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찍어 쓰는 일의 위험과 달콤함

돈을 찍어 쓰는 일의 위험과 달콤함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새로운 사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을 지원하는 수단을 놓고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취지는 좋으나 재원이 부족해서 안 된다는 신중론에 대해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서 도우면 되지 않느냐>는 강경론이 맞붙으며 정말 그래도 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들을 돕는 데 돈이 얼마나 드나요: 코로나19로 자영업자들이 강제로 영업을 중단하면서 입은 손실은 한 달 동안 약 24조원에 달합니다. 정확한 계산은 쉽지 않지만 영업제한으로 줄어든 매출의 50~70% 정도가 자영업자들이 스스로 떠안은 손실이라는 가정으로 계산한 결과입니다.

한 달 매출이 2000만원인 자영업자의 매출이 1000만원으로 감소하면 그 자영업자가 벌어들이는 순이익은 모두 사라지고 오히려 수백만원의 손실이 생깁니다. 임대료나 인건비, 설비의 감가상각비 등은 손님이 있으나 없으나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정부의 1년 예산이 500조원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1년 예산의 절반을 자영업자 지원용으로 쏟아부어야 한다는 계산입니다. 국민 1인당 월 50만원에 해당하고 1년으로 환산하면 1인당 600만원을 추가로 세금으로 내야 그 돈으로 자영업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자영업자들이 유독 많다는 특징도 고민을 깊게 만드는 원인입니다.

그 돈을 어떻게 마련하나요: 그게 문제입니다. 어떻게든 정부가 마련하는 수밖에 없고 정부가 돈을 마련하는 방안은 증세와 국채발행이 있는데 증세는 당장 어려우니 결국 남는 방법은 국채발행입니다. 문제는 국채를 갑자기 수백조원 규모로 더 찍으면 시장에서 그걸 소화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정부는 매년 수십조원 규모의 국채를 추가로 더 발행해서 예산의 구멍을 메워왔습니다. 그러던 것이 작년에는 100조원이 넘는 국채를 발행해서 돈을 조달해 예산으로 썼고 올해도 약 100조원의 국채를 시중에 추가로 발행할 계획입니다. 이 정도 국채를 과연 시장에서 잘 흡수할 수 있을까 하는 게 시장의 걱정거리 가운데 하나일 만큼 정부의 국채 발행량은 목까지 차오른 상태입니다.

물론 시중의 여유자금이 오갈 데가 없어서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라도 사서 이자를 받자는 분위기라면 정부가 국채를 많이 찍어도 소화되겠지만 그런 분위기는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오는 의견 가운데 하나는 <한국은행이 돈을 찍어서 그 국채를 사면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이런 일을 하면 남미식 인플레이션 등 다양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지적도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시도가 전혀 새롭고 놀라운 시도는 아닙니다.

사실 이런 일은 이미 일부 국가들은 하고 있는 일이고 작년에 미국에서도 했던 일과 비슷합니다. 미국은 지난해 중앙은행이 찍어낸 돈으로 국채가 아닌 기업어음(CP)도 사들였습니다. 특수목적법인을 설립하고 미국 재무무가 보증을 서는 형식을 갖추긴 했지만 누가 뭐래도 돈을 찍어서 기업들에게 빌려준 구조입니다.

지난해 한국은행도 비슷한 결정을 내린 바 있습니다. 국채를 시장에서 사주기도 하고, 국채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 형식은 좀 다르지만 한국은행 금고로 국채가 들어가고 한국은행 밖으로 현금이 나가는 구조는 동일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그 후에 어떤 결과가 뒤따를지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라 논란이 이어집니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하고 있는 정책이라는 주장도 있고,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은 가능하지만 한국 같은 비기축통화국에서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아무튼 여당의 주장대로 일이 진행되면 한국은행이 200조원의 돈을 찍어서 정부를 빌려주고 정부가 그 돈을 자영업자들에게 풀면 시중에 200조원의 돈이 더 풀리는 셈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이렇게 돈이 풀려도 그 돈이 다른 나라에서 받아들여지는 돈이라 그 돈이 미국이나 유럽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나라로 빠져나갑니다. 그래서 돈을 푸는 효과가 떨어지기도 하고, 돈을 푸는 부작용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같은 비기축통화국은 반대입니다. 푼 돈이 계속 우리나라에 머무르기 때문에 효과도 크고 부작용도 큽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이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자영업자들이 입은 손실이 한달에 20조원이라면 그 돈은 소비자들의 주머니에서 빠져나가지 않고 그대로 머무른 돈입니다 20조원의 돈이 소비자들의 지갑에는 남아있다는 의미입니다. 소비자들에게 생긴 여윳돈 20조원을 가져다가 자영업자들에게 주면 해결되는 일입니다.

<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소유한 돈에서 10% 정도만 떼어서> 자영업자들에게 나눠줘도 됩니다만 그러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동원하는 간접적인 방법이 돈을 찍어서 시중에 풀어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자영업자들에게 200조원의 돈을 찍어서 공급하면 시중에 200조원의 돈이 더 풀리고 그로 인해 돈의 가치가 10%쯤 희석되면(물가가 10%쯤 오르면) 결국은 <돈을 많이 갖고 있던 사람들이 자기들이 소유한 돈에서 10%를 떼어서> 공중에 흩뿌린 셈이 됩니다. 결과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괜찮은 것 아닌가요: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정부에게 공급하고 정부가 그 돈을 시중에 뿌리는 행위는 전례 없는 일이어서 놀랍기는 하지만 그런 일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그래서는 안 되거나 그러면 큰일이 나는 일은 아닙니다. 어차피 시중에 돌아다니는 모든 돈은 중앙은행이 찍어서 시중에 내보낸 돈입니다. 그러니 또 찍어서 내보낸다고 무슨 탈이 갑자기 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이 노골적으로 허용되기 시작하면 모든 게 무너지는 시발점이 됩니다.

돈 찍어 쓰는 일, 한번 하면 계속해야 한다: 내가 농사지은 쌀로 밥을 해먹는 것과 이웃의 쌀을 훔쳐먹는 것은 익은 쌀이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동일하지만(그래서 배탈이 나거나 그럴 이유는 없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매우 다른 행위이고 매우 위험한 행위입니다.

이웃의 쌀을 훔쳐먹는 행위가 허용되기 시작하면 아무도 스스로 농사를 짓지 않게 되듯이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서 정부가 돈을 쓰는 게 허용되기 시작하면 앞으로 모든 어려운 이들은 그런 식으로 돕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그게 걱정의 본질입니다.

국무총리가 대출이자를 끌어올렸다?
오늘의 이슈

전문] 정세균 주말 한밤담화 “무리한 대중집회 단호히 대처” - 중앙일보

새로운 사실: 정세균 국무총리의 발언으로 시중 금리가 올랐습니다.

정세균 총리가 며칠 전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질타하면서 자영업자 손실 보전을 법제화하라고 한 발언 탓입니다.

이 발언의 옳고 그름과는 무관하게 이 발언이 채권시장에서는 “그렇다면 정부의 국채 발행량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하는 단초가 됐습니다. 국채 발행량이 늘어나면 금리를 더 비싸게 불러야 국채가 팔리게 되고 그러면 시중 금리가 올라가게 됩니다.

이 발언이 있은 날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1.758%로 전날보다 0.052%포인트 올랐습니다. 2020년 1월 20일(연 1.762%) 후 최고치입니다.

고평가되는 중저가 아파트들

새로운 사실: 서울의 중저가 아파트들의 가격이 9억원을 향해 계속 달려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9억원을 넘는 아파트가 숫자로도 더 많아졌습니다.

이유는 9억원을 기준으로 대출 규제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9억원이 넘으면 대출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에 주로 9억원 이하의 아파트가 매수대상이 되고 그 결과 9억원 이하의 아파트들이 빠르게 가격이 올라가면서 9억~15억 사이 가격으로 몰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9억, 15억을 기준으로 한 대출규제가 언젠가는 풀릴 그 이후에 벌어질 일입니다. 과거에 각각 10억원, 6억원 하던 아파트가 요즘은 11억원, 9억원으로 격차가 크게 줄었습니다.

대출규제가 사라지면 그 격차도 다시 살아날 텐데 그러면 대출 규제로 아파트 가격이 눌려있던 것은 튀어 오르고 반사이익을 받던 중저가 아파트는 다시 내려갈 것입니다. 중저가 아파트가 가격을 지지하면 대출 규제로 가격이 눌려있던 아파트는 더 강하게 튀어 오를 수 있습니다.

대출 규제로 가격분포가 왜곡되어 있는 최근 시장에서 매수 대상 주택을 더 신중하게 골라야 하는 이유입니다.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놓치면 아까운 소식

💸 신흥국으로 몰리는 자금: 작년 4분기 신흥국 주식·채권 시장에 1800억달러(약 198조9000억원) 규모의 자금이 순유입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올해 들어서도 3주간 중국, 브라질, 러시아, 인도 등 30개 신흥국에 170억달러가 유입됐습니다. 초저금리에 지친 선진국 투자자들이 고수익이 기대되는 신흥시장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으로 관측됩니다.

🇨🇳 이제 중국 경제의 중심은 남부: 중국 경제의 중심이 쓰촨성과 충칭, 후베이성, 안후이성, 장쑤성을 포함한 ‘남부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중국 GDP에서 남부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65%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5년 전보다 5%포인트 증가한 규모입니다. 중국 경제가 건설 중심에서 소비와 서비스 분야로 이동하면서 철강사와 화학기업이 몰린 북부 지역의 GDP 비중이 줄어든 겁니다. 남부 지역의 지방정부들은 비교적 시장 간섭을 덜 하는 편이기도 합니다. 상하이와 선전에는 기술 스타트업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 비대면 시대에 지점 늘리는 역발상: 증권사들이 영업점을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던 상황에서 미래에셋대우가 올해 영업점을 4~5개 늘립니다. 주식 투자를 시작한 고액 자산가들을 전담 마크하기 위해서입니다.

💵 중개수수료 내려갈까: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인중개사와 시민 의견을 반영해서 중개수수료를 내리는 방안을 마련했다는 JTBC의 보도입니다. 중개수수료는 거래금액이 비쌀수록 올라가는데, 최근 몇 년 사이 집값이 빠르게 오르면서 중개수료도 급증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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