 사태가 금융 불안정으로 번질 가능성은 상당히 낮습니다. 연준이 지금처럼 물가 안정에 초점을 두고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여건에는 변함이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일시적으로 연준이 금리 인상 폭과 시점을 조절할 가능성은 있습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물가 안정을 우선시하는 정책을 계속 추진할 듯 보여요.

손석우
경제 평론가·건국대 행정대학원 겸임교수·요즈마인베스트먼트 파트너

공화당의 정치 쟁점화, 딜레마 빠진 연준

이번 사태 후폭풍은 오히려 금융 시장 바깥에서 불거질 조짐입니다. 미국 공화당은 SVB 예금 전액을 보증키로 한 결정에 반대하며 연준과 금융 당국을 압박 중입니다. 나아가 2024년 대선에서 민주당을 공격할 카드로 정치 쟁점화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갈등과 혼란이 금융 시장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겠습니다.

연준 입장에서도 딜레마입니다. 강력한 인플레를 우려하며 금리 인상 속도를 다시 높이려는 찰나에 SVB 사태로 오히려 반대 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에 놓인 셈이죠. SVB 예금 보증을 위해서는 연준이 SVB가 보유 중인 국채를 사들이거나 돈이라도 빌려줘야 하는데요. 이는 곧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결과가 되고, 그간의 긴축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류상철
한국은행 국장

이제 새 금융 위험 형태가 나타났네요

자산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금융 시스템의 위험이 나타나는 형태도 달라졌네요. 과거 금융 시스템이 금융 기관 중심일 때는 해당 기관 간 상호 고리를 바탕으로 위기가 전이됐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시장 위험이 전이의 경로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SVB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SVB는 국채 투자 손실로 파산했죠. 국채는 신용 위험이 없어 안전자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시장 위험에는 노출돼 있습니다. 사실상 완전한 안전자산은 아니란 뜻이죠. 게다가 작년부터 시작된 연준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국채 가격이 급락해 많은 투자자가 잠재 손실을 안고 있었습니다. SVB처럼 유동성이 부족해 자산을 매각할 수 없는 경우엔 손실이 실현될 수밖에 없는데요. 이 같은 위험은 직접적인 상호 연관성이 없는 경우에도 시장을 매개로 시스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는 거죠.

현재 시장에서 향후 연준이 금리를 더 올리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를 반영해 미 국채 수익률과 환율이 하락하기도 했죠. 인플레 억제와 금융 시장 안정 사이에서 연준의 고민은 더 깊어지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돌멩이 하나로 두 마리의 새를 잡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금리는 인플레 대응에 사용하고, 금융 안정을 위해서는 다른 도구를 사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잘못하다 두 마리의 새를 다 놓칠까 봐 걱정됩니다.

김성순
단국대학교 무역학과 명예교수

금리 인상 가능성 줄었지만 변수 남아

이번 사태로 금리 인상이 멈추거나 둔화될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인플레만 고려한 기준금리 인상이 또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연준이 절실히 깨닫게 됐으니까요. 만약 금리 인상이 멈춘다면 한미 간 금리 차가 더 벌어지지 않을 수 있고, 자본 유출도 막을 수 있습니다. 한은으로서는 금리 인상 압력 역시 줄게 되는 셈이죠.

(다만, 변수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곧 발표될 미국의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보다 너무 높게 나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SVB 사태가 안전자산 선호 현상을 강화할 우려도 있습니다. 우리한텐 환율이 더욱 올라버리는 계기가 될 수 있고, 기업 투자로 보면 벤처 업계 투심이 지금보다 위축될 수 있겠네요.

노지현
NICE신용평가 수석연구원

환율, 금리? 미국 물가 수준에 달려!

환율과 금리는 투자자의 기대와 연관된 문제입니다. SVB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을 보며, 투자자들은 ‘연준이 금리를 인상하기 부담스러워졌다’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SVB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 금리 상승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연준은 물가를 억제해야 하는 목표를 갖고 있죠. 미국의 물가가 높은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금융 시장 안정을 목적으로 금리 인상을 포기하기는 힘들 수 있단 의미입니다. 결국 미국의 물가 수준에 따라 환율과 금리 방향이 결정될 겁니다. 

🚨 SVB 파산에 벤처·스타트업 줄도산 공포?

SVB 파산 여파가 벤처·스타트업계로도 번지고 있습니다. SVB 같은 중소형 은행들이 그간 미국 스타트업의 산파 역할을 했던 만큼, 자칫 스타트업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옵니다(🔗관련 기사). 실제 SVB는 2500개 이상의 벤처캐피털(VC)과 헬스케어, 테크 중심 스타트업의 약 44%를 고객으로 확보했었습니다. 메타버스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로블록스를 비롯해 크고 작은 스타트업 자금이 SVB에 묶여있었단 뜻입니다. 만약 SVB와 유사한 다른 은행들도 연달아 위기에 처하면 여기 묶인 벤처·스타트업 자금은 더욱 마를 수 있습니다.

일단 미국 정부가 예금 보험 가입 여부나 한도와 관계 없이 SVB 예금을 전액 보증하기로 했지만, 벌써 일부 스타트업에선 물품 대금이나 임금 지급 독촉을 당하는 등 우려가 여전합니다. 현재로서는 SVB에 예치한 현금을 언제 어느 정도까지 회수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기 때문입니다.

강승희
퀀트 트레이딩 스타트업 Teyvat Labs 대표

제2의 리먼 브라더스 가능성은 희박해

SVB 파산의 내막부터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SVB와 VC, 스타트업 관계는 좋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창업 초 어려운 시기, SVB가 투자와 대출을 담당한 은행이었겠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한 VC·스타트업은 펀드 조성이나 투자 유치로 확보한 현금을 SVB에 예금으로 예치했을 겁니다. 하지만 금리가 오르면서 스타트업들은 예치금을 인출해 사업을 지속했습니다. 점차 예금 금액보다 인출 금액이 많아지면서 은행은 저금리 시대에 매수했던 국채를 매도할 수밖에 없게 된 거죠. 금리가 오른 상황에서 결국 은행은 손실을 보게 됐고, 이를 커버하기 위해 증자를 계획했다가 뱅크런 사태에 직면해 도산을 맞았습니다.

미국 정부에서 예금을 보장하겠다고 얘기하긴 했지만, 주거래 은행이 SVB인 경우 당장의 기업 현금 입·출금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연쇄적으로 여러 문제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지만, 미국 재무부와 연준은 2008년 금융 위기 때의 경험을 살려 절차대로 대응하고 있는 듯합니다. 따라서 주의를 할 필요는 있겠지만, 또 다른 리먼 브라더스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만약 투자자라면 리먼 브라더스 사태를 기대하고 행하는 의사결정은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단 의미입니다.

손기정
리테일테크 스타트업 지오코리아 대표

2008년 금융 위기와 다릅니다

이번 SVB 파산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입니다. 급격한 금리 인상이 은행 예금과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이어진 거죠. 은행들이 파생 상품과 같은 위험 자산에 투자해 파산했던 2008년 금융위기와는 다릅니다. 결국 ‘금리 상승으로 인한 채권의 평가 이익 감소’가 이번 사태의 핵심이고, 이에 가장 취약했던 고리인 스타트업들이 즉각적으로 피해를 입게 된 겁니다. 

이준희
법무법인(유) 율촌 파트너 변호사·e-Biz & Fintech Team Lead

美 리스크 관리 체계, 한국도 배워야

SVB 청산과 관련해 여러 분석이 오가고 있습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정도의 금융 시스템 위기를 걱정하는 의견도 있고, 그 정도 시스템 위기를 야기하진 않을 거라는 예측도 있습니다. 다만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인한 유동성 위기가 직접적 원인이었고, 그 후속 처리 과정에서 많은 관련자의 피해와 어려움이 발생할 거란 점이죠. 

여기서 눈 여겨볼 대목은 미국 재무부와 연방예금보험공사 등 정부 당국이 취한 신속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과 대책 실행입니다. 시장 패닉을 막기 위해 일요일 오후 예금의 전액 보호, 인출 재개를 선언하는 구제안을 발표했습니다. VC·스타트업계의 자구 노력도 함께 이어지면서 예상외로 사태가 신속히 진정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패닉에 빠지기보단 회복 탄력성에 중점을 둔 리스크 관리 체계 덕분입니다. 

한국도 배워야 합니다. 지속되는 불경기와 PF 대출이나 가계 대출 부실 리스크 등이 혹시라도 현실화 됐을 때 반면교사로 삼을 수 있도록 잘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