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기업의 문화가 우리 회사에선 안먹히는 이유

선진 기업의 문화가 우리 회사에선 안먹히는 이유
김태규의 HR 나우

한 대기업에서 임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는데 미국, 유럽 최신 HR 트렌드에 대해 다뤄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조금 시큰둥했습니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선진 기업의 경영관리기법을 모방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죠. 물론 우리나라의 경영관리기법이 발전하는 데 있어 선진 기업의 사례가 도움이 된 건 사실이지만, ‘따라하기’에만 머물러 있다면 금방 한계를 만나게 됩니다.

제도만 가져오면 아무 효과가 없다 : ‘팀제’라는 조직 구성 방식이 있습니다. 상호보완적인 직무를 가진 직원들이 하나로 묶여있는 형태입니다. 직급과 직책이 이원화되고 팀내의 계층이 간소화되기 때문에 빠른 의사결정과 수평적인 소통을 가능케 합니다. 이런 장점 때문에 오늘날 많은 한국 기업들은 당연한듯 ‘팀제’를 차용하고 있지만, 이 제도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올 때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팀제가 처음 한국에 들어온 것은 1980년대입니다. 대부분의 기업이 기능식 부서제로 운영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미국과 유럽 기업에서 사업 단위로 팀을 구성해 경쟁력을 끌어올렸다는 소식이 들렸고 우리나라에서도 유행처럼 너나 할 것 없이 팀제를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당시 팀제 도입에 대해서 초기 한국의 연구 결과들은 대부분 부정적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진 경우가 많았다는 거죠. 전통적인 기능성 부서제 조직이 더 높은 성과를 냈고, 유연성에서도 앞서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팀제가 안 먹히지’라는 의문은 한참이 지나서야 풀립니다. 2006년 서울대 노사관계연구소가 진행한 연구에서 우리나라에서도 팀제의 효과성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팀제의 효과성이 나타나기 시작한 기점은 IMF 시기였습니다.

본질을 깨닫자 제도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 IMF 외환위기 이후로 팀제가 효과를 발휘하게 됐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외환위기 때 우리나라 에는 유례없는 큰 변화가 닥쳤습니다. 굳건하던 기업이 하루 아침에 무너졌고 산업 지도가 완전히 뒤바뀌는 광경을 모두가 목격했죠. 더이상 관성에 갇혀 있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이 생긴 것입니다. ‘구관이 명관’, ‘하던대로 하면 돼’ 식의 생각을 갖고있던 경영진의 철학이 바뀌었습니다. 구성원들도 유연한 조직만이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IMF가 일으킨 급격한 환경변화 덕에 ‘팀제’가 추구했던 가치인 유연성, 다양성, 투명성, 수평성의 중요성을 알게 된 거죠. 구성원들이 이 가치에 대해서 공감하는 마인드셋을 갖추니 비로소 ‘팀제’라는 제도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독립적 사고의 틀을 만들어야 할 때 : 어떤 경영관리기법이 추구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모방에만 집중하면 어떤 조직이든원하는 바를 이루긴 힘듭니다. 모방하기 쉬운건 겉으로 보이는 제도나 문화인데 이는 많은 경우 그 조직에 특화된 것일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인 최진석님의 책 <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포착해내는 지성적인 힘을 키우고, 이를 통해서 단순한 지식의 습득이나 선진문화를 따라하는 것에서 벗어나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의 성공 사례를 그대로 가져오려고 하지만, 이제는 본질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정 제도를 도입하면 그것으로 다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다양성, 수평성, 투명성, 유연성을 조직에 부여하기 위한 경영관리기법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본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따라하기는 문화의 종속이라는 귀결로 마무리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한국의 특수성을 감안한 독립적인 사고의 틀을 만들 때가 되었습니다.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입니다. 리더십, 조직변화 등을 주로 연구합니다.

리멤버 나우를 지인들과 공유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