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물가 상승률이 2% 정도 되면 제일 괜찮은 상태로 봅니다. (마치 ‘적정실내온도’ 같은 겁니다) 그런데 그보다 상승률이 낮은 상황이 계속되니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게 디플레이션이 올 가능성인데요. 당장은 괜찮지만 이런 추세라면 경제학자들이 제일 무서워한다는 디플레이션이 올 수도 있다는 걱정이 많습니다.

디플레이션은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인데요.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또 내릴 걸로” 기대하기 때문에 소비와 투자를 뒤로 미루고 그게 불경기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는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부채를 많이 가진 가계나 기업은 원금 상환의 부담이 점점 더 커지게 됩니다. (당근 1개에 100원일 때 100만원의 부채를 가진 야채가게는 당근 1만개를 팔아야 원금을 갚을 수 있지만 물가가 내려가서 당근 가격이 50원이 되면 당근 2만개를 팔아야 부채를 갚을 수 있습니다) 부채의 무게가 매년 더 무거워지면 사람들은 빚을 내지 않습니다.  빚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이 빚을 내지 않으면 경제는 침체 됩니다.

– 그래서 정말 디플레이션이 오는 건가요? 경제 위기가 오는 건가요?

그럼 디플레이션이 정말 오는 것인가 궁금하실 텐데요. 요즘 물가가 왜 내리고 있는가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답을 조금은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물가가 내리는 이유 중에 가장 큰 요인은 복지정책입니다. 무상급식을 확대하면서 각 가정이 지출하는 ‘급식비’의 가격이 내려갔고 문재인케어로 건강보험 적용항목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각 가정이 지출하는 ‘병원비’가 내려갔습니다. 같은 이유로 ‘교복값’도 내려갔습니다. 교복을 공짜로 주는 지자체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복지정책 때문에 내려간 가격은 ‘일회성’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 이번에는 작년보다 크게 내렸지만 그 폭만큼 내년에도 더 내리지는 않습니다.(이미 공짜인 교복값이 더 내려가지는 않을 테니까요) 내년이 되면 그런 복지정책으로 인한 물가 하락 효과는 모두 사라지고 물가는 마치 그런 복지정책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움직일 겁니다. 그냥 딱 한 번 내리고 만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격이 내린 것이지 물가상승률이 낮아진게 아니라 그렇습니다.

– 그럼 당장은 디플레 우려는 없다는 건가요? 

디플레이션이 생기는 이유는  물가가 내려가는 일이 꽤 오랜 시간 이어지다보면 사람들의 마음 속에 ‘물가가 계속 내릴 거라는 예상과 기대감’이 생기기 때문 입니다. (이걸 기대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마음 속에 그런 게 생기면 실제 물가도 그렇게 움직이고 그건 웬만해선 바뀌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물가가 으레 오르는 것이라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퍼져있으면 1년 후에는 월급도 당연히 00%는 올라야 하고 음식값∙택시비∙학원비도 00%쯤 오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그런 상품의 가격을 실제로 그렇게 올립니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생각하니까요. 반대로 물가가 내린다고 생각하면 실제로 기대인플레이션이 낮아져서 물가는 계속 내립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물가가 ‘지속적으로’ 낮아져야 합니다. 즉  물가에서 중요한 것은 물가의 수준이 아니라 물가가 내리거나 오르는 ‘기울기’ 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예를 들어 물가가 너무 빠르게 오를 때 정부가 오늘부터 모든 상품의 가격을 어제의 절반으로 낮춘다고 법을 만들고 단속을 해봐야 물가는 한번 덜컹 내린 후에 또 과거와 비슷한 기울기로 오르게 됩니다. 정부의 정책은 가격은 내릴 수 있지만 물가를 내리지는 못합니다.

– 이 추세면 조만간 디플레이션이 온다고 볼 수는 없나요?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 속에 형성되는 기대인플레이션은 물가 상승의 기울기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물가가 얼마나 꾸준히 오르거나 내리냐에 달려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0%대로 조사되고 있지만  정부의 복지정책 확대에 따른 ‘일회성’ 하락을 제외하면 1%가 넘습니다.  그러니 디플레이션 걱정은 아직은 다소 성급해보입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저간의 상황이 생략된 채 ‘물가 상승률이 0%대’라는 뉴스 헤드라인이 사람들의 마음에 강렬하게 전달되면 사람들은 ‘물가가 안 오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마음 속의 기대인플레이션을 낮춥니다. 그러면 실제로 물가가 내린 것과 같은 결과가 나타납니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기대인플레이션은 아직 2.2% 입니다. (사람들에게 앞으로 1년간 물가가 얼마나 오를 것 같으냐고 질문해서 받은 답의 평균치입니다) 미국도 물가는 낮지만 기대인플레이션은 그보다 높습니다. 디플레이션을 걱정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참 다행스런 일입니다.