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한 돈풀기에도 물가 안 오르는 까닭

전 헤지펀드 매니저이며, 지금은 SK증권에서 주식전략을 담당합니다.

이효석의 주식으로 보는 세상

무제한 돈풀기에도 물가 안 오르는 까닭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이후 각국 중앙은행은 전에 없던 속도로 돈을 찍어 경기를 부양하고 있습니다. 돈을 찍어서 쓰면 물가가 오르는 부작용(인플레이션)이 생길 수 있는데요. 미국 중앙은행(연준)은 이 부작용마저도 일부 무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동안은 물가가 잘 오르지 않았으니, 다소 물가가 오르더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건데요. 다만 연준이 이렇게 돈을 찍어 경기를 부양하더라도 물가가 오르기는 쉽지 않습니다. 원유 가격이 오르기 어렵다는 게 큰 이유입니다.

저장공간에 원유가 꽉 차있다: 작년 말 원유(서부텍사스산, WTI) 가격은 60달러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발하자 WTI 선물 가격은 한때 -38달러까지 떨어졌습니다. WTI 선물의 만기가 되면 원유 현물을 매수자에게 가져다주게 돼있는데요. 원유를 가져다 주려고 보니, 저장공간이 없었던 거죠. 만기는 다가오고, 원유를 저장할 곳이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WTI 선물 보유자들이 눈물을 머금고 선물을 매도한 겁니다. 저장공간 부족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유가는 차츰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30달러 후반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습니다. 유가를 전망하긴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오늘은 원유의 공급 및 수요와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힌트를 통해서 유가가 반등하기 어려운 이유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원유 소비가 줄었다: 코로나19 때문에 글로벌 원유 수요 전망치가 크게 낮아지던 원유 수요가 하루 1500~2000만 배럴이나 줄어들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전 세계에서 하루에 소비하는 원유 수요가 대략 1억 배럴 정도 되니, 15~20% 정도 감소한다는 전망이었던 것이죠.

수요가 줄어들고 유가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지자 OPEC+ 산유국들이 모여서 회의를 합니다. 감산을 해서 어떻게든 막아보자는 것이죠. 오랜 시간 회의를 거쳐 하루 1000만 배럴씩 감산을 하자는 합의에 이르게 됩니다. 이후 유가는 반등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유 더 생산하고 싶은 산유국들: 정확한 감산 규모는 1000만 배럴이 아니라 970만배럴이었습니다. 이유는 멕시코가 자국에 할당된 규모(40만 배럴)이 아니라, 10만 배럴만 감산하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멕시코에는 PEMEX라고 하는 국영 정유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현재 자본잠식 상황인데요. 멕시코의 현직 대통령은 이 회사를 정상화해 고용을 유지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던 상태라 멕시코는 할당 받은 40만 배럴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멕시코를 제외한 주요 산유국들의 상황도 큰 차이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2015년에는 4.4% 수준이던 카타르의 부도 확률이 최근에는 10% 중반까지 상승했는데요. 이는 그만큼 산유국들의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유가가 조금이라도 더 상승하기만 하면, 다시 생산을 늘려야만 하는 국가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생산한 원유, 다 팔리려면 멀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재고입니다. 아래 그림은 미국 에너지관리청이 지난주에 발간한 보고서의 내용입니다.

그래프 <원유 생산과 소비 추이>

출처: 미국 에너지관리청

대체로 원유의 생산과 소비는 비슷하게 움직이고, 그 차이가 100만 배럴이 넘는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2020년 4월에만 무려 1900만 배럴이 재고로 남았습니다. 문제는 이 재고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줄어들기 전까지는 가격이 올라가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원유의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물가 역시 잘 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경제 전반적으로 물건 가격이 상승한다는 의미의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기 어려운 이유는 첫째, 가격이 오르면 언제든 생산을 늘릴 수 있는 기업이나 국가가 많기 때문입니다. 둘째, 갑작스러운 수요 급감으로 인해 재고가 급증한 상황이고, 재고가 사라질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입니다. 재고가 많이 남아있으면 가격이 오르기 어렵습니다.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오늘의 이슈

혼란스러운 서울 아파트 시장

요즘 서울 아파트 시장의 상황은 보는 각도에 따라 다릅니다. 전체 아파트 가격의 평균치는 지난주에 0.01%로 3주 연속 같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지만 매매가 줄어들다보니 직전 거래가보다 크게 내리는 지역과 크게 오르는 지역이 뒤섞여있습니다. 급매물도 나오고 신고가도 등장하는 혼란스러운 분위기라는 게 요즘 서울 아파트 시장을 비교적 정확하게 관찰한 결과입니다.

이런 현상은 적어도 서울에서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몇 개월 전에 비해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시장에 나올 가능성이 커진 상황인 것은 분명하지만, 여러 이유로 매매거래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도 크기 때문입니다.

급매물 줄이는 양도세: 높은 양도세율은 이런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다주택자들의 급매물을 줄이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3주택의 양도세율은 70%에 육박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지금보다 1억원을 싸게 팔아도 양도차익 감소에 따른 양도세 절감분이 7000만원가량이어서 매도자는 1억원을 싸게 팔아도 3000만원 남짓만 손해 보면 됩니다.

입주가 바로 가능한 빈집의 매물 가격과 세입자가 들어있는 집의 매물 가격이 크게 차이가 나는 상황은 매매를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수요자는 전세를 끼고 매수하는 것보다는 직접 입주할 수 있는 아파트를 찾게 되는데 앞으로는 1주택자라도 직접 장기간 거주해야만 양도세 감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주택자들의 매물은 대부분 세입자를 끼고 있고 매수자들 입장에서는 그 세입자들을 앞으로 2~3년 이내에는 내보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주택자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이유로 세입자가 있는 지금 팔면 시세보다 더 나쁜 가격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요. 앞서 언급한 높은 양도세율이 매도자가 더 기다리는 것의 리스크를 줄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다렸다가 세입자를 내보내고(또는 2~4년 후 세입자가 나가는 시기에 맞춰서 입주 가능한 아파트로 만들어서) 매도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앞으로의 부동산 시황을 나쁘게 보는 다주택자들은 현재 세입자에게 일정액의 합의금을 주고 빈집으로 만든 후에 빠른 매도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그 상황에서 세입자들이 요구하는 합의금은 그런 선택을 통해 집주인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최대한 근접할 수밖에 없습니다.

똘똘한 한 채 선호하는 분위기: 한편 인기 주거지역의 전세가격은 계속 오르고 있어서(경기도로 확산되는 `전셋값 10억`) 전세를 검토하던 세입자들이 경우에 따라 매수로 돌아설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보유세가 아파트의 가격에 따라서만 부과되는 게 아니라 보유한 주택 수에 따라 부과되는 방식이어서 보유주택 숫자만 줄이고 그 돈으로 더 인기지역 1주택으로 옮기려는 수요도 남아있어서 인기지역에서는 신고가가 나타나기도 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나올 분위기는 만들어졌지만 그 선택을 머뭇거리게 만드는 다양한 요인들이 여전히 남아있는 가운데 인기지역에서는 매수를 부추길만한 요인(전세가 급등, 똘똘한 한채 선호 현상)도 남아 있어서 시장의 눈치보기와 급락 급등이 동시에 나타나는 시황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놓치면 아까운 소식

📉코로나 재확산에 민간 소비 다시 줄어든다: 코로나19 재확산 탓에 대면 소비가 줄어들면서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매출과 고용이 부진하고, 그 영향으로 저소득층의 경제 타격이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한국은행이 드러냈습니다. 지난 2분기에는 긴급 재난지원금 지급과 개별소비세 인하 등 정부정책에 힘입어 소비가 다소 회복됐지만, 코로나19 재확산 이후엔 회복 속도가 느릴 것으로 판단된다는 설명입니다.

📱안드로이드 포기한 화웨이: 지난 2분기에 삼성전자를 제치고 스마트폰 출하량 1위에 올라섰던 화웨이가 미국의 제재로 구글 안드로이드를 포기합니다. 대신 자체 운영체제인 홍멍을 내년부터 탑재할 예정입니다. 독자 OS를 흥행시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앱 생태계를 화웨이 스스로 구축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화웨이는 전 세계 앱 개발자들에게 다양한 보상책을 제시하고 있지만 구글 플레이스토어나 애플 앱스토어와 견줄 정도로 충분한 앱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러 OTT 공존할 수 있다: OTT업계의 선두주자인 넷플릭스는 아마존, 애플, 디즈니 등으로부터 쫓기고 있습니다. 치열해진 경쟁에 넷플릭스의 미래에 관한 부정적인 전망도 늘었는데요. 이에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여러 OTT가 각기 다른 매력을 갖춘다면 소비자는 여러 서비스를 한번에 이용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수소트럭 만든다던 니콜라, 사기였다?: 최근 GM과 파트너십을 맺은 미국 수소전기트럭 업체 니콜라가 대규모 사기극을 벌여왔다는 의혹에 휩싸였습니다. 의혹을 제기한 건 금융분석업체 힌덴버그 리서치인데요. 힌덴버그는 수소 가격을 1/4 수준으로 낮췄다던 니콜라가 사실은 수소를 생산하고 있지 않으며, 수소 생산·인프라 담당 임원인 트래비스 밀턴은 트레버 밀턴의 남동생이며 건설 하도급업체 출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수소 전문가’라고 소개됐던 인프라 개발 담당 데일 프라우스도 과거에 골프 클럽을 운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8년에 시연한 첫 수소트럭도 사실은 경사로에서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달리는 것처럼 보이게 했을 뿐이라는 증거도 제시했습니다. 힌덴버그는 니콜라 주식에 대한 매도 포지션을 취했고, 11일 뉴욕 증시에서 니콜라 주가는 전날보다 14.48% 떨어진 32.13달러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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