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은 왜 스타트업도 잘나갈까?

🕌 이스라엘은 왜 스타트업도 잘나갈까?

예루살렘

이스라엘은 스타트업의 나라? : 이스라엘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중동 분쟁이나 예루살렘 성지가 있는 나라, 유대인의 나라 정도로 알고들 있죠. 하지만 이스라엘이 세계적인 창업 강국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2022년 현재, 이스라엘엔 7000여 스타트업이 있습니다. 이중 나스닥 상장 기업 수는 100여개입니다. 미국과 중국에 이은 3위입니다.

그럼 이스라엘 스타트업은 어느 분야가 강세일까요? 매년 순위가 달라지긴 하지만 대체로 투자를 많이 받는 분야는 사이버 보안, 헬스케어, 기업용 소프트웨어, 핀테크, 이커머스 등입니다. 작년엔 기업용 소프트웨어 개발 스타트업들이 가장 많은 투자를 받았습니다. 금융 분야에 IT를 접목해 새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가 2위를, 이스라엘이 전통적으로 강한 분야인 사이버 보안이 3위를 차지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규모의 대기업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다양한 스타트업이 탄생하면서 나라 경제 발전을 견인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통해 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고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하지만 이스라엘보다 더 잘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이스라엘은 어떤 배경을 갖고 있기에 스타트업 강국이 됐을까요? 유대인이 어떻길래 창업에 강할까요? 해답을 얻기 위해 유대인과 이스라엘의 교육 특징, 군대 제도, 그리고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학습법

흔히들 유대인은 똑똑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더 똑똑합니다. 국민 아이큐 평균이 106으로 이스라엘(94)보다 높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보다 유대인이 세계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유는 뭘까요? 일단 그들의 교육 방식을 언급해야 합니다.

우리는 귀가한 초등 자녀에게 어떤 질문을 하죠? 보통 학구열이 높은 부모라면 “오늘 공부 열심히 했어?” 정도가 일반적입니다. 친구 관계에 신경을 쓰는 부모면 “애들이랑 잘 지냈어?” 정도를 묻겠죠. 하지만 유대인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오늘은 어떤 질문을 했니?”라고 물어봅니다. 모든 것에 의문을 갖고, 왜 그런지 생각해 보고, 이해가 안 가면 자기 의견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라는 의미인 것이죠. 질문 습관 하나로 사고방식, 자기 표현력, 적극성 측면에서 우리와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스라엘 교육법의 특별함 중 하나가 가정교육인데요. 함께 식사하며 오늘 일을 이야기하고 서로 생각을 공유하면서 유대감을 갖습니다. 유대인들의 밥상머리 교육에서 특별한 건 가정교육의 일차적인 책임자가 아버지라는 겁니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유대교의 성경인 ‘토라’를 가르치는 제사장이자 인생의 스승이 돼 줍니다. 많은 대화로 자녀 고민을 들어주고 조상의 지혜를 배경으로 조언을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유대인 교육 방법 중에 ‘하브루타’가 있어요. 토라를 배우는 과정을 해석한 게 ‘탈무드’인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 사용하는 학습 방법을 하브루타라고 합니다. 하브루타는 서로 질문하는 공부 방법으로 유명합니다. 즉, 선생님의 설명을 단순히 듣고 이해하는 게 아니라 그룹이 하나의 주제를 두고 서로 묻고 답하면서 스스로 답을 찾는 겁니다.

중국 속담에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세 사람만 모이면 제갈량의 지혜가 나온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고,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가 모이면 새 지혜가 탄생할 수 있다는 의미죠. 하브루타를 통해 교육하는 유대인에게는 “오늘은 선생님에게 무엇을 배웠니?”보다 “오늘은 어떤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 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됩니다.

드거 데일은 ‘학습의 원추(Cone of Learning) 이론’을 통해 학습 후 48시간이 지난 뒤 기억에 남는 것에 대해 실험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이 읽기만 한 경우는 10%, 듣기만 한 경우는 20%, 보기만 한 경우는 30%, 보고 들은 경우는 50%, 말하고 필기한 경우는 70%, 행동하고 말한 경우는 90%를 기억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학창 시절에 ‘소리 내서 읽으면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쓰면서 외우면 효과가 더 좋다’ 등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거예요. 유대인들은 옛날부터 이 원리를 알고 지혜를 쌓았던 겁니다. 이 과정을 통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정리하고, 발표력을 키우며, 파트너가 됐던 상대방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효과들을 얻게 됩니다. 그들은 진정한 살아 있는 교육을 예전부터 지금까지 몸소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군대 제도와 문화

이스라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의 군대 제도와 문화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경쟁력이 군대와 밀접히 연관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젊은이는 입대 후 남자는 32개월, 여자는 24개월간 의무 복무를 합니다. 특이한 점은 이스라엘 청소년들은 고교 졸업 후 대학 입학이 아니라 입대를 먼저 한다는 겁니다.

이스라엘 군은 고교 졸업 지원자 선별 때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받지 않습니다. 출신 배경도 묻지 않습니다. 입대 대상자가 어떤 기술을 익혔는지 확인한 후 이들의 성장 가능성을 고려할 뿐입니다. 기존 지식과 경험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술과 잠재력을 확인하는 것이죠. 선발 과정에선 형제애와 배려심에 큰 가치를 부여하며 복무 후에도 끊임없이 동지애를 강조합니다. 군에서 형성된 인간 관계가 대부분 평생 이어집니다.

예비군을 지역 단위로 편성하는 게 아니라 복무한 부대 단위로 편성하기 때문에 그들은 제대 후에도 예비군을 통해 만나게 되고 때로는 함께 전투에 참여합니다. 이스라엘은 인구가 적어 예비군의 실전 투입이 종종 있습니다. 이처럼 군대가 평생을 함께할 네트워크에 해당하기에 가혹 행위를 하거나 무책임한 행동을 함으로써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이 발생해선 안 되고 실제로도 잘 발생하지 않습니다. 군대 커뮤니티 내 평판이 평생을 따라다니기 때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군은 다른 나라 군대에 비해 지휘관급 직업 군인의 비율이 상당히 낮습니다. 때문에 신병이 계급과 관계 없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기회가 생깁니다. 이스라엘 군에선 선임을 계급이 아닌 이름으로 불러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지만, 자율적인 의사소통으로 인해 인간관계 역시 상명하복이 아닌 수평적 관계로 형성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여기서 오해 말아야 할 건 지휘 체계마저 수평적이란 건 아니란 사실입니다. 군에서 수평적인 인간관계의 장점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윗사람만이 지시를 내리는 게 아니라 서로 의논해 문제를 해결하는 겁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이유는 유대인들은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선 옳다고 믿는 일을 밀고 나가는 고집과 용기가 있다고 서로 믿기 때문인데요. 덕분에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예상치 못 한 낯선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누구나 참여해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경험을 보편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회사에서도 거리낌 없이 의견을 개진하고, 창업해 자기가 사장이 돼도 다양성을 높이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됩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원동력 ‘탈피오트’

이스라엘의 졸업반 고교생들의 관심사는 ‘어느 대학으로의 입학’이 아니라 ‘어떤 부대로의 입대’입니다. 전쟁 영웅을 배출한 전투 부대, 군에서 가장 비싼 무기를 다루는 공군 등도 인기 부대지만 스타트업과 관련된 엘리트 부대에 대한 관심도 높습니다. 어떤 부대는 경쟁률이 무려 수천 대 1에 달하기도 하는데요. 해마다 50명만 뽑는 탈피오트란 부대가 있습니다.

탈피오트는 히브리어로 ‘견고한 산성’ 또는 ‘높은 포탑’이라는 의미입니다. 탈피오트가 탄생한 데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973년 이집트의 공격으로 시작된 ‘욤 키푸르 전쟁(4차 중동 전쟁)’에서 방위 체계의 취약점을 발견했습니다. 그전까지 중동과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하던 이스라엘 국민들은 패배 직전까지 갔던 욤 키푸르 전쟁을 통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군의 기술 발전이 없다면 굴욕을 다시 겪을 수 있다는 위기감에, 학자와 군 수뇌부가 합심해 과학 분야의 엘리트 양성을 계획하게 됐습니다.

배출된 엘리트들이 이스라엘 군 발전에 필요한 기술을 주도하는 게 탈피오트의 목적이었습니다. 탈피오트를 만들 때 3가지 핵심 제안이 있었습니다. 첫째, 자연과학과 무기 기술 지식을 소유한 재능 있는 인재들을 통해 다른 국가엔 없는 혁신 무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둘째, 이스라엘 방위군에서 가장 비싼 무기를 다루고 가장 존경 받는 공군이 주축이 돼 이 프로그램을 맡는다. 셋째, 탈피오트 후보생들은 첨단 무기 시스템 개발에 필수적인 물리학과 수학 관련 학위를 취득해야 한다. 이러한 핵심 제안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전국의 수재들이 필요했습니다.

탈피오트 후보생이 되면 군대에서 9년을 보내게 됩니다. 3년간 히브리대에서 학위 공부를 합니다. 교육 과정을 마치면 수학, 물리학, 컴퓨터공학의 학사 학위를 받습니다. 이후 6년의 군 생활을 더 합니다. 탈피오트 사관후보생들은 히브리대 재학 중 틈틈이 부대에 파견됩니다. 현장을 직접 체험하면서 군에 존재하는 문제를 직접적으로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포탄을 직접 들고 움직여 봄으로써 얼마나 무거운지, 가벼운 포탄이 있으면 어떨지 생각하게 되는 식이입니다. 때문에 20세 안팎의 어린 후보생조차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장군보다 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고 군대를 전반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식견도 가져볼 수 있는 거죠. 수많은 부대에서 보낸 경험들은 탈피오트 출신들이 더 완벽한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혜택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 ‘아이언 돔’도 탈피오트 사관후보생의 아이디어로 개발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복수의 학위를 준다고 해도 9년이라는 시간은 20대를 전부 군에서 보내야 하는 긴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수재들이 치열한 입학 경쟁을 벌인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인기의 비결은 제대 후의 성공과 네트워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탈피오트 부대를 나오는 순간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이들을 서로 데려가려고 줄을 섭니다. 통신과 컴퓨터 부문 최고 기업들 중 일부는 ‘탈피오트 출신만 채용한다’고 공고를 내기도 합니다. 탈피오트 출신이 창업했다는 이유만으로 세계적 투자 기업이 수백억 원의 돈을 쉽게 시드 단계에서 투자합니다. 탈피오트는 최고 중의 최고 엘리트 조직으로 선후배가 서로를 이끌어주면서 이스라엘 스타트업 세계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1990년대 말 윈도 사용자들을 위한 채팅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ICQ는 AOL에 4억 달러에 인수됐습니다. 탈피오트 출신들이 만들었던 ICQ는 이스라엘 기업 매각 금액 중 최고를 기록하며 젊은이들의 가슴에 창업의 불을 지핀 존재였습니다. 탈피오트 출신들은 ‘탈피넷’과 같은 모임을 만들어 서로 끌어주고 도와주는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사이버 보안에 특화된 8200부대

이스라엘에서 탈피오트와 쌍벽을 이루는 부대로 8200부대가 있습니다. 8200부대는 이스라엘의 대표적 정보 부대입니다. 사이버 전쟁을 담당하는 선봉 부대이면서 최강의 엘리트 집단입니다. 탈피오트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8200부대는 건국 전부터 존재했다고 합니다. 탈피오트가 만들어진 후 불필요한 엘리트 스카우트 경쟁을 피하기 위해 두 부대는 서로 다른 선발 기준과 질문 사항을 준비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8200부대에 입대하면 첨단 컴퓨터, 통신, 보안 기술을 교육받아 전역 후 창업을 하는 기반 기술을 갖추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사이버 보안 산업에서 명실공히 1위 국가입니다. 이러한 명성과 업적은 8200부대의 존재에 기인합니다. 실제로 지금까지 8200부대 출신이 설립한 기업이 1000여 개가 넘습니다. 가장 대표적 기업으로는 포천 100대 기업이 사용하는 보안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체크포인트(Checkpoint)입니다. 체크포인트는 올해 기준으로 시총이 160억달러에 달하는 대표적인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입니다. 이러한 단단한 네트워크와 명성으로 창업을 위한 협력이 가능하고 선배들이 창업한 스타트업에 입사해 경험을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엘리트들은 앞다투어 8200부대에 입대하고 싶어 합니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으면서 엄청난 집중력과 천재성을 자랑합니다. 이스라엘에는 자폐증 환자를 입대시키는 ‘로임 라호크’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로임 라호크는 히브리어로 ‘먼 곳을 본다’는 뜻입니다. 영상 분석이나 전자 장비 조립과 같은 특정 분야에서 자폐증을 갖고 있는 병사가 특유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 프로그램입니다. 이러한 특수 프로그램을 통해 자폐증 환자들도 사회 진출을 위한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물론 군 역시 특정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인재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군 생활 동안 수평적인 의사결정 구조에 의해 문제해결에 참여하며 책임감을 배우게 됩니다. 군 복무는 시간을 견디며 의무를 다하는 기간이 아니라 최신 기술을 경험할 수 있고, 평생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거죠. 이 사회·문화적 환경을 기반으로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좀 더 쉽고 과감하게 창업을 결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패하더라도 또다시 도전하는 용기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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