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 내 성희롱, 회사도 책임이 있을까?

📛 직장 내 성희롱, 회사도 책임이 있을까?
이진혁의 Law&Work 나우

직장 내 성추행

법률사무소 여암의 변호사입니다. 사법시험 합격 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했습니다.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다지만 요즘도 여전히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국갤럽이 2021년 실시한 성희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직장에서 한 번이라도 성희롱 피해를 경험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4.8%(여성의 경우 7.9%)라고 합니다. 이는 2018년의 8.1%(여성의 경우 14.2%)에 비하면 많이 줄어든 수치지만, 아직도 직장 내 성희롱이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문제로 남아있음을 보여줍니다.

성희롱을 범한 가해 근로자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때에 따라 회사도 사내 성희롱으로 인한 법적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은 미처 모르셨던 분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회사가 피해 근로자에게 유급휴가를 부여하거나 가해 근로자를 상대로 징계 처분을 내리는 등 ‘적절한 사후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회사도 법적 책임을 져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회사가 ‘적절한’ 사후 조치를 취했다고 봐야 할지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사내 성희롱 또한 각 사례의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회사가 적절한 사후 조치를 했다고 본 사례와, 그렇지 않아 피해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본 사례를 각각 소개해드리겠습니다.

1️⃣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하면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회사는 피해 근로자의 요청에 따라 근무 장소 변경이나 유급휴가 등 적절한 조치를 해야 하고, 가해 근로자에 대해서도 징계나 근무 장소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내려야 합니다.

남녀고용평등법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직장 내 성희롱 발생 시 조치)

①~③ 중략

④ 사업주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결과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피해근로자가 요청하면 근무 장소의 변경, 배치전환, 유급휴가 명령 등 적절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⑤ 사업주는 제2항에 따른 조사 결과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이 확인된 때에는 지체 없이 직장 내 성희롱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하여 징계, 근무 장소의 변경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 이 경우 사업주는 징계 등의 조치를 하기 전에 그 조치에 대하여 직장 내 성희롱 피해를 입은 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위 규정만으로는 어디까지가 ‘적절한’ 혹은 ‘필요한’ 조치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이를 판단하려면 회사의 사후 조치가 문제 된 선례를 통해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해봐야 합니다.

2️⃣ 회사가 피해 근로자의 휴가 신청을 거부했으나 필요한 조치를 다 했다고 인정된 사례

(1) 성희롱 내용

A는 한 마케팅회사의 1년 차 사원입니다. 어느 날 A는 저녁 회식 자리에서 대표이사 B로부터 당혹스러운 질문을 받았습니다. B가 다짜고짜 A에 “너 연애 왜 안 해?”, “너 여자 좋아해?”라고 물은 것입니다. B는 이어진 2차 자리에서도 A에 “몸에 멘트 해봤어?”라고 물었고, 이에 A가 “지금 섹스 해봤냐고 묻는 건가요?”라고 되묻자, B는 “어, 너 해봤냐고”라고 답했습니다. 이에 A가 “저 해봤어요”라고 답하자, B는 “뻥치지 마. 너 안 해봤잖아. 딱 알지”, “너 새 거라고”, “너 내 거라고”라고 말했습니다.

(2) 회사의 사후 조치

A는 그다음 날부터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한 달 후 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습니다. 그리고 A의 진정 제기 한 달 후, 회사는 A에 3개월의 유급휴가를 부여하고 B에 대해서는 3개월의 감봉처분을 했습니다. 이후 A는 위 유급휴가 만료쯤에 3개월의 2차 유급 휴가를 재차 신청했으나, 회사는 A에 “현재 회사의 경영 여건상 브랜드 개발, 광고 대행, 콘텐츠 개발 업무에 인력이 필요하고, 사옥 1층 디자인팀 옆에 별도 공간을 마련하여 B와 마주치지 않으며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했으니 회사에 복귀해주기 바란다”는 요청했습니다. 이에 A는 즉시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사했습니다.

→ 법원은 B의 성희롱 자체에 대해서는 회사가 B와 함께 1,50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보았으나, 회사가 필요한 조치는 다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A에 대한 유급휴가와 B에 대한 징계내용이 적절하고, 해당 회사가 지상 2층 규모의 소기업인 점을 감안했을 때 A의 업무공간을 대표이사실이 위치한 2층과 분리해 1층에 별도 마련한 이상 A에 대한 복귀 요청이 부당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서울서부지방법원 2021가단253928판결).

3️⃣ 회사가 즉시 가해 근로자의 근무 장소를 변경하지 않았으나 필요한 조치를 다 했다고 인정된 사례

(1) 성희롱 내용

A는 IT 회사에 개발자로 입사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사원이고, B는 회사의 이사입니다. 어느 날 B는 대뜸 A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언급하며 “A씨는 운동해서 그런가 몸매가.. 어후.. 그런데 너무 드러내지마. 남직원들 정신 못 차려”라고 말했습니다. 또 며칠 후 A가 사고로 눈을 다쳐 약 1주일간 병가를 내자 B는 병가 중인 A에 전화를 걸어 “A가 남자친구가 많으니 남자친구에게 간호받으면 되는 거 아니냐”, “A가 회사에 적응되면 내가 A를 데리고 다니면서 외부에서 영업하려고 한다”는 발언했습니다.

(2) 회사의 사후 조치

A가 회사에 성희롱 사실을 신고하자, 회사는 약 3개월 후 B에 2개월 감봉 및 시말서 제출 징계를 내리고, B의 성명을 기재하지 않고 B가 직장 내 성희롱 행위로 징계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을 공고했습니다. 그러나 회사는 당장 B에 대한 근무 장소를 변경하지 않았다가, 성희롱 발생일로부터 약 4개월 후 별도 사무실이 생기자 B를 새 사무실로 발령했습니다.

→ 법원은 B의 성희롱 자체에 대해서는 회사가 B와 함께 30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하여야 한다고 보았으나, 회사가 필요한 조치는 다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회사가 성희롱 발생 즉시 B에 대한 근무 장소 변경 조치를 하지 못한 것은 맞지만, 해당 회사가 사원 수 55명여의 소규모 회사로 전 사원이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상황이었으며, 이후 별도 사무실이 생기자 B를 새 사무실로 발령한 것이 부당한 조치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0가단5159326 판결).

4️⃣ 회사가 적절한 사후 조치를 다 하지 않았다고 본 사례

(1) 성희롱 내용

A는 7년 차 영업부 대리입니다. B는 A가 근무하는 영업부의 부서장으로, A와 유럽 출장을 가 미팅을 마치고 나오던 중 A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살짝 치면서 귀에 대고 “상무님을 잘 모셔”라고 말했습니다.

(2) 회사의 사후 조치

2주 후, A는 영업본부 인사그룹장에게 B의 성희롱 사실을 알리며 본인을 영업본부 외 서울 소재 타 사업부로 이동시켜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인사그룹장은 유럽출장에 동행했던 다른 직원과 B를 대상으로 A에 대한 성희롱 사실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하지만 해당 직원과 B가 그 사실을 부인하자 사건을 종결하고, 다만 회사의 인사부장에게 “A가 서울로 보내달라고 한다. B로부터 성희롱당했다고 주장한다. 면담을 한 번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에 인사부장은 A에 교육아카데미로의 부서 이동을 제안했으나, A는 교육아카데미로 이동하더라도 B와 마주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그사이 이미 퇴사하여 전직한 B가 교육아카데미 사무실 바로 옆 건물에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회사는 A를 B로부터 분리하기 위한 조치나 B의 언동에 대한 조사 및 재발 방지대책을 수립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A는 반년가량 발령 대기 상태로 사내 연수원에서 교육받다가, 투자자 미팅을 주요 업무로 하는 IR 팀에 배정받았으나 다른 팀원들과 달리 투자자 미팅에 거의 투입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A가 문제를 지적하자 회사는 A를 사회봉사단 사무국으로 전보 발령했습니다.

→ 법원은 B의 성희롱 자체에 대해서는 회사가 B와 함께 20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또한 회사가 A로부터 성희롱 사실을 고지받고도 A를 반년 가량 발령 대기 상태에 머무르게 했고, B와 친분이 있는 직원 1명만의 진술만을 바탕으로 사건을 종결한 후 어떠한 재발 방지대책도 수립하지 않은 점을 이유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보아 별도로 3000만원의 위자료를 배상하도록 명했습니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 2008가합5314판결)

5️⃣ 결론

위 선례들을 살펴보면 회사가 성희롱 여부를 심도 있게 조사하고 그에 따른 징계 및 조치를 했을 경우, 근무 장소 변경이나 유급휴가 기간과 같은 세부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회사 사정에 따른 재량이 꽤 인정되는 편입니다.

단 회사가 애초에 성희롱 여부에 대한 사실을 철저히 조사하지 않거나 가해 근로자에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경우에는 법적 책임을 부담할 가능성이 상당합니다.

생계를 위해 다니는 직장에서 발생하는 성희롱은 피해 근로자에게 심각한 스트레스와 부담을 주는 행위입니다. 회사 측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했다면 철저히 조사하여 엄정히 대응할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