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때리는 리더가 환영받는 이유(feat.스토브리그)

⚾️ 뼈 때리는 리더가 환영받는 이유(feat.스토브리그)

스토브리그

A는 과거 경력과 상관없는 업계 부서장으로 최근 자리를 옮겼습니다. 회사 발전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오너 일가가 실질적인 힘을 행사하는 이 기업에서 A가 맡게 된 사업부는 업계 꼴찌 성적을 4년째 이어가고 있습니다. 부서 내부에는 일은 잘하지만 싸가지 없고 팀워크도 해치는 고참 직원이 있고, 관리자들은 두 패로 나뉘어 정치 싸움에만 혈안입니다. A에게는 과거에 거쳐온 세 개 기업에서 담당 사업부 실적을 업계 1위로 만든 경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 그가 이끌었던 조직은 모두 해체된 상태입니다.

2019~2020년 방영한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기억하시나요? 흥행이 힘들다는 스포츠 드라마임에도 대히트를 기록했었죠. 드라마에서 프로야구단 드림즈의 신임 단장으로 부임한 주인공 백승수의 상황을 기업에 대비해보면 딱 위와 같습니다. 

스토브리그란 선수 영입과 연봉 협상 등 팀 전력 보강을 하는, 야구 경기가 열리지 않는 비(非)시즌을 말합니다. 핸드볼, 씨름, 아이스하키단 단장을 하면서 모두 우승을 일궈냈지만 그 이후 팀이 해체된 독특한 경험을 보유한 백승수 단장은 드림즈 야구단의 새로운 단장으로 부임합니다. 돈이 되지 않는 야구단을 적당한 시기에 해체할 생각인 구단주는 팀 발전에 관심이 없고, 무기력한 감독 밑에서 수석코치와 투수코치는 차기 감독을 노리며 정치 싸움을 일삼습니다.

스토브리그 이신화 작가의 말처럼 이 드라마는 ‘야구 드라마 같은 오피스 드라마’입니다. 백 단장이 드림즈를 이끌어가는 과정은 조직문화 컨설턴트로서 저희가 경험한 실제 기업 사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래서 조직 경영 관점에서 드라마 스토브리그를 되짚어보고자 합니다.

인물을 알아야 진정한 리더로 거듭난다

리더십 분야 대가인 워런 베니스와 노엘 티시는 리더십의 핵심이 ‘판단력’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의 대표 저작 이름이 ‘판단력’인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베니스와 티시는 리더가 판단력을 발휘해야 할 분야를 크게 인물, 전략, 위기 세 가지로 정리했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건 인물에 대한 판단력이라고 강조합니다. 어떤 판단이든 직원들의 참여와 협조를 이끌어낼 수 없다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고, 인물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경우 아무리 좋은 전략적 판단도 쓸모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A처럼 새로운 조직의 장으로 들어갔을 때 가장 시간을 들여야 할 분야도 인물입니다. 백승수는 부임하면서 팀 내부 인물들의 성과와 기여를 데이터에 기반해 치밀하게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4번 타자로 가장 대중적 인기를 끌고 있었던 임동규 선수를 과감하게 트레이드하겠다고 발표합니다. 강하게 반발하는 직원들 앞에서 백 단장은 왜 임동규가 떠나야 하는지를 데이터를 들어 조목조목 짚습니다. 임동규 선수가 좋은 타자이긴 하지만 드림즈에 필요한 여름에는 유달리 성적이 저조하며, 독불장군으로 팀워크를 해치는 등 인성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죠. 

물론 이것만으로 팀원들을 설득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치적 협상력을 발휘해 임동규와의 갈등 때문에 경쟁팀으로 옮긴 국가대표 에이스 투수 강두기를 다시 데려오겠다며 팀원들의 수긍을 이끌어 냅니다. 상층부에도 적절한 명분을 줌으로써 이 결정을 반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수완을 발휘했고요.

스토브리그 강두기 백승수
새로 부임한 백승수 단장은 정치력을 발휘해 임동규 선수와의 갈등으로 팀을 옮긴 에이스 투수 강두기 선수를 다시 팀으로 데려온다.

정치력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또다른 사례로 포드의 전 CEO 자크 나세르(Jacques Nasser)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중대한 전략적 변화를 추진했지만 조직 내부에서 정치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 결국 경영진의 쿠데타로 회사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스토브리그에서 백 단장은 부임 초기, 선수단뿐 아니라 팀을 뒷받침하는 조직인 프런트 내부에서도 인물 판단에 집중합니다. 먼저 팀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이세영 운영팀장의 신뢰를 얻어 든든한 지원군을 확보합니다. 그리고 스카우트팀을 이끌며 학부모로부터 뒷돈을 챙기던 고세혁 팀장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좌충우돌 아웃사이더이지만 원칙을 지키며 성실하게 일하는 양원섭 팀원을 팀장으로 발령합니다. 이처럼 스토브리그 전반부에는 백 단장의 탁월한 인물 판단력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 많이 나옵니다. 이 점에 집중해 드라마를 다시 보면 기업에서 조직을 새롭게 이끌게 됐을 때 리더가 어떤 부분에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인물에 대한 판단력’을 갖추기 위한 세 가지 팁

1️⃣ 리더 자신만이 가르칠 수 있는 관점(Teachable Point of View, TPOV) 확보 : 새로운 조직에 부임한 리더는 자신만이 가르칠 수 있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베니스와 티시는 펩시코의 수장이었던 로저 엔리코가 “하나의 관점은 IQ 50과 맞먹는 가치가 있다”고 했던 말을 인용하면서 리더의 관점이 명확해야 그에 따른 올바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백 단장은 처음에 임동규 선수와 강두기 선수를 트레이드하는 과감한 조치와 함께 이렇게 말합니다.

스토브리그 백승수 단장

많은 리더가 새로운 조직의 장으로 부임하면 “혁신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뻔한 말을 반복합니다. 백 단장이 달랐던 건 취임 초 치밀한 인물 조사로 판단을 내렸고, 이를 실천으로 보여주면서 자신이 어떻게 조직을 이끌고 갈 것인지를 설득했다는 겁니다. 백 단장은 자신이  ‘변화의 주도자’임을 인지하고 이를 조직 내부에 인식시켰습니다. “리더는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중요하다”는 베니스와 티시의 주장을 구현한 셈이죠.

2️⃣ 과거의 성과를 분석해 판단 근거로 활용 :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경영 사상가인 말콤 글래드웰은 그의 저서 ‘타인의 이해’에서 사람을 첫인상으로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고합니다. 한두 번의 면접으로 상대의 가능성과 역량을 단번에 파악할 순 없습니다. 그보다는 면접 대상자와 같이 일했던 사람의 이야기와 함께 해당 직원의 실적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해야 합니다. 백 단장은 취임하자마자 각 선수에 대한 면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비용을 늘리지 않으면서 효율적으로 선수단을 꾸려 성적 향상을 이뤄냅니다. 

3️⃣ 반발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 마지막으로, 베니스와 티시가 말하듯 용기와 정치력이 중요합니다. 인물에 대한 판단을 리더가 실천에 옮기려면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됩니다. 채용과 해고, 보직 변경 등의 조치에는 항상 반발이 따릅니다. 컨설팅을 하다 보면 이런 반발이 두려워 의사결정을 계속해서 늦추는 경우를 종종 보는데요. 결국 타이밍을 놓치고, 조직에 해를 끼치는 사람을 그 자리에 계속 두는 우를 범하게 되죠. 백 단장은 선수단과 프런트에서 모든 것을 바꾸려 하기보다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문제부터 처리를 해 반대하던 직원들도 협력하게 만들었습니다.

각자도생의 시대 회사의 모습

기업 조직문화 컨설팅 과정에서 많은 직원들이 직장생활을 표현하는 지배적 키워드로 ‘각자도생’을 꼽았습니다. 드림즈의 해체가 가시화되는 타이밍에 팀장들에게 타 구단으로부터 이직 제안이 들어오는 장면이 얼핏 이 키워드와 연결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캐릭터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인공 백승수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성공적으로 생존한 적자입니다. 세 번의 우승과 해체를 반복한 그의 이력 자체가 각자도생 시대의 상처이자 훈장입니다. 한마디로 각자도생은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세계관이자 전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실 세계는 어떨까요? 근속연수는 계속 짧아지고 있고, 신입 공채 중심의 전통적 인력 충원 방식은 옛것이 되고 있습니다. 기술과 경쟁 환경도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요. 그럼에도 대다수 기업의 교육 시스템은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업무 표준 프로세스를 갖추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기도 하지만 TF의 산출물은 급속하게 노후화돼 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에 새롭게 몸을 담은 사람들은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낡은 매뉴얼은 턱없이 피상적인 수위이고 누군가에게 묻고 곁눈질로라도 배우지 않으면 기본적인 업무조차 수행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런데 아무도 선뜻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지 않죠.

반복적으로 군살을 도려낸 조직은 대책 없이 평평해졌고 새로운 구성원을 보살필 ‘잉여’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료 그룹의 그 누구도 새로운 입사자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입사자의 태반은 정착하지 못하고 겉돌다 그만두게 되죠. 자기 일을 쳐낼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다며 신규 입사자의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애써 외면한 경험은 결코 희귀한 일이 아닙니다. 

매니저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죠. 그들은 입사자의 애로를 잘 알고 있지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다는 한계를 점점 인정하게 되며 결국에는 스스로 극복해야만 하는 영역이라 결론 짓습니다. 그렇게 성장과 전문성의 배양은 많은 기업에서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됐습니다.

두려움 없는 조직 만들기

하버드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는 ‘두려움 없는 조직’에서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요. 업무와 관련해 어떤 의견을 제시하더라도 보복당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각자도생의 문화 속에서 과연 ‘두려움 없는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요? 컨설팅을 하면서 느낀점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1️⃣ 리더들의 착각 : 일부 상사는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가 조직에 안전감을 줄 것이라 생각하는데요. 이건 착각입니다. 실제 컨설팅 과정에서 만난 몇몇 리더는 직원들과 티타임이나 식사, 심지어 사적인 여행까지도 함께 다닌다며 친밀한 관계와 심리적 안전감을 자부했습니다. 하지만 무기명 조사를 실시한 결과 평직원은 물론 자신이 ‘믿고’ 있던 매니저들마저 그의 리더십에 매우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드라마로 돌아가서 백 단장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면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팀워크를 해치고 부정을 저지른 구성원을 과감하게 내보냈습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확인도 없이 정에 이끌려서 ‘그럴 사람 아니야’ 그게 믿는 겁니까. 그건 흐리멍덩하게 방관하는 겁니다. 저는 휴머니스트랑은 일 안 합니다.” 그는 친절함이라는 잣대에서 보면 가장 까칠한 쪽에 속할 겁니다. 그럼에도 그가 이끈 드림즈는 이전과는 다른 의미에서 심리적으로 안전감을 느낄 수 있는 조직이었습니다.

2️⃣ 심리적 안전감과 성과의 관계 : 심리적 안전감이 늘 업무 성과로 이어지는 건 아닙니다. 아래 표는 에드먼슨 교수가 심리적 안전감과 업무 수행 기준에 따라 구별한 4가지 조직 유형입니다. 

업무 수행 조직

백 단장이 드림즈에 부임했을 때, 이 조직은 높은 심리적 안전감 속에서 낮은 업무 수행 기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흔히 부정적 의미에서 말하는 ‘공무원 조직’과 같은 분위기였죠.  낮은 업무 수행 기준은 장기적으로 고용 안정성에도 해가 될 수 있습니다. 높은 업무 수행 기준을 만들기 위해 성과주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많은 경우 성과주의는 ‘쥐어짜기’와 연결됩니다. 구단주 조카인 권경민 상무는 갑작스레 선수단 연봉의 30% 감축을 지시합니다. 백승수는 이에 강하게 반발하죠. 그런 백승수에게 권경민은 이렇게 충고합니다. 

스토브리그 권경민

이렇게까지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직장에서 위에서 ‘시키는 대로’ 아래를 쥐어짜는 접근을 의식없이 하게 됩니다. 이런 식의 성과주의는 높은 업무 수행 기준이나 높은 심리적 안전감과는 거리가 멀죠.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 걸까요?

성과주의를 폐지해야 성과가 생긴다

실제 컨설팅에서 관찰한 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찍어 누르며 쥐어짜는 전략은 많은 기업에서 이미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이제는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수성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찍어 누르는 언행은 직장 내 갑질로 처벌받으며 이는 생산성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유발합니다. 게다가 상사의 반복적이고 일방적인 명령은 부하직원의 자발성을 갉아먹습니다. 자발성은 동기부여의 또 다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까칠한’ 백 단장은 꼴찌에 익숙한 직원들에게 우승이라는 높은 업무 기준을 제시하면서, 왜 조직이 변해야 하며 어떻게 자신이 변화를 이끌지 데이터를 들이대며 설득합니다. 다른 의견이 있다면 알려달라며 문제를 공론화하죠. 직원들은 실제 반대 의견을 내놓지만 백 단장은 그들을 설득합니다.

과거 성과주의는 높은 매출 목표를 강요하면서 낮은 심리적 안전감을 감수하는 모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장기근속이 보편적이었던 과거의 직장 환경과는 달리 밀레니얼 세대는 훨씬 짧은 주기로 직장생활의 손익계산서를 만듭니다. 그들에게 ‘참고 견디라’는 말은 조언도, 지혜도 되지 못합니다. 게다가 코로나19 사태로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죠.

그렇다면 새로운 팀과 조직을 이끌게 됐을 때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답을 찾고 싶은 분들은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백 단장을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백 단장은 뚜렷한 관점, 데이터 기반의 꼼꼼한 인물 판단력, 판단을 실행할 수 있는 정치력, 엄격함을 통한 심리적 안전감과 높은 업무 수행 기준을 제시합니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이 시대에 진정 필요한 리더는 착하거나 쥐어 짜기만 하는 극단적인 사람이 아닌, 까칠하지만 심리적 안전감을 제공하는 백 단장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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