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퇴직연금에 생길 변화 총정리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韓 관광객들이 김치찌개만 먹게 되는 이유 : 한국에 처음 온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식당에 들어가면 매우 곤혹스러워합니다. 음식의 종류는 수십가지가 넘는데 뭘 골라야 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종업원에게 추천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종업원도 그 관광객의 취향을 잘 모르니 속으로는 난감합니다. 결국 그냥 김치찌개 같은 흔하고 무난한 음식을 권하기 일쑤고 외국인은 그런 걸 한국의 대표 음식인 줄 알고 먹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를 이렇게 풀어보면 어떨까요. ‘외국인에게 권할 만한 한국 음식 10가지’를 정부가 미리 정해놓은 뒤, 식당에 외국인이 오면 이 10가지에 속하는 메뉴들만 따로 모아놓은 ‘외국인 전용 메뉴판’을 보여주는 겁니다.

물론 그 메뉴판에 들어있는 음식들은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최선의 선택이라기보다는 가장 안전하고 무난한 선택에 가깝겠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몰라서 얼떨결에 주문한 김치찌개보다는 나을 겁니다.

예금(김치찌개)만 고르고 있는 퇴직연금 시장 : 퇴직연금 시장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퇴직연금에 가입하긴 했는데 매월 퇴직금으로 쌓이는 돈을 어디에 굴려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퇴직금 운용에 관한 한 우리나라 연금 가입자들과 한국에 처음 온 관광객들의 처지가 비슷합니다. 혼자 끙끙 앓고 고민하다가 종업원에게 물어보고 김치찌개를 받아드는 외국인들처럼, 그냥 은행 예금 같은 상품에 퇴직금을 넣어놓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1% 안팎의 매우 저조한 수익률에 만족해야 합니다.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이란? : 그래서 만든 제도가 퇴직연금 디폴트 옵션(퇴직연금 사전지정 운용제도)입니다(🔗관련 기사). 앞으로는 퇴직연금에 가입할 때 근로자들은 이런 유언장(?) 같은 걸 따로 쓰게 됩니다. ‘나 000이 혹시 퇴직연금에 가입한 후 아무런 운용 지시도 없이 4주 이상 이 퇴직금을 종전 포트폴리오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면, 그건 내가 무슨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다. 회사 일에 바빠 정신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따라서 내가 미리 정해놓은 XXX펀드에 내 퇴직연금을 투자해달라. 연락을 해도 나는 바빠서 전화를 못 받을지도 모르니 내가 따로 말을 안 해도 꼭 그렇게 해달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가입자가 미리 정해놨다는 그 <XXX 펀드>는 어떻게 고른 걸까요. 이 과정은 좀 복잡하지만 이 제도의 핵심이니 잘 이해해야 합니다.

1️⃣ 일단 퇴직연금 가입자를 유치하려는 모든 금융회사들은 스스로 고른 펀드 상품들 중 퇴직연금을 굴리기에 적당해보이는 괜찮은 펀드 상품 리스트를 정부에 제출합니다. 그러면 정부가 그걸 심사해서 그 중 10개 정도를 ‘퇴직연금 굴리기에 무난한 공인 펀드’라고 지정해줍니다.

2️⃣ 그러면 그 금융회사는 그렇게 승인 받은 펀드 상품들을 여러 회사에 들고 가서 ‘저희 금융사에 퇴직연금을 맡겨주시면 고객이 바빠서 따로 투자 지시를 하지 않아도 이 메뉴에 포함된 정부 승인 펀드에 자동으로 투자됩니다. 자 이 10개 중에 적절한 상품을 고르세요. 하나만 골라도 되고 10개를 다 골라도 됩니다’라고 설명합니다.

3️⃣ 그러면 회사의 노조위원장이나 근로자 대표가 회사와 협의해서 그 10개 가운데 몇 가지를 고릅니다. 그 회사 직원들은 그 <몇 가지> 중 본인이 맘에 드는 하나(이 하나를 디폴트 옵션 또는 퇴직연금 사전지정이라고 부릅니다)를 골라서 ‘내가 연락이 안 되거든 여기에 넣어달라’는 문서에 서명하게 됩니다.

이러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많은 근로자들은 어차피 또 운용 지시를 하지 않은 채 퇴직연금을 방치할 것이고, 결국 퇴직연금 대부분은 사전에 정해둔 각자의 <XXX 펀드>로 몰릴 것입니다. 펀드 운용사들 입장에서는 자기들이 운용하는 펀드가 각 근로자들의 <XXX펀드>로 선택되는 게 그 펀드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이 됩니다. 각 근로자들의 ‘디폴트 옵션’이 되기 위한 펀드들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질 겁니다.

깐깐해질 퇴직연금 가입사 고르기 : 회사를 돌아다니면서 퇴직연금을 파는 금융회사들 입장에서도 환경이 많이 바뀝니다. 종전에는 퇴직연금을 어디에 가입하든 어차피 은행 예금에 돈이 잠겨있을 가능성이 크므로 평소에 그 회사와 친하던 금융회사에 퇴직연금을 가입하고 맡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디폴트 옵션이 뭐냐에 따라 퇴직연금 수익률이 달라지므로 근로자들은 퇴직연금 가입회사를 선택할 때 좀 더 깐깐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실 근로자들보다는 회사의 입장이 좀 더 달라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개인들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대부분 1% 안팎이었습니다. 상당수가 은행 예금에 들어있기도 하고 그조차도 개인의 선택이니 회사가 신경 쓸 게 없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디폴트 옵션에 따라서 개인들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달라질 전망입니다. 그럼 “왜 우리 회사가 고른 디폴트 옵션 메뉴는 이렇게 부실하냐”는 항의가 생길 수 있습니다.

‘제일 무난한’ 펀드가 선택 받을 가능성 높다 : 이런 상황에 직면한 각 회사의 퇴직연금 담당자들은 잡음을 피하려 ‘제일 무난한 회사’가 권하는 ‘제일 무난한 펀드’를 디폴트 옵션 후보로 고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리고 <제일 무난한>이란 수식어를 갖게 될 펀드나 금융회사들은 아마 꽤 이름난 브랜드를 가진 곳들일 테죠.

10월쯤 되면 정부의 승인을 받은 디폴트 옵션 후보 리스트를 들고 회사들을 방문하는 금융회사 직원들이 슬슬 생길 것입니다. 이미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들도 이런 디폴트 옵션을 두도록 할 수 있으니 ‘내 퇴직금을 굴리는 펀드’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질 겁니다.

예금에 잠자는 72조원은 어디로 흐르게 될까? : 작년 말 기준 퇴직연금 적립금은 총 295조원입니다. 이중 회사가 알아서 굴리는 DB형(확정급여형)이 171조원(58%), 근로자들이 스스로 굴리는 DC형(확정기여형)이 77조원입니다. 역시 근로자들이 알아서 굴리는 IRP(개인형퇴직연금)가 46조원입니다.

근로자들이 스스로 굴려야 하는 120조원 남짓의 퇴직연금 중 60%에 해당되는 약 72조원가량이 은행 예금에 잠자고 있는 겁니다. (물론 원금 보존을 위한 전략적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 72조원이 어디로 움직일지가 이번 ‘디폴트 옵션’ 게임의 관전 포인트입니다. 내 돈이 잠 자더라도 금융회사가 알아서 정해놓은 은행 예금에서 잠자게 하지 말고, 내가 지정한 펀드에서 잠 자게 해달라는 게 디폴트 옵션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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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금 소득세법 고치는 이유

오늘의 이슈

초고소득자는 수입 40%를 세금으로 : 우리나라에선 연봉 5억원이 넘으면 40%의 세율을 매겨 세금을 냅니다. 40%란 수치는 “연봉 5억원 이상의 ‘초고소득자’는 수입의 40% 정도를 세금으로 내도 된다”는 뜻이 반영된 세율입니다. 초고소득자는 먹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 넉넉히 사서 입고 먹어도 돈이 남을 거라는 예상도 반영된 결과입니다.

30년 후에도 법이 그대로면? : 그런데 만약 30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30년간의 물가 상승 때문에 연봉 5억원 이상 소득자가 별로 고소득자가 아니게 될 수 있죠. 5억원을 연봉으로 벌어도 이것저것 쓰고 나면 넉넉히 입고 먹을 소득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세율과 세법이 바뀌지 않으면 30년 후에도 연봉 5억원이 넘는 근로자는 번 돈의 40%를 세금으로 내야 합니다. 이렇게 현행 소득세법 구조는 인플레이션에 의한 자동 증세가 실현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런 세법과 세율 구간은 물가 상승을 반영해 수시로 구간과 세율을 바꿔줘야 합니다. 그래야 진짜 고소득자들만 높은 세율을 적용받고 그렇지 않은 근로자들은 낮은 세율로 숨통을 틔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한동안 고치지 않았던 소득세율과 과표구간을 손보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관련 기사).

참고로 이 소득세율과 구간은 근로자들의 월급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주식이나 집을 사고 판 차익의 양도세 세율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현행 소득세율 구간 3억~5억원 사이는 38%의 세율이 적용되는데, 앞으로 이 세율이 30%로 낮아지면 집이나 주식을 사고 팔아서 얻은 이익이 4억원인 사람이 적용받는 세율도 30%로 낮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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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놓치면 아까운 소식

> 은행, 이자장사 여전…대출 금리 낮춘다더니 신용대출은 올려 :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의 ‘이자 장사’를 경고했습니다(🔗관련 기사). 이에 은행들은 예·적금 금리는 올리고,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낮추는 것으로 대응했는데요. 알고 보니 신용대출 금리는 가파르게 올리면서 예대 마진(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었다는 뉴스입니다(🔗관련 기사). 올 들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의 대출 금리 인하 조치는 17차례인 반면 신용대출의 경우 3차례에 그쳤다네요. 올 들어 전체 가계대출이 감소한 상황에서 신용대출 위주로 금리를 올려 실적을 방어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 美, 휘발유값 진정세 : 고공행진하던 미국의 휘발유 가격이 14년 만에 최대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지난 8일,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이후 하루 최대 하락폭을 기록한 겁니다(🔗관련 기사). 미국의 휘발유 가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평균 가격이 사상 최초로 갤런당 5달러를 넘어섰다가 최근 24일 연속 내렸습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전략 비축유를 풀고 관련 세금을 인하했으며 석유 시추 프로젝트를 재가동 중인 게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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