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처럼 안 되려면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처럼 안 되려면
이주완의 IT산업 나우

SK하이닉스 “ARM 품겠다” : SK하이닉스가 영국의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 ARM을 공동 인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엔비디아가 2년씩이나 인수에 공을 들이다 얼마 전 결국 포기한 바로 그 ARM입니다. 엔비디아의 포기 선언이 나온 두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국내외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과연 SK하이닉스는 ARM을 품을 수 있을까요? 엔비디아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ARM이 무슨 회사인데? : ARM은 일본 손정의 회장의 소프트뱅크를 대주주로 둔 영국의 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입니다. 2020년 소프트뱅크가 자금난을 이유로 ARM 매각을 결정했을 때부터, 이 회사는 반도체 업계의 핫이슈로 자리매김했습니다. ARM이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압도적이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를 설계하려면 기본이 되는 명령어 시스템(ISA: Instruction Set of Architecture)이 필요합니다. 모바일 분야 ISA 최고 강자가 바로 ARM입니다. 퀄컴·삼성전자·애플 등을 고객사로 두고 전 세계 모바일 반도체 시장 9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ARM이 독립 기업일 때는 주인이 누가 되든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만약 ARM이 특정 반도체 기업의 손에 넘어간다면 그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에 모두들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 서 있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경쟁사가 ARM을 인수하게 되면 낭패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죠.

엔비디아는 왜 ARM 인수에 실패했을까 : 내로라하는 많은 경쟁자 중 엔비디아가 ARM 매수자로 낙점됐지만 올해 2월 최종 결렬됐습니다. 영국, 중국, 미국 등의 반대로 독과점 심사를 통과하지 못한 게 결정적이었지요. 엔비디아가 비메모리 분야 강자인 ARM을 인수할 경우 비메모리 시장에서의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이슈 때문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아이러니하게도 비메모리 시장에서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는 것이 ARM 인수전에서는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2년 전 제가 쓴 칼럼을 읽어보니 천문학적인 매각 대금은 주식 스와프 형태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컨소시엄(연합체) 형태가 아니면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더군요.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실패는 예견된 참사입니다.

컨소시엄 구성은 만능키일까? : 엔비디아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았을까요? SK하이닉스는 처음부터 단독 인수보다는 컨소시엄 구성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50조원이 넘는 인수 대금도 부담이겠지만 SK하이닉스가 컨소시엄을 택한 건 엔비디아를 좌절시켰던 독과점 심사를 염두에 둔 것 같습니다. 문제는 컨소시엄을 어떻게 구성해야 각국의 독과점 심사를 통과할 수 있을까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독과점 심사를 통과하는 건 간단합니다. 컨소시엄에 알리바바, 화웨이, SMIC, YMTC 등 중국 기업을 참여시키면 됩니다. 그러나 이 경우 미국 심사를 통과하기 어려워집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견제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ARM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 놓이는 건 허용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미국의 독과점 심사를 통과하려면 PE, IB 등 재무적 투자자의 비중을 높이고 2개 이상의 미국 IT 기업들로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됩니다. 그러면 당연히 중국이 반대를 하겠지요. 영국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ARM을 런던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키면 됩니다. 그런데 컨소시엄 참여자들이 ARM의 런던 상장을 찬성할 지는 미지수입니다. 미국, 중국, 영국, 더 나아가 EU까지 독과점 심사를 모두 통과할 수 있는 컨소시엄은 어떤 형태여야 할까요?

과거 키옥시아 지분 인수 방식은 지양해야 : 주요국의 독과점 심사라는 허들을 넘기 위해서는 매우 복잡한 형태의 컨소시엄이 필요할 겁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지혜로 기가 막힌 컨소시엄을 구성해 독과점 심사를 모두 통과했다고 ARM을 품은 것일까요?

SK하이닉스는 몇 년 전 컨소시엄 형태로 도시바(키옥시아) 지분을 인수했습니다. 당시 컨소시엄 구성은 미국 사모펀드 25%, 일본 금융기관 및 국책기관 50%, 일본 기업 10%, SK하이닉스 15%였습니다. 그런데 이때 컨소시엄이 확보한 지분은 49%에 불과했고 51%는 여전히 도시바와 일본 국책기관 소유였죠. 결국 SK하이닉스는 3조원(3000억엔)을 투자해 7.5%의 지분을 확보한 셈입니다. 경영권을 행사할 수도, 공장을 활용할 수도, IP(지식재산)에 접근할 수도 없는 단순 투자자로서 말이죠. 차라리 3조원으로 테슬라 주식을 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요? 독과점 심사의 덫에 빠져 이러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됩니다. ARM의 실질적 경영권을 확보하거나, 최소한 IP를 자유롭게 활용할 권리 정도는 확보해야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도 힌트가 있다면 : 독과점 심사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몇가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미국 반도체 기업을 포함하되 엔비디아, 인텔 등 비메모리 시장에서 이미 독점적 지위를 가진 기업은 제외해야 합니다. 메모리 기업이거나 규모가 작은 비메모리 혹은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이어야 합니다. 중국 기업을 포함시키되 메모리 기업이나, 반도체 관련성이 낮은 기업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ST마이크로, 인피니언 등 유럽계 자동차용 반도체 기업을 포함시키면 유리합니다. 다만, 이렇게 구성할 경우 컨소시엄 참여자가 ARM 인수에 관심을 가질지는 미지수입니다.

포스코에서 경영컨설팅을 합니다. 복잡한 IT 이슈를 쉽게 설명합니다.

놓치면 아까운 소식

🏘 다주택자가 집을 팔 때 내야하는 양도소득세가 이르면 이달부터 1년간은 부과되지 않을 전망입니다. 인수위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한시적으로 배제하는 방안을 정부에 요청했기 때문인데요. 종부세 과세 기준일인 6월 1일 이전에 다주택자가 주택을 내놓도록 유도해 부담을 덜어주고 주택 공급량을 늘리자는 취지입니다. 현 정부가 요청을 따르지 않아도 새 정부가 5월 10일 들어서면 즉각 이 조치를 시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 우리나라 20~30대의 빚이 지난 2년간 100조원가량이나 늘어났습니다. 2030세대의 빚은 작년 말 475조8000억원을 기록해 27%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16.7%)보다 가파른데요. 이 기간 집값이 급등하고 금리는 낮아지면서 자산이 적은 청년층을 중심으로 ‘영끌’ 대출이 늘어난 결과로 풀이됩니다.

🛢 미국 정부가 고유가를 잡기 위해 하루 최대 100만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기로 했습니다. 방출은 최장 6개월 동안 이뤄지며 1억8000만 배럴에 달할 전망입니다. 동맹국들에 동참을 권할 수 있어 전 세계적으로 방출량은 더 늘어날 수 있을 전망입니다. 이 같은 소식에 러-우 전쟁 여파로 배럴당 최고 130달러까지 급등했던 국제 유가는 31일 장중 6% 가까이 급락해 100달러 선에서 거래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