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월] 디플레이션 걱정, 해야 하나?

‘리멤버 나우’는 국내 최고의 경제 전문가들이 매일 아침 최신 경제 이슈에 대해 설명드리는 콘텐츠 레터입니다.

물가상승폭이 둔화되면서 ‘디플레이션’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경기 불황’과 동의어처럼 인식되는 경우도 많은데, 엄밀히 말하면 다릅니다. 디플레이션이 온다면 정말 상황이 심각한 건데, 과연 우리가 지금 디플레 걱정을 해야 하는지 짚어봤습니다. 금값에 이어 귀금속 값도 오르고 있습니다. 9월 9일 ‘리멤버 나우’ 입니다.

이진우의 익스플레인 나우

디플레이션 걱정, 해야 하나?

지난달 8월의 소비자물가가 ‘마이너스(-0.04%)’를 기록한 것이 디플레이션의 전조현상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현상인지를 두고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디플레이션의 진입구간이라면 개인들의 재테크 방향도, 기업들의 투자 계획도, 정부의 정책 기조도 모두 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가가 내리는 게 그렇게 문제인가요?

물가가 낮아지더라도 일시적인 기저효과(작년 이맘때 이례적으로 높았던 물가 때문에 올해 물가가 상대적으로 낮아진 것)이거나, 기술개발로 똑같은 제품을 더 싸게 내놓을 수 있어서 생긴 물가 하락은 별 고민거리가 아닙니다. (이런 물가하락을 공급요인에 따른 물가하락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비가 갑자기 쏟아지면 동네 우산 가격이 일시적으로 올라가는데 그걸 두고 우산값 올라서 서민경제가 큰일이라는 걱정을 하지는 않지요. 양파가 풍년이라 양파가격이 폭락하면 그건 양파농민들에게는 걱정이지만 시간이 해결할 문제이지 국가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아닙니다. 불경기로 소비자들이 양파 소비를 줄이는 바람에 생기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주머니 사정 또는 소비의욕의 저하로 생긴 판매부진과 그에 따른 물가 하락은 정말 걱정거리  입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쯤 되면 물가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시스템 문제가 됩니다. 저물가는 원인이 아니라 그냥 증상일 뿐입니다.

우유의 생산량이 비슷한데 소비가 줄어서 우유값이 내려가는 것이 그런 예 입니다. (이런 물가하락을 수요요인에 따른 물가 하락이라고 합니다) 물론 우유값이 어느정도 내려가면 소비자들은 저렴해진 우유를 다시 장바구니에 담기 시작하지만 디플레이션같은 심각한 경기침체가 오면 사람들의 소비심리가 강하게 위축되어 좀처럼 손이 나가지 않게 되고,  우유 가격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우유 업계는 투자와 고용이 줄고 소득이 감소하고 그 때문에 우유 구매여력은 더 줄어들고 소비는 더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그게 디플레이션 입니다.

-그럼 지금은 단순한 물가하락 인가요, 구조적 불경기 인가요?

요즘의 물가하락이 그래서 일시적인 일인지 디플레이션의 전조 현상인지가 그래서 궁금한 겁니다. 기침을 하고 있는 사람이 먼지 때문인지 폐렴이라서 인지가 궁금하다는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물가 하락이 공급요인에 의한 것이냐, 아니면 수요요인에 의한 것이냐를 두고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약간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공급요인에 따른 것이라면 괜찮지만 수요요인이라면 좀 더 크고 심각한 일일 수 있어서죠.

정부는 작년 여름 폭염으로 농산물 가격이 올랐는데, 올해는 그 영향이 사라져서 농산물 가격이 낮아진 게 물가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이며 그래서 물가 하락이 일시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KDI는 7월 소매판매액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0.3% 감소한 것 등을 들어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물론 KDI도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의 하락에 다른 물가하락 요인이 커서 그 요인이 사라지는 올해 연말 이후에는 다시 물가가 반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물가 그 자체가 아니라 물가를 통해 또는 물가 이외의 다른 지표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들의 심리이고, 그건 일시적 계절적 요인 때문에 물가가 내린 것으로만 보기는 어려운 상황 이라는 게 KDI의 진단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 문제냐면, 어쩌면 어떤 상황이냐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디플레이션이 올 수 있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디플레이션은 세계적으로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실제로 닥친 경우가 없고 사례도 그것 뿐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 디플레이션이 생기는지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우리는 거의 갖고 있지 않습니다 .

-디플레이션은 정확히 정의가 뭔가요?

학계에서는 디플레이션을 물가의 하락이 <자기실현적 경로>를 타고 <전반적인> 상품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정의합니다. <자기실현적 경로>라는 건 수요가 부족하거나 공급이 넘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물가 하락이 아니라  사람들이 경기가 나쁘고 더 나빠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소비를 줄이고 그렇게 소비가 줄어들 게 확실해보이기 때문에 가격을 더 낮추고 그 과정에서 투자와 고용이 줄어들고 경기는 그래서 더 나빠지는 악순환을 의미 합니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은 그리 쉽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기도 합니다 . 국민들이 집단 우울증에 빠져야 그런 현상이 생깁니다. 불경기는 전세계 어디서나 유행병처럼 나타나지만 그게 악순환으로 빠져들며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하는 디플레이션은 일본에서만 발생한 게 그 이유입니다.

일시적인 경기 침체에 따른 소비심리의 위축은 시간이 지나면, 물가가 좀 내려가면 다시 심리가 살아나고 자산가격도 올라가서 소비를 다시 일으킵니다. 그게 오히려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디플레이션은 위험하기도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일부러 빠져들래도 빠져들기 어려운 질병이기도 합니다.  수요 공급과 무관하게 전반적인 모든 물가가 자기암시나 집단우울증 때문에 계속 내려가는 건 쉽게 발생하는 일은 아닙니다 .

예를 들어 아파트가격이 내리기 시작하면 더 내릴까봐 못사고 수요가 부족하니 더 내리는 일이 생깁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런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계속 끊임없이 꼬리를 물고 가격이 하락할 것 같지만 어느 정도 가격이 내려가면 저가 매수세가 들어옵니다. 그러나 일본은 워낙 큰 거품이 깨졌기 때문에 어디 까지 내리는 게 바닥인지에 대한 판단을 하기 어려워서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그게 10년 넘게 이어지다보니 나 혼자 저가 매수에 나섰다가는 큰 화를 당한다는 인식이 깊게 퍼졌습니다.

요즘은  불경기가 장기화되면서 물가도 계속 낮은 상태가 유지되는 상황을 디플레이션이라고 불러버리는 용어의 혼동도 함께 나타나고 있습니다 . 그래서 디플레가 올거냐 아니냐의 논쟁이 용어인식의 차이로 인해 산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럼 우리나라는 디플레 상황은 아니라는 건가요?

불경기에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물가가 내려가면서 그게 불경기를 더 가속화하는 디플레이션과, 경기는 안좋은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둘 다 자주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는 아직은 스태그플레이션이 더 걱정 입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달리 외부의 환경에 더 민감하고 더 의존적인 경제구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소비경기가 나빠지는 것보다 더 먼저 걱정해야 할 일이 수출이 줄어들거나 외국인 관광객들이 우리나라로 들어오지 않는 일입니다. 수출이 늘거나 관광객이 늘어나면 소비경기는 저절로 회복되지만 그 역은 거의 성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수출이나 관광객이 줄어들어서 달러가 부족해지면 환율이 오르고 그러면 대부분이 수입품인 에너지와 농산물 가격이 오릅니다. 일본은 수출이 줄어들고 경기가 나빠지면 오히려 환율이 내려가고(엔화 강세) 수입품 가격은 더 내려가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과 대조적 입니다.

디플레이션에 빠지려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저물가가 지속된다는 기대인플레이션 하락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그런 저물가 지속이 쉽지 않다는 것도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줄이는 요인 입니다.

-그래서 결론이 뭔가요?

1. 지나고 나면 이게 디플레이션의 출발점이었다고 회고하게 될 수는 있겠지만, 지금은 디플레이션의 증상이나 조짐은 아직 안보입니다. 디플레이션은 단순한 물가하락과는 다르니까요.

2. 디플레이션은 거대한 거품의 붕괴 후에 옵니다. 그럴 거품은 아직은 안보입니다.

3. 디플레 아니면 좋고 그래도 미리 대비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는 질문은 가능한데 가계나 기업이 그걸 미리 대비하기 시작하면 그 탓에 불경기가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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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브리프

귀금속 값이 다 오른다

금값이 꽤 올랐다는 소식은 자주 들으셨을텐데요. 요즘은 은이나 귀금속 가격도 많이 오르고 있습니다.  금이나 은의 가격이 오르는 가장 큰 이유는 자국 화폐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물가가 올라서 돈 가치가 떨어지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 부동산을 사는 것과 같은 심리가 작용한 결과입니다.

금투자는 화폐가치가 불안한 나라일수록 좋은 결과를 보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요즘 금값이 단군이래 가장 비싼 사상 최고치 인데요. 이건 금값이 비싸져서가 아니라(그런 영향도 있지만) 우리나라 원화의 가치가 하락(환율 상승)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금값이 아직 사상최고치가 아닙니다. 미국 금값은 온스당 1500달러 수준인데, 최고 기록은 2011년에 기록한 온스당 1900달러입니다.

참고로 아르헨티나에서는 금값이 온스당 6만페소인데 2011년에는 5천페소였습니다. 그 사이에 아르헨티나 화폐 가치가 하락한 결과입니다.

자국의 화폐가치가 하락할 때 그걸 피하는 방법은 가치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뭔가를 사두는 겁니다만, 그게 과연 뭔지에 대한 인류의 생각과 취향은 늘 비슷하기도 하고 자주 변하기도 합니다. 그걸 부동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게 암호화폐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게 귀금속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게 유명한 예술가의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게 우량한 회사의 주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각각 다를 뿐입니다. 자산 가격은 뭔가 과학적이거나 체계적인 이유를 갖고 움직일 것 같지만 사람들이 여러가지 자산중에 어떤 게 화폐 가치 하락을 막는 자산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지느냐에 따라 가격이 오르거나 내립니다.

요즘은 금값의 뒤를 이어 은값도 꽤 올랐는데요. 1년전만해도 은은 귀금속이라기 보다는 산업재의 성격이 강해서 경기 침체로 인한 수요 감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불경기에는 금과 다르게 움직인다는 생각이 많았습니다.  요즘 은값이 오르는 이유는 그냥 그 생각이 좀 달라졌기 때문이거나 그래도 금이 오른 폭만큼은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 입니다.

이렇게 화폐 가치의 하락을 피하기 위한 자산의 종류가 다양하고 많은 것은 좋은 일입니다. 기왕 투기적 수요가 존재한다면 그게 분산이라도 되는게 낫기 때문입니다.

데일리 체크

일본과의 갈등이 본격화 된 이후, 불매운동도 줄을 이었는데요.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일본 관광 가지 않기” 였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일본 관광객이 많이 줄었을까요? 줄긴 줄었지만, 아주 많이 줄진 않았다는 한국경제신문 보도입니다. 지난 7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4만명 정도 줄었습니다. 여전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찾는 여행지는 일본 입니다. 다만 일본행 여행객이 줄어든 만큼 대만, 베트남 행이 늘어났습니다.

오는 17~18일 FOMC가 열리는데요. 시장에서는 0.5%포인트 수준의 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있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인하폭은 0.25%포인트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큰 폭의 금리인하를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지만, FOMC 내부에서는 이견이 상당하다고 WSJ는 전했습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경기 침체를 전혀 예상하지 않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경제 평론가입니다. MBC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를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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