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회식은 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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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회식은 사양합니다

금지 표시 들고 있는 남자

“일상 회복 후 우리 회사에 기대하는 변화는?”

컨설팅을 맡은 기업 직원들과 조직문화 워크숍에서 가볍게 다룬 주제였습니다. 서로 다른 업무를 하는 8개 팀의 결과가 모두 같았습니다. 바로 ‘회식 금지’였죠. 불과 일주일 전, 회식 자리에서 즐거워하는 직원들의 모습을 본 기억이 있기에 의아했습니다.

일상회복 시대, 직장인이 원하는 회식문화

회식의 사전적 정의는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음식을 먹는 행위 또는 모임’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회식’은 ‘회사회식’을 대체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곤 하죠. 회사 회식이 다른 모임과 구분되는 특징은 세 가지입니다. 회사가 비용을 제공하고, 강제성을 띠며, 비공식 업무의 성격을 띤다는 겁니다.

국내 유수 기업의 핵심 인재, 일반 제조업 직원, 성장기업 리더, 병원 부서장, 심지어 여러 국책 연구소 리더들과 전국 초중고 교장들과도 이 주제에 대해 토론해봤습니다. 업종·규모·직책·부문별 다른 의견이 나올 거라 가정했지만,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회식에 관해서는 의견이 하나로 모였습니다. 대부분 회식문화에 부정적이었습니다. 개인을 존중하지 않고 업무와 구분없이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게 주된 이유였습니다.

다른 나라의 회식문화는?

다른 나라는 어떨까요? 미국은 저녁 회식이 없습니다. 주로 점심시간을 길게 이용해 함께 식사를 하거나 간단히 와인을 마십니다. 유럽에서는 회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습니다. 유럽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자유’이기 때문이죠. 업무시간에는 지시와 통제를 받으며 열심히 일을 해야겠지만, 그 외의 시간은 온전히 개인의 몫입니다. 따라서 업무 외 시간은 물론 점심시간에도 회사가 비용을 제공하고 의무적으로 음식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이상한 문화인거죠.

캐나다에서는 차담(茶啖)이나 와인 한잔 정도를 마시는 회식이 있는데 오후 4시쯤 시작해 업무시간 내에 마무리됩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는 집에서 음식을 각자 가지고 와서 함께 먹는 소풍이나 야유회 같은 회식이 있습니다. 물론 업무시간 내에 말이죠. 중국은 우리나라처럼 퇴근 후 저녁시간에 회사가 비용을 제공하고 술을 마시는 회식이 있긴 합니다. 하지만 2차나  3차로 이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특히 누군가 술에 취하는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업무를 마치고 저녁시간에 회식을 한다는 걸 ‘비정상’이라고 여깁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우리나라의 독특한 회식문화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굳이 기원을 찾는다면 일본 문화와 군대 문화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한국식 회식문화는 어디서 왔나

문화는 사람과 환경에 의해 형성됩니다. 우리나라에 독특한 회식 문화가 자리잡은 건 거시적으로 보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압축성장, 군부독재와 민주화 등 다른 나라가 겪어보지 못한 독특한 역사가 회사 조직에 투영된 영향이 큽니다. 

‘고맥락 문화’는 한국 조직에서 지배적인 특징입니다. 일상에서 이뤄지는 회의, 지시, 보고, 코칭 등 공적인 소통 과정에서는 구성원 간 정보를 얻고 관계를 형성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구성원이 잘 융합되지 않으면 개인과 조직 모두 최상의 결과를 내기는 어렵게 되죠.

그래서 리더는 회식이라는 비공식적인 자리를 활용해 구성원에 대한 업무평가와 업무지시를 별도로 해왔습니다. 구성원 역시 회식 자리에서 상사와 동료에게 요구사항을 말하거나 불만을 표출하기도 하고요. 이 과정에서 술 먹기 강요, 건배사, 2차~3차로 이어지는 긴 회식시간, 심한 경우 폭력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죠. 각자 처한 상황이나 특성을 배제하고 모두가 획일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기 때문에 이런 회식문화를 ‘비호감 군대문화’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한국에 불어온 변화의 바람

다행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한국기업의 회식문화도 변하고 있습니다.  근로시간 단축이 그 계기가 됐습니다. 90년대 TV 광고 카피에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습니다. 주 5일 근무가 정착되면서 회식이 불편한 자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겁니다. 주52시간제가 도입된 영향도 있고요.

MZ세대의 등장도 변화를 앞당긴 한 축입니다. 자유를 중시하는 MZ세대가 기업 구성원의 60~70% 이상으로 늘자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차원에서 회식문화도 변화를 겪게 됐습니다.

무엇보다도 코로나로 인한 2년 6개월의 공백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고맥락문화에서 회식은 필요악이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기간을 회식 없이 보내보니, 회식 없이도 업무를 정상적으로 진행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게 확인된 겁니다. 업무 중에 할 수 있거나 해야 할 일을 회식으로 풀어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거죠. ‘회식 금지’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기피대상 1호 회식문화, 환골탈태하려면?

모두가 입을 모아 기피하는 회식, 안 하는 게 최선일까요? 바람직한 회식 문화란 존재할 수 없는 걸까요? 앞서 토론에 참여한 이들에게 바람직한 회식문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모든 단위에서 공통적으로 나온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HR_회식문화 설문

요약하자면 점식회식, 자율적인 참여, 맛있는 음식, 직책자의 조기 귀가, 사전 공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이를 참고해 회사의 비용 제공, 참석 의무, 비공식적 업무라는 회식의 3가지 특성을 유지한다는 전제로 이상적인 회식문화 매뉴얼을 제안해봅니다. 기존의 문제점을 줄이고 한국 고유의 특별한 회식문화를 만들어보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충분한 기간을 두고 사전에 공지하기 : 하루 전은 절대 안 되고 1~2주 전으로는 부족합니다. 근무시간 외의 활동은 직원의 양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적어도 3주에서 한달 전에는 공지를 해야 합니다.

2️⃣ 술자리 강요하지 않기 :  술 강권, 억지스러운 건배사도 모두 아웃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진행되는 술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녁 8~9시로 시간을 지정해 1차로 깔끔하게 끝내는 게 좋습니다. 의무 참석은 여기까지입니다.

3️⃣ 메뉴는 고급스러운 특별한 음식으로 : 회식의 사전적 의미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이 아니라 ‘특별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입니다. 삼겹살이나 치맥과 같은 특별하지 않은 음식은 직원들의 반감을 키울 수 있습니다. 평소에는 잘 먹지 못하는 특별한 음식을 업무시간 이후에 회사 돈으로 함께 먹기. 회식의 필수 원칙입니다.

4️⃣ 업무평가, 업무지시, 업무요구는 넣어두기 : 회식을 하면서 일 얘기가 나오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일 얘기는 하지 말자고 하면서 군대 얘기와 축구 얘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업무 얘기를 비공식적 자리에서 격 없이 풍부하게 하는 건 좋습니다. 다만, 불쾌하거나 부담감을 갖게 한다면 곤란하겠죠. 상사의 업무평가와 업무지시, 동료 간에 업무요구는 업무시간 내에 공식적으로 해야 즐거운 회식이 될 겁니다.

5️⃣ 평등한 회식 분위기 조성 : 회식은 회사 비용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업무 외 공간에서 비공식 대화를 하는 자리입니다. 직책자-비직책자, 상사-부하라는 공식적인 관계를 유지하면 원활한 대화가 오가기 어려워 회식의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회식만큼은 동료와 구성원으로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6️⃣ 회식도 업무시간으로 인정 : 끝으로, 여러 조직의 다양한 사람들과 회식을 주제로 토론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된 것이 ‘점심회식’이었습니다. 달리 말하면 업무시간 내 회식을 하자는 겁니다. 회식은 복지제도가 아니라 목적이 분명한 조직문화 활동입니다. 조직몰입, 조직만족, 직무만족을 통해 경영성과에 도움을 주기 위한 활동인거죠. 회식이 긍정적인 조직문화 활동이 되기 위해서는 업무시간을 벗어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점심시간에 얽매이기보다는 오후 4시에 회식을 시작하고 오후 6시 이전에 회식을 마치는 식으로 업무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기를 권합니다.

✍🏻 정진호 : 더밸류즈 가치관경영연구소장. <가치관으로 경영하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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