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피크제를 대하는 HR의 자세

👴 임금피크제를 대하는 HR의 자세

판결

몇 개월 간 노동 관련 기사와 잡지의 헤드라인을 하나의 주제가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바로 5월 26일 대법원 판결(2017다 2292343)로 촉발된 임금피크제 논란인데요. 대법원은 임금피크제가 고령 근로자를 차별하는 제도이므로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지 않았을 때 받을 수 있었던 임금과 이미 받은 임금의 차액을 지급하라고 했습니다.

해당 판결이 나온 날 각 기업 인사팀에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하는데요. 아직까지도 실무자, 학자, 노사 양측이 연일 이 주제에 대한 저마다의 입장과 설명 자료들을 쏟아내 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임금피크제를 둘러싼 쟁점은 무엇인지, 앞으로 인사담당자들이 준비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지 짚어 보겠습니다.

같은 문제, 다른 판결

임금피크제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원래 정년이 61세이던 회사가 정년을 유지하면서 임금만 삭감하는 ‘정년유지형’이고, 다른 하나는 정년 자체를 연장해주는 ‘정년연장형’입니다. 사업장마다 도입 형태가 다를 수 있는데, 대법원 판결에서 다룬 사건은 정년유지형 사례입니다. 이 판결의 가장 큰 의미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합리적인지 판단할 때 필요한 기준을 최초로 명시했다는 데 있습니다.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은 다음의 4가지입니다. 

1️⃣ 임금피크제 도입 목적의 타당성 : 임금 삭감이나 경영 효율화가 목적인지
2️⃣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 : 임금 삭감 폭이 지나치게 크지는 않은지
3️⃣ 대상 조치 도입 여부 : 깎인 임금에 비례하게 업무 감축 등의 적정한 조치를 취했는지
4️⃣ 재원의 목적 부합성 : 임금피크제로 확보된 재원이 본래 목적에 맞게 사용됐는지

그런데 대법원 판결 이후 한 달이 채 안 된 시점에 이와 상반되는 판결이 나왔습니다. 6월 16일 선고된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2020가합 505662)인데요. 이 판결에서는 대법원 판결을 언급하면서도 임금피크제가 유효하다고 판시했습니다.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다른 결과물을 받게 된 두 사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서울중앙지법은 정년유지형의 합리성 판단에 관한 대법원 판결의 4가지 요건을 정년연장형의 유효성을 판단할 때도 고려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정년연장형에서는 정년 연장 자체가 가장 큰 대상 조치입니다. 임금은 깎여도 정년 연장으로 깎인 임금을 보장받는 셈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년 연장에 소요된 급여 자체가 임금피크제 목적에 따른 가장 근본적인 재원 사용처라고 봤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요건 중 두 가지가 성립한 거죠. 여기에 서울중앙지법은 고령자고용법에 의해 기존 정년을 법정 최소 정년으로 연장했다면, 근로시간 단축이나 퇴사자 지원 등 별도의 프로그램을 두지 않았더라도 합리성을 인정받을 만하다고 봤습니다. 물론 하급심 판결인 만큼 상급심에서 다른 판단이 나올 가능성도 있으니, 이후 추이를 지켜봐야겠습니다.

HR이 임금피크제를 대하는 방법

그렇다면 임금피크제와 관련된 대법원 판결 이후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어떤 대응을 해 나가야 할까요?

1️⃣ 해당 사업장 임금피크제의 적법성 검토 선행 : 금번 대법원 판결 이후 가장 많이 들어오는 질문은 ‘우리 회사의 임금피크제는 대법원 판결에 비추어 유효한가?’입니다. 본래 판결은 구체적 사건의 청구 취지에 따라 판단합니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이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고 해서 모든 회사의 인사담당자들의 고민이 해소된 건 아닙니다. 인사담당자 입장에서는 이런 판결이 개별 사업장의 임금피크제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대법원 판결에서 주된 쟁점이 된 고령자고용법 외에 달리 살펴야 할 쟁점은 없는지 검토해야 할 텐데요. 그 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확인할 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임금피크제

2️⃣ FAQ로 일관된 답변 준비 : 아마 임금피크제를 시행하고 있는 사업장의 인사담당자라면 대법원 판결 이후 개별 직원 내지 노동조합 혹은 퇴사자들로부터 수많은 질문들을 받았을 겁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우리 회사 임금피크제가 어떤 영향을 받는지’ ‘회사가 임금피크제 실시로 감액된 임금을 추가로 지급할 예정인지’ ‘향후 임금피크제 폐지 내지 개선 계획이 있는지’와 같은 질문일텐데요. 

개별사업장이 자사 임금피크제의 적법성을 검토한 후에는 이와 관련해 제기될 수 있는 질문과 회사의 입장을 FAQ 형식으로 정리해 인사⋅경영⋅법무 담당자 또는 관리자들과 공유해야 합니다. 핵심은 누가 질문을 받더라도 회사 입장이 일관성있게 전달되는 것입니다. 혹은 임금피크제 관련 회신 담당자를 정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사측의 답변이 제각각이라면 구성원들의 갈등과 혼란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3️⃣ 단체교섭 대응 : 임금피크제 이슈는 과거 통상임금이나 최근 경영성과급 사안과는 다소 다른 양상으로 펼쳐질 것 같습니다. 주어진 조건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따지고 보면 통상임금 소송이나 경영성과급 소송은 적용되는 범위가 포괄적입니다. 재직자 중심으로 많은 이들이 이해관계에 얽혀 있었습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에서는 조합원 대부분에게 경제적으로 직접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노동조합 차원의 소송 대응이 부각됐습니다. 이에 반해 임금피크제는 상대적으로 고연령⋅고직급의 제한된 인원이 영향을 받습니다. 의사결정 시 전체 조합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노동조합과 이해관계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정으로 만약 임금피크제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이 제기되더라도 노동조합 주도의 대규모 소송이 벌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퇴사자들 또는 임금피크제의 영향을 직접 받고 있는 고연령 직원들에 의한 개별 소송이 이루어질 공산이 크죠. 이들이 뜻을 모아 집단으로 소를 제기하더라도 노동조합 주도의 소송보다는 절대적으로 작은 규모일 겁니다.

따라서 인사노무담당자가 대비할 건 그 다음입니다. 노동조합은 직접 소송의 주체가 되는 대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령  임금피크제 개선을 다른 근로조건 향상과 함께 단체교섭의 의제로 제기할 수도 있겠죠. 따라서 인사노무담당자는 임금피크제와 임금 인상 등 다른 근로 조건들과의 균형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준비해야겠습니다.

4️⃣ 구체적 소송 제기 시 대응 : 마지막으로 인사노무담당자는 실제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로 감액된 임금에 대해 청구 소송이 들어오는 경우에 대비해야 합니다. 임금피크제가 쟁점화된 사례들을 살펴보면, 고령자고용법에 따른 차별 여부만 단독으로 문제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제시한 고령자고용법상 합리성 인정 여부 문제 외에도 다양한 쟁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임금피크제 시행이 불이익한 근로 조건의 변경이었는지 따져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취업규칙의 변경은 근로자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 혹은 근로자 과반수의 회의방식에 따른 동의를 거쳐 유효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요. 이 절차를 제대로 밟았는지도 또 다른 쟁점이 될 수 있겠죠. 또한 동의를 받아야 하는 근로자 과반수의 산정은 적절하게 됐는지, 유리한 조건 우선 원칙에 따라 개별 약정이 임금피크제 취업규칙에 우선하지는 않는지 등 한 사건 안에서도 여러 쟁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사안에 따라 주요 쟁점과 적용되는 법리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실제로 2019년 11월 14일, 대법원에서 유리한 조건 우선 원칙에 관한 판결(2018다 200709)을 선고한 적이 있는데요. 당시 언론은 ‘이제부터는 개인 동의를 받지 않은 임금피크제는 무효’라는 취지의 기사를 연일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3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통상임금이나 경영성과급과는 달리 그 파장은 크지 않습니다. 해당 사건의 법리가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는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서도 ‘정년보장형은 무효이고, 정년연장형은 유효’라는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해당 판결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이고 각자 속한 사업장에 직접 영향이 있는 것인지 잘 따져보고 그에 맞춤형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인사담당자로서 임금피크제를 대하는 마음가짐은 ‘철저한 준비’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이세리 :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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