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듯한 구호는 아무것도 못 바꾼다

그럴듯한 구호는 아무것도 못 바꾼다
김태규의 HR 나우

얼마 전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유현준 교수님의 강연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 건축물에 대한 내용이었는데요. 유 교수님은 우리나라의 학교를 보면 감옥이 연상된다고 했습니다. 감옥의 목적은 통제에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출입문만 두죠. 긴 복도를 지나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초, 중, 고등학교의 건물 구조도 감옥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밖으로 향하는 통로가 개방되어있지 않습니다. 학생들은 정해진 길로만 움직여야 하죠.

이런 구조는 실제로 학생들을 통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활용되기도 합니다. 등교할 때 한 개 문만 개방하고 그 앞에 선 학생부 선생님이 복장 검사를 하는 식이죠. 이런 환경에서는 어떤 학생도 튀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기 어렵습니다. 건물 구조에서부터 조직에서 튀면 죽는다는 시그널을 지속적으로 받게 되니까요. 우리의 오랜 속담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는 말이 있듯이요.

경영대 교수가 갑자기 웬 건축 얘기를 하냐고요? 학교 건물의 구조가 우리나라의 다양성 부족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통제와 획일성에 길들여진 것이죠. 이런 현상이 시간이 흘러 기업 조직의 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고요.

엄격한 통제로 인한 획일성 아래에서는 자유로운 토론이나 창의성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IT 시대로 접어들면서 유례없이 변화가 빨라졌고, 다양성이 있어야만 발휘될 수 있는 창의성과 유연성이 중요해졌습니다. 이전에는 ‘다양성이 적어서 아쉽다’ 정도였다면 이제는 ‘다양성이 없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다양성이 키워지지 않는 이유 : 다양성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요? 사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다양성 증진을 위한 대책을 마련했습니다. 소수 계층 채용 우대 정책과 같은 제도적인 장치가 많죠. 하지만 이런 노력들은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나와 다른 상대, 집단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필요한데 이게 없이 허울 좋은 정책이나 제도만 도입된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는 건 여러 현상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근 툭하면 불거지는 성별 갈등이 대표적인 예죠. 아주 사소한 일이 사회적 대립으로 번지기도 하는데요. 나와 다른 견해에 대해 존중하는 법을 몰라 끝내는 감정적인 충돌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인드셋이 갖춰져있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서로 다른 사람, 집단을 섞이게 하면 오히려 갈등의 폭발이라는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도 있는 것이죠. 좀 더 근본적인 부분에서부터 출발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공감 능력의 3단계 : 상대에 대한 인정과 존중을 다른 말로 하면 공감 능력입니다. 에모리(Emory) 대학의 후란스 드 봘(Frans de Waal) 교수에 따르면 공감 능력은 3단계로 구성돼 있습니다.

첫째는 State Matching, 즉 상황 파악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주변 분위기를 보고 웃어도 되는 상황인지 적절하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둘째는 Sympathetic Concern입니다. 감정적 동조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상황 파악을 넘어 상대의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 단계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단계는 Perspective Taking입니다. 관점 채용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상대의 생각, 상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관점 등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의 공감 능력은 어떤 단계에 와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직 마지막 단계인 관점 채용까지 성장하지 못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다양성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대고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공감이 필요한데, 사회적으로 공감 능력이 저차원적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부터 바꿔야 : 좀처럼 공감 능력이 키워지지 않고 갈수록 갈등만 깊어지는 데는 우리가 ‘그럴듯한 구호’로만 다양성, 존중, 공감을 외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리멤버 나우를 통해서도 비슷한 말씀을 드린 적 있지만 존중, 공감 같은 내재적 가치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먼저 가시성 높은 요소들을 움직여야 합니다. 예를 들어 조직 내 구성원간 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 ‘더 많은 소통을 해야 합니다!’라고 외치기 보단 눈에 보이는 사내 카페를 만들어 자연스럽게 교류를 유도하는 것이지요.

내재적 가치 중에서도 고차원적인 요소일수록 일상에서 눈으로 보고 느끼는 ‘환경’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학교의 구조가 통제와 획일성을 초래한 것처럼 우리가 다니는 회사의 구조나 분위기가 공감 능력, 나아가 다양성이 꽃필 수 있는 여지를 막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봐야 합니다. 그저 다양성, 창의성, 유연성을 말로만 외치는 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입니다. 리더십, 조직변화 등을 주로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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